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예술의 풍경

탐정 이야기꾼 유불란(劉不亂) 선생 실종 사건

근대 예술의 풍경 2015.10.05 제 08호 탐정 이야기꾼 유불란(劉不亂) 선생 실종 사건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를 존경해 마지않은 일본의 소설가는 필명을 에도가와 란포라 붙였다.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가 살인 사건」「검은 고양이」「도둑맞은 편지」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양식을 선보인 것처럼 에도가와 란포 또한 일본 추리문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얼마 뒤 에도가와 란포의 대학 후배이자 법학도인 한국인 유학생은 파리의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을 창조한 모리스 르블랑의 이름을 본뜬 명탐정 유불란(劉不亂) 선생이 되어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무릇 명탐정이라면 세상을 어지럽지(亂) 않게(不) 다스려야 하니 성씨로는 죽일 유(劉)가 마침맞다.
애초에는 순한 인상에다가 위트 넘치는 버들 유(柳)의 필명이었건만 성씨를 갈아 치우자마자 피비린내 풍기는 추리소설 속 주인공이자 소년 탐정들의 영웅으로 자라난 유불란……. 맏아들의 이름을 이처럼 절묘하게 궁리해 낸 작가는 한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추리소설가 김내성이다.
모리스 르블랑의 이름을 본뜬 명탐정 유불란‘김내성’
한때 변호사의 길을 바라본 스물일곱 살의 독일법학도가 프록코트와 실크해트 차림에 모노클을 낀 유불란으로 변신한 것은 1935년의 일이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김내성은 일본의 추리문학 전문지와 대중잡지 현상 공모에 「타원형의 거울」, 「기담 연문왕래」, 「탐정소설가의 살인」이 연거푸 당선되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의 에드거 앨런 포가, 한국인을 위한 코난 도일이, 한국어를 쓰는 모리스 르블랑이 될 수 있을까? 오귀스트 뒤팽이, 셜록 홈스가, 아르센 뤼팽이 나타나 대모험과 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
한 해에 세 편의 소설이나 인정받은 데에다가 식민지 종주국 한복판에서 거둔 성공 아닌가? 김내성은 졸업식이 끝나기 무섭게 하숙방 짐을 챙겨 부리나케 돌아왔다. 우선 일본어로 발표한 소설부터 한국어로 바꾸고 대폭 고쳐서 내놓았다. 그저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새로 쓰다시피 공을 들였지만 반향은 영 신통찮았다. 추리소설이란 식민지 문단에도 독자에게도 낯설고 모난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김내성에게 갈채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어린이들이었다. 뉴욕에서도 못 잡고 런던에서도 놓치고 파리에서도 신출귀몰한 백가면이 상하이에서 한탕 하고 드디어 경성에 나타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해골 가면을 뒤집어쓰고 흰 망토를 펄럭이며 백마를 타고 내달리는 백가면이 태평로에 사는 명탐정 겸 추리소설가 유불란에게 맞대결을 신청해 왔다. 총독부 앞, 창경원, 동대문, 장충단, 남산 공원, 세브란스 병원까지 경성 일대를 온통 휘젓고 다닌 백가면은 남대문 지붕 꼭대기에서 한바탕 총격전을 벌이더니 황해 해변에 있는 연구소를 노린다. 유불란의 곁에는 씩씩한 두 소년이 따라붙었다. 한 소년은 비밀 무기 개발자인 아버지를 서양의 스파이 일당으로부터 지켜야 하고, 소년의 친구는 인도양에서 해적에게 납치된 아버지를 다시 만나야만 한다.
꼬박 일 년 동안 잡지에 이어진 유불란과 두 소년의 모험 「백가면」에 어린이들은 열광했고 아낌없는 찬사를 바쳤다.
김내성은 곧이어 신문에 「황금굴」을 연재했다. 이번에도 유불란 선생이 나섰으나 진짜 주인공은 고아원의 소년 소녀들이다. 꺼림칙한 불상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소녀와 약삭빠르고 용감무쌍한 고아 소년들이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지른 것은 인도 왕족이 숨겨 둔 금은보화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유불란과 소년들은 과연 비밀 지도의 암호를 풀고 무시무시한 해적에 맞서 보물섬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황금굴
김내성이 본격적인 추리소설로 성공을 맛본 것은 1939년에 이르러서다.
소년들의 대장이자 우상으로 떠오른 유불란은 그제야 괴도 뤼팽의 후예로서 진면목을 과시했다. 전 세계적인 한국인 무용가 최승희를 모델로 삼았을 법한 「마인」은 팜므 파탈을 둘러싼 살인 사건, 이국적인 로맨스, 비밀스러운 가족사의 흑막을 겹겹이 둘러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명탐정의 진가를 보여 준 「마인」은 유불란의 탐정 폐업 선언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김내성의 명성을 드높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탐정 이야기꾼이 막 탄생했고 추리소설이라는 것이 가까스로 호평을 얻을 참이었건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김내성이 두 번째로 내놓은 장편 추리소설 「태풍」은 가난한 글쟁이가 집 한 채 장만할 만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기실 태평양 전쟁의 광기에 올라탄 노골적인 친일 스파이 소설에 지나지 않았다. 따지고 보자면 「백가면」이나 「황금굴」이 뜻밖의 인기를 얻은 것도 때마침 중일 전쟁이 터진 덕분이었다. 체면치레라도 하자면 그동안 짬짬이 발표해 온 추리소설을 모아 단편집이라도 펴내야 마땅하건만 시국이 그렇다 보니 불발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흥망을 건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에 미스터리가 다 무엇이며 탐정이란 웬 한가한 소꿉놀이일쏘냐? 유불란의 일대기는 출발하자마자 멈춰야 할 운명일까?
김내성은 일본 문단을 통해 등단한 후에 발표한 추리소설을 한데 모아 1940년에 단편집을 출판할 작정이었다. 만약 「탐정 괴기 소설집」이 예정대로 출판되었더라면 식민지 한국에서 초유이자 전무후무한 추리소설집이 되었을 터다.「마인」이 성공을 거둔 직후였으니 단편집까지 갖춘다면 명실상부한 추리소설가요 내로라하는 전문 작가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었다. 그랬다면 최초이자 유일한 추리소설 전문 작가가 염치없이 친일 스파이 소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막상 김내성의 추리소설집이 빛을 본 것은 한참 뒤인 1947년과 1949년의 일이다. 두 권으로 나누어 펴내기는 했으나 해방 후에 발표한 작품으로는 보탤 것이 없었다. 그사이 김내성은 다른 길로 눈을 돌렸으니 김내성에게는 행운이요 한국 추리소설로서는 불운이었다.
최초 어린이 방송국 똘똘이의 모험 1946, 해방기 최고의 화제작 진주탑 1946
다른 길이라고는 하지만 김내성이 멀리 돌아간 것은 아니다. 명탐정 유불란 선생과 소년 소녀들이 유쾌한 대모험에 기꺼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1946년 7월부터 지금의 KBS 라디오 전신인 서울중앙방송을 통해 <똘똘이의 모험>이 첫 전파를 탔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편성된 <똘똘이의 모험>은 최초의 어린이 방송극인 동시에 장편 라디오 연속극의 효시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을 모조리 라디오 앞으로 불러 모은 <똘똘이의 모험>은 곧바로 영화로 제작되어 두 주일 만에 15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가도를 달렸고 방송 대본도 출판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똘똘이의 모험>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어른들마저 라디오 앞에 주저앉혔다. 1946년 9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에 방송된 연속극 <진주탑> 때문이다. 김내성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대하 복수극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한국의 식민지 역사에 걸맞게 바꾸어 노예의 사슬에서 갓 풀려난 한국인에게 짜릿한 전율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 해방기 최고의 화제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진주탑」은 공전의 인기를 누리며 판을 거듭했고 악극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진주탑>은 1960년과 1968년에 두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1987년에는 TV 아침 드라마로 방영되어 안방극장에 들어왔다. <똘똘이의 모험> 역시 1968년에 다시 영화로 개봉되었고, 1976년에는 TBC 어린이 연속극으로 방영되어 새로운 시대의 어린이들과 만났다.
잇따라 대성공을 거둔 <똘똘이의 모험>과 <진주탑> 덕분에 김내성은 일약 최고의 인기 작가요 방송극 원작자로 등극했다. 어린이와 어른을 한꺼번에 그러모을 수 있는 발군의 재량을 소유한 작가라면 김내성 말고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김내성이 대중 작가로 변신한 일은 자연스러운 행로다. 1950년대의 한국소설이란 기실 「청춘극장」에서 막을 올려 「실낙원의 별」로 마감된 셈이다. 게다가 「쌍무지개 뜨는 언덕」과 「황금박쥐」까지 가세한 마당이니 김내성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야기꾼이 아닐 수 없다. 1950년대의 어른에게는 신문 연재소설의 황금기가 열렸고 어린이는 학생지 전성시대를 만끽했다.
아닌 게 아니라 김내성의 소설 가운데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없는 경우라고는 한둘 빼고는 없다. 식민지 시기의 추리소설 「마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이 두세 차례씩 영화로 제작되거나 TV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으니 김내성의 원작보다 영상물이 세 배나 더 많다. 정작 김내성은 자신의 작품을 극장에 찾아가 관람하지도, 안방에 누워 시청하지도 못했다. 「실낙원의 별」을 연재하면서 한창 이름값이 치솟던 1957년 2월에 김내성은 지천명의 햇수조차 채우지 못한 채 돌연 유불란과 함께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박진영, 1972년생.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 교수
편저 『진주탑』『르루주 사건』 『붉은 실』 『번안소설어 사전』 『신문관 번역소설 전집』 저서 『번역과 번안의 시대』,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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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0-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