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만난 사람

광화문, 그리고 건축가 유걸

4월의 주제 고아화문 건축가 유걸과 광화문을 이야기하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문득 소리 내어 읽으면 금방 노래가 되어 버리는 <광화문연가>에는 저마다 회상하고픈 사연들이 묻혀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광화문은 그래서 소중한 곳이다. 언제든 꺼내어 회상할 사연이 담긴, 빛바랜 일기장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연조차 없이 무작정 달려온 팍팍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사람에게 있어 광화문은 여전히 특별한 공간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함께했던 기억들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시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모든 공간은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비어있는 허공에는 역사가 없지만 역사와 삶이 없는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에는 건물이 서 있고 광장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하나의 의미 있는 공간이 생겨날 때, 그 의미들을 붙들어 매 놓을 공간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이 바로 건축이다. 건축은 공간에 관한 기하학적인 시詩다. 마치 시가 상징적 시어詩語들로 아름다운 의미 공간을 만들어 내듯이 건축은 의미를 가진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예술이고 철학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또 광화문에서 뻗어 나온 길가에 세워진 서울시청건물의 설계자로서 건축가 유걸에게 광화문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과 서울 사이 · 우리에게 광화문이란? - 한국 건축에서의 광화문의 의미와 광화문이 안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
Q : 광화문은 거리이기도 하고, 광장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합니다. 광화문을 가지고 이야기의 소재로 삼자면 어떤 이야기부터 해 볼 수 있을까요?
유걸 : 우리에게 익숙한 광화문은 우선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를 생각할 수 있구요, 또 하나는 문(門)으로서의 광화문이죠. 경복궁을 지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주거니 건축이니 도시나 환경 같은 것들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장소만 있었어요. 그래서 동서남북 문이 있는 겁니다. 말하자면 광화문의 문은 경복궁의 입구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입구가 아니라 종착점처럼 만든 게 서울을 근대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일본인들입니다. 중앙청(조선총독부)을 세우면서 종착점으로서의 광화문을 만든 거죠. 그러면서 광화문 네거리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굉장히 서구적인 근대 도시의 발상이에요. 지금은 중앙청을 헐어버렸지만 광화문과 광화문 네거리는 남아 있죠. 저는 바로 이게 한국 사람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레마라고 봅니다.
Q : 딜레마라면 뭔가 곤란한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무슨 말씀이신지?
유걸 : 한 때 저는 서울을 코스모폴리탄의 도시로 만들어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광화문은 문(門)으로서의 의미보다 네거리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광화문 네거리가 서울의 중심이 되는 것은 타당성이 있거든요. 그런데 광화문 네거리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면, 이곳을 근대 도시로 개편하려 했던 일본인들과 중앙청(조선총독부)을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역사니까요. 광화문 네거리는 일본인들이 만든 것이기도 한 거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광2문을 한국의 표상처럼 생각하잖아요. 그런 경우라면 광화문은 네거리가 아니라 문(門)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그래서 일종의 딜레마인 셈이죠. 광화문을 한국의 중심으로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코스모폴리스로서 서울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셈이죠. 한국적인 것과 서울이라는 것은 사뭇 다르니까요.
Q : 그렇다면 광화문은 완료형의 의미 공간이 아니라 진화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자연스럽게 광화문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걸 : 사실 광화문은 굉장히 애매한 공간입니다. 한국의 근대사가 갖고 있는 모호성과 비슷한 걸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광화문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명확한 선택을 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만들어진 것이 서울이고, 그것이 광화문에서 아주 잘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우선은 우리가 원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선택을 명확하게 하는 게 사실은 광화문뿐만 아니라 도시 건축 환경을 굉장히 명료하게 해주거든요.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쟁 후의 서울은 자동차 중심으로 변해 왔고, 그 중심엔 광화문이 있다는 겁니다. 도시 한복판인데도 광화문 거리에선 굉장히 빠르게 달릴 수 있어요. 그렇게 자동차 중심이었던 거리를 걷기 좋은 거리로 만들려고 이제 시작을 했단 말이죠. 이게 제대로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경부 고속도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자동차 중심의 사회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인도에 차를 세우는 문화에 대해서도 익숙해져버렸습니다. 이걸 바꾸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큰일이에요. 단순히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 더 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광화문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광화문 문(門)과 광화문 네거리 · 모두 살아나야 한다. - 광화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고민에 대해
Q : 말씀을 듣다보니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가 결국은 미래를 예비하고 준비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의 미래’를 위해서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유걸 : 우선 광화문의 문(門)부터 말하자면, 경복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럼 광화문이 활성화 되고, 그 앞에서 광화문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다닐 수 있겠죠. 그 다음에 광화문이 입체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광화문이라는 공간을 규정해주는 수직 공간이 필요해요. 단순히 높은 건물이 세워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높은 건물과 함께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열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를 보면 앞에 광장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수직적인 움직임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종문화회관 쪽은 아직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요. 넓은 공간이 있는 것만큼 수직적인 활동을 보충함으로써 입체화한다면 더 많은 의미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교보 빌딩이 있는 쪽도 그런 가능성을 만들 수 있겠죠. 그렇게 광화문 네거리를 다시 잘 만들어 가는 것. 그게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아닐까 합니다.
Q : 광화문을 입체적인 공간으로 만들자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근대의 선형적인 합리성에 의지한 세계관에서 탈피하자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그런데 입체적이라는 말과 관련해서 광장에 수직축을 세우는 방식이 고층빌딩 형태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보통 미래건축, 미래 도시 하면 연상되는 마천루 같은?
유걸 : 아니죠. 그건 부동산 업자들이 생각하는 입체성이에요. 부동산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땅이에요. 그래서 건축가들이 땅을 만들 수가 없으니까 빌딩을 올려서 더 넓은 땅을 만든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건물을 높이 올리는 것만이 입체적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그런 생각이 굉장히 나쁘다고 보는데 고층 건물은 아주 불편한 막다른 골목이거든요. 제한된 지면에 넓은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방식이 19세기에는 새로운 시도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그래서 고층건물 짓는 것을 미래를 상징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옛날 습관이고 맞지도 않는 잘못된 해법인 겁니다.
Q : 그럼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입체화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유걸 : 제가 수직축을 말하면서도 고층빌딩을 나쁘게 생각하는 이유는 고층빌딩이라는 것이 땅을 사유화私有化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거든요. 예를 들어 길이라는 게 공공성을 상징하는 것인데, 고층빌딩은 그 길을 사유화해서 가두어 버리는 셈이에요. 말하자면 길이 입체화 되어야 건축이 입체화가 되는 건데, 그저 높은 건물을 세우는 건 입체화가 아니에요. 수직화지. 인사동에 쌈지길이라는 건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 건물이 그 문제를 아주 잘 해결한 거죠. 건물을 단순히 층을 쌓아 올린 게 아니라 길을 따라 올렸죠. 그럴 때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광화문에 그런 게 들어오면 광화문이 훨씬 더 생동감 넘치지 않을까요.
Q : 선생님이 말씀하신 입체화에서 개방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광장이라는 상징이 갖고 있는 개방성이 지금 말씀하신 입체성의 의미와도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럼 아주 자연스럽게 주변의 환경과 건축이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 하는 것이 핵심일 것 같습니다만...
유걸 : 만약 어울린다는 말로 ‘조화’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런 생각에는 위험성이 있어요. 얼핏 생각하면 조화라는 것이 무척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어울린다는 건 획일화로 갈 가능성도 많거든요. 저는 조화보다는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저의 결혼식에 친구가 가져온 글귀가 있습니다. ‘종’하고 ‘북’이 화합을 한다는 뜻으로 ‘종고환영’이라는 글이었어요.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좋은 말이더라구요. 북과 북이 화합하는 게 아니라, 정과 북, 다른 것들 두 개가 화합을 한다는 거죠. 이 때 중요한 건,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주로 익숙하지 않은 것, 불편한 것인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것의 가치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에야 판명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수용할 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용기. 물론 실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을 가지고 선택하는 게 용기잖아요. 최근에는 다들 용기를 너무 잃어버린 것 같아요.
건축가 유걸 사진
생존이 목표 · 새로운 건축이 요구되고 있다. - 생존에서 욕망으로: 합리성의 건축이 다종한 욕망 충족의 건축으로 이행하는 것에 대해
Q :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요즘 우리네 삶으로 이어지게 되네요. 그러고 보니 다짜고짜로 광화문 이야기부터 말씀을 드렸는데, 선생님 근황은 어떠신가요?
유걸 : 제 근황이라고 한다면, 생존이 목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아마 이건 한국의 모든 건축가들이 직면한 상황일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려운 때라는 겁니다. 하지만 단지 경기가 어렵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건설 인더스트리가 바뀌고 있고, 건축을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사실은 계속 바뀌어 왔는데 서서히 진행되어 와서 몰랐던 것이었고, 지금은 그런 변화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건축가들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런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려운 때인 것이 틀림없지만 동시에 기회의 시기라고도 보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이죠.
Q :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유걸 :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현대 건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리주의를 말합니다. 모든 걸 합리적으로 해결한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의 기능이 상당히 중요했어요. 공간에 대한 여러 가지 기능을 분석, 종합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 거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깊이 생각을 해보니까 그 기능이라는 게 고정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라는 건 사람들이 변하는 만큼 그것도 변화하는 것이거든요.
그 때부턴 변화에 대한 대처가 중요해지게 됐습니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해진 거죠. 그런데 이 때의 지속 가능성을 튼튼하고 오래가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해를 했어요. 하지만 예를 들어 20년 된 아파트를 새로 짓는다고 했을 때, 그 아파트를 새로 짓는 이유는 튼튼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앞으로 200년을 더 갈 수 있다고 해도 새로 지어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변화한 생활을 수용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그런 변화에 따라 변해버린 욕망을 수용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봐야하는지가 중요해진 겁니다. 이 문제는 건축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현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계획이에요. 그저 자연의 변화에 따라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미래에 대한 준비를 계획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늘 겪는 일이지만 미래는 계획한 것과는 언제나 다릅니다. 이 문제는 특히 건축에서 심하게 나타나요. 항상 미래를 위해 집을 짓지만 짓고 나서 보면 나 자신이 바뀌어 있고, 또 살고 있는 동안에도 바뀌는 거죠. 이게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저 부동산 업자가 건물을 올리는 것이라 아니라 건축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구현하자면 현실에서는 상당히 비쌉니다. 현대 건축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스 프로덕션을 도입해보려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어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한 거죠. 그러다보니 건축은 이 비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누리게 됐습니다. 자본가들이었죠. 그래서 현대 건축은 자본가들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 겁니다.
이렇게 건축은 점점 비싸지기만 하는데, 사람들의 건축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졌어요. 자본가만 건축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건축가의 서비스를 원하는 시대가 됐어요. 그렇지만 건축가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건축은 아직도 비싸거든요. 그러다보니 건축가들의 세계에선 일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필요한 일은 많지만, 정작 일거리는 없는 거죠.
Q :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마치 온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작품을 자신의 집에 걸어두고 감상할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화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대가를 공정하게 받아야 하는데,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은 돈이 없고,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화가나 그림을 향유하려는 사람이 모두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는 상황, 뭐 그런 느낌이 듭니다. 말씀하신 문제에 대한 대안은 전혀 없는 걸까요?
유걸 : 저는 젊은 건축가들이 많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훈련을 잘 받은 젊은 건축가들이 지금처럼 많은
시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일이 없거든요. 이게 문제에요. 그렇지만 달리 보면 이런 힘든 상황이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런 새로운 문제에 대처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기성 조직에는 없거든요. 여태껏 해오던 관성이 있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는 게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이 없는 젊은 건축가들은 비교적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죠. 어느 방향으로 튀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처한 상황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건축이라는 게 취직을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열린 자의 열린 건축 · 모두 용기를 내야 한다. - 건축가 유걸의 철학과 가치관에 대해
Q :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건 아마 젊은 건축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진화의 원리가 지배하는 생태계의 지혜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구요. 위기에 처하면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하니까요. 그 중에는 틀림없이 돌파구를 찾아내는 시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다양한 시도를 허락하는 개방성일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열린 사회의 열린 건축’이라고 들었습니다.
유걸 : 제가 말하는 열린 공간이라는 건, 불특정 기능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가의 어떤 의도가 강력히 전달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와서 밥을 지어 먹어도 좋고, 공부를 해도 좋고, 그저 놀아도 좋은 그런 공간 말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서 쓸 수 있는, 기능적으로 열린 공간인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때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열려 있으면 열린 공간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설계한 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유걸 선생님, 램프 이거 위험해서 큰일 났습니다.”라고 말이죠.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램프가 있던 그 지그재그 길을 학생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온다는 겁니다. 저는 그 길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보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오면 굉장히 재밌겠더라구요. 그래서 길의 끝에 부딪쳐도 다치지 않게 보수를 좀 했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설계하는 사람이 공간을 직접 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온전히 커버할 수는 없구나! 물론 공간의 기본적인 틀은 모든 게 불편하지 않도록 잘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공간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사용법을 선택할 때 그 공간은 훨씬 많이 열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좋은 거죠. 마찬가지로 광화문도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선 매우 넓으니까, 개인들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훨씬 더 살아있는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Q :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건축이라는 것이 그저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그 의미를 디자인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건축적 가치나 철학에 관해 여쭙고 싶습니다.
유걸 :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자유입니다. 속박 받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무실도 벽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굉장히 개인주의적이에요. 그러나 이기적인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 세상은 결국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좋아합니다. 도시를 떠나 숲속에서 그리고 혼자서 온전한 독립된 삶을 산 이야기 말입니다. 독립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건 이기적인 태도와는 다릅니다. 집단과 사회적 통념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버리는 무기력한 개인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자유는 독립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니까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독립,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열린 미래를 향해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도전...
20세기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란 너무나 무거운 짐이며 그래서 낡은 습관 뒤에 숨어 버리고 싶은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용기마저 사라지게 한다. 우리 시대의 건축가 유걸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하는 자유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미래는 바로 그 자유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 한 복판에서 마주한 자유가 낡은 관념 뒤로 숨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미래를 향해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도전을 감행하게 하기를...
건축가 유걸 사진
건축가 유걸
1940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여, 1963년 무애 건축연구소에서 시작, 40여 년간 건축 설계만 해왔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동을 해오며 1998년부터 3년 연속 미국 건축사 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 건축가 협회상, 김수근 건축상, 한국 건축가 협회상 등 폭넓은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그는 한국 건축계의 대들보이자 최고참으로서, 현재에도 아이아크의 공동대표를 맡아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서울시 신청사, 상암 DMC 드래곤플라이 사옥, 강변교회, 밀알학교, 인천 트라이볼 등이 있다.
구성
박승억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사진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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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4-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