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편지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겨워요 - 피터 싱어 편

철학자의 편지 피터 싱어 편
* 본 콘텐츠는 smymhouse님이 《철학자의 편지 신청》에 작성해 주신 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연소개
"언제까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50대 평범한 주부입니다. 요즘 저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모든 생활에 무료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결혼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그렇게 큰 아이를 좀 키워다가 다시 둘째가 생겼죠. 다행히 남편이 전문직 일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서 저의 곁을 떠나갔고,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가끔 문화센터나 등산을 가고, 또 점심을 먹고, 작은 집안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내가 밥은 먹은 건지, 친구를 만났던 게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늘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현실감각까지 사라진 이 기분.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되는 내일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철학자의 편지
"'반복된 인생이 괴롭다'와 '안정된 삶에 만족한다'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죠. “돈만 많으면 이 지긋지긋한 삶의 문제들이 해결 될 거야. 시간 여유만 생기면 고민 없이 즐기며 살 거야.” 하지만 문제의 연결고리는 그렇게 쉽게 끊기질 않아요. 바로 지금 당신의 고민처럼 말이죠. 가정경제가 어려울 경우 주부는 육아와 집안일과 동시에 생계를 이어가는 슈퍼 워킹맘이 되어야 하죠. 다행히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돈과 시간을 모두 가진 전업주부는 워킹맘에 비해 편안한 생활을 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단순히 육체가 편한 것일 뿐, 정신까지 편하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지금 당신의 말처럼 오히려 좋은 환경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겁니다.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 독립을 하고, 시간도 많고, 돈도 부족하지 않고.... 이렇게 바라던 것을 모두 얻는 순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가 사라져버린 거죠.

이렇게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것은 꼭 당신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에요. 남자든 여자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성취한 다음, 승리의 짜릿함이 사람지면 목표를 상실하며 삶의 목적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가 흔하죠. 그러나 사회적으로 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이게 삶의 전부인가?”라고 회의를 느끼더라도 더 높은 임금을 받고 더 큰 권한을 누리리라는 기대로 그 회의를 잠시 잠재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목표가 없는 가정주부의 경우에는 존재의 무의미를 더 절박하게 느낄 수밖에 없겠죠.

매일 반복되는 이런 무의미한 일상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를 떠올리게 하죠. 시시포스는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려준 벌로 거대한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바위를 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면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또 다시 굴려 올리면 또 굴러 떨어지고… 시시포스는 영원히 그 일을 반복해야 하는 운명이죠. 시시포스의 신화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소재로 써서 유명해진 신화에요. 오늘 일이 끝나면 내일 처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이 헛수고는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암울한 비유인데요. 당신의 고민도 바로 이 시시포스와 같지 않을까요? 주부든 직장인이든 목표를 상실한 현대인에게 목표 없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역은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의 현대판인 거죠. 그렇다면 이런 삶의 무료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미국의 철학자인 리처드 테일러는 시시포스의 운명을 바꾸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제안해요. 첫 번째는 매번 똑같은 바위를 굴려 올리면 땀 흘린 결실이 전혀 없으니 다른 돌을 굴려서 언덕의 중간에 신전을 짓도록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매번 똑같은 바위를 헛되이 굴리긴 하되 바윗돌을 굴리려는 강한 욕망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시시포스의 비유로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두 가지 실천적 관점을 대변하고 있어요. 첫 번째 방법은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관점인데요. 아름다운 신전은 누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위대한 예술품이므로 객관적 가치가 있고, 그것을 창조하는 일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좋은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거죠. 반면에 두 번째 방법은 외부의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떤 주관적인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주관적인 우리의 욕망이므로, 결국에는 굴러 떨어질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의미를 부여하자는 거죠. 어때요? 좀 이해가 가시나요?

그래서 저는 당신이 “내 인생은 무료해”와 같이 현재 상황만을 바라보고 인식하기 보다 더 큰 이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하고 싶어요. 시시포스가 바위를 언덕 위로 굴리는 대신에 그 돌들을 언덕 중간에 쌓아 신전을 지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끊임없이 바위를 굴릴 힘이 있으면 언덕 중간을 닦아 신전을 쌓을 힘이 없을까요? 자아보다 더 큰 이상, 곧 ‘초월적 이상’이라고 해서 자아의 테두리를 넘어서 남을 위해 삶을 사는 것이죠. 신전을 짓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나 신전에서 기도하는 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의미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일단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은 거창하게 말해서 ‘우주적 관점’을 채택한다는 뜻인데, 나의 고통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고통을 똑같이 대하는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죠. 저는 현 시대의 대표적인 공리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전 현재 69세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철학가랍니다.) 공리주의는 나의 것이 됐든 남의 것이 됐든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행동이 옳다고 주장하죠. 대단한 이론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이나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예수님 말씀과 다 통하는 말입니다. 내가 고통 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고통 받기를 원하지 않을 테니 고통을 덜어 주고, 내가 쾌락을 추구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쾌락을 추구할 테니 쾌락을 얻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이죠.

우리 주위에는 사실 고통 받는 존재가 많습니다. 영양실조나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 비좁은 우리에 갇혀 고통스럽게 사육되는 동물이나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지는 자연 환경도 있죠. 이렇게 우리 시대에 고통 받고 더 나아가 도움이 절실한 곳이 많습니다. 저 역시 철학자임과 동시에 국제동물권리협회 회장직을 맡으며 동물해방을 주장하고 있어요. 공리주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라고 해서 다른 동물에 대해 특권적인 존재로 취급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싼 가격에 고기를 먹기 위해서 감각이 살아있는 다른 종의 동물들을 고통 속에서 사육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죠. 이렇게 철학을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환경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더니 전보다 훨씬 더 철학의 깊이가 생긴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한 제가 감히 당신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주부로서 자식들을 건강하게 키웠던 그 마음으로 버려진 아이를 감싸 안고 작은 힘이나마 노숙자에게 밥 한 끼의 따뜻한 온정을 나누면서 지금까지 내 가정으로만 맞춰졌던 삶의 목표와 시야를 이번 기회에 더 넓혀보시면 어떨까요?

아. 그리고 부디 제 진심을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당신이 인생이 무료하다는 배부른 소리할 시간에 어려운 사람이라도 돌보라며 던지는 조언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 당신의 삶이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살아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멋진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세상에 넘쳐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그 무료한 시간이 도움이 절박한 어느 곳에선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나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길 바래봅니다. 그러면 평생 어깨를 짓누르던 바위를 짊어졌던 시시포스도 언젠간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바위를 들어 올리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호주 멜버른에서
피터싱어가
오늘의 철학자
실천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
피터 싱어 사진
피터 싱어(1946~)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철학자로서 지금은 현재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 대학교에 겸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살아 있는 철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꼽히고 있다. 싱어의 기본적인 윤리적 원칙은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도덕적 사고에서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모든 사람들의 같은 이익들에 대하여 동등한 비중을 둔다”는 공리주의적 주장이다. 그는 이런 원칙에 기반하여 인종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차별 없는 대우를 해야 함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이든 동물이든 고통을 받고 있으면 그 고통은 똑같이 중요하고 덜어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담은 그의 <동물 해방>은 동물 운동 진영에 큰 영향을 끼쳤고 바이블로 읽혀진다. 싱어는 또 각종 실천적인 주제들에 대해 윤리적인 발언을 하는데, 기아에 시달리는 제3세계의 빈민을 원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를 영향력 있는 윤리학자로 주목 받게 한다. 우리가 물에 빠진 아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 것처럼 기아에 시달리는 빈민들은 우리의 약간의 원조만으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으므로 원조는 자선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한마디
"관점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너무 늦기 전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재고하고 자신의 행동에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 공평한 가치 기준에 어긋난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일 수도 있고, 집을 팔고 인도의 자원봉사 단체에서 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윤리적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첫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생활 습관에서, 자신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는 태도에서 점진적이면서도 원대한 발전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이상을 품게 되고 목표가 바뀔 것입니다.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면 더는 돈과 지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점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가치 있는 일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태를 느끼거나 삶에서 공허감을 느끼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온갖 고통에 연민을 느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애쓴 위대한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니까요."
-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중에서
피터 싱어는 여기서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우주적 관점을 취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치 있는 이상을 찾을 수 있는 만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주적 관점을 취하면 자신의 즐거움을 고려하는 것에 앞서 남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시급히 무언가를 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주적 관점을 채택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권태를 느끼지 않으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심리 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 당하지 않아도 될 고통이 너무 많고 그것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므로 거기에서 정당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철든생각, 무료한 삶에 직면한 현대인을 위하여
※시시포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 신을 속인 죄로 영원히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시시포스:"어차피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밀어 올리다니...삶이 너무나 무료하고 의미없구나...", 비둘기:"의미 없지 않아. 시시포스!", 시시포스:"응?", 비둘기:"그 바위로 신전을 만든다면, 많은 사람들이 더욱 가까이에서 신을 만날 수 있겠지."시시포스:"호오! 그런 방법이. 그렇게 생각하니 이 일도 의미없는 일은 아니구나! 좋아, 해보자!" 의미없는 삶과 가치 있는 삶. 그 판단 기준은 오직 '삶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에 달려있다.
최훈(강원대학교 교수)
구성
이은지(작가)
그림
박동현(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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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0-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