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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의 풍경

우리가 읽은 세계 위인전

근대 예술의 풍경 2015.09.01 제 07호 우리가 읽은 세계 위인전
우리는 누구나 세계 위인전을 읽고 자랐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인생의 지침이 된 감명 깊은 인생 멘토였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뻔한 교육용 상업 출판물일 뿐이었다. 전자에겐 의심의 여지가 없어서, 후자에겐 일고의 가치가 없어서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이 몇 세대에 걸쳐 그 많은 세계 인물들 중 손에 꼽히는 몇몇에 관해서 읽고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읽은 세계 위인전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 땅에 정착된 것일까?
어느 시대건 인생의 모델을 찾고 싶은 갈증과 타인의 삶에 대한 세속적 호기심,
그리고 세계 문명 지식에 관한 열망은 존재하기 때문에 ‘전기’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대한민국의 삼대가 읽었을 법한 위인전이 한글로 최초 출판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대부분 식민지 시기에서 멈추게 된다. 최근 추가된 21세기 인물인 스티브 잡스나 워런 버핏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근대 위인들은 이 당시 소개되었다. 문호가 개방되면서 사실상 일제 치하에 들어갔던지라 일본 출판물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야심을 품으며 세계 문명을 벤치마킹했던 일본은 주로 서양인물로 구성된 세계위인전집에 유난히 열광했다. 각종 직업과 국적으로 구성된 그 시리즈물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개인들의 자기계발서나 성공수기로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사상서나 역사서의 보조물로 기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일부가 식민지 조선의 현실 속으로 선택되어 소개되었다. 세계 위인전들은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출판되어 당시 식민지 조선과 중국으로 전파된 것이 사실이지만, 각 국경을 넘을 때에는 그 문화권에서의 취사선택이 이루어지고 이후 그 나라에서 유독 사랑받게 되는 인물들이 추려지게 마련이었다. 즉, 20세기를 풍미한 ‘세계위인전’의 별자리는 20세기 초반에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동북아시아의 근대화와 서구화 지향의 열망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중일 삼국의 차이를 드러내는 리트머스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에서도 오늘날 전기와 유사한 전(傳)의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읽는 것과 내용과 형식, 문자, 독자층과 규모가 달랐다. 당시에는 감히 상인이나 중인계급에 해당하는 전문직의 전기, 혹은 직업 부인의 전기가 본격 출판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왕족이나 학자의 전기와 나란히 놓일 수도 없었다. 태생부터 성장시절, 성인의 업적으로 이어지는 연대기적 서술에 집필자의 논평이 강하게 가미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문중에서 선대를 기리기 위해 집필되거나 소소한 인물들의 열전이 필사본으로 전하는 정도에 그쳐, 전(傳)은 아직 다수의 대중 독자를 확보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서양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없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전기물은 근대적 출판물로서 제작, 판매, 유통되며 이전보다 확장된 독자층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외국인에 관한 전기가 혜성처럼 나타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게 되었다. 1900년부터 1910년 사이 심난한 국운 속에서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 잔 다르크 등의 인물이 민족과 국가의 영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들 전기인 『나파윤전』, 『비사맥전』, 『애국부인전』은 한일합방 이후 총독부로부터 민족을 선동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금서처분을 받는다.
왼쪽 애국부인전 오른쪽 비사맥전
출처 애국부인전 : 국가보훈처 블로그 | 비사맥전 : 노마드북
하지만 금지된 것은 외양을 탈바꿈하여 부활하는 법,
1910년대에는 금지된 ‘구국의 영웅전’ 대신 ‘근대적 직업의 개인전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전기의 역사가 도달한 세 번째 국면이다. 이 시기부터 ‘영웅’은 부정적 뉘앙스를 띠게 되었고, 대신 ‘위인’이란 명칭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단의 영웅호걸 같은 인물보다는 개인적 역경을 극복하거나 직분에서 성공한 인물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양인 사업가나 과학자라는 새로운 직업군의 인물들이 ‘전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강철왕 카네기와 벤저민 프랭클린 등이 개인의 사업적 성공과 사회적 기여를 동시에 이룬 ‘공인’으로 이야기되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프랭클린 다이어리의 그 ‘프랭클린’으로 미국의 국부로서의 정치적 업적보다는 일상적 자기 관리를 통해 부와 명예의 획득과 공익 실현에 성공한 샘플로 소개되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연예인이 ‘공인’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문화산업’의 급부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20세기 초 이들 기업인이 ‘공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봉건사회가 자본주의로 이행해가며 교육과 직업, 물질적 보상이 중요해지는 시대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처럼 인기 있는 인물의 전기는 단행본으로도 신문 기사로도 거듭 다루어졌다. 책 제목도 달라졌는데, 이제 ‘전’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사람 이름만을 책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워도 누구나 ‘전기’인 줄 알게 되었다. 집필자의 논설과 같은 논평은 사라지고 인물의 생애에 관한 사실적 진술이 주요한 뼈대를 이루지만 여기에 문학적 에피소드가 부각되었으며 이후 인구에 회자될 때에는 사실상 이 에피소드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외국인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떤 서적인가를 참조했을 진데 이를 밝힌 책은 드물었다. 식민지 시기 최대 규모로 번역위인전기를 기획하고 발행했던 한성도서주식회사의 1920년대 시리즈물조차도 이를 명백히 밝히지는 않았다. 즉, 출처 미상의 정보와 서술들로 조합된 인물전이 발행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당시 출판된 전기는 윌슨, 루소, 한니발, 프랭클린, 가리발디, 아인슈타인 등이었다. 참조본을 밝히진 않았지만 조금만 추적해보면 당시 일본에서 발행되던 하쿠분칸 출판사의 전집을 모델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당시 연애 서간집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던 노자영과 신진 시인 김억, 그리고 중견 교육자이자 언론인 강매가 번역자로 섭외되었으니, 나름 번역진에도 공을 들인 셈이다.
그나마 원서의 출처를 밝힌 전기는 기독교 출판사에서 나왔다. 근대 초기부터 서양인 선교사들은 교회, 학교, 병원 등의 제도를 중심으로 활약해왔고 이들 네트워크에 문서를 공급하는 출판사 역시 운영했다. 현 대한예수교서회의 전신인 조선예수교서회는 주로 성경의 인물이나 목회자, 선교사의 전기를 출판하며 식민지 시기 가장 많은 수의 전기물을 발간했다. 그리고 일반인 독자들도 타깃으로 삼아서 링컨, 헬렌 켈러, 부커 티 워싱턴 등 미국 인물의 전기와 자서전도 출판했는데 이들 세 인물에 관해서는 기독교 출판사의 번역본이 독보적이었다. 이들은 각기 계급적, 젠더적, 신체적, 인종적 한계를 극복한 인물로 소개되었다. 이 중 헬렌 켈러가 식민지 조선에 각인되게 된 계기들이 흥미로워 이를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헬렌켈러(1937) 출처 헬렌켈러 : 위키디피아
아마도 헬렌 켈러가 설리번 선생과의 전쟁과 같은 수업을 거쳐 처음 ‘물!’이라고 발음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되는 장면을 우리는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어찌하여 지구 반대편에 살던 장애인 백인 여성의 삶의 한 대목이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일단 이 장면은 그녀가 이십대 초반에 썼던 자서전에 실려 있는 장면이며 이 자서전은 1929년 한글로 번역 출판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그녀가 보여준 다채로운 사상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는 대중들에게는 아동기의 한 장면에 고착된 이미지로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세계위인전’ 주인공 중 변방의 땅 조선을 실제로 밟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퀴리부인, 아인슈타인, 헬렌 켈러, 윌슨 등 전기의 주인공들은 당시 생존하는 인물이었으나 조선에서는 이들을 지면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들도 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고 아인슈타인을 조선에 초청하려는 기획도 있었으나 그는 중국에 잠시 체류했다가 조선을 생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 달간 전국 순회강연을 했다.
반면 헬렌 켈러는 1937년 일본-조선-만주를 순회하는 장구한 여행을 감행하는데, 그의 극동 순방은 미일 친선 관계와 제국 일본의 식민지 통치 기획, 그리고 서구와 동아시아 각국의 기독교 네트워크라는 변수들이 개입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중일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조선 총독부는 헬렌 켈러의 대구-경성-평양을 잇는 순방을 지원했는데, 식민 통치의 입장에서 볼 때 식민지민이 자신보다 열악한 조건의 타자인 헬렌 켈러를 보며 현재에 만족하고 분발하게 되는 효과를 본다면 이는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허덕이던 민심을 다독이려는 목표에 유용한 것이었다.
헬렌 켈러 저, 최태영 번역, 조선예수교서회, 연세대 학술정보원 소장 나의 생애 1929
기독교는 헬렌 켈러의 삶을 신앙과 간증, 기독교적 성숙과 구원의 서사로 이야기했고, 교육계에서는 문맹을
탈피하여 야만에서 문명화된 성인으로 성장한 기적적 계몽의 서사로 독해하고자 했다.
결국 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여성의 자서전은 식민지 조선에서 교육적 계몽서사이자 종교적 구원서사, 위안의 당의정으로 소비되었으며, 해방 직후에도 바로 재출판 되어 20세기 후반 한국 독서계에서 지속적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자서전이든 전기든, 쓰여진 타인의 삶은, 읽는 이들의 세계관과 필요 속에서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읽은 세계위인전’의 독서사에는 근현대사 속 한국인의 욕망과 좌절과 위안이 오롯이 녹아있다.
김성연_연세대학교 비교사회문화연구소 연구원. 1977년생
저서 「영웅에서 위인으로-번역 위인전기 전집의 기원」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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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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