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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로

함민복의 강화도

강화도의 푸르고 짠 길들 함민복 시의 무대를 찾아서
술자리에서 말문이 막히거나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어디에서 살고 있냐고 나는 묻는다. 취기가 올라 또 대화가 단절되면 되묻곤 한다. 어디에서 지내신다고 했죠? 그러한 나의 술버릇이 생긴 이유는 단지 할 말이 없어서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만난 사람이 어디에서 지내는지 무척 궁금했던 것이었다. 특히 시인을 만나면 더 그러하다. 한 사람을 제대로 사귀거나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과 정서를 알아야 한다고 여겼던 까닭이었다.

그를 처음 만나 어디에 사시냐고 물었던 지난해 6월! 풍랑이 거센 바다처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마구 출렁이던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한 신문사 앞에서 동그랗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가는데 그는 귀가를 아침으로 미루고 노상(路上)에서 잠을 청했다.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으나 헤어질 때 본 그의 얼굴이 내 마음으로 삐뚤삐뚤하게 날아왔다.

그리고 일 년 남짓 지나서야 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배낭에 챙겨 넣고 강화도로 향했다. 시집의 첫 번째 시는「나를 위로하며」다. 강화도로 안내하는 이정표를 살피면서 마음속으로 ‘삐뚤삐뚤 / 날면서도 / 꽃송이 찾아 앉는 / 나비를 보아라 / 마음아’(「나를 위로하며」)를 떠올리는데 햇볕이 쨍쨍하던 하늘에서 봄비가 삐뚤삐뚤 날아왔다. 내 마음은 진작 강화도 어디엔가 핀 꽃송이에 앉아 있는데 빗방울은 굵어졌다.

강화도는 육로로 가는 섬이어서 왕래가 자유롭다. 그런 때문에 섬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한 마음이 든다. 섬으로 가는 길은 예부터 배가 독차지한 줄만 알았건만 육로로 섬에 드니 불쑥 서글퍼졌다. 그는 ‘물울타리를 둘렀다 / 울타리가 가장 낮다 /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섬」)라고 노래했다. 물울타리를 가로지른 초지대교를 건너자 강화도가 울타리 낮은 길을 가진 섬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초지대교 사진
△ 초지대교를 지나고
초지대교를 넘자마자 차들의 까만 울타리가 동과 서 두 갈래 길로 나눠졌다. 나는 동으로 풀어진 울타리를 택했다. 그의 시들이 이끄는 대로, 울타리들에게 길을 물으며 나는 섬 곳곳을 살펴볼 작정을 했다. 말랑말랑한 시가 눈앞에 펼쳐지듯 바닷물이 해안선에서 멀리 밀려나가 드넓은 뻘 울타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그가 십여 년 전 마니산 자락 동막리에 오지 않아 뻘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뻘에 말뚝 박는 법」,「뻘」,「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뻘밭」,「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등을 우리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에게 뻘은 희망적인 삶의 공간, 깨달음의 공간이자 문명에게 일침을 가하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뻘이 말뚝을 빨아들여 점점 빨리 깊이 빨아주어 / 정말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 흔들어주어야 한다 / …중략… / 그물 넝쿨을 걸고 / 물고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상상을 하며’(「뻘에 말뚝 박는 법」) 뻘에서 나올 때 ‘뻘길 십 리 / …중략… / 맨발로 / 지구를 신’(「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고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 말랑말랑한 힘 / 말랑말랑한 힘’(「뻘」)을 그는 뻘에서 발견했다.

조금씩 잦아드는 비를 맞으며 나는 뻘을 살펴봤다. 셀 수 없이 많은 ‘집들이 다 구멍’(「뻘밭」)이고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뻘밭」)는 뻘밭은 공평한 세상이다.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 물컹물컹 깊은 말씀’(「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을 뻘밭에 가만히 앉아 들었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해졌다.
선두리포구 사진
△ 선두리포구에서
바다 끼고 섬을 에둘러 낸 까만 울타리에서 포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자그마한 선두리 포구에 들렀다. ‘외부차량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린 입구를 지나 어선들과 마주했다. 포구에는 어구(漁具)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는데 주꾸미를 잡을 때 쓰는 빈 소라 껍질이 시선을 잡았다. 「주꾸미」에서 빈 소라 껍질은 주꾸미들이 알을 까는 집이다. 알을 까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 주꾸미는 대문을 달아 건다. 이를 이용해 빈 소라 껍질로 주꾸미를 잡는데 뱃전에서 줄을 당겨보면 집 한 채에 두 마리가 들어 있곤 한다. 먼저 들어간 주꾸미가 대문을 완벽하게 달자 벽이 되고 다른 주꾸미가 같은 집에 들어가 겹대문을 달았던 것이다. 그는 ‘겹대문 / 겹죽음’이라고 혀를 찬다. ‘뱃전에 서서 빈 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기면 / 배가 흔들리고 / 길에 매달린 집들이 흔들’거리 듯 포구에 밧줄이 팽팽하도록 매달린 어선들이 물결에 흔들거렸다. 바다에서의 생들은 저렇게 흔들거리며 견디는 것 아니 즐거이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물결이 쉴 새 없이 출렁거렸다.
분오리 포구 사진
△ 분오리 포구에서
분오리 저수지 사진
△ 분오리 저수지에서
분오리 포구로 건너가기 전, 분오리 저수지를 만났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저수지를 그는 ‘하늘의 손거울’이라고 비유했다. 깨지지 않는 하늘의 손거울이라는 말이 착착 달라붙었다. 낚시꾼 네댓 명이 앉아 하늘의 손거울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한 낚시꾼이 낚싯대를 힘차게 들어 올리자 물고기가 하늘의 손거울을 박차고 나와 파닥거렸다. 분오리 저수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분오리 포구였다. 포구에 모여 있는 저 어선들 중 그를 싣고 ‘푸르고 짠 길’을 달렸을 흔들리는 길이 궁금했다.

‘이 길은 푸르고 짜다 / 길 속에서 먹을 것을 잡아 올린다 / 이 길엔 깊이가 있어 / 길에 빠져 죽기도 한다 / 길 위에서 밥을 몇 번 해 먹으면 / 두려움이 가시기도 하는 / …중략…/ 길을 먹은 힘으로 길을 또 가야 하는 / 길이 흔들린다 / 흔들리는 길 위에서 길은 더 흔들린다 / 이 길은 늘 푸르고 짜다’(「푸르고 짠 길」)
분오리돈대 사진
△ 분오리돈대에서
분오리 포구 옆 돈대에 올라갔다. 조망하기 좋은 돈대에 오르니 넓은 뻘과 먼 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1679년 조선 숙종 때 축조한 돈대의 바깥은 성곽을 높이 쌓았고 안쪽은 낮게 만들었다. 성곽 안쪽에서 나는 포를 놓기 위해 움푹 파놓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포혈(砲穴)로 해안의 뻘밭을 보니 어선 몇 척이 멈춰있기도 했고 움직이기도 했다. 뻘의 뿌리처럼 뻗어나간 길에서 어선들이 입항하고 있었다. 뻘의 가장 낮은 곳으로 바닷물이 고여 길이 생긴 것인데 바다의 지문(指紋) 같기도 했다. 마치 배들이 바다에서 지문을 더듬거리며 드나드는 것처럼 혹여 여기서 길을 잃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여기는 모두가 길이니......

‘가늘어진 / 가을 / 물소리에 / 바위는 / 더 / 깊이 / 패는구나’(「정수사」)
전등사 사진
△ 전등사에서
정수사 사진
△ 정수사에서
전등사의 말사, 정수사로 갔다. 분오리에서 출발하면 전등사보다 먼저 닿는 곳이었다. 정수사 초입으로 연등이 마중을 나왔다. 나는 그간 생활의 울타리에서 길을 찾느라 부처님 오신 날조차 잊고 지냈다. 정수사에 가까워지니 일주문 대신 큰 나무 두 그루가 정갈한 길 안에 서 있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나무의 말씀을 들렸다. 바위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산비탈도 볼만했다. 마치 정수사에서 떨어뜨린 물방울들 같이 보였다. 돌층계를 밟고 오르니 절 마당에는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대웅전에서 나온 독경 소리와 목탁 소리가 맑은 물소리에 섞여 산 아래로 퍼졌다.
정수사와 전등사 가는 길 사진
△ 정수사와 전등사 가는 길, 마니산
보살님은 ‘사월 초파일 / 傳燈寺에서 淨水寺까지 / 공양 드리러’(「개밥그릇」) 갔지만 나는 정수사에서 전등사까지 구경하러 갔다. 두 사찰은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데 하루에 사찰 두 곳을 가본 적이 없는 터라 가는 길이 점점 생경하게 다가왔다. 나는 전등사의 동문 매표소를 지났다. 정수사와 마찬가지로 연등이 마중을 나왔으나 전등사는 공사 중이었다. 강화도 곳곳에서 길을 파고 흙을 뒤집고 철근을 쌓아놓았던 먼지투성이 길들과 전등사 공사현장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나는 대웅전보의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이 신기해 오래 관찰하다가 적묵당 옆 종각으로 갔다. 종각보다는 고목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는데 그 고목에 부처님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든 사람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나무에 뾰족한 쇠끝을 대다니, 사람들에게 「돌에」를 크게 읽어주고 싶었다.

‘송덕문도 / 아름다운 시구절도 / 전원가든이란 간판도 / 묘비명도 / 부처님도 / 파지 말자 // 돌에는 / 세필 가랑비 / 바람의 획 / 육필의 눈보라 / 세월 친 청이끼 // 덧씌울 문장 없다 / 돌엔 / 부드러운 것들이 이미 써 놓은 / 탄탄한 문장 가득하니 // 돌엔 / 돌은 / 읽기만 하고 / 뾰족한 쇠끝 대지 말자’(「돌에」)
온수리 마을과 성공회 성당에서 사진
△ 온수리 마을과 성공회 성당에서
그가 사는 곳이 궁금해 길상면에 온 김에 찾아봤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어디에서 지내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내가 아는 주소는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인데 분오리 포구 근처 동막리에서 전등사가 있는 온수리로 이사를 왔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멈춘 곳은 온수리성공회 성당 앞이었다. 성당에서 지내는 건 아닐 것이고 내가 멈춰선 길가에 허름한 집 한 채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 집에 가보니 빈집의 좁은 마당에서 고개 갸웃갸웃 쳐다보는 누런 개와 햇살을 담고 있는 개밥그릇이 있었다. 여기쯤에서 머물고 있겠지 짐작만하고 장터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오자 맑은 밤하늘에 낚싯바늘 같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저녁식사로 먹은 생선 구이를 떠올리는 찰나, 그의 「초승달」에 나오는 배고픈 소가 내 귓가에서 서걱서걱 소리를 냈다. ‘배고픈 소가 // 쓰윽 // 혓바닥을 휘어 // 서걱서걱 // 옥수수 대궁을 씹어 먹을 듯’(「초승달」)
나는 다시 생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초지대교로 이어진 까만 울타리를 달렸다. 내 마음에 삐뚤삐뚤하게 날아온 그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김포평야」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아파트들과 국민을 위하여 일하겠다는 「기호 108번」 등등의 푸짐한 안주를 씹으며 그와 마주 앉아 술 한 잔 못한 게 아쉬웠다. 강화도의 푸르고 짠 길들이 어둠에 가려졌으나 강화도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나를 갯내가 뒤따라왔다.
윤석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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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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