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초록색 이름표

초록색 이름표
우리 반 크리스마스 트리에 이름 하나가 비었다. 교실 뒤 게시판에 이름표를 붙일 때마다 좋아했던 것도 잠시, 우린 그제야 초봄에 세상을 떠난 혜정이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혜정이 이름을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혜정이가 학교에 온 날은 세 번도 안 된다. 거의 병실에서 지내서, 교실에 얼굴을 비칠 때마다 우리는 혜정이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당장 병원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임시 짝꿍이었던 나는 더더욱 그랬다. 혜정이가 옆에 앉으면 어깨가 자동으로 쭈뼛 섰다. 혹시라도 혜정이가 앓고 있는 희귀 감기 바이러스가 나한테도 옮을까 걱정됐다. 물론 이땐 그냥 감기 몸살인 줄 알았다. 그래도 뭔가 불길해서 말도 살살 걸었고 책상도 살짝 떼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반은 두 패로 갈렸다. ‘조혜정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와 ‘절대 안 된다’로. 혜정이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은수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말했다.
“당연히 넣어야지, 같은 반 친구였잖아.
안 그러면 혜정이를 두 번 죽이는 거야!”
승주는 의견이 달랐다.
“섬뜩하지 않냐? 죽은 애 이름을 넣는다는 게.
차라리 초록색 이름표에 담임선생님 성함을 써서 붙이자.
그게 더 나아.”
결국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술시간에 진행된 우리 반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다들 출석번호 순대로 초록색 이름표가 모두
채워졌는데, 가운데만 뻥 뚫렸다. 승주는 선생님 이름표를 미리 만들어놓고,
은수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슬쩍 붙였다. 물론 은수는 그걸 보자마자 시원하게
쫙 떼버렸다. 요 1년 동안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는 은수와 승주는 4학년이
다 끝나가는 지금에서 이렇게 부딪치게 됐다.
“희재야, 넌 어느 쪽이야?”
학교 끝나고 은수가 물었다. 난 죄지은 것도 없는데 깜짝 놀랐다.
“너도 혜정이 이름표 붙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너 혜정이와 유일하게 짝했던 애잖아.”
“어, 그게…….”
그때 승주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짝 몇 번 했다고 조혜정 이름 넣어줘야 한다는 게 어딨어?
희재가 짝하고 싶어서 그랬냐? 출석번호 순이어서 어쩔 수 없었지.”
초록색 이름표 관련 이미지 - 1
은수와 승주가 아웅다웅하는 사이, 나는 조심스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침에 내린 눈이 다시 펄펄 내렸다. 아직 제대로 얼지 않았는데 운동장 위로 새하얀 눈이 또 무심히 쌓였다.
문득 혜정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임시 짝이 정해진 다음 날 말이다. 선생님은 혜정이가 아파서 못 왔다고만 말했다. 나는 여자애여도 좋으니까 얼른 왔으면 싶었다. 혼자 있으니 심심했다.
이튿날 혜정이가 왔다. 하지만 아무리 3월 초 치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해도, 마스크에 두꺼운 점퍼, 털부츠까지 신어놓고 자리에 앉아서 덜덜 떨었다.
‘추위 많이 타나보네.’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걸었다.
“어제 너 안 와서 심심했다.”
혜정이가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더니 싱긋 웃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과 달리 푸근한 웃음이었다.
“너 교과서 있어?”
“응.”
혜정이는 내 책상에 국어 교과서가 있는 걸 보고 똑같은 걸 꺼냈다. 가방이 그래도 불룩했다. 어쩐지 안심이 됐다. 수업시간에 혜정이는 필기를 꼼꼼히 했다. 글씨가 작고 동글동글했다. 둥그스레한 얼굴과 닮았다. 그날 학교가 끝나자 혜정이 엄마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혜정이를 데리러 왔다. 나는 교실 문을 나서는 혜정이에게 말했다.
“내일 보자.”
혜정이가 웃었다.
다음 날 혜정이는 학교에 왔다. 똑같이 마스크에 두터운 점퍼, 털부츠를 신었다. 여전히 얼굴은 문지르면 사라질 듯했다. 은수가 다가왔다. 은수는 혜정이 손을 잡았다.
“어때 괜찮아? 나을 수 있는 거지?”
혜정이는 웃기만 했다. 옆에서 나는 갸웃했다. 뭔가 좀 이상한데…….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왠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며칠 있으면 어차피 짝 바꿀 거고, 그때까지 감기 안 옮게 조심하면 되지.
혜정이는 수업마다 열심이었다. 수학시간에는 갑자기 펜을 놓아서 봤더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희재야, 이거 어떻게 풀어?”
나는 설명해줬고 혜정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틀린 답을 적었다.
“아니지. 이걸 이렇게 해야지.”
혜정이가 웃었다.
“여자애들은 역시 수학을 못해.”
내가 말하자 혜정이는 입을 삐죽였다.
“글쎄, 나중엔 내가 너보다 잘할 걸?”
하지만 나는 결국 혜정이가 나보다 수학을 잘하게 됐는지 어떤지 알지 못했다. 다음 날도, 다음다음 날도 안 오더니 일주일 후,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우리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안겨주었으니까.
"혜정이가 어젯밤 세상을 떠났단다.
우리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잠시 혜정이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눈을 감자 머릿속이 멍했다. 은수는 추억이 많은지 코를 훌쩍이더니, 쉬는 시간에 하얀 국화다발을 혜정이 자리에 놓고는 결국 비적비적 울었다. 나는 허연 국화가 내 바로 옆에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애들이 자꾸만 이쪽을 보는 것도 신경 쓰였다. 괜히 억울했고, 죽음이 내 앞에 성큼 다가선 거 같아 무서웠다. 며칠 뒤 자리가 바뀌자, 어떤 애가 혜정이 자리로 왔다. 국화는 이미 버려진 뒤였고 그 애는 자기 짐을 풀었다. 책상 속에서 혜정이 교과서가 하나 둘 나왔다. 언제 차곡차곡 넣었지? 나는 수학교과서를 넘겨보려다가 말았다. 열 쪽도 못 채운 교과서들이 교실 뒤에 쌓였다. 그리고 어느 날, 모두 없어졌다…….
혜정이 이름표를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집이었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엄마, 희귀 바이러스 걸리면 못 나아?”
“뭐? 너 감기 걸렸어?”
“아니……. 희귀병 걸리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엄마는 눈을 흘기더니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질문이 마뜩찮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버티고 있자 마지못해 대답했다.
“죽겠지.”
시트콤 방청객 웃음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얼른 학교 숙제 하고 학원 것도 해야 하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허공만 뚫어져라 봤다.
‘죽음…….’
나는 엄마가 인터넷 주문으로 사줬지만 책꽂이에 꽂은 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어린이를 위한 철학』 책을 꺼냈다. 죽음에 대한 데를 펼쳐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위인들을 생각해보라. 죽어서도 그분들의 소중한 지식과 신념은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아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
혜정이는 그냥 평범한 4학년 여자애였다. 그리고 내가 볼 때 혜정이는 죽음이 너무 코앞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거라곤 교과서 읽고 수학문제 푸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죽은 애 이름표를 붙여도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다 쓸데없는 말 같았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괜히 혜정이한테 아는 척 했단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짝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내 성에 ‘ㅈ’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 중 입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까운 친척의 장례식조차 열린 적 없다. 뉴스에서의 중환자실이나 장례식 장면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지나고 나면 잊혀지는, 나와는 먼 얘기였다. 그런데 4학년 초에 죽은 애를 4학년 끝나가는 마당에 떠올리고 이렇게 신경 써야 하다니.
그런데 저녁 무렵이었다. 퇴근한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내일 모레, 동창 장례식에 가봐야겠어.”
“대학 동창 말이지?”
‘장례식’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아빠, 나도 가면 안 돼?”
엄마아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가 거길 왜?”
“그냥…… 가보고 싶어.”
“너 아까부터 희귀 바이러스가 어쩌니 저쩌니 하더니…….”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안 돼. 학원도 있잖아.”
난 괜히 다급해졌다.
“저녁 8시면 끝나잖아. 아빠, 가도 되지?”
“그 정도면 뭐…….”
아빠는 결국 허락했다. 엄마는 학원 중간에 나오면 알아서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빈소는 조촐했다. 아빠는 대학 동기라는 아저씨들과 절을 하고 국화 한 송이씩을 돌아가신 아저씨 영정 사진 앞에 놓았다. 동창들 외에도 돌아가신 아저씨가 다녔다는 회사의 동료들이 와 있었다. 다들 심각한 얼굴이었다. 나는 구석에 있다가,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빠 친구분의 가족이 얼마나 슬퍼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빠는 접견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사람들이 얘기도 하고 더러 웃기도 했다. 긴장은 풀렸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돌아가신 아저씨의 중학생 딸이 음식을 날랐다. 사람들은 그 누나의 손을 잡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때마다 누나는 설핏 웃었다. 하지만 눈물이 차오르는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공기밥 하나를 금세 비웠다. 아빠가 더 먹으라고 했다. 맘 같아선 그러고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입맛이 없는 듯했다.
밖에 나오니 밤공기가 찼다. 옷을 훌훌 던져버린 나무들이 가로등 주위에 굳게 서있었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입김을 하아 내뱉었다. 아빠가 그 모습을 보고 하아, 하아 입김을 두 번 내뱉었다. 나는 하아, 하아, 하아 세 번 뱉다가 캑캑댔다. 아빠가 웃었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빠, 돌아가신 아저씨랑 친했어?”
“응? 아니……. 아빠가 나온 학과는 워낙 인원이 많아서 이름도 다 기억 못할 정도였어.
심지어 이 친구 결혼식도 못 갔고 연락처도 없었는데, 대학 다닐 때 발이 넓었던 애한테서 연락이 와서 알게 된 거야.”
“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죽음.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였는데 조의를 표하러 온 아빠. 입김이 공중에 흩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불편했던 마음도 사라지겠지. 나도, 아빠도. 혜정이 얘기를 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 안 나왔다. 몇 번이고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선생님이 혜정이 이름표를 붙이라고 했다. 일찍 떠났지만 그래도 우리 반이었다고,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은수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는 보란 듯이 ‘조혜정’ 이름표를 크리스마스 트리 빈 데에 붙였다. 초록색 트리가 드디어 완성됐다. 애들은 무슨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듯 몰려들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새 학년 되면 다 떼버릴 텐데 뭐 저렇게 난리람.’
‘은수 쟤는 혜정이를 얼마나 기억할까? 1년?’
장례식에 다녀온 뒤로, 혜정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삐뚤어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슴이 이상하게 꽉 죄었다. 학교가 끝나자, 승주가 눈싸움하자고 했다.
남자애들은 가방을 던지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눈을 뭉쳐서 애들을 쫓았다.
초록색 이름표 관련 이미지 - 2
뒤통수에 맞추고 목덜미 안에 집어넣고, 심지어 어떤 애가 돌멩이를 넣어 던지자 욕하며 코피 날 때까지 때려줬다.
이윽고 다들 운동장에 대자로 뻗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누웠다.
몸이 후끈하고 머릿속은 기분 좋게 텅 비었다.
눈이 내렸다. 눈꺼풀 위로 떨어질 때마다 눈을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했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겁이 나 눈을 비볐다. 누워있었다는 게 싫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때 몸이 휘청거리면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먼 데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유일하게 알았던 내 이름을 다시 부르고 있었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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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