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만난 사람

지구의 종말과 사과나무, 그리고 미생의 윤태호

5월의 지구의 종말과 사과나무, 그리고 미생의 윤태호
[미생]의 작가 윤태호님을 만나러 갑니다. 새로운 만남이란 늘 설레는 일이지만 화창한 5월의 봄 날, 게다가 한껏 여유로운 금요일의 오후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당을 넘고 강남을 건너 서울의 남쪽에 있는 그 분의 작업실로 갑니다.

서울의 서쪽에 사는 저로서는 돌아올 여정이 만만치 않지만 신이 나서 갑니다. 요즘 말 그대로, ‘헐, 대박’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습니다. 왜곡 없이 보여주는 우리나라 영상기술과 전자제품의 탁월한 재현 능력에 새삼스레 자부심이 생겨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나 뵌 분 같지 않습니다. 사람을 직관해 버릴 것만 같은 깊은 눈매를 제외하면 그저 이웃집에 계시는 그 분들 같아 보입니다. 신께서는 확실히 공평하신 모양입니다. 의미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시공간을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작가이지만 그 외모마저 탁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하고 눈높이가 비슷하니 흔히 말하는 축복받은 디자인은 아닙니다. 윤태호 작가도 저에게 선하게 생기셨다고 덕담을 내놓습니다. 피장파장인가 봅니다. 어느 방송 인터뷰가 너무 길어져서 중간에 밥을 먹고 계속 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밥을 드시지 않았답니다.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합니다. 당신께서 옷태를 중시하기 때문이랍니다. 만화가가 아니라 인간 윤태호의 유머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적당히 기분 좋게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배가 부르면 긴장감을 잃어버리거든요.”
그저 즐거운 일만은 아니겠죠! ·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두려움 - 만화작가로서의 즐거움과 슬럼프
캐릭터 완벽주의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밥을 먹지 않은 건 진지함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경험에서 나온 소리였습니다. 윤태호라는 이름 석자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야후]라는 작품을 끝내면서 작가로서의 위기가 왔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작품이 마무리되어 갈 때 첫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때가 너무 행복해서 작품을 하기가 어려웠다는 겁니다.
윤태호 : 예. [야후]를 끝내고 슬럼프가 왔었습니다. [야후]는 제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장편은 처음이었죠. 신혼여행 갈 때 빼고는 5년 동안 연재를 거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 일을 하면서 큰일을 완성했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죠. 물론 작품을 해 나가는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발전도 경험했죠.”
[야후]는 198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기묘하게 일그러진 시공간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 부조리의 시기를 살아가야 했던 작품의 주인공은 결국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첫 아이의 탄생이 가져온 행복과 작품 속 주인공이 견뎌내야 했던 그 왜곡된 시공간 속의 심리가 충돌할 때는 확실히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조울증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윤태호 : “하지만 그 작업의 막바지에서, 그러니까 주인공이 테러리스트가 되려고 할 때, 제 아이가 태어나면서 주인공이 싫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겁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니까 그 마음으로 주인공을 보면 ‘네가 뭔데 테러를 해’, 뭐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고, 무작정 세상에 분노를 터뜨리는 그 찌질한 감수성이 너무나 싫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작품이나 작업을 할 때 개인적인 상황이나 이런 것 때문에 작품의 방향이 흔들려서는 안 되겠다 하는 반성도 하게 만든 작품이었죠. 결국 주인공이 테러를 하고 다녀야 하는데 다 해프닝으로 끝나게끔 만들었죠. 그러니까 어떤 점에서는 제 성대로 다 못한 느낌이랄까 그런 게 좀 남았어요.”
윤태호 작가는 캐릭터를 창조하기는 하지만 그 캐릭터 스스로가 성장하도록 합니다. 비록 시작할 때는 설계되어 있는 시공간이지만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주인공들이 스스로 의미를 찾아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를 독립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윤태호 : “작품의 마지막에는 두 주인공들이 모두 죽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으면서도 이 둘 사이에는 진지하게 긴 대화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결국 비행기에서 한강으로 떨어져 내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서로 ‘잘 가라!’ 이렇게 인사를 해요. <모래시계>에서 송지나 작가가 ‘나 떨고 있니?’라는 대사를 7일 동안 고민했던 것처럼, 절대 티가 안 나면서도, 가장 울림이 큰 쉬운 단어, 그런 말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했죠. 그 상황에서 장황한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죽기도 바쁜데 말이죠. 그런데, ‘잘 가라!’, 그래 그 말이면 충분하겠다 싶었죠. 그런데 그 때가 제 아이가 태어난 지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그래서 더 많이 뭉클했던 것 같아요. 5년 동안 끌어왔던, 제가 만든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 거니까, 그 바람에 더 슬럼프가 왔죠.”
하나의 시공간을 만들어 내는 창조자로서 그 하나하나 캐릭터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일에 새삼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진지함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썩 괜찮은 경험일 것 같습니다. 내 손으로 뭔가를 생기게 했다가 소멸하게 하는 경험이.
윤태호 : “재밌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지나고 나서 즐거웠지. 막상 작업을 할 때는 너무 힘들죠. 사람들이 일을 즐기면서 하는 거야라고 말하곤 하지만 저는 믿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즐거운 거지, 일을 할 당시에는 너무너무 힘들죠. 제일 큰 어려움은 캐릭터를 잡고 나서 생각해 볼 때 입니다. 나보다 더한 통찰력을 가지고 내 작품을 보는 독자를 생각하게 돼요. 과연 그 사람도 만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생각이요. 이런 문제는 사실 두려운 문제거든요. 특히 [미생]을 할 때는 제가 회사생활 경험이 없다보니 더 조심스러웠어요. 그런 분들이 봤을 때 작가가 얼마나 하찮은 트릭을 쓰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되잖아요. 당연히 걱정이 되는 거죠. 그런 지점들이 사실은 너무나 고통스럽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그 작업을 완수했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작품을 하면서 그저 흥미롭고 즐겁게 일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결국은 지금의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 - 캐릭터에 작가의 느낌을 투사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윤태호라는 이름을 기억나게 하는 작품들 중에는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야후]가 그렇고, 비정규직의 애환, 아니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였던 [미생]이 그렇고, [인천상륙작전]도 그랬습니다. [이끼]는 좀 예외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는 일은 그저 마음먹은 대로 휘적휘적 해 버리고 마는 일들처럼 쉬운 일은 아닐 듯합니다. 헌데 그의 대답이 참 솔직합니다. 변화구보다는 직구를 선호하는 투수 같아 보입니다. 강속구 투수인지, 아니면 구석구석 정확하게 찌르는 컨트롤 아티스트인지는 좀 불분명합니다만.
윤태호 : “옛날에는 저한테 그런 사회 참여 의식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계속 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야후] 같은 작품에서는 제 처지에 대한 울화나 분노, 제가 자라면서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겪어야 했던 박탈의 경험을 사회적인 문제에 많이 투사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 모두가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사회성은 당연히 들어오는 것이겠죠. 작품을 할 때 캐릭터에게 제가 느끼고 있는 뭔가를 투사하니까 캐릭터와 함께 변해왔던 것 같아요. 절대 뭘 의도하거나 뭔가 특별한 시선이나 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저는 항상 저한테 집중했고, 캐릭터에 집중을 했는데 단지 작품에 끌어온 일들이나 사건들이 현대 또는 근대사 쪽에서 끌어왔던 것뿐이죠.”
때로는 이러한 진솔한 담백함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사회성은 당연히 들어오는 것’이라며 무심히 건네는 말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내려는 그릇의 크기를 짐작케 합니다. 눈높이는 저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살아온 세월이 그에게 어떤 무게인지도 느끼게 합니다. 사실 우리 중 태반은 내가 살아온 역사를 곱씹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역사가 온통 휘발성인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대개 지금의 내 현실이 수수께끼입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아온 역사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인데도 말입니다. 해방 후로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기를 다룬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작품을 하게 된 까닭이 단순한 과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왜 이런 생각과 갈등들을 갖고 사는 거지 하면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는 겁니다. 투박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 가는데 사뭇 더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들이 같은 주제를 반복한 적이 없습니다. 쉬운 길을 멀리 돌아가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윤태호 : “기본적으로 요즘이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옛날처럼 소재만 달라지고, 패턴은 거의 비슷한... 그런 것이 저한테는 맞지 않는다고 해야겠죠. 소재가 비슷할지라도 이야기의 맥락이 달라지거나, 어쨌든 뭔가 달라져야 해요. 그것이 좋은 방향이건 뭐건 간에 한 발은 좀 나간 사람이 되고 싶은 거고, 그게 제가 만화를 하면서 행복한 이유 같은 거죠. 사실 창작한다는 이 직업을 저는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요. 비록 그 과정이 힘들기는 하죠. 과로를 해야 하고, 항상 마감에 시달리면서 살 수 밖에 없지만 창작이 가져오는 지적 쾌감이나 성취감이 저는 굉장히 좋아요. 새로운 작업을 기획할 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두고 고민하는데, 그런 순간에는 어떤 세계의 질서 하나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게 너무나 좋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익숙한 질서 하나를 가져와서 계속 반복시킨다면, 최초의 그 즐거움을 없애는 것 같은 거예요. 그것도 제 스스로 말이죠.”
이야기의 아귀가 맞아 떨어집니다. 당신은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중인가 봅니다.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나, 작품 속 캐릭터에게 스스로의 생명력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여전히 성장 중인가 봅니다. 이제는 느긋하게 즐길 법도 한데 여전히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여전히 완생이 아닌 미생입니다. 하기야 산다는 것 자체가 미생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주 짓궂게도 제가 물었습니다. 성공한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없느냐고 말입니다.
“창작이 가져오는 지적 쾌감이나 성취감이 저는 굉장히 좋아요.”
각자에게 자신의 몫이 있을 겁니다 · 지향하는 바를 하다. - 좋은 매력을 갖고 있는 작품은 결국 통한다.
윤태호 : “저는 남의 인생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건 걱정하지 않건, 그 시대를 잡아먹는 젊은 작가들은 나올 거고, 만약 지금의 작가들이 부족하다면 그 자리를 채울 작가들이 누군가는 나오겠죠. 그래서 저보다 나이가 어린 작가들한테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거리는 없는 거 같아요. 이 바닥에서 제가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그건 제가 하면 되는 거구요.”
어, 따뜻한 양반인 줄 알았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좀 냉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윤태호 :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시장의 건강에 신경 쓰는 것뿐입니다. 하루에 독자들이 만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대개 유명 작가들의 것들을 보죠. 당연한 겁니다. 그 분들도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 아닌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정말 좋은 작품인데 관심을 받지 못할 수가 있어요.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는, 그래서 <에이코믹스>라는 웹진을 좋은 분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역할을 길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느끼고 찾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봐요. 본인이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선배들이 말을 해 봐야 그거는 꼰대가 되는 거죠. 제가 잘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웅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괜히 선배랍시고 후배들한테 설레발쳤던 제 자신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이 양반이 누군가를 배려하는 방식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코믹스>는 만화 없는 만화 웹진입니다. 좋은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맡겨진 몫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일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인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자연스럽게 모방하려 한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제가 잘 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웅변이 되겠죠’라는 말이 저는 꼭 그리 들립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참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 윤태호의 시선이 말입니다.
윤태호 : “창작물은 최초의 형질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는 미디어가 무엇이든 좋은 매력을 갖고 있는 작품은 결국은 소비가 되고 통할 거라고 믿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출판 만화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런지는 모르겠지만 만화가 꼭 책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거 같아요. 출판만화 시장이 망한다고 해서 만화가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걱정보다는 차라리 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출판만화 시장이 위축되고 있어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에 대한 윤태호 작가의 대답이었습니다. 당신이 아날로그 세대이기 때문에 같이 맞장구를 쳐 줄 거라는 저의 보잘 것 없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과거에 매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지혜, 오늘이 바로 그 날처럼 ·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 가장으로서 일을 사랑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기억나게 하는 것은 내일 지구가 망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입니다. 정해진 운명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것,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스피노자는 온 우주가 필연의 사슬로 매여 있어서 모든 일은 다 결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스피노자가 옳다면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게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구태여 오늘을 열심히 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묵묵히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겁니다. 실제로도 스피노자는 묵묵히 안경알을 갈아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면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사람입니다. 작가 윤태호에게서 왠지 스피노자식의 ‘운명 앞에 담담하기’ 같은 태도가 느껴집니다. 운명이라는 현실 앞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그 치열함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윤태호 작가는 별자리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윤태호 작가는 운명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가진 분인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별자리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색다른 재미일 듯합니다. 그런 당신이 가족에게는 어떨까 싶습니다. 마침 어버이날이었으니까요.
윤태호 : “어제 밤새고 아직도 집에 못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렇게 바쁜 일정을 만든 공범들 중에 한 명이 접니다. 그래서 몹시 겸연쩍게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떠시냐고 물었습니다. 참 뻔뻔한 질문이었습니다.
윤태호 : “작품을 하느냐고 며칠을 밤새고 집에 들어가면 바로 뻗어요. 그럼 아들이 와서 ‘아버지, 그러시면 안돼요. 발은 씻으셔야죠! 같이 웃는 거죠. 뭐.”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그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랍니다. 중2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인지 아는 저는 그런 유머러스한 아들을 둔 작가님이 부럽습니다. 물론 제 아들놈은 중2가 아닙니다. 참 다행입니다.
윤태호 : “저는 생활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생활을 위해서 만화를 하는 거니까요. 제가 예술 지상주의자는 아니거든요. 저는 제 인생이 제일 중요한데, 그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제가 갖고 있는 옵션이 너무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풍부한 체험을 해 본 사람도 아니고, 남들과 그룹을 지어서 활동을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고 좋아하는데 가정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 가정을 어떻게 유지를 해야 하나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죠. 그렇다면 제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 그림 그리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별로 없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무식하게 일을 하는 거죠. 게다가 나이가 든 상태에서 뭔가 성취가 있다 보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작품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막 벌려 놓은 일은 너무나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고, 이렇게 사랑을 받은 것만큼 되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일을 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가족과의 생활이 먼저라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한구석으로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특히나 드라마 나오고 나서, 더구나 [미생] 200만부 이슈까지 터지면서 찾는 곳도 많아졌고, 그래서 한 편으로는 급격하게 소비된다는 느낌이 들 때마저 있어요. 그런데 또 어떤 면에서는 이 상황을 제어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하고, 참 역설적입니다.”
생활이 우선이라는 그의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임감 말입니다. 함께 있던 작가가 [미생]의 전설적인 대사를 묻습니다. 장그래가 협력 업체 직원을 응원하고 격려하자 오과장이 ‘어디서 가장한테 동정질이야’라고 말한 대사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장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그 대사를 묻습니다. 질문이 멋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대사를 발견해 낸 윤태호 작가의 대답은 그저 담백하기만 합니다.
윤태호 : "사실 우리 때는 그런 말을 종종 들었어요. ‘저 사람 저래 뵈도 애 아빠야. 가장이라고!’ 그런 말들을 많이 했죠."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데 문득 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윤태호 작가가 작품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대사를 찾았을 때랍니다. 그는 대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멋진 말입니다. 자신이 생명을 준 캐릭터이지만 대사를 그냥 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 캐릭터가 작품 안에서 성장하면서 중요한 고비 때마다 캐릭터 스스로 대사를 찾아낸다는 겁니다. 그런 대사가 발견되어지지 않을 때의 괴로움, 그런 고뇌 끝에 불현 듯 발견되었을 때의 희열, 옆에 있는 저도 그런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고통과 희열이 서로 이웃이라는 말에는 그런 뜻도 있을 듯합니다. 윤태호 작가는 그런 때 자신이 달뜬다고 말합니다. 그는 정말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 같아 보입니다.
스피노자처럼
지구종말 앞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
흔히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고들 합니다. 그런 말을 힘주어 말하는 사람은 미지의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즐기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늘 익숙한, 그저 그런 날의 반복이 아니라 새롭고 미지의 것이라면 인생은 확실히 도전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일을 오늘의 품에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오늘 하루가 치열하고 고된 날이었더라도 말입니다. 또 설령 산다는 게 여의치 않아서 그저 그런 날이 계속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스피노자처럼 지구의 종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 혹은 작가 윤태호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감정으로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내게 던져진 삶에 대해 도전하는 치열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밋밋한 오늘에게, 또 밋밋할지도 모르는 내일을 향해 ‘도전!’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만화작가 윤태호, 1969년 출생, 대표작 : <야후>, <이끼>, <미생>, <인천상륙작전>, <파인> 등
구성
박승억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사진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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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5-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