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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만난 사람

차 한 잔의 여유, 그리고 차이의 향유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대표 정승호

8월 차 한 잔의 여유, 그리고 차이의 향유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대표 정승호
어느새 무더운 여름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문득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을 떠올립니다. 피톤치드 향 가득한 숲길.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온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하늘하늘 이파리들 사이로 눈부신 여름 햇살이 부서집니다. 채 떠나지 못한 아침 이슬은 흩어지는 햇살을 담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에 청량함이 스며듭니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싱그럽지 못하다는 것은 함정입니다. 여름휴가는 이미 끝나버렸고, 오늘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일들은 턱밑을 옥죕니다.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데 자꾸만 잊게 되는 일, 바로 차 한 잔의 여유를 갖는 일입니다. 정승호 대표의 차 사랑도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나름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만나 회의를 이어가던 삶. 그의 손에는 언제나 커피가 들려 있었습니다.
차, 그 은은한 정취 속에 담긴 동서양의 교류 · 차 문화 발전의 계기 - 차와 경제성장 간의 밀접한 관계, 차 문화 발전
정승호 : 커피라는 음료의 특징이 그래요. 좀 ‘액티브’합니다. 말하자면 향을 뿜어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요. 시쳇말로 하자면 좀 튀는 거죠. 커피를 내려 보세요. 방 안에 커피 향이 가득해지죠. 남보다 튀어야 하고,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현대인의 삶에 잘 어울리는 상징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차는 좀 달라요. 향을 뿜어내며 튀는 차도 있지만, 대부분은 은은하게 자신을 감춥니다. 은자(隱者)의 삶처럼 말이죠.
인생을 바꾸는 사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정 대표도 우연한 만남을 통해 차와 만나게 됩니다. 한 회의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지 못해 차를 마셨으면 하는 분을 만나게 된 겁니다. 사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분이 적지는 않습니다. 커피가 몸에 받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기호에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 만남을 계기로 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스케줄로 인해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차에 대해 관심을 가질만한 준비가 이미 충분했던 셈입니다.
정승호 : 사실 커피는 경제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말씀 드린 것처럼 커피의 기질적 특성이 굉장히 역동적이거든요. 경제성장과 비례해 커피 시장도 성장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죠. 1990년대 들어 호황이 이어지며 서서히 커피 시장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원두커피가 유행하며 커지기 시작한 커피 시장은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확대됐어요. 일명 ‘별다방’이니 ‘콩다방’이니 하는 커피 전문점들이 생기면서 그야말로 시장이 폭발한 거죠. 재미있는 건 성장에는 반드시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성장이 둔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차는 주목 받기 시작합니다.
커피 하면 마치 고정관념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 마시는 ‘모닝커피’, 한때 한 손에 진한 아메리카노를, 다른 손에는 도넛을 든 뉴요커의 출근 풍경이 활기찬 도시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뉴욕의 월가가 끝 모를 성세를 구가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할까요. 달이 차면 이내 기울 듯이 곧 경제위기가 찾아오고, 사는 게 점점 각박해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치열해진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삶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합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미친 듯이 살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죠.
정승호 : 차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줍니다. 일본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아요. 경제 거품이 꺼지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들어설 무렵에 차 문화가 다시 떠올랐거든요. 최근 중국 내 커피 바람이 무척 거세죠. 전 세계 커피를 빨아들이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니까요. 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재미있는 건 중국이 바로 차의 종주국이라는 것이죠.
문득 커피와 차 문화의 지역적 차이가 궁금해집니다. 흔히 차는 동양의 문화, 커피는 서양의 문화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정승호 : 차를 동양의 문화라고 단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고정관념인 것 같아요. 물론 차 문화가 동양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맞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차가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건 서구 문화의 영향이 크죠. 특히 중국과 영국의 교역이 시발점이 됐는데요. 서양인들이 ‘티 하우스(tea house)’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현대적인 차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차야말로 동서양의 교류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아닌 게 아니라 차라고 하면 으레 산사의 고즈넉한 자태와 ‘다도(茶道)’라고 하는 격식을 떠올리게 됩니다. 따라서 차를 즐기는 것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고 자연스레 여기게 됩니다. 정 대표와 대화하다 보니 문득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것과 이를 발전시키는 것은 또 다른 개념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승호 : 영국의 역사를 찻잔의 역사로 풀어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차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찻잔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그들이 찻잔을 뭐라 부르냐 하면 바로 ‘차이나웨어(chinaware)’라고 합니다. 동양의 이국적인 문화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화해 발전시킨 것인데요. 이 점은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가 하는 점에 대해 말이죠.
그렇다면 서양인들에게 차는 어떤 이미지로 여겨질까요.
정승호 : 서양 사람들은 차에 동양의 신비주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적 삶에 대한 동경 또한 섞여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한때 ‘젠(zen) 스타일’이라고 해서 동양적 문화에 대한 동경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차도 이에 속하는 거죠. 앞서 커피와 차를 비교할 때 이야기한 것처럼 서구적 삶이 정점에 달했을 때, 대안으로 차에 눈을 돌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서양인들은 차를 편하게 마시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한 거죠. 차를 각 특성에 맞게 표준화시킴으로써 접하기 쉽고 즐기기도 편하게 만든 겁니다. 도심 속에 들어와 널리 자리 잡은 티 하우스 문화가 그 상징인 셈이죠.
점잖은 쾌락주의의 행복 · 차가 주는 진정한 마음의 평정- 억제나 절제가 아닌 마음의 평정을 얻는 다는 뜻의 ‘아타락시아’
차를 매개로 동서양의 문화가 만났다는 그의 말을 듣다보니 자연스레 헬레니즘 시대의 현인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알렉산더가 거대한 제국을 만든 뒤 탄생한 문화가 바로 헬레니즘입니다. 말 그대로 동서양이 최초로 만나 꽃 피운 문화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문화적으로 융성하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들이었으니 도대체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 시대의 현인 중 한 명인 에피쿠로스는 흔히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쾌락이라는 말이 우리말에서는 좀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표현이어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강조한 행복은 ‘아타락시아(ataraxia)’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욕망이 있지만 욕망을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욕망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본 것입니다. 욕망에도 물론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건강한 욕망도 있지만, 자칫 절제를 잃으면 탐욕으로 변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 탐욕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이 끝없는 갈증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정승호 :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죠. 보기 좋은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쉴 새 없이 일했어요. 매일 새로운 프로젝트로 바빴죠. 나름 성취가 있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삶이 어느 순간부터 항상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숨 가쁘게 달리다 보니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탈진해 버린 셈이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었으니까요. 이런 생활이 차를 알게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한동안 성공한 삶을 살자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여전히 예전 습관처럼 늘 초조해 하고,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차를 공부하고 즐기면서부터 여유가 많이 생겼죠. 확실히 차를 마시는 시간에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에피쿠로스가 강조한 것은 쾌락 그 자체가 아니라 쾌락의 역설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즐거운 상태를 쾌락이라고 한다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 당연한 일이고 권할 만한 일입니다. 중요한 점은 쾌락에도 종류가 있으며 질적으로 다른 쾌락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가령 관능적이고 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결국엔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끊임없이 더 큰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평정을 얻는 일을 최고의 쾌락이자 진정한 행복으로 본 것입니다. 차를 즐기는 행위에 담긴 본질이 바로 이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참 점잖아 보이는 행복입니다.
정승호 : 재미있는 건 억제나 절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차를 마시다 보니 제 속에 일어난 욕망을 억제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더 이상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제로 학생들에게 차를 오랫동안 마시게 했더니 성격이 차분해졌다는 실험 사례도 있거든요. 차에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거죠.
차가 우리의 탐욕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답합니다. 문득 질문한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금욕이 아니라 쾌락인데 말입니다. 계속해서 욕망이 일어나는데 그 욕망을 계속 억제한다면 그 또한 고통일 것이며, 아타락시아에 도달하는 길이 아닐 것입니다. 비록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은 스님의 마음만큼은 아니겠지만, 세속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이 참으로 부러워집니다.
차를 마시면서 제 속에 일어난 욕망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어느 새 그런 욕망들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소소한 사치와 차이의 향유 ·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차 -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소통의 차 문화
이야기를 나누며 대접받은 백모단의 차향이 은은하기 그지없습니다.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의 분위기도 자연스레 차분해 집니다. 하지만 이런 은은함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물과 다름 없지 싶습니다. 차를 즐기는 것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지 묻습니다.
정승호 :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인 것 같아요. 수백 가지가 넘는 다양한 차들이 있거든요. 향이 좋은 차, 맛이 독특한 차, 정말 다양해요. 또한 차에 대한 취향도 사람마다 다 다르죠. 차를 즐기는 일은 이처럼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좋다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개인의 취향이 다 다르거든요. 차를 잘 아는 ‘티 소믈리에(tea sommelier)’들이 차를 권할 때도 상대방의 취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그에 더해 상황에 맞게, 또 상대방의 몸 상태나 심경에 맞게 차를 권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때는 차를 즐기는 것이 곧 차이를 즐기는 일처럼 여겨져요. 이 차는 이런 향이 나는구나, 이 차는 저런 맛이 나는구나 하는 거죠
차이를 존중하는 것은 이 시대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다시 말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입니다.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차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행복에 표준이 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삶이라는 게 늘 획일화된 잣대를 들이대기 마련입니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듯이 사람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은 그래서 나에게, 혹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일 겁니다.
정승호 : 영국에서 차가 유행하게 된 건 일을 하다 쉬는 시간에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말 그대로 ‘티 브레이크(tea break)’인 거죠. 특히 초기 산업 혁명기에 공장 노동자들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주독을 풀기 위해 회사에서도 차를 권했죠. 건강을 위해 술보다는 차를 마시자 뭐 그런 식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정을 얻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종류의 향과 맛을 품은 차를 즐겨보는 일은 어쩌면 사치일지 모릅니다. 그만큼 짬을 내야 하고, 또 지갑을 열어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열심히 산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아주 소소한 사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나 주머니 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찻잔 바닥에 남아 있는 백모단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면서 티 마스터에게 개인적인 ‘꿀팁’ 하나를 구해봅니다. 속이 상하거나 울화가 치밀 때 어떤 차를 마시면 좋은지 물으니 ‘울화가 치밀거나 맘이 편치 않을 땐 레몬 버베나가 좋다’고 합니다. 순간, 집에 가면 안사람에게 꼭 레몬 버베나를 권하리라 다짐합니다.
정승호 : 차를 즐기는 일이 개인의 취향을 찾아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차만큼 만남과 소통에 좋은 역할을 매개체도 없죠. 좋은 만남에서 좋은 차 한 잔을 나누는 것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필수적인 문화입니다. 차 한 잔 하며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바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겠죠.
현대인들은 만남과 소통 속에서 묘한 역설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도 자꾸만 외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만남을 만들지만 외로움이 가시지는 않습니다. 페이스북이나 밴드와 같은 사람들을 엮어주는 스마트폰 앱도 무수히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수는 크게 늘었지만 공허함도 커지는 겁니다. 진짜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있는 만남의 수가 오히려 줄어든 것입니다.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요.

진짜 소통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의 방증일 수 있습니다. 대화가 되려면 상대방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껍데기가 아닌 진짜 자신을 돌아보고,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할 때, 그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을 찾아갈 때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아타락시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타락시아(ataraxia)의 상태에 도달하기
에피쿠로스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전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 망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도 본래는 행운의 선물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에도 있습니다. 숨 가쁜 일상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 볼 차 한 잔의 여유. 집에 가서 꼭 이렇게 말해야겠습니다.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대표 정승호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대표
박승억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사진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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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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