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놀금 전쟁

놀금전쟁
글 / 이진하_동화작가. 1988년생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수상,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지요. 게다가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어요. 수학, 영어, 미술, 태권도……. 놀 시간은 없었어요. 매일 시험을 보고 경쟁을 해야 했지요. 아이들은 지쳐갔어요. 왕따와 학교 폭력은 점점 더 심해졌고요.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지요. 어른들은 다른 나라는 어떻게 공부를 시키는지 연구했어요. 그랬더니, 우리만큼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 나라가 없었답니다. 어른들은 결정했어요.
“좋아! 너무 공부만 시키는 것은 안 돼! 아이들을 놀게 해주어야 해!”
그래서 어른들은 큰마음을 먹고 금요일을 학교에 오지 않는 날로 정했답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만 금요일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노는 금요일을 줄여서 놀금이라고 했어요. 놀금은 점점 확대되었어요. 결국 금요일은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우와! 학교에 오지 않고 놀 수 있다니!”
그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지요. 놀금이 생기고 한동안 아이들은 모두 즐거웠어요.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무언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답니다. 아이들이 일주일에 삼일이나 놀게 되자 어른들은 걱정이 많아졌거든요. 아이들이 집에서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할 때마다 부모님은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지요. 그 무렵 이런 학원 전단지가 전봇대마다 붙었어요.
<놀금특별반 大개강!>
학교에 가지 않는 우리 아이
남들은 공부한다는데…….
혹시 뒤처지는 건 아닐까?
집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착순 00명 모집
(수업이 끝나고 점심 제공)
문의전화 : 02- 0000- 0000
“바로 이거야!”
그 전단지를 보고 많은 어른들이 기뻐했어요. 특히 맞벌이 하는 엄마들이 제일 좋아했지요. 그렇게 몇몇 아이들이 놀금 학원에 갔어요. 처음에는 아이들도 참을 만 했어요.
“하루에 네 시간 정도야, 뭐. 학교에서는 더 오래 있었는걸!”
하지만 놀금 학원이 많이 생기자 학원들은 서로 경쟁을 하기 시작했어요. 더 오랫동안 더 많이 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말이지요. 놀금학원 공부시간은 계속 늘어났어요. 8교시, 9교시, 12교시까지도 말이에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보다 더 힘이 들었어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늘어나자,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도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놀이터에 나가보아도 함께 놀 친구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이들은 PC방에 가거나 혼자 집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방에서 학습지를 하루 종일 풀어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학원비 때문에 어른들의 부담은 점점 커졌어요. 결국 학교에 항의전화가 들어왔어요.
“아무리 놀금이라고 해도 그렇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봐 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결국 놀금 학교가 생겨났어요. 학교에서 놀금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거예요. 아이들은 영어 회화, 논술,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수학 기초반, 수학 심화반, 수학 경시대회 반도 따로 있었지요. 하지만 놀금학교도 학원보다 저렴할 뿐 수업료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그 즈음이었을 거예요. TV에서 ‘놀금,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TV토론이 벌어졌어요. 여러 단체의 여러 어른들이 나와서 놀금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요. 넥타이를 맨 아저씨와 머리를 예쁘게 한 아줌마들이 침을 튀기며 목소리를 높였어요.
사회적 이슈, 사교육비 부단, 교육 양극화, 진정한 취지….
뭐, 이런 알아들을 수 없는 복잡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말이에요. 하지만 그 자리에 아이들은 없었어요. 아이들은 정작 놀금에 대해서 그 어떤 걱정도 없는데, 어른들은 걱정이 너무 많았지요. 놀금에는 그냥 재미있게 놀면 그만일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지요?
결국 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해 놀금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했어요. 어른들은 그제야 휴, 한숨을 내쉬었어요. 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해 교육과 놀이 프로그램을 무료로 해준다니 기분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만 혜택을 받았지요. 아동복지시설에는 사람이 넘쳐났어요. 대기자가 몇 십 명이나 될 정도였으니까요. 운이 좋게 복지시설에 들어간 아이들은 금요일마다 하루에 여섯 개나 되는 프로그램을 모두 들어야 했어요. 정말 밥만 먹고 계속 수업을 들었답니다. 어쩌다가 하루 빠지고 싶어도 원장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안 돼! 이 프로그램은 무조건 다 해야 해. 20명 이상 수업을 듣고 출석률이 80%여야 정부에서 지원이 나온단 말이야.”
“꼭 지원 받아야 해요? 그냥 안 받으면 안돼요?”
“좋은 건데 왜 안 받아! 다 너희들 위해서 이러는 거야. 자꾸 그런 식으로 불성실하게 굴면 수업 못 듣게 할 거야. 네 마음대로 해! 대기자는 많으니까!”
그런 식으로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원에서, 학교에서, 여러 기관에서, 재미있고 참신하고 새롭다는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사진 찍기, 영화 만들기, 발레, 나만의 책 만들기……. 처음에는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계속 비슷한 수업들을 듣게 되자 아이들은 금세 지루해졌어요.
놀금 프로그램으로 많은 어른들이 직업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프로그램이 계속 되기 위해 필요한 아이들은 적었어요. 어른들은 전쟁처럼 서로 다투고 아이들을 빼앗아왔어요. 어른들은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학교 앞으로 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며 말했어요.
“우리 센터에 친구 데리고 강좌 들으러 오면 문화상품권을 다섯 장이나 준단다!”
그리고 길거리에 책상과 의자를 놓고 길을 지나는 학부모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어머니! 댁의 자녀를 저희 학원에 보내세요. 아이들에게는 예술적인 감수성이 필요해요!
등록하시면 최고급 프라이팬 세트도 드려요!”
“아니에요, 어머니! 이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유적지 답사란 말이에요!
현장으로 나가서 생생한 체험을 해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저희 주말 가족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보세요. 지금 특가 세일이에요.”
놀금 사업은 날로 커져만 갔어요. 놀금에 아이들을 놀게 한다는 것은 마치 죄인 것처럼 여겨졌어요. 놀금전문학원을 단속하는 법이 생겼어요. 하지만 법을 피해서 학원은 자꾸만 생겼지요. 아이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놀아야 한다고 하는 것도 어른이고, 아이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어른이었어요. 아이들에게 공부시키려는 것도 어른이고 그걸 막으려는 것도 어른이었지요. 아이들은 점점 지쳐갔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무서운 일이 생겨나고 말았어요. 이런 전단지가 곳곳에 붙어 있었던 거예요.
<나는 주말에도 학교에 간다! 놀금 캠프 大 모집>
더 이상 불안한 주말은 없다!
금, 토, 일 주말 내내 2박 3일 동안 합숙!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완벽한 영어환경
주 3일(금토일) X 52주 (1년)
-> 약 5개월(156일)의 단기 해외 연수 효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미까지 UP UP!
놀금캠프에서 아이들은 2박 3일 내내 짜인 프로그램대로 공부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놀이만 했어요. 결국 일주일 내내 마음대로 노는 날이 하루도 없는 아이도 생겨나게 되어버렸어요. 아이들은 집에서 TV도 보고 컴퓨터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놀고 싶었어요. 그리고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운 채 빈둥거리고 싶었지요. 아이들은 금요일이 제일 싫었어요. 학교에서 내주는 놀금 숙제도 싫었고, 방학이 짧아진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인터넷 곳곳에서 아이들의 불만이 넘쳐났어요.
“이럴 거면 놀금은 도대체 왜 만든 거야?”
“맞아. 뭔가 이상해. 놀금 말고 공금이라고 이름을 바꿔야하는 것 아니야?
공부하는 금요일이니까.”
“왜 놀 때도 내 맘대로 놀면 안 돼? 어떻게 놀 지까지도 왜 다 정해주는 거야?”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결국 <진짜 놀금을 만드는 아이들 / www.jinnolman.com>이라는 홈페이지도 생겼지요. 아이들은 줄여서 진놀만이라고 불렸어요. 진놀만 회원은 자꾸 늘어났어요. 아이들은 그 홈페이지 안에서 놀금에 대하여 바라는 것들을 적었어요. 금요일마다 만나서 함께 놀 친구를 구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한데 모여 커져갔어요. 누군가 이런 제안을 하기도 했지요.
“진놀만 여러분! 5월 5일 어린이날 각자 학교 앞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기로 해요.
친구들과 함께 해도 좋아요. 놀금을 반대하는 글자를 적어서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서 있는 거예요. 어른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말해줍시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서로서로 하겠다고 댓글이 달렸지요. 5월 5일 어린이날 5시, 아이들은 학교 앞으로 가서 팻말을 들고 서 있었어요. 팻말에는 이런 글씨들이 쓰여 있었어요.
<진짜 놀금을 돌려주세요!>
<노는 금요일에 노는 시간은 없다! 놀이를 금지하는 놀금!>
<누구를 위한 놀금인가요?>
물론 어른들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놓칠 리가 없었어요. 기자들이 찾아와 아이들에게 직접 인터뷰를 했지요.
“진짜 놀금이 뭐지요?”

“진짜 노는 금요일이에요. 지금 놀금은 가짜예요. 놀금에는 공부를 하면 안돼요. 모두가 똑같이 놀아야 해요. 그래야 진짜 놀금이 된다구요.”
기자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영상에 담고, 기사로 만들었어요. 기사는 점점 더 널리 퍼져갔어요. 어른들은 깜짝 놀랐어요. 놀금이 노는 금요일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어느덧 잊고 있었거든요. 어른들은 그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진짜 놀금이 뭐지요? 인터뷰 그림
“맞아, 놀금은 노는 날이었지!”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진놀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져갔지요. 진놀만이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진짜 놀금을 찾아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도 생겨났어요. 진놀만 회원은 자꾸만 늘어났어요. 전국의 초등학생 대부분이 진놀만에 가입할 정도였어요.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활동을 했답니다. 사람들에게 진놀만을 알리고, 인터넷에 ‘진짜 놀금’ 아이디어를 내어놓았지요. 아이들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어요. 놀금은 노는 금요일이니까 노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제 어른들은 놀금에 어떤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붙잡아둘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미있게 놀게 할지 걱정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가고 싶어 했어요. 놀금은 노는 금요일이지, 학교에 가지 않는 금요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한 서명운동을 했어요. 결국 금요일에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물론 학교에 갔지만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진짜 놀금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새롭게 바뀐 놀금은 이랬어요. 우선 1교시에는 과자를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었어요. 교장선생님은 혹시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반이 있는지 복도를 돌아다녔어요.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더 시끄럽게 떠들 수 있도록 재미있는 놀이를 준비해 왔어요. 2교시에는 영화를 봤고, 3교시에는 만화책을 봤어요. 4교시에는 운동장이나 실내체육관 나가 축구를 하고, 피구를 하고, 배드민턴을 치며 마음껏 뛰어놀았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점심을 먹었어요. 5, 6 교시에는 조별로 모여 앉아 아이들끼리 새로운 놀이를 만들었어요. 보드게임도 만들고, 새로운 게임의 규칙도 정했지요. 그리고 학교가 끝난 후 그날 하루 어떻게 놀지 계획을 세웠어요.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계획대로 노는 것이 그날의 숙제였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금요일은 절대로 학원에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그날 문을 여는 학원은 누구라도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어요. 과외도 마찬가지였어요. 가끔씩 불법으로 학원 문을 여는 못된 원장님도 있었어요. 하지만 진놀만 회원들에게 들켜서 혼쭐이 났지요.
이제 아이들은 매주 금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질 정도였지요. 아이들은 행복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른들은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어요. 특히 몇 몇 어른들은 무척이나 억울해했어요.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 서 있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자유가 아닌 방종으로 아이들을 망치지 마라!>
<진놀만에 정치적 배후세력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요.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진짜 놀금이 마음에 쏙 들었거든요.
이진하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5-07-30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