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우리 아빠 좀 AS해주세요!

우리아빠 좀 AS 해주세요!
글 / 김하섭_동화작가,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석사과정. 1986년생 제9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엄만, 아빠가 ‘구제불능’이란다. 구. 제. 불. 능?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엄만 마침 고장 난 밥솥을 가리키면서 고칠 수 없는 전자제품 같은 거라고 했다. 아빠가 고장 난 전기밥솥이 된 건 일 년 전 회사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아빤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만 본다. 나는 방문을 배꼼 열고 거실을 살폈다. 아침에 소파에 눕던 자세 그대로 아빠가 죽은 듯이 누워있다. 이럴 땐 아빠에게도 통하는 리모컨이 있었으면 좋겠다. 텔레비전 화면이라면 확 꺼버릴 수 있을 텐데.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 나는 일기장과 씨름을 시작했다. 오늘은 꼭 써야한다. 방학하자마자 사둔 일기장은 첫 장을 빼면 여전히 깨끗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서랍에서 2학년 때 썼던 일기장을 꺼냈다. 방학 내내 집에만 있었어도 어쨌든 일기는 써야했고, 미리 써둔 일기를 적당히 바꾸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일기장을 펼치자마자 밤나무골에서 밤을 따고 있는 아빠가 등장했다. 일기장을 반쯤 넘기고서부터 아빤 점점 사라졌다. 서너 장을 넘기고 나서 나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열 장을 넘기고 나서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 아빠보단 예전 아빠가 훨씬 좋았다. 대체 아빤 왜 이렇게 변한 걸까? 면도도 안 하고, 가까이 가면 냄새가 풀풀 나고, 학교 잘 다녀왔느냐고 쓰다듬어주지도 않는 아빠 따윈 정말 싫다.
“유빈아. 인제 그만 좀 하렴. 엄마 돈 없다니까.”
“싫어! 관장님이 오늘까지 학원비 가져오라고 했단 말이야.”
“이 참에 태권도도 잠깐 쉬자. 방학 끝나면 다시 다니게 해줄게.
응? 유빈이도 이제 열 살이잖아. 엄마를 좀 이해해줘야지.”
“몰라. 경수는 이번에 검은 띠 땄단 말이야. 방학동안 못 다니면 난 검은 띠 언제 따!”
요즘 엄만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과자를 사달라고 해도 돈 없어! 게임 CD를 사달라고 해도 돈 없어! 항상 돈 없어! 돈 없어! 겨울캠프도 못 갔는데, 이제는 태권도 학원까지 다니지 말라니 정말 너무 한다.
“그만해.”
엄마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엄마가 이럴 땐 화났다는 표시다. 난 붙잡고 있던 다리를 얼른 놓고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움큼 꺼냈다. 방학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그동안 뭘 하고 지낸담? 놀이터에는 온통 꼬맹이들뿐이다. 이제 나도 3학년인데 체면이 있지. 꼬맹이들하고 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게임을 할 수도 없다. 엄만 내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너 또 게임하니?’ 하고 스트레스를 준다. 아마 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일 거다.
“뭐하고 있어? 얼른 수저 놓고 아빠 점심 드시라고 해.”
요즘 엄마는 아빠랑 도통 대화가 없다. 할 말이 있으면 대신 전달하게끔 하거나, 이렇게 나한테 말하는 것처럼 돌려서 말한다. 소파에 앉아 신문에 동그라미를 그리던 아빠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아빠가 더 미웠다. 아빠가 옆에서 거들어 줬으면 엄마가 태권도 학원에 계속 다니게 해줬을지도 모른다.
‘엄마 말대로 아빤 구제불능인가 봐.’
순간 아빠를 골탕 먹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아빠 자리에 놓아둔 수저를 다시 통 속에 넣었다.
‘아빤 당해도 싸!’
아빤 자리에 앉아 식탁을 훑어보고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국을 떠먹는 시늉을 했다.
아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공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일이 많이 밀려서 오늘은 일찍 나가봐야 한다며, 엄만 화장도 하지 않은 까칠한 얼굴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예전엔 웃는 모습이 참 예뻤었는데 언제부턴가 엄마는 영 웃질 않는다. 현관문이 닫히자 집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방으로 와서 컴퓨터를 켰다. 익숙한 음악소리와 함께 파란색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그때, 갑자기 화면에 인터넷 창 하나가 떠올랐다.
*고장 난 물건들을 무료로 고쳐 드립니다.
*텔레비전, 낡은 책, 시든 화초, 애완동물부터 습관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고쳐 드립니다.
*수리 후 제품의 상태나 성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리 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 A와 S의 다고쳐하우스 -
“A와 S의 다고쳐하우스라고……?”
나는 광고를 닫았다. 인터넷 창이 사라지고 파란 바탕화면이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창이 두 개로 늘었다. 가끔 인터넷 광고를 닫을 때면 이런 경우가 있다. 이런걸 뭐라고 하더라?
심호흡을 한 뒤, 이번에는 엑스표시를 빠르게 눌러서 창 두 개를 한꺼번에 닫았다. 이럴 수가! 이번엔 창이 네 개로 늘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점점 오기가 발동했다.
“뭐 이런 게 다 있담?”
결국 화면은 다고쳐하우스 홈페이지로 가득 찼다. 컴퓨터를 껐다 켜도 소용이 없었다. 바탕화면이 뜨자마자 화면은 다시 다고쳐하우스 창으로 가득 채워졌다. 광고 글의 목적이 나를 짜증나고 지치게 해서 수리신청을 하게 하는 거라면 성공한 셈이었다.
제품명: 정 민 구
종류 : 아빠
사용기간: 38년
고장원인(증상):
‘고장원인’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빠는 왜 고장 난걸까?
그러고 보면 어디가 고장이 난 건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방문을 살짝 열고 아빠를 살펴보았다.
아빤 여전히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일단 고장원인 란에 아빠의 평상시 모습을 적어보기로 했다.
고장원인(증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일 텔레비전만 본다.
아빠랑 같이 목욕탕도 가고 싶은데.
요즘 아빤 목욕은커녕 잘 씻지도 않는다.
소파에 누워 있는 아빠 모습
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우리 아빤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 엄만 아빠만 보면 인상을 찌푸린다. 우리 아빠가 다시 예전의 멋쟁이 아빠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난 고장 난 아빠가 정말 싫다. 적고 나니까 코끝이 찡했다. 아이 참! 바보같이. 어차피 장난인데 눈물까지 나고 난리람. 그린빌 아파트 104동 201호라고 주소를 적은 다음, 홈페이지에 있는 이메일로 신청서를 보냈다. 그러자 화면에 가득했던 다고쳐하우스 홈페이지가 전부 사라졌다.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지만, 이번에는 닫기를 눌러도 창이 여러 개로 늘어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다고쳐하우스 홈페이지에는 그것 말고도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감사합니다’라는 게시판과 ‘불만입니다’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감사합니다’를 클릭했다. 그곳은 다고쳐하우스를 이용한 사람들이 수리된 물건을 받고, 후기를 남기는 곳이었다.
“우와! 끝내준다!”, “이 책은 완전히 새 것 같잖아?”
감사합니다 게시판에는 온갖 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줄이 끊어진 목걸이에서부터 한쪽 귀퉁이가 찢겨나간 사진, 종이가 누렇게 된 책이나 앞코가 헐어서 발가락이 튀어나올 것 같은 구두도 보였다. 화면 왼쪽이 고치기 전이었고, 오른쪽이 수리가 끝난 사진이었다. 고치기 전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모두 새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깨끗하고 윤이 났다.
‘혹시 정말로 아빠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감사합니다 게시판에서 아빠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검색결과 0건이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떠올랐다. 하긴 아빠를 수리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황당해서 입만 쩍 벌렸다. 세상에! 아빠가 포장되고 있었다. 냉장고도 들어갈 만한 커다란 상자를 트럭 짐칸에 눕혀놓고, 아빤 그 속으로, 엉덩이부터 천천히 기어들어갔다. 아빠가 상자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망치와 드라이버가 그려진 녹색 모자를 눌러 쓴 아저씨가 상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상자 밖으로 아빠의 얼굴이 쑤욱 솟아올랐다. 내가 멍하니 그걸 보고 서 있는 동안 아저씨는 상자를 끈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곧 트럭이 새까만 연기를 북북 뿜어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요!”
트럭은 오히려 서서히 속력을 높였다. 이상하게도 아파트 단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트럭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헉헉! 거기 서란 말이야! 아빠!”
내 목소리를 들은 걸까?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입만 뻥긋뻥긋 했다. 트럭은 놀이터를 지나 단지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집으로 뛰어와서 곧바로 다고쳐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다행히 전화번호가 있었다. 뚜르르? 신호를 따라 심호흡을 하자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아빠는 어른이니까 이상하거나 위험한 상황이었으면 절대로 따라가지 않았을 거다.
“A와 S의 다고쳐하우스입니다.”
전화기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긴장되는 마음을 침과 함께 억지로 삼켜내곤, 나는 조금 전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아저씨의 설명을 들을수록 두근거려서 꼭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세상에! 정말이었던 거다!
“진짜 우리 아빠를 고쳐줄 수 있어요?”
“우리가 못 고치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안 고치는 게 있을 뿐이야. 때로는 고장 난 상태로 머물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거든. 그게 더 행복하기 때문이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보마. 수리하면 예전과는 달라질 수도 있어. 그래도 고칠 거니?”
꼭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아빠는 수리가 필요하다. 고치기만하면 예전 아빠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멋진 아빠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상관없어요. 고쳐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면서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빠를 수리하는 데는 하루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소파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
내가 귓속말로 묻자 엄만 고개를 갸웃하더니 거실에 있는 아빠를 찬찬히 살폈다.
“이상하긴 해. 너희 아빠 좀 멋있어진 것 같지 않니?”
“어휴! 그게 아니라…….”
아빠가 수리되어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늘 입고 있던 허름한 추리닝 대신 아빤 멋들어진 까만 양복을 입고 돌아왔다. 이제는 항상 면도를 해서 턱도 깔끔해졌고, 굽어 있던 등도 쫙 펴졌다. 집에 돌아온 다음부터 아빤 잠시도 쉬지 않았다. 책을 읽기도 하고, 새벽에 수업하는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아침마다 운동도 시작했다.
“너도 따라가서 운동 좀 하렴. 우리 아들은 방학 동안 살만 피둥피둥 쪘다니까.”
엄마가 내 뱃살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아빠를 따라나설 작정이었다. 수리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아빤 겉모습만 멋있어졌지, 내가 원하던 아빠와는 영 딴판이었다. 용돈도 안 주고, 나랑 놀아주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고장원인을 제대로 적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옆에서 관찰하다 보면 고장 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 다음 다시 다고쳐하우스에 연락하면 돼.’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빠를 따라 아파트 앞 공원으로 갔다. 뒷산과 이어진 공원 산책로는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빤 나는 신경도 안 쓰고 빠르게 걷기만 했다. 나도 속도를 내서 쫓아갔지만 산길에 들어서자 도저히 아빠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빠 천, 천천히 좀 가요.”
아빤 어느새 언덕 끝에 서 있었다. 아빠가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머리만 보였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경사가 가팔라서 조금만 달려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악!”
갑자기 주변이 기우뚱하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팔꿈치도 화끈화끈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아빤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프고 서러운 마음이 똘똘 뭉쳐 목구멍을 차고 올라왔다.
“내가 다쳤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아빠 아냐! 이 고장 난 아빠야!”
“그래. 난 네 아빠가 아니다. 나는 정민구다. 난 고장 난 게 아니라 이제 고쳐진 거야.
내가 고쳐지길 바란 건 바로 너잖아.”
정민구. 아빠 이름이 분명한데, 꼭 모르는 이름처럼 들렸다. 아빤 나를 버리고, 언덕을 넘어 사라졌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안 그러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번엔 완벽하게 고칠 거야! 두고 봐!’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왔다. 팔꿈치에서 피가 났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인터넷을 켠 다음, A와 S의 다고쳐하우스 홈페이지를 눌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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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거 왜 이러지?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몇 번이고 눌러봤지만, 결국 홈페이지는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적어두지 않아서 전화를 해볼 수도 없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일기장이 보였다. 잔뜩 부풀어 오른 공책 한 장이 넘어가며 아빠와 함께 군고구마를 굽던 날이 펼쳐졌다. 그림 속 아빤 밝게 웃고 있었다. 나를 목마 태우기도 했고, 까맣게 탄 고구마껍질로 내 얼굴에 장난도 쳤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일기장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아빠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다. 트럭에 실려 갈 때, 아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왠지 그 말을 듣고 나면 아빠가 돌아올 것만 같았다.
김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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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0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