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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편지

고3 딸과 같이 시작된 수험생활, 너무 피곤합니다 - 칸트 편

철학자의 편지 칸트 편
* 본 콘텐츠는 dlxowls7님이 《철학자의 편지 신청》에 작성해 주신 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연소개
"고3 딸과 같이 시작된 수험생활,  너무 피곤합니다"
고3 수험생을 딸로 둔 엄마이자 15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한 워킹맘입니다. 그 동안 직장생활도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가족도 챙기고 애들도 최선을 다해서 챙겨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딸이 고3이 되니까 그 동안 제가 해왔던 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되더군요.

딸아이가 잘 못 하는 과목은 따로 학원을 알아봐주고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니까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 틈에 밥 먹을 짬이 안 나서 도시락을 하루에 두 개씩 싸서 챙겨줘야 하고요. 심지어 고3이라서 극도로 예민해진 딸 눈치도 봐야 하고, 이리 저리 시간 빼느라 직장에서도 너무 스트레스입니다. 어떨 때는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제가 대신 수능시험을 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딸을 정말 사랑하지만,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더 해주고 싶지만 솔직히 요즘은 저도 지쳐가는 느낌입니다. 남편은 출장이 잦아서 기대하기도 힘들고요. 제 마음이라도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철학자의 편지
"진정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길 원한다면,  
먼저 손을 놓아주시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 문제만큼은 평생 약자의 입장일 것이오. 태어나자마자 몇 달 안에 독립해야 하는 짐승과 달리 인간은 오랫동안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소? 하지만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미래에는 더 심해지는 것 같구려. 우리 시대에는 10대가 되면 스스로 밥벌이를 했지만 그대가 사는 시대에는 훨씬 더 늦어지는 것 같소. 내가 듣기에 고3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직위가 아니라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19세 청소년이라고 하던데 그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니.....도움을 줘야 하는 부인의 인생도, 그 자식의 인생도 너무 걱정돼서 이렇게 답장을 쓰오.

사전에 규정하길 법적인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나이를 ‘성년’, 할 수 없는 나이를 ‘미성년’이라고 말한다오. 그대가 사는 시대에는 만 20세 이상이 성년이고 그 미만은 미성년이라고 한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정의일 뿐이오. 나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라는 글에서 ‘미성년’을 이렇게 철학적으로 정의 내렸소.

계몽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미성년 상태는 이성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생각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과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표어이다.”

아주 갓난아이나 식물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은 모두 생각을 할 줄 아오. 그러니까 미성년이라고 하더라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곧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지. 그러나 생각을 할 줄 안다고 해서 다가 아니오.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라오. 나는 20살이 넘었다고 해서 모두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법적으로야 성인이겠지만 혼자서 생각할 줄 모른다면 어른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반면에 20살이 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면 그 아이는 이미 어른이오.

사실 미성년의 상태로 있으면 편하지 않겠소?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집사나 도우미가 있으면 편한 것처럼, 부모가 나를 대신해서 생각해 주면 편하겠지. 귀찮은 일들은 부모가 대신 맡아줄 테니까 말이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부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딸을 게으르고 비겁하게 만들고 있다오. 갓난아이를 생각해 보시오. 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서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 보면 스스로 걷지 않고 엄마한테 자꾸 안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소. 엄마에게 안겨 다니면 편하겠지만 평생 그렇게 살 수 있겠소? 평생 엄마 품에 있다간 결국 걷지도 못하게 되오. 혼자 걷다가 넘어지면 어떨까 부모부터가 겁을 내고 소심해지면 아이는 어떤 시도도 못하게 된단 말이오. 몇 번만 넘어지다 보면 곧잘 걸을 수 있을 텐데 부모는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고 아이는 결단과 용기를 잃어버린다오.

생각하는 것도 똑같소. 남이 대신 생각해 주면 평생 스스로는 생각을 못하게 되지 않겠소? 혼자서 생각하는 것도 결국 하나의 훈련이오. 걷는 훈련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 없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소. 생각뿐만이 아니라 절제 있는 사람이냐 방종한 사람이냐, 또는 온화한 사람이냐 화를 잘 내는 사람이냐를 판단하는 품성의 문제도 마찬가지요. 선배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습관의 산물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 품성의 차이가 생긴다는 의미라오. 즉, 올바른 행위를 자꾸 반복해 봐야 올바른 품성이 생기고 용감한 행동도 자꾸 반복해 봐야 용감한 품성이 생긴다는 말이오.

부인은 내가 왜 성년과 미성년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이해했으리라 믿소. 고3이면 아마 법적으로는 미성년이겠지만 철학적으로는 성년인 사람도 있고 미성년인 사람도 있을 것이오. 부인의 딸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면 성년이고 그렇지 못하면 미성년이오. 중요한 것은 아직 완벽하게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더라도 적어도 그런 연습을 꾸준히 하는 단계여야 한다는 것이오. 공부란 어차피 혼자 하는 것이고 부인이 지금 더 도와준다면 좀 더 훌륭한 대학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다음을 생각해봤소? 자식의 직업을 대신해서 구해줄 것이오? 아니면 자식의 배우자를 골라줄 것이오? 자식의 저녁식사를 떠 먹여줄 것이오?

부인, 우리의 지난 인생을 잘 생각해보시오. 우리가 이렇게 살아오기까지 많은 좌절에 부딪히고 흔들려왔지만 이렇게 잘 살아오지 않았소? 부인의 딸 역시 마찬가지라오. 부인이 얼마나 성년으로서 믿어주느냐에 따라 딸의 성장이 판가름 날 것이오. 당장 눈앞의 자식을 볼 것이 아니라 더 먼 인생을 본다면, 자식의 걸음이 비틀거리고 위태로워 보이더라도 손을 잡아주는 대신 묵묵하게 등 뒤를 지켜주시오. 자식에게 도움보다는 결단과 용기를 심어주란 말이오. 지금 부인도 성년의 위치에서 냉철하게 결단을 내릴 시간이오. 마지막으로 내가 부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이 편지를 쓸 정도의 사랑이라면, 그 사랑만으로도 자식은 스스로 모든 일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이오. 부인 스스로를 믿고, 자식을 믿으시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산책을 하며
칸트가
오늘의 철학자
근대 철학을 종합한 철학자 칸트
칸트 사진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었지만 당시는 독일 땅이었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그 도시를 떠나지 않고 산 철학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여 동네 사람들이 그가 산책을 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당시 서양 근세에서 대립했던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이성론을 종합하여 집대성한 비판 철학으로 철학사에서 우뚝 선 철학자이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의 3비판서가 대표적인 저서이다.
철학자의 한마디
"미성년 상태는 이성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생각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과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표어이다.
"
1783년에 독일의 베를린의 한 잡지에 어느 개신교 목사가 사람들이 계몽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면서 그 말을 유행처럼 쓰고 있다는 한탄을 내용으로 하는 글을 실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은 다음 해에 같은 잡지에 그 글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다. 칸트는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계몽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미성년 상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성이 있기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생각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부족할 때 미성년이라는 것이다. 한편 칸트는 “선의지는 그것이 수행한 행위나 결과,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경향성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선에 대한 의욕 때문에 선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선의지는 결과나 경향성 때문이 아니라 동기나 의도 때문에 선하다는 것이다. 경향성이나 결과는 우리의 이성적인 자아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직 이성이 의지를 인도하는 경우에만 자율적으로 행위 했다고 볼 수 있다.
철든생각, 진짜 어른이 되는 법, 하나는 금이가 있고 하나는 깨끗한 두개의 달걀을 보여주며 스승이 질문한다. 스승:'이 두 달걀중에 어떤것이 진짜 달걀인가?', 제자:'그야, 상처 없이 깨끗한 달걀이 진짜 아닙니까?', 스승:'하하하 잘 보게나.', 달걀 안에서 부리로 쪼아 병아리가 나타났다. 스승:'스스로 껍질을 깨고 세상을 나올 생명을 품은 이 달걀이 진짜라네.' 스스로 부딪히고 깨져라. 그리고 어른이 되어라.
최훈(강원대학교 교수)
구성
이은지(작가)
그림
박동현(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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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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