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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로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과 베트남 다낭

다낭, 여기서 알았던 그 어느 얼굴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과 베트남 다낭
베트남 다낭의 풍경
아마 나만큼 베트남의 여러 지역을, 여러 번 여행한 외국인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국경과 접한 최북단 카오방에서부터 남부 메콩델타까지, 때로는 혼자 때로는 수십 명의 일행과 함께, 더러는 일 때문에 가끔은 하릴없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최소한의 긴장감마저도 갖지 못하는 한심한 여행자가 되어버렸다.

여행자로서의 감각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기행산문집 『하노이에 별이 뜨다』를 쓰고 나서부터였을 것 같다. 비자 없이 보름동안 체류가 가능해진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표를 사기만 하면 언제든지 베트남으로 날아갈 수 있다. 가기 쉬워질수록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여행자의 습성이다.

베트남 땅을 처음 밟았던 십 수 년 전의 그 예민하고 팽팽했던 감각을 무슨 수로 다시 되찾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 않는 베트남의 여행지가 있다. 중부. 나창과 닌호아, 호이안, 다낭이 그곳이다.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있는 하노이나 사이공으로부터 먼 거리여서는 아니다. 친구들이 없어서도 아니다. 한국이 남긴 아프고 불편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안영규가 합동조사대원으로 근무했던 다낭은 중부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다. 언제 시체로 변할지 모르는 야전에서 빠져나온 안영규를 다낭의 블랙마켓으로 투입하며 그의 선임병은 말한다.
“다낭시장에는 중부 월남에서 가장 큰 블랙마켓이 있다. 시장정보는 전투보다 더 중요하다. 보고서 쓰기에 이력이 나면 너두 차츰 진절머리가 날걸. 시장경제의 유통과정을 알게 하기 위해서 본부에서는 너를 이곳저곳의 암거래 근원지에 내보내서 근무를 시킬 거다. 익숙해지면 너는 장사꾼들과 파묻혀 살아야 된다. 선임자의 충고를 절대루 잊지 마라. 공연히 도덕책 들추지 말라 그거야. 여긴 쓰레기통 속이야. 너는 오물에 목까지 깊숙이 빠졌어. 헤엄치면 살지만 허우적대면 더 깊이 빠져죽는다.”(『무기의 그늘』 상권 49~50쪽)
베트남 다낭 블랙마켓의 풍경
베트남을 오가는 항공편이 증편된 지난해 비수기 동안 베트남항공은 인천-하노이, 또는 인천-사이공 구간을 끊으면 다낭을 연결하는 왕복좌석을 무료로 제공했다. ‘전적지답사’란 이름으로 다낭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 관광 상품이 쏟아졌고, 환갑을 넘긴 참전용사들이 줄을 이어 다낭을 찾았다. 술집에서 군가를 부르며 해병정신을 과시하는 용감한 노병들도 더러 있었다.
1964년 9월 11일 제 1이동외과병원을 필두로 1973년 3월 23일 주월 한국군의 후발대가 철수를 마칠 때까지, 한국군은 8년 4개월간 육군 수도사단과 제 9사단, 해병대 제2여단, 해군 수송부대, 공군지원단, 건설지원단, 제 100군수사령부, 태권도 교관단을 파견했다. 병력은 연인원 32만 명에 달했다. 베트남 전역을 파편과 고엽제로 뒤덮었던 미국 스스로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고 인정한 이 전쟁에서, 한국의 젊은이 5천여 명이 전사하고 1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고엽제라는 느린 탄환(slow bullet)에 맞은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들의 전쟁은 느린 탄환이 생명을 앗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다시 찾은 전쟁터에서 감회가 없고, 비애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이 전쟁에서 전 인구의 10퍼센트에 육박하는 260만 명이 목숨을 잃은 베트남이 겪은 고통과 원한이라고 해서 모두 지워졌겠는가.
바로 돈은 자유예요. 돈이 많으면 자유는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어요.
나와 동행했던 후배가 감회와 격정에 사로잡혀 군가를 부르는 참전용사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돈이 좋다. 전쟁터 다낭에서 베트남 정부군 소령 팜 쿠엔의 정부가 되어 돈벌이에 나섰던 한국인 마담 미미는 돈의 위력에 대해 일찍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돈? 그래요. 더러운 것이긴 하지만 양키들 좀 봐요. 그걸 가지고 그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못할 일이 없지요. 돈은 그냥 종이쪽지나 금이 아니에요.”
“그럼 뭐죠?”
“바로 돈은 자유예요. 돈이 많으면 자유는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어요.”(『무기의 그늘』 하권 29쪽)

황석영은 주인공 안영규 병장 뿐만 아니라 『무기의 그늘』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날카롭게 폭로했다. 미국의 소설과 할리우드 영화들이 베트남전쟁을 정당화하고, 고작해야 휴머니즘으로 위장한 알량한 백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970년대에 황석영은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전쟁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것도 한국에서. 유신시대에. 슈피겔은 『무기의 그늘』을 독일에 소개하면서 한국을 ‘사실상 미국의 보호국’이었다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무기의 그늘』은 한국의 지성과 영혼이 결코 미국의 보호국이 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입증해주었다. 합동수사대의 대장인 대위의 얘기를 들으며 주인공 안영규는 자신의 처지를 예리하게 이해한다.
‘사냥개는 주인의 지시에 의해서만 노획물을 향하여 달려간다. 포물선을 그리든 지나쳤다가 돌아서 가든 직선으로 가든 몇 발짝 앞에서 멈추든 그것까지는 개의 마음대로다. 그 물건이 물오리나 꿩이거나 도요새거나, 아니면 헌신짝이나 찢어진 공일지라도 일단은 덥석 물고 주인에게 달려와야 한다. 사냥개가 그 물건이 맛있다거나 쓸모가 없다거나 먹지 못한다거나를 알아볼 필요는 없다.’(『무기의 그늘』 상권 75쪽)
이런 모멸감을 느낀 것이 안영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3년 전 나는 황석영 선생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했었다. 황선생은 1968년 귀국한 다음 35년만의 베트남 방문이었다. 다낭의 노천카페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그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동안 한 번 다녀가지 않았느냐고.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오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오래 먼 곳을 쳐다보던 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황석영 선생과 함께 한 베트남 여행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소설가 송기원 선생도 내게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냥 가서는 안 될 것 같다고. 그 어떤 근엄함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야 마는 송기원 선생도 베트남에 대해서만은 자유롭지가 못했다. 내게 같이 가자고 먼저 얘기해놓고도 막상 출발일자가 다가오면 번번이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며 물러섰다.
다낭에 머무르는 동안 황석영 선생의 표정에서 자주 짙은 그늘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아득한 눈빛을 거슬러 20대 초반의 안영규 병장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다낭을 가로지르는 한 강을 건너며 그는 35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며 아침마다 숙소로 놀러오던 소년 얘기를 했다. 그의 표정은 소년과 농구를 즐기던 20대로 돌아가 있었다. 그가 사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재미있게 읽었던 소년은 지금도 다낭 어딘가에 살고 있을까. 한 번 찾아볼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영규는 배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여기서 알았던 그 어느 얼굴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무기의 그늘』 하권 348쪽)
해병대의 주둔지였던 다낭 인근의 아름다운 도시 호이안
하노이나 사이공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다낭도 개발의 물결을 타고 있다. 도로가 확장되고 한강 건너로 새로운 주택가가 들어서는 중이다. 이제 다낭도 옛 모습을 그리 오래 지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해병대의 주둔지였던 다낭 인근의 아름다운 도시 호이안에 들렀다가, 1번 국도를 따라 닌호아로 향했다. 닌호아로 가는 길가의 모습이 달라졌다. 벼농사 일색이던 논들이 새우 양식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평화롭게 양식장을 돌보는 사람들을 보며 황석영 선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미국애들, 정말 이상한 애들이야. 그냥 저렇게 살겠다는 거 아니었어. 그걸 그냥 좀 놔두지 말야.”
농부들은 여전히 자신의 대지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닌호아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는 퇴색한 한국군 참전기념탑이 아직도 위태롭게 서 있었고, 주둔지 입구의 벙커는 무성한 잡초에 묻혀가고 있었다.
방현석(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십년간』, 『당신의 왼편』
산문집『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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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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