05. 소망 이미지 "집단의식 속에 존재하는 새것과 옛 것이 뒤섞인 이미지는 소망 이미지이다. 그 속에는 사회적 생산질서의 미숙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집단의 무의식이 담겨있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요리프로그램 심사위원 : 마감 10분 전입니다!! 이제 그만 마무리해주세요! 급박하게 요리를 하던 사람들이 멈추고 오징어순대를 보여줌 심사위원 : 오징어 순대를 하셨군요.. 심각하게 맛을본 심사위원 심사위원 : 앞치마를 벗고 키친을 떠나주세요! 티비를 보고있던 부녀 권준우 : 저 앞치마가 뭐라고 저렇게... 그나저나 심사위원 아우라가 있다.. 권하연 : 에? 왜지?? 맛있어 보이는데?
권준우 : 저거 별로 어려운 거 아닌데? 오징어만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권하연 : 헐~ 또 시작이다~ 맨날 다 할 수 있대~ 해줄 것도 아니면서~ 권준우 : 진짜야~!! 내가 다음에 리조또로 꽉 채운 오징어 순대를 만들어 줄께~ 권하연 : 어? 리조또? 오징어 순대?? 그런 순대는 처음 들어보는데? 권준우 : 당연하지~ 내가 만들어 낸 레시피니까~ 서울대 정문 앞 아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주는 엄마 엄마 : 자! 김~ 치~ 좀 더 왼쪽으로! 저게 보여야지~ 그 모습을 보고있는 권준우 ‘서울대 정문.. 저게 뭐라고.. 그냥 철제로 만든 조형물인데.. 학부모의 소망이 투영된 이미지.. 어쩌면 저것도 벤야민이 언급했던.. 집단무의식이 투영된 일종의 소망이미지가 아닐까...?’
권준우 : 다음 학기에 사용할 강의실을 변경하려고요.. 직원 : 네 변경사유가 어떻게 되는 데요? 권준우 : 이번 학기 수강신청 인원이 많아서요.. 직원 : 신분증 사본이 필요한데요.. 권준우 : 아, 네.. 신분증.. 지갑이..???? 겉옷 주머니를 뒤져보던 권준우 지갑이 없는걸 깨달음 ‘지갑이 없어!! 혹시... 버스 정류장에서 떨어트렸나..??’ 권준우 : 으아아!! 큰일이다!! 내 지갑!!! ‘제발.. 있어라.. ‘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는 권준우
버스정류장을 뒤져보던 권준우에게 경비원이 다가옴 경비원 : 이봐요! 권준우 : 네? 경비원 : 혹시 이거 찾으세요? 권준우 : (아…!) 네! 맞아요!! 제꺼예요~!!! 경비원 : 지갑 안에 있던 사진 봤어요~ 혹시 돌아올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이네요~ 권준우 : 감사합니다!! K마트에서 장을보는 부녀 권준우 : 오징어다~ 권하연 : 와~!! 그 아저씨 되게 착하다~ 그래서? 사례는 했어? 권준우 : 응? 사례..? 무..슨.. 사례?? 권하연 : 쯧쯧 센스없긴... 권준우 : 아까는 경황이 너무 없어서.. 생각도 못했네... 권하연 : 엄마도 참 힘들었겠다~ 권준우 : 그나저나 너 엄마한테 왜 전화 안해? 권하연 : 헐.. 내가 왜? 엄마도 전화 안하잖아?
권하연 : 됐거든~ 나도 바뻐~ 집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오징어순대 안에 들어갈 내용물을 볶고있는 권준우 권하연 : 왜 그렇게 많이 해? 권준우 : 그 경비 아저씨한테 도시락으로 갖다 드릴려구.. 권하연 : 그냥 김밥이 더 무난할 것 같은데..? ‘아우라(Aura)란, 주체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얻게 되는 미묘한 주관적 경험, 일종의 '교감'이다.’ 권준우 손에 주방용 비닐장갑을 끼며 권준우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지금부터 나는 오징어와 리조또를 교감시킨다! ‘
권준우 : 어? 뭐야?! 오징어가 잘려 있잖아!! 잘못 샀다!! 권하연 : 그걸로 어떻게 오징어 순대를 만들어~ ‘아씨... 어떡하지?’ 이쑤시개를 이용해 오징어 몸통을 만들어보며 권준우 : 이렇게라도 해보면.. 권하연 : 헐... 그냥 다시 사오지? 권준우 : 시끄러워!! 이상태로 삶으면 어느 정도 모양이 나올 것 같아.. 굳어져라..굳어져라.. 오징어를 냄비에 넣어 삶으며 몇 분 뒤.. 권준우 : 아씨.. 아깝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조금씩 터진 오징어순대모습
권준우 : 아빠 이거 금방 갖다주고 올게~ 대학교 안내소에 도착하여 문을 두들김 권준우 : 여기가 맞나..? ‘똑똑’ 권준우 : 계세요? 경비원 : 네? 무슨 일이세요? 권준우 : 안녕하세요! 저.. 아까 낮에... 기억하시죠? 경비원 : 아..예.. 그럼요.. 어쩐 일로.. 권준우 :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사례를 못해서요.. 경비원 : 아이고.. 뭐 이런 걸.. 권준우 :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경비원 : 허허~ 고맙습니다~ 시간이 약간 흐르고 권준우 : 아! 그래요? 그럼 아드님도 이 학교 학생이예요? 경비원 : 허허.. 그랬죠..
권준우 : 이런 그랬군요.. 경비원 : 입학하고 사고를 당해서 저 세상으로 갔다오.. 그래서인지.. 이교문을 지나는 학생들이.. 모두 내 아들처럼 느껴지곤 해요..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 Delisophy- 박준우의 음식이야기
채워 넣다.
속이 꽉 찬 모습에 사람들은 풍요를 느낀다. 곡식이 껍질 안으로 가득 차거나, 과실이 양분을 머금고 실해질 때마다 수확을 하며 풍성한 마음을 느껴온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수확기가 아니어도 주꾸미나 도루묵 등이 알을 배기 시작하면 별미라며 줄을 서서 찾아먹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그 마음은 느껴진다.
반대로 사람들은 빈 공간을 지닌 먹거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차없이 드러내는데, 속 빈 강정이라느니 이름도 적나라한 공갈빵 같은 단어가 그렇다. 주머니가 허전하면 왠지 위축되거나 단순히 뱃속이라도 꽉 차면 마음마저 느긋해졌던 경험 때문일까. 우리는 비어있는 것은 반드시 채우고자 한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는 무소유라던지 모자람의 미덕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음식은 어떤 의미로든 혹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
동서를 넘어 사람들은 속을 가득 채우는 요리를 만들어 냈는데, 채소의 씨를 빼 낸 자리나 생선의 뼈와 내장을 발라 낸 자리를 고기 등의 재료로 채워 넣는다거나, 소시지나 순대처럼 가축의 창자에 피 등을 넣어 조리하는 것이 그렇다.
또 지중해에서는 오징어의 속을 채워 버터나 올리브 기름에 구워 먹는 요리가 있는데, 대개 토마토와 양파, 허브 그리고 햄 등을 넣고는 한다.
이렇게나 다양한 '속을 채워 넣은' 요리들을 보면서 문득 이 과정이 인간 욕망의 한 단면은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빈 자리에 구태여 무엇인가를 채워 소유하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요리일 뿐이지만 단순히 볶고 지지는 것 외에 생소한 과정이 생기니 그 생소함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려 들었다. 요리를 완성하고 도마 위의 토막 난 조각들을 보고서야 복잡한 마음을 위로할만한 꼬리를 잡았는데, 그건 채운 뒤에 나누면 좀 더 실한 조각들이 나온다는 것. 그 실한 조각들을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