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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로

인정과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기를 - 박태원의『천변풍경』

새로운 천변에서도 인정과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기를, 청계천 광교와 배다리 사이에서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더듬다
사람이 아닌 ‘공간’이 주인공인 「천변풍경」
「천변풍경」을 읽고 나서 좀 당황했다. 「천변풍경」에는 ‘주인공의 여로’에 준하는 기본 조건이 결여되어 있었다. 주인공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주인공이 너무 많았다. 이발소 사환 재봉이, 한약국집 사환 창수, 재력 있는 50대 사법서사 민 주사, 민 주사의 젊은 정부, 카페여급 하나코와 기미코, 천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으나 친정으로 쫓겨나게 되는 이쁜이, 이쁜이를 짝사랑한 점룡이, 포악한 남편에 시달리는 만돌어멈 등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숨 가쁜 70여 명에 달하는 장삼이사들이 제 나름으로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는 소설인 것이다. 그들 주인공 중에는 시골 출신으로서 제법 여로가 복잡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청계천 광교와 배다리 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동작선을 유지한다. 누구 하나를 택해서 주인공의 여로라고 우길 수도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런 난감한 상황이라 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천변풍경」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라고 보는 게 좋겠다. 다수의 주인공들의 1년살이를 씨줄 날줄처럼 엮어주는 공간적인 배경인 청계천이 차라리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것이다.
내가 「천변풍경」의 주인공 청계천에게 간 날은, 오랜 가을 가뭄 끝에 소량의 비가 하루 정도 내린 뒤 서서히 개일 무렵이었다. 때문인지 「천변풍경」의 문장을 빌리자면 ‘날이 드니깐, 개천 속이 오늘 대청결이구만’이었다. 사실 나는 청계천에 생전 처음 가보는데다가 청계천이 복원 개통 이후 시민의식과 서울시 공무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늘 청결하다고 언론에서 칭송한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오늘 따라 청결한 것인지, 늘 이렇게 청결한 것인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광교
△ 광교
광교에서 출발한 나는 보도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보도에서 내려다본 청계천과 산책로의 남녀노소들. 과연 듣던 대로 서울이란 대도시 한복판에서 저런 풍경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청량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한 20여 분 올라가다가 산책로로 내려와, 이제 물길을 따라 거슬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쨌든 청계천 전체보다는 그래도 ‘광교와 배다리 사이’에서 소요하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단체로 구경을 온 듯한 할아버지들이 개천을 바라보며 회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 분들은 70년 전에 이 개천에서 발가벗고 모래흙장난하고 장사치를 졸졸 따라다니던 소설 속 바로 그 코흘리개들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재봉이와 창수를 닮은 청소년 녀석들이 활짝 웃어대며 달려들 가고 있었다. 소설 속 한약국집 아들과 며느리를 연상시키는 젊은 부부와 연인들의 어깨 맞댐이 정겨워 보였다. ‘사진’이라는 깃발을 세워둔 상인들은 소설 속 빨래터 주인들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 속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외국인들은 연신 셔터를 둘러대고 있었다.
소설 속에는 개천에 대한 풍경 묘사가 전혀 없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시도 때도 없이 문질러대는 통에 풍경이라고 할 만한 게 자리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박태원 선생이 그런 풍경묘사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풀 찾고 꽃 거론할 만한 시골 개천 푼수의 조경 풀 둑이 뻗어있었다.
이 개천은 인간들의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천변풍경」 속에서 이런 대화가 나온다.
“하지만 개천을 덮는단 말도 있지 않수?”(용돌이) “아니, 개천을 덮어? 무슨 수루 이 넓은 개천을 덮어? 그러지 말구 바로 하늘에서 올라가서 별을 따 오라지.”(샘터주인)
이 소설이 처음 씌어진 것은 1936~7년. 당시에도 청계천을 복개할 의지를 가진 권력자들이 있었으나(그 의지가 소문으로 감돌았으나), 대중은 ‘하늘에서 별 따기’와도 같은 황당무계한 일로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중들의 고정관념보다 소문이 더 정확할 때가 많아서, 복개는 이루어졌다. 일제 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교까지가 1차로 복개된 데 이어 1958년부터 시작된 여러 차례의 복개로 청계천은 아주 약간을 제하고는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청계천을 나들이하는 시민들
△ 청계천을 나들이하는 시민들
그런데 이후에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복개된 개천 위해 「천변풍경」 속에 나오는 숱한 서민들과 흡사한 대중들이 수십 년간 터전을 이룩했다. 그 터전 위에 언제부턴가 개천을 복원하겠다는 소문이 감돌았고, 대중들은 터무니없는 일로 여겼지만, 마침내 개천은 복개된 땅에서 살던 수많은 서민들의 삶은 유린하고서, 복원되고야 만 거였다.

고백하건데 나는 「천변풍경」의 무대인 ‘광교와 배다리 사이의 남북 천변’이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광교에 대해서는 복원 광교가 그때의 광교이거나 그 어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배다리가 문제였다.
세 시간 정도 인터넷을 뒤지고 몇몇 서울 토박이에게 질문해본 것으로는 답이 안 나오고, 전문 연구자들에게 설문을 하는 등, 제대로 추적해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이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씌어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광교와 배다리 사이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배다리도 광교 주변의 동서남북에 있겠거니 하고, 물길에서 벗어나 광교주변의 동서남북(을지로에서 종로를 축으로 한 바퀴)을 하릴없이 걸어 다녔다. 서울이 얼마나 정신 없이 복잡 요원한 곳인지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각주구검 (刻舟求劍 )이 아닐 수 없었다. 박태원 선생이 떨어뜨렸던 「천변풍경」이라는 뱃전 표시는, 서울이라는, 그것도 서울의 도심지 중의 도심지인 이 부근이 너무나도 빨리 달리는 배를 타고 출발한 지 몹시 오래된 탓에, 「천변풍경」 속에 벼려져 있던 무수한 단검들을 단 한 개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서울의 70년은 시골의 700년보다도 무장한 세월이어서, 시골에서는 700년 전 글 속의 흔적이나 자취도 찾아내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서울에서는 그저 저 표지판에 살아 있는 지명만이 유일한 흔적이고 자취일 터였다.
청계천
△ 청계천
다시 광교로 돌아와 다리 위해서 멍하니 물길을 바라보았다. 시대와 조건이 천차만별로 달라졌지만, 세태풍속이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조화롭게 어울려 산다는 사실만이 영원한 것인지도 몰랐다.

70년 전 당시 천변풍경을 형성했던 조상들의 후손이, 죽 늘어선 고가빌딩, 분주히 오가는 차량들, 동서남북의 보도를 걷는 시민들, 그 숨 막힐 것 같은 공간에 거짓말처럼 흐르는 조그만 개천이라는 새로운 천변풍경을 형성하고, 그 옛날에도 러했듯, 애증으로 일상을 견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청계천은 정말 괜찮아 보였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기계덩어리 속에 난 오아시스 같았다. 서울의 중심에서 한 개의 칩처럼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의 수고로 오아시스에서 기분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물줄기 탄생을 위해서 「천변풍경」 속 만돌어멈 같은 서민대중이 또 얼마나 많이 다쳤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현재의 모습, 그리고 저 개천이 이끌어갈 미래 서울 도심 한복판의 모습은 이런 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천변풍경은 천 년 만 년 지속될까? 또 한 오십여 년 만에 무슨 필요에 의해서 덮어버리겠다고 설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천변풍경」은 작가의 목소리, 자의식이랄 만한 게 거의 없는 소설이다. 작가가 철저히 무대의 뒤편에서 관찰자로 숨어서 무수한 주인공들의 동작선을 그저 따라가고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없을 수는 없어서 다음과 같은 박태원 선생의 목소리로 보이는 대목이 있다.
“…… 사람과 사람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그것들이 암만이든지 서로서로의 마음을 아름답게, 또 고맙게 해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아마도 선생은 1936~7년 당시 천변에서 인정과 사랑을 보았던 것 같다. 선생이 덮었다가 새로이 파인 지금의 천변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새로운 천변에서도 ‘인정과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 서로서로의 마음을 아름답게, 또 고맙게 해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실 것이다.
천변풍경
"…… 사람과 사람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정’이라는 것. ‘사랑’ 이라는 것. 그것들이 암만이든지 서로서로의 마음을 아름답게, 또 고맙게 해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김종광 : 소설가. 1971년생.
소설『71년생 다인이』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낙서문학사』, 『야살쟁이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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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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