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편지

친구가 보증을 서달라고 하네요 - 아리스토텔레스 편

철학자의 편지 아리스토 텔레스 편
* 본 콘텐츠는 sungmo5738님이 《철학자의 편지 신청》에 작성해 주신 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연소개
"보증을 서달라는 친구,  전 어떡해야 하나요?"
저에게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죽마고우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너무나 성격도 잘 맞고 함께 좋은 일, 안 좋은 일 모두 함께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친구가 사업이 힘들어져서 인지 저에게 보증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그것도 꽤 큰 금액을 말이죠. 그 돈이 없으면 당장 집과 회사가 몽땅 날아가게 생겼다며 제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친구 사업 운영하는 모습을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하자면 수익에 비해 너무 투자가 많고 돈도 공적인 돈과 사적인 돈을 구별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보증을 서면 저도 똑같이 망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속마음은 거절하고 싶은데 하나뿐인 친구의 사정이 너무 딱하기도 해서 괴로워요.

도대체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떡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고민 올려봅니다.
철학자의 편지
"진정한 친구 사이라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네"
철학자 중에서 나만큼 우정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한 사람은 없을 걸세.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이라거나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 어떤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이게 다 내가 한 말들이지. 그러니 자네가 나를 찾은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일세.

흠흠.. 내 자랑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하나 더 하자면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듯,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지는 것도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했는데 인간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행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가?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완전한 덕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라네.

또 그런 완전한 덕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한다네. 그 감정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중간 상태를 바로 ‘중용’이라고 하지.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악덕이고 중용이 바로 덕인 걸세.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정도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악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네.

그렇다면 참다운 우정이란 무엇을 말하겠나? 내가 몇 가지 비유를 해서 설명해주겠네.

첫째, 우정은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 동기는 반드시 순수해야 하네. 예를 들어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게나. 그 사람은 포도주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포도주를 좋아하는 것인가? 전혀 아니지. 단지 포도주가 잘 보존되어서 본인이 맛있는 포도주를 먹기 위해 이기적인 마음에서 좋아하는 것이라네. 친구란 나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래서 포도주와 같은 무생물을 좋아하는 것은 우정이라고 하지 않고 애호라고 하는 걸세.

둘째,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어야 한다네. 다시 말해서 나 혼자서만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앞서 말한 포도주 애호를 생각해 보면 나만 일방적으로 포도주가 잘 되기를 바라지 포도주가 내가 잘 되기를 바라나? 포도주야 무생물이니까 그렇다지만 사람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사랑, 그러니까 우리가 짝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은 맞지만 우정이 아니라 선의(善意)일 뿐이라네.

셋째,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서로가 알고 있어야 한다네. 사실 방금 말한 선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예를 들어 오늘 길에서 마주친 미녀에게도 선의를 가질 수 있지. 그러나 그런 미녀가 당신의 선의를 알 턱이 없지 않나?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당신을 친구라고 말하지 않고 그 사이에는 우정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어떤가? 우정이 무엇인지 정리가 좀 되었나?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서로에 대해 순수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그 마음을 서로가 알고 있을 때 우정이라고 한다네.

그렇다면 그대와 돈을 빌려달라는 그 친구는 정말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일단 그대는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친구의 딱한 사정에 가슴 아파하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사정을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하기까지 하네. 수익에 비해 너무 투자가 많고 공적인 돈과 사적인 돈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일세. 그렇다면 지금 친구에게 보증을 서는 것은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 수 있다네. 지금 보증을 안 서면 친구의 집과 회사가 몽땅 날아갈지 모르지만 보증을 서면 그것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재산까지 날아가게 될 테니까. 내가 우정은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대만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되고 친구 역시 그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서로 간에 우정이 존재하는 걸세. 그렇다면 친구는 그대의 재산까지 날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는가? 아마 그러지 않을 걸세. 그래서 자네는 우선 친구에게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네. 그리고 그것이 곧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하네.

나는 우정의 종류를 유익 때문에 성립한 우정, 즐거움 때문에 성립한 우정, 좋음 때문에 성립한 우정의 세 가지로 나누었지. 유익 때문에 성립한 우정은 서로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유익함, 이익이 생겨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네. 마찬가지로 즐거움 때문에 성립한 우정도 상대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지. 유익함이나 즐거움 때문에 성립한 우정은 오래 가지 못하네. 그런 이유들이 사라지면 더 이상 사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가장 완전한 우정은 서로가 그 자체로 좋기 때문에 잘 되기를 바라는 우정이네. 이런 관계야말로 오래 지속될 수 있네. 만약 그대가 보증을 서지 않았다고 해서 친구가 그대를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멀어진다면 이게 진정한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에 친구와 같이 있어도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생각해서 멀어진다면 이것 또한 진정한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닐세. 물론 유익함 때문이나 즐거움 때문에 사귀는 친구를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과연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걸세.

이보게. 우정을 운운하면서 친구의 급박함을 모른 체 한다면 상대는 그대를 야박하게 생각할 것일세. 그렇다면 무리하게 보증을 서는 대신에 그대가 도울 수 있는 만큼의 성의를 보이는 건 어떠한가? 되돌려 받아도 되지 않을 만큼의 돈을 주게나. 그 돈으로는 부족하다면 또 다른 친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모금을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 그대가 이런 노력들을 친구에게 보인다면 이 모든 행동이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우정에서 나온 것임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네. 진정한 친구라면 부디 모르는 척 하지 말게. 그렇다고 과하게 나서지도 말게나. 그저 자네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마음으로 도와주게. 그것이 친구가 진짜 그대에게 바라는 도움일 걸세.
아테네의 리케이온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의 철학자
진정한 행복을 꿈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사진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 출신으로서 그리스에서 활동한 철학자이다. 플라톤의 제자로서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죽은 후 아카데미아에서 나와 학원을 따로 세웠는데 그 이름은 리케이온이라고 한다. 이 학원에서는 산책로를 거닐며 토론하는 습관이 있어서 소유학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아주 방대해서 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 등의 철학의 체계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 수사학, 시학 등의 분야에서도 현대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내 놓았다.
철학자의 한마디
"일상적 삶에서 찾아지는 나머지 즐거운 일들에 관련해서,
마땅한 방식으로 즐거운 사람은 우애가 있는 사람이요, 그 중용은 필리아(philia)이다.  

이에 반하여 이런 면에서 지나친 사람은, 만일 아무 목적이 없으면 비굴한 사람이고,
만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면 아첨꾼이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모자라서 어떤 상황에서나 불쾌한 사람은 일종의 싸움꾼이요,
심보가 고약한 사람(dyskolos)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에 대한 논의는 그의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온다. 우정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필리아(philia)인데,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꼭 친구 사이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 선후배 사이, 더 나아가 동포애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 다만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지속되어 나오게 된 친밀함을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필리아에는 순수성, 상호성, 인지성의 세 가지 계기가 필요하다고 정의한다. 곧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야 하며,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적이어야 하며, 필리아가 서로에게 알려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할 만한 것이 좋음, 즐거움, 유익의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필리아의 종류도 좋음을 이유로 성립하는 필리아, 즐거움을 이유로 성립하는 필리아, 유익을 이유로 성립하는 필리아로 구분한다. 이 중 즐거움과 유익은 쉽게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유로 성립하는 필리아도 쉽게 해체된다고 주장한다.
철든생각, 내가 힘들어 하는 상황일때, 유익한만 있는 친구:'진짜야! 수익률이 어마어마 하다니까?' 나:'아니, 난 괜찮아...', 즐거움만 �는 친구:'오랫만에 나이트나 갈래? 물 좋은 곳 아는데~', 나:'아, 아냐, 난 안갈래', 그리고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는 친구:'야, 왜그래? 무슨 일 있어?' 라며 내 손을 잡아준다. 진심으로 통하는 마음, 우정
최훈(강원대학교 교수)
구성
이은지(작가)
그림
박재수(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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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4-1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