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편지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요! - 한비자 편

철학자의 편지 한비자 편
* 본 콘텐츠는 pyh1123님이 《철학자의 편지 신청》에 작성해 주신 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연소개
"모두가 무시하는 내 의견, 이젠 말하기조차 두려워요"
전 인간관계에서 소심한 성격입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모든 일이 남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항상 불편하고,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또 어렵게 내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제가 말주변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절 무시해서인지 그냥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이제 누군가와 대화하기도 힘든 지경입니다. 제 생각을 표현하면서 남들도 제 말에 귀 기울이게 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없을까요?
철학자의 편지
"원하는 것을 얻고 인생을 바꾸는 지혜, 설득"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어려움일 것이네. 소심한 성격과는 상관없이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지식이나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네. 지식이나 내용을 채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내어 거기에 맞추는 것이지.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기에, 사람을 마음을 헤아려 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네. 게다가 또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악한 것이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게.

옛날 위(衛) 나라에 미자하(彌子瑕)란 멋진 남자가 있었는데, 색(色)을 밝히던 위나라의 군주 영공(靈公)은 미자하를 엄청 총애했다네. 어느 날 과수원을 함께 거닐다가 탐스러운 복숭아를 보자마자 미자하는 그 놈을 따서 먹었는데, 먹다 보니 군주가 생각나서 먹던 반쪽을 군주에게 주었다네. 그랬더니 군주는 맛난 복숭아를 혼자 다 먹지 않고 자신에게 주었다고 감동했지. 또 어느 날에는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 미자하는 거짓말을 꾸며 군주의 수레를 타고 나갔는데, 군주는 이 소식을 듣고서도 벌하지 않고 그의 효심을 칭찬했다네. 그런데 세월이 비껴가는 법은 없고,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법이지. 나이가 들어 미자하의 용모가 빛을 잃으니, 군주는 미자하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네. 결국에는 “이 놈이 제가 쳐 먹던 복숭아를 내게 주었고, 거짓말을 꾸며 내 수레를 탔던 못된 놈!”이라 욕을 했다네. 미자하의 말과 행동은 변함이 없었건만 군주의 말이 바뀐 것은, 그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내 뜻을 펼치거나, 내 마음과 뜻을 표현하되 내가 손해 보거나 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네.

우선 상대방을 잘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뜻과 성향이 어떠한지를 잘 살펴야 한다네. 명예나 지조를 소중히 하는 사람에게 이익만을 말한다면 천박하다고 욕을 듣기 십상이네. 또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명예나 명분을 따진다면 세상물정 모른다 핀잔할 것이네. 심지어 내심으론 이익을 좋아하면서 명예를 중시하는 척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가려서 말을 해야 한다네.

또 남을 설득하고자 할 때에는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두둔해 주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감싸줄 줄 알아야 한다네. 칭찬에도 요령이 있는 법인데, 너무 직접적으로 칭찬하면 아부한다고 욕할 테니 그와 똑같은 일을 한 다른 사람에 빗대어 칭찬하는 것이네. 마찬가지로 결점을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결점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에둘러 한다면 손해가 나지는 않을 것이네.

또 하나는 윗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오랜 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네.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을 지내면서 친숙해지고, 일하는 과정에서 논쟁도 해 보았는데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옳고 그른 것을 지적할 수 있다네. 이로 이것이 남을 설득하는 최종의 단계라 할 수 있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한 가지 있다네. 아마도 자넨 역린(逆鱗)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네. ‘거꾸로 박힌 비늘’이라는 뜻인데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견디지 못하는 무언가가 다 있다네. 비록 자네가 충분한 신뢰가 있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다 해도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하네. 그것을 역린이라고 하네. 이것을 건드리면 그간 쌓아 온 모든 노력도 허사가 될 것이네.

다른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 내 생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게 하려면 상대방의 마음과 뜻, 성격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네. 그리고 그와 내가 얼마나 친숙하고 신뢰가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네. 그리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것, 그것은 결코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네. 만약 자네가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자네의 의견에 귀 기울일 걸세.

어떤가, 이 글을 다 읽고 나니 어쩐지 내 말이 옳은 것 같지 않은가? 허허, 내가 말한 설득의 기술을 한번 믿어보게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네는 원하는 것을 얻고, 인생 전체가 바뀌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걸세. 그것이 설득이란 삶의 지혜가 가진 힘이라네.
한(韓) 나라 신정(新鄭)에서
한비(韓非)가
오늘의 철학자
고대 법가사상의 종합자, 한비의 《한비자(韓非子)》
한비(韓非, B.C. 280?-233)는, 고대 중국에서 가장 늦게 출현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학파인 법가(法家) 사상을 종합한 사상가이다.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사상가였던 유학자 순자(荀子, B.C. 298-238)에게 배웠으며, 진(秦)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이사(李斯, B.C. ?-208)는 같은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본래 한(韓) 나라 귀족으로서 그가 지은 글은 당시에 이미 널리 읽혀졌다.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에 그의 글을 읽고, “이 사람을 만나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한비는 한 나라 왕에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다양한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원전 223년 진나라가 한나라를 침공하지 않도록 외교적으로 달래는 임무를 맡고 파견된 한비는, 진나라 왕이 높은 벼슬을 내리고자 했으나 당시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의 음모로 독약을 먹고 죽게 된다. 그가 남긴 저술은 한(漢) 나라 때부터 전체 55편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한비자(韓非子)》로 묶여졌고, 그 이후 수많은 황제와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학의 교과서처럼 읽혀져 왔다.
법가의 다양한 조류를 종합한 그의 사상은 흔히 법(法), 술(術), 세(勢)라는 세 개념으로 정리된다. 세(勢)란 지위나 신분으로부터 나오는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지배력을 갖기 위해 한비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대단히 중시했다. 또 한편 법가(法家)라는 이름처럼 한비는 법(法)을 중시했는데, 이 때 ‘법’의 의미는 오늘날 인간 상호간의 동의와 계약을 통해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것이라는 의미와 달리 군주의 통치 수단으로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명령이자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금지와 규정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술(術)이란 군주가 자신의 보좌하는 관리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기술의 의미를 갖는다.
한비에 따르면, 군주가 법(法), 술(術), 세(勢)라는 세 가지를 갖춘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충분히 군주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한비의 사상은, 고대 중국의 황제 지배체제를 확립하는데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나,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전체주의와 독재의 이념이라고 비판 받기도 했다.
철학자의 한마디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
"그러므로 윗사람에게 간언(諫言)을 하거나 윗사람과 담론(談論)을 펼치려는 자는 군주가 자신을 아끼는지 미워하는지를 살피고 난 후에 말해야만 한다. 무릇 용(龍)이라는 짐승조차 잘 길들이면 타고서 날아다닐 수 있다. 그런데 이 용에게는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게 되면 용은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런 역린(逆鱗)이 있다. 따라서 군주를 설득하려는 자는 이 역린을 건드리지 말아야 설득을 기대할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세난(說難)〉)

한비자는 “남을 설득하기의 어려움”이란 뜻을 지닌 〈세난(說難)〉과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의 어려움”이란 뜻을 지닌〈난언(難言)〉편과 같이 타인을 설득하여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철저하게 고민했던 사상가였다.

〈난언〉편에서는, 윗사람을 설득할 때에는 말투가 거침이 없는 것도, 신중하고 완벽한 것도,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수다스럽게 하는 것도 모두 부족하다고 말한다. 또 핵심만을 짚어서 말하는 것도, 속을 떠보듯이 말하는 것도, 고상하게 말하는 것도, 이해타산만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도, 거슬리지 않도록만 말하는 것도 모두 부족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한비자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거듭 강조한다. 한비 스스로가 자신의 조국 한(韓) 나라 군주에게 수많은 제안서를 냈지만 그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험에 비추어 한비는 설득 자체가 어렵기에 꺼리고 삼가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한비자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의도, 기술의 중요성도 강조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뜻과 의지, 취향과 성향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야 내가 보존되고 손해 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그 사람의 ‘역린’, 즉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은 건드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물론 한비자의 시대는 오늘날과 같지 않다. 하지만 마케팅을 위해서든,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든 신중하게 그리고 말을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주장은 결코 변치 않는 충고일 것이다.
철든생각, 설득의 기술
시민들이 거리에 몰려나와 항의하고 있다. 시민1:"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 시민2:"국왕은 물러나라!", 시민3:"이런식으로 할거면 왕궁을 불태우자!" 경찰1:"시민들이 너무 흥분해서 질서를 지키지 않아. 이러다 사고가 나겠어!!" 경찰:2:"흠...." 화난 시민들이 차도까지 진입하여 국은 물러나라며 계속 항의한다. 경찰2:"시민 여러분! 화가 많이 나셨겠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왕궁을 불태우실 분들은 왼쪽 길로, 불태우지 않으실 분들은 오른쪽으로 붙어서 이동해 주십시오!" 경찰의 소리에 시민들은 잠시 당황하며 서로 얘기한다. 시민1:"뭐?", 시민2:"하하 재밌는 경찰이네~", 시민3:"그게 뭐야~", 시민4:"하하하!", 경찰1:"됐어! 성공이야!!"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는 지혜,설득.
김시천(경희대학교 교수)
구성
이은지(작가)
그림
박동현(만화가)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5-03-1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