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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로

알퐁스 도데의 단편들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죽기까지 네 번 국적이 바뀐 알자스인들의 삶 알퐁스 도데의 단편들
알자스로 가는 길
파리에서 알자스로 가는 길, 이번 겨울에는 고속 열차를 타고 가본다.파리에서 프랑스 전국의 중요 도시가 고속철로 연결된 지 오래지만 파리와 알자스 간의 열차는 겨우 지난해에 첫 길을 텄다. 자동차로 국도를 달려 다섯 시간 가야 할 거리를 이 기차는 두 시간 만에 스트라스부르그를 지나 콜마르에 도착해버린다. 이렇게 편리한 기차가 왜 이제서야 생겼을까. 프랑스 인에게 알자스는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프랑스 맨 마지막에 있는 어떤 곳이라는 무의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콜마르 기차역에 내리니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기차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이 두툼한 부츠에 털모자를 쓴 사람들 사이로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나에게 콜마르는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중세풍의 옛 도시, 뜨거운 포도주에서 끓고 있는 오렌지와 계피 냄새가 진동하는, 어느 모퉁이에서든 맛있는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는 귀여운 도시로 남아있다. 알퐁스 도데는 이곳을 배경으로 「콜마르 재판관의 환상」을 썼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콜마르 재판관 돌렝제가 어떻게 신세를 망쳤나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팔걸이 의자에 놓인 둥근 방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알자스가 독일 식민지가 되고 난 뒤에도 그는 베를린에 있는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용감히 재판을 한다.
재판 의자에 놓인 그 부드러운 방석을 털고 일어나느니 차라리 독일인이 되기를 원할 만큼 그 방석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그는 보주 산맥 높은 산 위에 홀로 앉아 있는 꿈을 꾼다.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산허리로 굽이쳐 와 그 앞을 지나쳐가지만 아무도 그에게 아는 척 하지 않는다. 남녀 노소 귀천을 가릴 것 없이 판사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없이 당당하다. 그러나 재판관과 눈이 마주치면 분노와 혐오의 무서운 표정이 되어버린다. 돌렝제는 자신의 가죽 방석에 들러붙은 채 온 알자스 인의 구경거리가 되어 그 수치를 만인이 보도록 산꼭대기에 앉혀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윽고 그는 산골짜기 높은 곳에 혼자 남게 된다. 알자스 전체가 그를 두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 수치심이 너무나 지독해 죽은 뒤 그는 무덤 속에서도 영겁으로 운다는 이야기다.

조국에 대한 배반은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하지만 알자스는 그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 1870년 독일이 파리까지 점령했을 때 프랑스는 독일군이 물러간다는 조건으로 알자스 로렌을 독일에게 넘겨주었다. 이 간단한 결정으로 알자스는 독일이 되었고 그곳의 모든 프랑스 인들은 하루아침에 독일인이 되었다. 곧이어 모든 학교에서는 불어 대신 독일어만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알자스 인들의 슬픔과 분노를 담은 소설이다.
알자스 풍경
불어 분사법 공부를 하지 않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까봐 학교 대신 차라리 들에나 싸돌아다닐까 고민하는 소년 프란츠. 실제로 알자스의 모든 학교에서 행해졌던 마지막 수업 이후 그 교실의 소년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부분의 알자스 인들은 독일인이 되어 그렇게 그대로 살았다. 내가 아는 어떤 가족의 할아버지는 독일어 공부를 아주 잘 해서 훗날 독일어 선생님이 되었다. 그는 자주 조국 프랑스 말을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프랑스는 알자스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독일은 알자스에 점점 많은 자치권과 자유를 주었기에 그렇게 사는 것이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할아버지의 형제와 누이들은 독일인과 결혼해서 알자스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었다. 알자스는 자연스레 독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고 알자스가 다시 프랑스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알자스는 새로운 운명에 처해졌다. 알자스인들은 독일 군복을 입고 프랑스 군인을 상대로, 말 그대로 형제에게 총을 겨누어야 했다. 이 전쟁에서 독일이 패함으로써 알자스는 다시 프랑스가 되고 어제까지 독일인이던 그 또한 프랑스 인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승리를 축하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반쪽의 승리였다. 무엇보다 그는 조국이 알자스를 버렸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배신감과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으로서의 울분 같은 것이었다.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다시 전쟁이 터졌고 알자스는 새로이 독일 땅이 되어 사람들 또한 독일인이 되었다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프랑스 인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죽기 위해 네 번 국적이 바뀐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은 이 할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알자스는 아무리 작을지라도 일정한 규칙을 지니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첫 입구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성당이 있고 그 옆에는 학교가 있고, 그 학교 가까이 동사무소가 있다. 마을이 커지면서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이 세 건물들은 항상 이웃해 있다. 알자스의 이 모든 학교들은 베를린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라는 명령이 내려온 그 날 똑같이 마지막 수업이 있었을 것이다. 열 두 시 정각, 수업의 끝났음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나의 마지막 프랑스 말 공부!’ ‘알자스, 프랑스, 알자스, 프랑스’ 나라를 뺏기고 말까지 빼앗긴 그 날 누군가 이렇게 새겼을지도 모를 학교 벽의 낙서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산 속의 낯선 마을에 들어섰다 생각지도 않았던 성당의 종소리를 듣게 되면 갑자기 생애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에 멈춘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차가운 산 공기를 헤치고 내 귀속까지 날아온 뎅그렁거리는 소리를 따라가니 아 주 작은 성당이 나온다. 성당 옆에 붙은 조그만 주택 벽면에 ‘학교’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1층은 교실로 2층은 선생님의 사택으로 사용되었을 이 학교는 이제 개인 소유 주택이 되어있다. 그 옆에 꼭 붙어 선 성당만이 묵묵하게 임무를 다 하는 농부의 아내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이 독일이었을 때나 프랑스였을 때나 변함없는 그 소리로 종을 울리고 있다.
성당의 풍경
아담한 개인 주택이 되어버린 이 조그만 학교에서도 그 날의 ‘마지막 수업’은 있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 또한 아멜 선생님처럼 칠판 가득 ‘프랑스 만세’를 썼을까. 떠나기 전 그는 학교 앞 짙은 전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들판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들판 너머로 이어지는 산맥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프랑스는 수차례 전투를 치렀다. 그 폭탄의 흔적은 지금도 산 속 여기저기 커다란 구덩이로 패여 있다. 그 구덩이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은 군인들을 위한 묘지가 있다. ‘평화’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 십자가 앞으로 프랑스 삼색기가 펄럭이고 그 아래 흰 십자가들이 줄지어 서 있다. 군인 묘지의 수많은 십자가를 보면 거기 누운 청년보다 그 어머니들이 먼저 떠오른다. 알퐁스 도데는 「어머니들」에서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미의 심정이 얼마나 애가 끓는지 잘 표현했다.

가엾은 군인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초콜릿, 잼, 마개를 뽑지 않은 포도주, 심한 기근에 대비해서 8프랑이나 주고 산 통조림까지 챙겨서 아들이 있는 병영으로 간다. 북소리, 나팔 소리, 달려가는 병사들의 발소리, 덜그럭거리는 물통 소리, 의용병이 총 개머리판으로 치면서 끌고 오는 피투성이 간첩……. 숨 가쁜 전쟁 통에서 달려 나온 아들을 어머니는 길고 긴 미친 듯한 포옹을 한다. 밤새 잠 못 이루며 기다렸던 낙원의 순간은 5분도 넘기지 못한 채 이별해야 했지만 어머니는 떨면서도 침착하게 돌아서 온다는 이야기다. 그 짧은 만남을 끝으로 수많은 아들들은 이곳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묘지에 하얀 십자가를 안고 땅 속에 누워 있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
묘지 너머 저쪽 언덕에서 아이들이 스키와 눈썰매를 타느라 내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저렇게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교황의 죽음’에 나오는 그 소년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게 된다. 늦은 저녁 어디서 돌아오느냐는 질문에 꾸지람을 피하기 위해 매일 저녁 기차가 철교에서 떨어졌다든가 혁명이 났다던가 하는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꾸며대던 소년은 어느 날엔 교황이 죽었다고 말한다. 열렬한 가톨릭교도인 어머니는 새파랗게 질려 아들의 늦은 귀가를 꾸짖는 것도 잊어버린다. 다음 날 교황이 죽지 않은 것을 알면 그냥 웃으며 지나가겠지,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이 소년처럼 많은 알자스 아이들은 도서관보다 숲 속에 들어가 노는 것에 더 열광하다 책가방의 행방도 기억 못하기 일쑤다. 그만큼 유혹적인 들판이다.

이웃의 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철자를 곧잘 틀리게 쓰는 이유를 항상 식민지 아래 초등학교 공부를 독일어로 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받아쓰기와 작문을 많이 해야 할 시기에 그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가 숲과 계곡으로 동물 사냥이나 숭어 잡이를 다녔던 통에 학교 공부를 않았던 탓이라고 단정한다. 이 아름다운 들판에서 다람쥐처럼 즐거운 알자스 사람들은 미래 어느 날 또다시 불어를 빼앗겨 독어 혹은 영어로만 공부해야 하는 날을 상상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 세월이 갈수록 남의 나라에서 남의 말을 하며 산다는 것이 힘이 든다. 나는 한국어 중에서도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사용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할 때가 가장 편안하다. 프랑스 사는 많은 한국인 부부들의 아이들이 형제자매끼리 불어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낯설고 두렵다. 부모와 자식 간에 같은 말을 쓸 수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내 아이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한국어로 온전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라기보다 열대어가 따뜻한 물에서 가장 평화롭게 헤엄치듯이 나의 말은 생존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신이현(소설가)
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 『잠자는 숲 속의 남자』
에세이『알자스』
역서 『에디트 피아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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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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