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호랑이 수염 꼬부라진 이야기

호랑이 수염 꼬부라진 이야기
삽화1
아주 오래 전 맛있으면 꿀꺽리 마을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호랑이는 아주 크고 멋지고 꼬리도 굵었어요. 줄무늬도 또렷해 많은 동물들에게 부러움을 샀지요. 특히 맛있는 동물을 사냥할 때면 눈도 커지고, 귀도 쫑긋 서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어요. 자주 이런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호랑이가 식탐이 많은 먹보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먹보 호랑이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수염이지요. 호랑이가 입맛을 다시거나 먹고 싶은 것이 눈앞에 있으면, 호랑이의 오른쪽 수염 중 딱 한 가닥이 꼬부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호랑이는 꿀꺽리 동물들이 수염의 비밀을 알아채기 전에 사냥을 끝냈어요. 그러고는 모두 꿀꺽, 삼켜버렸지요. 돼지도 너구리도 다람쥐도 모두 호랑이의 입 속으로 들어가면 꿀꺽,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어요. 먹보 호랑이가 동물들을 다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는 금세 소문이 되어 하늘에 둥실 떠올랐지요. 소문은 구름처럼 둥둥 떠서 옆 마을까지 퍼져나갔어요.
그 옆 마을인 잡히면 토끼리에는 모두 다섯 마리의 토끼남매가 살고 있었어요. 토일, 토이, 토삼, 토사, 토오는 각자 잘 하는 것이 있지요. 토일이는 요리를 아주 잘 해요. 특히 잡초부침개를 아주 맛있게 하지요. 토이는 집을 아주 예쁘게 꾸밀 줄 알아요. 덕분에 토끼남매의 집에는 예쁜 꽃들이 피었지요. 토삼이는 옷을 아주 잘 만들어요. 원피스부터 멜빵바지까지 못 만드는 옷이 없지요. 토사는 청소를 깨끗하게 잘 해요. 잡히면 토끼리 마을에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지요. 막내 토오는 눈이 아주 좋아서 뭐든지 잘 관찰해요. 형, 누나들이 보지 못한 것들까지도 모두 세세하게 볼 수 있지요.
잡히면 토끼리에 사는 토끼들도 먹보 호랑이의 소문을 들었어요.
"먹보 호랑이가 꿀꺽리의 동물들을 모두 잡아먹었대요."
막내 토오가 겁에 질려서 말했지요.
"너무 걱정 마. 여기는 꿀꺽리가 아닌데 설마 우리 마을까지 오겠어? 혹시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절대 잡혀먹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첫째 토일이가 의젓하게 동생들을 다독였어요.
꿀꺽리의 동물들을 모두 잡아먹은 호랑이는 시간이 지나자 또 배가 고파졌어요. 그래서 어슬렁거리며 마을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지요.
"친구들아, 어디로 숨었니?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 절대로 잡아먹지 않을게. 심심해서 그러니 같이 놀자."
배고픔에 마을을 돌아다니던 먹보 호랑이는 맛있으면 꿀꺽리를 지나서 잡히면 토끼리에 도착했어요. 토끼남매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숨었지요.
"먹보 호랑이가 왔다! 호랑이가 왔어! 모두 집으로 숨어!"
토끼들은 재빨리 깡충깡충 뛰어서 모두 집에 모였어요. 너무 놀라 벌름거리는 코에서는 푸쉭푸쉭 숨소리가 들려왔고, 콩닥콩닥거리는 심장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지요.
"정말로 호랑이가 나타났어……."
훌쩍거리며 말하는 토오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요.
먹보 호랑이는 토끼들이 놀라서 도망치고, 집 안으로 숨는 것까지 모두 지켜보았지요.
"이게 얼마 만에 본 먹잇감이야? 절대 놓칠 수 없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리나 있어. 한 번에 모아놓고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꿀꺽, 삼키면……! 히히 천국이 따로 없겠군."
먹보 호랑이는 토끼들을 잡아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먹보 호랑이는 토끼들이 숨은 집으로 살금살금 다가갔지요. 집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집 안을 살펴보았어요. 하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요.
"어?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로 들어갔는데 왜 아무도 없지?"
호랑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사실 토끼들의 집은 땅 밑의 굴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급한 일이 생기면 땅굴로 숨을 수 있지요. 그걸 알 리 없는 호랑이는 계속해서 집 안만 들여다보았어요. 하지만 토끼의 꼬랑지도 보이지 않았지요. 그래서 호랑이는 토끼들을 불러내기로 마음먹었어요.
"토끼들아, 나는 옆 마을에 사는 외로운 호랑이야. 우리 마을엔 나 빼고 아무도 살지 않아. 그래서 너무 심심해서 왔어. 우리 같이 놀지 않을래?"
하지만 이미 먹보 호랑이의 소문을 들을 토끼남매는 호랑이의 말을 믿지 않았지요. 호랑이는 조금 더 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어요. 일부러 더욱 불쌍하고 착한 척을 하면서 말예요.
"나는 정말로 외로워. 친구들이 아무도 없어. 나도 너희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먹보 호랑이의 목소리를 들은 토끼들은 귀를 쫑긋 세웠어요.
"그러니까. 꿀꺽리 동물들을 모두 잡아먹은 무서운 호랑이라고 했는데……."

"목소리는 참 착한 것 같아. 정말로 외로워 보여."
땅굴 입구에 선 토끼남매는 회의를 시작했어요. 호랑이의 불쌍한 목소리에 토끼들은 마음이 약해졌지요. 그래서 호랑이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정말로 원한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막내 토오의 생각은 달랐어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요.
"그래도 이상해요. 꿀꺽리의 동물들이 얼마 전 부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에요!"
토오가 열심히 말렸지만, 이미 형과 누나들은 땅굴 밖으로 나간 후였어요. 토오는 할 수 없이 땅굴 밖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었지요.
먹보 호랑이는 토끼들이 보이자 기분이 좋았어요. 다섯 마리를 입안에 넣고 꿀꺽 삼킬 생각을 하니 군침이 돌았지요. 호랑이는 웃으면서 입맛을 다셨어요.
'지금이야! 집까지 통째로 꿀꺽 삼켜주겠어.'
먹보 호랑이는 침이 고인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세웠지요.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토오가 소리쳤어요.
"호랑이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해요! 호랑이의 수염이 꼬부라졌어요."
토오의 외침에 토끼들은 다시 땅굴 속으로 숨었지요. 호랑이는 놀라서 입을 다물고 손으로 수염을 가렸어요.
"내 꼬부라진 수염을 들키다니! 이럴 순 없어!"
호랑이는 재빨리 토끼들을 사냥하려고 했지만, 토끼남매가 숨은 땅굴은 너무 좁았지요. 호랑이의 새끼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어요. 땅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호랑이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지요.
먹보 호랑이는 수염의 비밀이 세상에 퍼질까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일단 꿀꺽리로 돌아와 대책을 세우기로 했지요. 한참 고민을 하던 호랑이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어요. 아직 완전하게 펴지지 않은 꼬부라진 수염 하나가 보였지요. 꼬르륵, 뱃속에서는 자꾸 소리가 났어요. 연못가에서 한참동안 고민을 하던 호랑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지요.
'그래! 꼬부라진 수염을 뽑아버리는 거야! 그러면 수염의 비밀을 모두가 알아도 상관이 없어. 그리고 이미 토끼들은 수염의 비밀을 알았으니, 수염이 없으면 토끼들을 잡아먹는 일이 한결 쉬워질 거야.'
먹보 호랑이는 망설임 없이 꼬부라진 수염을 뽑았어요. 마음이 가벼워진 호랑이는 다시 잡히면 토끼리 마을로 갔지요.
"토끼들아, 아까는 너희가 오해를 한 것 같아. 나는 그냥 하품을 했을 뿐이야. 절대로 절대로 너희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었어."
먹보 호랑이는 토끼남매의 집에 대고 크게 외쳤어요. 다시 온 호랑이의 모습에 긴장을 하던 토끼남매는 귀를 쫑긋 세웠지요. 첫째 토일이가 땅굴확성기를 통해 답했어요.
"하지만 아까 꼬부라진 수염을 분명히 봤어요. 우리를 잡아먹고 싶어서 흥분한 거잖아요. 그래서 수염이 꼬부라진 거예요. 수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요!"
토일이의 말이 끝나자 토끼남매는 모두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지요.
"아니야. 내 수염이 원래 먹을 것 앞에서 꼬부라지는 것은 맞지만, 아까는 잘못 된 거야. 나는 절대 너희를 잡아먹으려는 마음이 없어. 아까 물을 많이 마셔서 지금은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거든."
먹보 호랑이는 고픈 배를 움켜쥐곤 말했어요. 먹보 호랑이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꿀떡리로 돌아가지도 않고, 토끼 집 앞에서 토끼들만 기다렸지요.
호랑이가 당연히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 토끼들은 아침이 되자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왔어요. 토끼남매는 놀라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지요. 먹보 호랑이는 토끼들이 정말 반가웠어요.
"토끼들, 안녕? 난 정말 너희와 친해지고 싶어서 왔어. 이것 봐봐. 이제는 수염도 꼬부라지지 않잖아."
먹보 호랑이는 오른쪽 볼을 토끼들에게 자세히 보여주었어요. 토오는 혹시 먹보 호랑이가 수염을 잘 숨겨 두진 않았을까 눈을 부릅뜨고는 한참을 살폈지요. 하지만 꼬부라진 수염은 없었어요.
"정말 꼬부라진 수염이 없어요."
토오의 말에 토끼남매는 조금 안심했어요.
"그래. 절대로! 나는 너희를 잡아먹지 않아. 외로워서 온 것뿐이야. 너희들과 친해지고 싶어. 같이 놀고,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지."
먹보 호랑이는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떴지요. 눈이 시려서 눈 밑에 눈물이 고이도록 말이에요. 토끼들은 먹보 호랑이가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는 줄 알고 마음이 아팠어요.
"저렇게 울면서 말을 할 정도면 얼마나 외로웠겠어.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놀아볼까?"

"맞아. 눈물이 날 정도로 심심했던 거야."

"그래. 호랑이와 함께 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이제 수염이 꼬부라지지도 않잖아."
토끼남매는 먹보 호랑이를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지요.
요리를 잘 하는 토일이는 호랑이에게 줄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어요. 집 앞에서 잡초를 뜯고 특별히 꽃잎도 넣어 예쁘고 맛좋은 꽃잡초부침개를 만들었지요.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서 토끼리에 가득 찼어요.
집 꾸미기를 잘 하는 토이는 집을 꾸미는 마음으로 호랑이의 헤어스타일을 정리해 주었어요. 앞머리를 잘 빗어서 예쁜 꽃핀을 꽂아 주었지요.
옷을 잘 만드는 토삼이는 일단 호랑이의 몸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커다란 풀잎을 엮어서 호랑이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정확히 토끼들의 옷보다 열아홉 배나 커다란 옷을 만들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요. 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지요.
청소를 잘 하는 토사는 세숫대야에 물을 퍼서 먹보 호랑이의 얼굴을 닦아주었어요. 특히 수염은 한 가닥 한 가닥 신경 써서 닦아 주었지요. 귓속에 후후, 바람을 불기도 했어요.
토끼남매와 노는 것은 먹보 호랑이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작은 토끼들이 몸 구석구석을 만지면 너무 간지러워 자꾸 몸을 베베 꼬게 되었지요. 토끼들이 코를 닦아주면 간지러워서 자꾸만 재채기가 났어요. 꽃잡초부침개는 정말로 맛이 없었지요. 고기라면 모를까 풀만 있는 요리는 요리라고 할 수 없어요. 먹보 호랑이는 간지러워도 꾹 참고 재채기가 나와도 꾹 참았지요. 토끼남매를 모두 잡아먹을 순간을 기다리며 말이에요.
하지만 쉽게 토끼들을 잡아먹을 기회는 오지 않았어요. 토끼들이 어찌나 빠른지 한 자리에 다섯 마리의 토끼들을 모두 모을 수가 없었거든요. 호랑이는 기회를 노리며 토끼들을 등에 태워 연못가에 놀러 가기도 했고, 숨바꼭질도 했어요. 토끼들은 매번 깡충깡충 빠르게 피했고, 아주 작은 공간으로 쏙쏙 숨었지요. 그래서 먹보 호랑이는 토끼들을 모두 한 공간에 모이게 할 작은 꾀를 생각했어요.
"다음 주에 이웃마을의 고슴도치가 생일이래. 그래서 초대를 받았는데 너희들도 함께 갈래? 다리 위에 모여 있으면 내가 모두 데리고 갈게."
토끼들은 모두 기분 좋게 고슴도치의 생일잔치에 가기로 했지요.
약속 당일, 토끼들은 고슴도치가 좋아 할 선물들을 만드느라 약속시간에 늦어 정신없이 다리 위로 갔어요. 다리 위에서는 이미 먹보 호랑이가 토끼남매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호랑이는 이제 정말로 다섯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도 모르게 입이 씰룩씰룩 움직이고, 웃음이 나왔지요. 그때였어요. 마지막으로 뛰어온 토오가 먹보 호랑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지요. 그러고는 토끼남매에게 소곤소곤 속삭였어요.
"이상해요. 호랑이의 짧게 자란 수염이 꼬부라졌어요. 우릴 잡아먹으려고 속인 거예요!"
토오는 재빠르게 고슴도치에게 선물로 주려던 선인장을 먹보 호랑이의 이마에 던졌어요.
"호랑이가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속였어요!"
호랑이는 토끼들을 꿀꺽, 삼킬 생각에 침을 흘리고 있다가 선인장을 맞고 말았지요.
"아악!"
호랑이가 이마를 붙잡고 괴로워 할 때, 토끼들은 화가 나서 고슴도치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선물들을 모두 호랑이에게 사용했어요. 토사는 비누거품을 호랑이의 눈에 비벼주었지요. 토삼이는 선물로 준비했던 가시로 이루어진 공을 호랑이의 발바닥 밑에 넣어주었어요. 먹보 호랑이는 눈과 발바닥을 붙잡고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지요. 마지막으로 토일이는 준비해온 케이크를 꺼냈고, 토이는 촛불을 꺼내 불을 붙였어요. 그러고는 괘씸한 호랑이의 수염에 가져다 대였지요. 먹보 호랑이의 모든 수염은 불에 그슬려 모두 꼬부라지고 말았어요. 토끼남매는 아파하는 호랑이를 버려두곤 모두 집으로 돌아왔지요. 절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시는 어떤 호랑이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요.
먹보 호랑이 수염의 비밀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어요. 불에 그슬려 다 꼬부라진 수염 때문에 어떤 동물도 호랑이의 옆에 다가가지 않았지요. 그래서 먹보 호랑이는 혼자 맛있으면 꿀떡리 마을로 돌아갔어요. 그 이후로 다시는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꿀떡리에서 나올 수 없었지요. 그때부터 먹보 호랑이를 본 동물은 아무도 없어요. 꿀떡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말로는 수염이 꼬부라진 호랑이 한 마리가 꽃잡초부침개를 부쳐 먹는다는데, 뭐 이건 어디까지나 소문이니까요.
삽화2
박주혜_동화작가. 1988년생동화 『오늘은 최고의 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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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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