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편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될 것 같아요 - 묵자 편

철학자의 편지 묵자 편
* 본 콘텐츠는 cmaahn님이 《철학자의 편지 신청》에 작성해 주신 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연소개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될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저는 제가 아니면 세상이 안 돌아간다고, 제가 해야 일이 제대로 된다고, 제가 아니면 그 일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청년입니다.

근데 솔직히 그게 사실입니다. 어떤 일도 제가 하자고 했던 방향으로 가면 잘 되었을 것을 다른 방향으로 가서 꼬이거든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있자면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이렇게 하면 더 빠를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제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인 것 같은 착각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요? 아니 없앨 수 있을까요? 고민입니다.
철학자의 편지
"여보게, 천하(天下)에   남이란 없다네!"
미래의 젊은 벗이여, 오늘은 평안하신가? 어쩌면 후대사람들에게 ‘묵자’라는 나의 이름이 낯설지도 모르겠군.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나라의 무제(武帝)가 정권을 잡으면서 오직 유가만을 숭상한다고 선언했다네. 그 때문에 나의 사상과 실천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소멸돼버리고 말았지. 하지만 그전까지는 유가와 비등하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사상을 믿고 따랐다네.

내 입으로 먼저 말하긴 좀 민망하니 맹자의 말을 빌어보자면,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묵자의 본명)의 소리가 천하에 가득하다”고 경계했을 정도였지. 허허허. 도대체 내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도, 유명한 철학가들의 경계도 받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 곰곰이 살펴보니 자네의 고민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 같구먼. 한번 이야기해 볼 테니 잘 생각해 보게나!

우선 자네의 경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내가 하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에는 결국 나는 남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네. 스스로가 가장 잘났으니 그 누구의 행동이 마음에 들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동시에 자네도 누군가의 믿음을 얻지 못하는 걸세. 그런데 서로 믿지 않고서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겠나? 만약 그리하고자 한다면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할 것일세!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겠나?

내가 주장했던 가장 핵심 사상은 바로 '겸애(兼愛)‘라는 것이네. 쉽게 말하자면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더불어 살자'는 공동체 사상이지. 유가의 사랑이 엄격한 신분 질서를 전제(前提)한 '사랑'이라면, 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사랑'이라네. 자네가 혼자만 옳고, 타인은 틀린다고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얻지 않았는가? 더불어 살지 않으면 그렇게 원망과 한탄이 생겨나는 것일세. 내가 했던 말을 인용하자면,

“대개 천하의 재앙과 침략과 약탈 그리고 원망과 한탄이 생겨나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인자(仁者 : 어진 사람)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잘못된 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더불어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은 착각을 하고 산다네.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내가 없다면 세상이란 아예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네. 그런데 잘 생각해 보게. 자네가 없다고 세상이 사라지진 않는다네. 물론 내가 없는 세상이 내겐 어떤 의미도 없을 수 있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존재하고 마치 아무 일 없는 듯이 돌아갈 것이란 사실일세.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나를 보시게. 내 아무리 천하를 움직였던 철학가였으나 내가 죽었다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던가? 아니었네. 더 훌륭한 철학자는 끊임없이 나왔고 지금도 다들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는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나는 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네.

“천하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을 근거로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가 실제로 그것을 보고 들었다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보고 들은 일이 없다면 반드시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묵자』 《명귀하》)”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게. 사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곳이나 수많은 사물에 대한 지식을 직접 모두 다 확인해서 알 수는 없는 법이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알고 있고, 보지도 못한 사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바로 남이 있기 때문이네.

잘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안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이 보고 들은 것에 의존하는 것이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아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 또한 다른 사람에 의지해서 가능한 것이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남이 있어야 내가 있고, 내 생각이 있고, 내가 상상하는 새로운 일도 가능한 법이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바로 이 때문에 “천하에 남이란 없다”고 생각한 것이네. 알고 보면 내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지혜가 모여 있다네. 우리는 그것을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보고 들음으로써 알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네. 이런 생각을 논리적으로 확장하여 나는 겸애(兼愛)를 주장한 것이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하네. 나는 유일하고 거대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무한한 존재일세. 그런데 그런 무한한 존재는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똑같이 해당한다네. 게다가 우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평등한 존재라네. 그래서 나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兼愛)이야 말로 진정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交利)이라 주장하였다네.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말은, 결국 남 없이는 나도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자네보다 2,500년 전의 나 또한 이런 깨달음을 얻었는데, 자네는 더 큰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네.
고죽국(孤竹國)에서
묵자(墨子)가
오늘의 철학자
겸애(兼愛)의 철학자 묵자
묵자 사진
묵자(墨子)는 기원전 492년에서 468년 사이에 태어나 420년에서 376년 사이에 생을 마감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중국의 사상가로서, 처음에는 공자(孔子) 학파에서 유학을 배웠으나 유교 사상을 비판한 묵가(墨家)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대개의 고대 중국의 사상가가 귀족 출신인데 반해 묵자는 천민(賤民)임을 자처하였고, 유가의 차별적 사랑의 원리인 인(仁)과 예악(禮樂) 사상을 비판하면서 ‘차별 없는 사랑’(兼愛)와 상호이익(交利)에 기반하여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상과 실천을 중시하였다. 특히 묵가 집단은 평화를 옹호하며 침략당한 나라에 가서 방어전쟁을 수행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사상은 최근 한ㆍ중ㆍ일(韓中日) 삼국의 합작영화인 《묵공》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유신론적인 관점에서 하늘의 뜻(天志)를 받들 것을 주장하였고, 다른 한편 고대 중국의 논리학을 발전시킨 학파로도 유명하다. 특히 20세기에는 가깝고 먼 관계와 상관 없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자는 사상은 근대의 이념인 평등과 통하는 사상으로서 큰 의의를 갖는 사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철학자의 한마디
"만약 온 천하가 다같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한다면 나라 사이엔 전쟁이 없고,  
가문 사이엔 서로 어지럽히는 일이 없고,  
남의 집안을 훔치고 빼앗는 도둑도 없게 되며,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효도하고 자애로울 것이니  
이렇게 되면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는 성인으로서 어찌 미움을 금지하고 사랑을 권면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천하가 다같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면 다스려질 것이요,
서로 차별하고 미워하면 혼란해질 것이다.
"
(『묵자』 《겸애》)
묵자가 말하는 ‘겸애’’(兼愛) 사상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한다는 뜻으로서 유가의 차별적인 사랑인 인(仁)에 대한 대안으로 주장된 것이다. 유가가 주장하는 인(仁)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중시하긴 해도 그 바탕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출발점으로 한다. 즉 부모와 자식 간의 가까운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하고(親親), 이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사랑을 확장하자는(愛人) 입장을 세웠다. 하지만 이와 달리 묵자는, “사람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하늘의 신하”로 보면서 “노예를 사랑하는 것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차별 없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겸애의 실천은 사회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묵자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남도 역시 그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함으로써 겸애가 공리주의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 학자들로부터 매우 선구적인 인간 존중과 새로운 인류애(人類愛)를 표현한 놀라운 사상이라고 평가 받아 왔다.
철든생각, 당신이 혼자라고 느껴진다면... 혼자 그린 로켓 그린이 친구들이 그린 우주 속 별 그림들과 합쳐지니 훨씬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인생은 '함께'할때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김시천(경희대학교 교수)
구성
이은지(작가)
그림
박동현(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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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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