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내 꿈의 밤바라

내꿈의 밤바라
"자는 동안 렌즈가 각막을 눌러주면 다음 날은 눈이 잘 보인다는 거죠? 신기하네요."

"적응에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며칠은 어머님이 도와주세요."
"드림렌즈를 하는 사람은 날마다 일곱 시간 이상 푹 자야합니다. 행여 무서운 꿈꾸지 말고 게임 적당히 하고, 명아야."

"저희 애는 게임 안 해요. 선생님."

"인공 눈물 한 상자를 드릴 게요. 렌즈 넣을 때 눈물이 필요해요."
한 달 전이었다. 밤늦게 제주도에서 돌아온 엄마는 출장 가방을 끄르다말고 펑펑 울었다. 나는 학교에서 나눠 준 건강검진 결과표를 내밀었을 뿐이다. 결과표의 치아 그림에는 아랫니에 세 개의 충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를 열심히 닦았는데 이렇게 됐다. 하지만 엄마가 우는 건 다른 이유다.
내꿈의 밤바라
"안경 바꾼 지 1년도 안 됐는데 더 나빠졌어. 내가 일한다고 잘 해먹이질 못해서 그래. 벌써 이렇게 안 보이면 어떡하니. 어떡하니."

엄마는 내가 안경을 처음 쓰던 일곱 살 때도 그렇게 울었다. 엄마는 그날로 내 게임기를 치워버렸다. 엄마가 집에 없는 동안 게임만 해서 내 눈이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녀 꾸꾸 같은 빨간 안경테가 마음에 들어서 자꾸 거울을 보았다. 살짝 어지러웠지만 하늘을 나는 마녀라면 어지러운 것쯤은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게임기는 버렸지만 해마다 안경알은 두꺼워졌다. 나는 또래 중에 유난히 키가 잘 컸고 키 클 때는 안구도 함께 자라서 시력이 떨어진다. 4학년 일 년에 7cm나 자랐고 시력도 두 단계나 내려갔다.
"너희 엄마가 안경에 징그럽게 난리를 떠는 건 이유가 있다. 그거 아니, 명아야?"
엄마가 출장 갈 때마다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자주는 넷째 이모가 말했다. 이모는 나처럼 두꺼운 안경을 쓴다. 엄마는 오래 전에 라식 수술을 해서 안경을 쓰지 않는다.
"구두쇠 외할아버지가 네 엄마랑 나랑 안경을 따로 따로 안 사줬거든. 계집애들끼리 알아서 하나로 나눠 쓰라고. 말이 되는 소리니?"
"칠판은 안 보이고 죽을 것 같았어. 지독한 양반."
내꿈의 밤바라 사진 - 1
엄마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외할아버지네 가게 뒤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큰 방 하나는 아들 방, 비좁은 부엌방은 딸 넷의 방이었다. 엄마는 그 방에서 안경뿐 아니라 뭐든 나눠 쓰며 자랐다. 지금 우리 집도 방이 하나지만 엄마랑 나랑 둘이 사니까 괜찮다.
그렇게 검진표를 들고 안과에 간 엄마와 나는 새 안경 대신 비싼 드림렌즈를 맞췄다. 엄마는 내가 안경 쓴 얼굴을 싫어했다.
내꿈의 밤바라 사진 - 2
"아. 이제 우리 명아, 큰 눈이 제대로 보이겠네."
히아레인 0.1%. 눈물과 똑같은 성분이라는 이 투명한 물을 밤마다 세 방울씩 떨어뜨리고 딱딱한 렌즈를 낀 다음에 잠들면 된다. 하루만큼 눈을 밝게 만들어준다는 꿈의 렌즈. 각막을 꽉 눌러주는 힘 때문에 눈도 당분간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꿈은 꿀 수 있을까. 이러다가 내 꿈까지 꽉 눌려버리면 어떡하지. 몇 번 더 출장을 가고 야근을 해야 이 렌즈 카드 값을 갚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너는 눈이 정말 예쁘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엄마는 밤마다 정성껏 나에게 드림렌즈를 넣어주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엄마는 기어이 도와주겠다면서 손을 씻고 앉았다. 맑은 눈물이 담긴 둥근 렌즈가 눈동자를 정확히 눌러야 한다.
"잘못 넣으면 엉뚱한 곳을 눌러서 세상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일 수 있어. 오늘은 어땠어?"

"응. 점점 잘 보여."
사실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요즘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이 있다. 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꿈을 꾸면 기억했다가 일기장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내 꿈 공책에는 벌써 아흔 아홉 개의 꿈 이야기가 적혀 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온갖 색깔의 풍선과 함께 줄지어 내리는 꿈, 과자봉지 속의 새우과자가 말을 걸어서 같이 바다로 배 타고 놀러간 꿈, 곰 모양 젤리를 심었더니 거기서 친구가 수 백 명 열리는 나무가 자라난 꿈. 그런데 드림렌즈를 하고 난 뒤로 나는 이상하게 아무런 꿈도 꾸지 못했다. ‘꿈꾸지 말고’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마법 주문이 된 걸까.
그 날도 보통 때처럼 렌즈를 넣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는데 엄마를 급히 찾는 전화가 왔다. 내일 오는 중국 단체 손님 팀에 대타 가이드를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출장 가이드 일이 잡혔다는 연락이 오면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얼른 나랑 같이 자줄 사람부터 구해야한다. 여기 저기 전화번호부터 눌렀다. 이번에는 넷째 이모도 없는데. 간병 일을 하는 이모는 장기 환자를 받아서 당분간 못 온다고 했다.
"다 컸으니까 혼자 둬도 되지. 나도 그걸 왜 몰라. 이번에는 일이 길어서 그래. 어렵겠어?"
점점 엄마의 신경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이불을 휙 걷고 ‘나 혼자 있을 게’라고 하려다 그만 두었다. 그런 말은 전에 백 번도 더 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부렸다. 누구라도 불러서 꼭 같이 재워야 걸음이 떨어진다고 했다. 지난 3월에는 김주임님네 재수생 언니가 와서 잠을 잤고 나는 보라색 전화 줄을 타고 고양이와 하늘을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 언니는 밤새워 사귀는 오빠랑 통화를 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 잠들었다. 나는 참치 캔을 하나 따서 동치미랑 같이 언니 아침밥을 차려줬다. 내가 깨우지 않았으면 내내 학원에 지각했을 거다.
"늦어도 괜찮으니 되면 꼭 좀 해줘."
엄마가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꽁꽁 여민 출장 가방을 굴리면서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명아야. 정말 미안한데. 엄마 잠깐 갔다 올 게. 잠자는 건 걱정 마. 엄마가
아는 언니한테 잘 부탁해 뒀어. 학교 다녀오면 와 있을 거야. 우마언니라고,
멋진 언니야."
엄마는 출장을 가기 전에 늘 이렇게 말했다. 사나흘이든 일주일이든 언제나 ‘잠깐만’이라고 했고 오는 언니는 늘 멋진 언니였다. ‘정말 미안한데’는 바쁜 엄마가 나에게 빨리 말하고 나갈 수 있는 최고로 미안한 마음을 담은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참, 드림렌즈. 너 혼자 할 수 있나? 그 생각을 못 했네. 어떡하니. 어떡하니."
나는 대답 대신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다. 드림렌즈 전에는 라면 끓이기를, 라면 끓이기 전에는 학원에 카드로 돈 내기를, 엄마가 없을 때마다 나 혼자 했다. 엄마가 나간 뒤에 시계를 보니 아직 다섯 시 반이었다. 공항은 멀다. 나는 일곱 시간 이상 자야 하는 사람인데. 드림렌즈를 하는 사람이니까. 어제도 꿈은 없었다. 어쩌면 오늘 칠판이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생활 속에서 요즘 일어난 일을 원고지에 쓰라고 했다. 나는 ‘꿈을 꾸고 싶은데 꿈이 안 꿔지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썼다.
"앞으로도 계속 꿈이 안 꿔진다면 어떡하지요?"
"꿈 공책에 쓸 말이 없잖아요." 그 사람은 연필을 꼭 쥐고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라고 쓰지는 않았다.
‘띠디디딕딕’
학교를 마치고 번호 열쇠를 열어 집에 들어오니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새콤한 냄새가 훅 풍겼다.
"이 니 쎄!"
씽크대 아래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가 불쑥 일어섰다. 나는 깜짝 놀라서 신발 주머니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섰다. 초록색 모자를 쓰고 색색의 털실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커다란 오른손에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었다.
"네가 명아구나. 안녕. 나는 니우마야."

"언니가 우,마, 언니?"

"응. 니우마. 엄마랑 같이 일했어. 지금 쉬고 있는데,
엄마가 일주일만 너하고 놀아주라고 하셔서. 놀랐니?"
언니는 어느새 내 등 뒤로 와서 가방을 받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의 힘을 풀었다. 누가 학교에서 돌아온 내 가방을 이렇게 받아준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바구니를 찾고 있었는데 이것 밖에 없네."

"외,국,사,람……이죠? 한국말을 왜 이렇게 잘 해요?"
나는 이렇게 이상한 첫 인사를 하고야 말았다. 니우마 언니는 종이봉투를 거꾸로 들어 바구니 가득 오렌지를 쏟아놓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손바닥도 이처럼 하얜다. 내가 손을 씻고 오니 식탁에는 반으로 쓱쓱 잘라놓은 향긋한 오렌지가 한 접시였다.
"여기 5년 밖에 안 살았어요? 근데 한국말을 어떻게 이렇게 잘 하지?"
나는 오렌지를 먹으면서도 자꾸만 우마 언니의 한국말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한국 사람을 좋아하면 그게 돼. 너무 싫어해도 그렇게 될 수 있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난 이제 한국말로 꿈도 꿔."

"어떤 꿈인데요?"
니우마 언니는 대답 대신 그냥 웃었다. 그날 오후처럼 내가 누구에게 뭔가를 열심히 물어본 날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녀와서 뭘 많이 먹었던 것도. 우리 집에 오렌지 향기가 마음껏 날아다녔던 것도.
잠들기 전에 나는 말리 박사, 망고 박사가 되어 있었다. 말리는 니우마 언니가 살던 곳이라고 했다. 말리는 망고의 나라다. 언니는 망고의 나라 말리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 망고나무 한 그루에 많을 때는 오천 개의 망고가 열리는데 큰 것 한 개가 1kg정도다. 1kg이면 내가 마트에서 가끔 사오는 핫케이크 가루 한 봉지 무게다. 망고는 겉은 부드럽고 약하지만 속에는 아주 크고 단단한 씨가 들어 있다.
내꿈의 밤바라 사진 - 3
"명아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망고나무가 우리나라 전체를, 전체를 다 덮고 있는 것처럼 보여. 노란 망고가 우리 말리를 몽땅 말이야.
비행기 문이 열렸을 때 그 어마어마한 냄새를 상상해봐."

"망고나무는 망고 열매가 무겁지 않아?"

"망고나무인데 망고가 왜 무거워? 너는 팔이나 다리가 무겁니?"
언니는 또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활짝 웃었다. 언니가 웃는 모습이 망고를 닮았다. 언니 고향에는 나와 똑같은 나이의 막내 동생이 있다고 했다. 말리, 망고, 막내, 동생.
밤이 깊어 내가 먼저 세수를 했다. 나는 오늘 혼자서 내 눈동자에 드림렌즈를 넣어야 한다. 언니가 세수를 하는 동안 핸드폰을 꺼내어 검색창에 말리를 검색했다. 말리의 말로 니우마 언니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고 싶었다.
‘국가 정보. 말리. 아프리카 서부. 수도 바마코. 북부 지역의 내전으로 인해 주민 80만 명이 나라를 떠나서 세계 각국에…….’
니우마 언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얼른 핸드폰을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 언니는 거울 앞에 앉아서 드림렌즈를 끼는 나를 바라보았다. 렌즈를 두 번 바닥에 떨어뜨렸다. 언니는 웃으면서 천천히 다시 해보라고 말했다. 마지막 남은 눈물 포장 한 개를 열었다. 오늘로 안과에서 받아온 눈물 한 상자를 다 썼다.
카쑤헤에레
언니. 있잖아. 잘 자라는 말을 말리 말로 하고 싶은데."
언니와 이불을 나란히 덮고 누웠다. 창문 밖 가로등은 밤에 더 환하다.
"그래? 말리는 프랑스가 나라를 빼앗은 뒤로 프랑스어를 쓰지만, ‘밤바라어’라고 옛날부터 쓰던 말이 있어.
우리나라 이름이 원래 밤바라 왕국이었거든."

"밤바라! 이름이 예쁘다."

"내일부터 우리 밤바라 말을 가르쳐줄까? 밤바라어로 ‘잘 자요’는 ‘카 쑤 헤에레!’"
오늘 밤에 나는 꿈을 꿀 것 같다. 니우마 언니와 밤바라 말로 수다를 떨고 신나게 망고를 먹고 말리에서 언니 동생이랑 노는 꿈. 아직 가보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은 말로 어떻게 꿈을 꾸느냐고? 사람을 좋아하면 그게 된다. 내 꿈에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온다.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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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5-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