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나가사키, 엔도우 슈사쿠『침묵』의 고향

나가사키, 엔도우 슈샤쿠, 침묵의 고향
소토메의 해변 마을
△ 소토메의 해변 마을
2010년 8월 4일 동북아 작가대회가 나가사키에서 열렸다. 대회는 일본과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를 양국의 학자나 작가가 발표하고 함께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토론 대상으로는 한국 시인 윤동주와 일본의 소설가 엔도우 슈샤쿠(1923~1996)였다. 두 작가는 모두 이 지역과 관계가 있었다. 내가 발표했던 윤동주는 나가사키에서 차로 두어 시간 달리면 있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귀천했고, 엔도우 슈샤쿠는 종교 박해가 있었던 나가사키를 여러 번 취재하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명작『침묵』을 남겼다.
이틀간 가톨릭센터에서 학술대회를 마친 뒤, 삼일 째 8월 6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엔도우 슈샤쿠 『침묵』문학기행 했다.

주인공 로드리고가 처음 상륙했던 해변, 숨어있던 마을, 끌려 다닌 길을 염하(炎夏)의 날씨에 바지까지 땀에 젖은 채 걸어 다녔다. 엔도 문학을 연구하시는 오쿠노 교수(나가사키대학교)께서 안내해주셨다.
소토메의 해변 마을
바깥쪽 바다, 외해(外海)를 뜻하는 '소토메'라는 곳을 향했다. 나가사키 시내를 통과해서 버스로 십 여분 가다보면 터널을 지나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다를 꺾어내려 보듯이 언덕과 벼랑이 이어진 절경을 볼 수 있다. 바쿠후의 대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내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해안 도로 위를 버스는 천천히 움직였다.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렇게 좋은 곳에 숨어 지냈단 말이야?"
소토메의 해안선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형성되었고,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수평선은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오쿠노 교수는 『침묵』에 나오는 토모기 마을이 여기 해변마을인 쿠로사키 마을이 모델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소토메 곳곳에 신부들이 지어놓은 옛 성당들이 아름답게 복원되어 있다. 아름다움 뒤에는 서늘한 비극이 숨어있는 법, 바로 이 아름다운 지역에는 키리스탄(천주교인)을 사형시켰던 피의 역사가 서려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기 일 년 전 1597년 2월 5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스페인 선교사와 일본인 최초 선교사 총 26명이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 당시 수도 교토에서 천주교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가사키까지 약 1,000Km를 걷게 하여 십자가 처형했다. 그 장소가 현재 '26성인 기념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어 159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은 장악하고, 이후 기독교 대박해 시대가 시작된다. 200년 동안 이 소토메 지역에 숨어 살았던 천주교도들이 이때부터 체포되어 당하는 고난을 소설『침묵』은 복원해내고 있다.
"주교였던 페라이리 신부가 배교(背敎)했다."

『침묵』의 첫 대목은 서늘하기만 하다. 주교(主敎)라는 최고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사제와 신도를 통솔해 온 성직자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背敎)했다는 소식이다.

1614년 일본인을 포함하여 70여 명의 가톨릭 신부들은 추방을 당했는데, 페라이라 신부는 일본인 신도를 버리고 갈 수 없어 잠복하여 선교 보고서를 보냈던 이였다. 감동적인 선교 보고서를 보내곤 하던 그가 배교했다는 소식을듣자, 믿을 수 없었던 그의 제자 로드리고 신부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것으로 『침묵』은 시작된다.
주인공 로드리고가 상륙했다는 소토메 해안
△ 주인공 로드리고가 상륙했다는 소토메 해안
1637년, 포르투갈에서 바로 이곳 나가사키 소토메로 입국하는 것으로 써 있다. 그는 잡히지 않기 위해 작은 숯 창고에서 숨어 지내며 포교를 시작한다.
숨겨둔 성화(聖畵)를 몰래 돌려보며, 성수(聖水)랍시고 물 담은 깨진 사발 앞에서 드리는 예배는 얼마 가지 않는다.

도쿠가와 막부는 천주교인을 색출해내기 위해 , 동판이나 목판에 예수님이나 마리아 상을 새겨 놓은 후미에(踏繪)를 이용했다. 후미에를 밟지 않는 천주교인을 물이 들어와 목까지 차오르는 바다에 묶어 놓거나, 발가벗기고 칼로 수십 군데 찌르고 찔린 상처에 뜨거운 화산물을 부었다. 그리고 펄펄 끓는 온천물에 넣는 '지고쿠 세메 (地獄責, 지옥형벌)'를 행했다.
운젠 온천물 “지옥물은 위험합니다”라고 써있다.
△ 운젠 온천물 “지옥물은 위험합니다”라고 써있다.
신부 로드리고가 고문과 후미에를 당하며 신의 '침묵'하는 의미를 깨닫고 '배교'한다.
소설『침묵』에 나오는 ‘운젠 지고쿠(雲仙地獄)’ 30여 개 지옥탕 군데군데에, 지금은 나가사키 대교구에서 세운 십자가 순교비가 서 있다.
이러한 고문을 견디고자 했던 로드리고가 절망하는 사건이 생긴다. 어느 날 간수의 코 고는 소리에도 신경이 예민해진 로드리고는 그 불규칙한 코 고는 소리는 사실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는 신자들의 신음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곤 후미에를 밝는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 엔도 슈사쿠 『침묵』, 홍성사, 267면
엔도우 슈샤쿠 문학기념관
△ 엔도우 슈샤쿠 문학기념관
여기서 ‘침묵’은 중세 가톨릭의 하나님 개념과도 연결되는 네오 토미니즘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엔도는 죠지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그때 스승이 가톨릭 철학자 요시미츠 요시히코(吉試義彦)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말할 때, 근대적인 상식으로는 하나님의 부재와 무를 상상케 하는 단어지만, 중세 가톨릭의 전통적 사상에서는 오히려 ‘하나님 의지의 충일(充溢)’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우주란, 하나님의 의지로 충만하여 결코 부족한 것이 없다는 사상, 그 『침묵』인 것이다.
엔도우 슈샤쿠 문학기념관
『침묵』을 읽을 때 로드리고의 움직임에 주의해야 한다. 로드리고의 행위가 일어나는 곳은 모두 천주교인 순교지 유적이 있는 지역이다. 소설에 나오는 지명을 따라가다 보면 소토메 해변을 일주하게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 엔도 슈샤쿠 문학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엔도 슈사쿠 문학관’은 까마득한 절벽 위에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엔도우 슈샤쿠의 유학시절 일기, 친필원고, 영화필름, 출판된 책 등 3만점 정도의 자료가 비치되어 있고, 전문 학예사가 기획하고 안내하고 있다. 기념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침묵의 비’가 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파랗습니다.”
침묵의 비에 써 있는 구절은 지금 읽어도 마음 한 구석이 쓰리다.
소토메 문학기행을 마치고 오후에 원폭박물관에 갔다. 그날이 히로시마, 그 다음 주 화요일이 나가사키에 원폭66주년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렇지만, 진정한 반성 없이 일본인이 당한 피해만 강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수십 년 지나면 결국 또 타국을 넘볼 우익들이 활개치고, 현재 그런 흐름이며, 계속 이렇다면 일본은 비극을 또 자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의 비
△ 침묵의 비
엔도슈샤쿠의 『침묵』은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학살이나 원폭 같은 광기 앞에 신이 어떻게 ‘침묵’하고 있는지, 그 ‘침묵’ 앞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비극을 묵상하게 한다. 그는 『바다와 독약』 등을 통해 전쟁 중 인체실험을 하는 광기를 그려냈다.
그렇게 인간이 저질러온 처형이며 학살이며 원폭과 같은 비극과 상관없이, 나가사키에 펼쳐진 『침묵』의 바다는 너무 파랗고 아름다워 서늘하기까지 하다.
도서 침묵
신에 대한 탐구, 그리고 강자와 약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교를 하게 되는 성직자의 고뇌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속에 신의 사랑에 찬 자비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자의 마음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약자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신의 사랑도 느끼게 된다. 인간 중심이 된 세상 속에서도 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술된 것이다.
김응교 - 시인, 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1962년생.
시집『씨앗/통조림』
평론집 『한일쿨투라』, 『사회적 상상력과 한국시』, 『이찬과 한국근대문학』,『韓·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번역서 다니카와 슈운타로 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作『어둠의 아이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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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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