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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 일기는 진실인가?

'일기'는 진실인가? 길리언 플린 원작,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
'고백'은 진실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고 싶어 한다. 과연 '한 점 숨김없는' 고백이 가능할까. '사실'과 '고백' 사이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걸까. '고해성사'에서조차 인간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신 앞에서도 자신을 솔직하게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면, 하물며 인간 앞에서야. 이런 인간의 고백을 듣고서, 참회의 눈물을 보고서, 아니면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나서, 그것도 아니면 자서전을 읽고서 우리는 “나는 너의 진실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이 스스로 고백하는 모든 진실은 불확실하고, 부정확하다. 그 진실, 진심이 타인으로 하여금 믿도록 만들려는 거짓과 위선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는? 정직한 자기 고백이라고 믿는다면 이 또한 착각이다. 일기를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자신만이 간직해야 한다는 일기의 전제야말로 언젠가는 누군가가 읽을 것이란 강한 희망의 역설이다. 모든 말과 행동, 글은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이 아니면 신에게라도 보이고 읽혀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더구나 미리 계산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고백이라면 더욱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여성잡지의 심리테스트 코너에 글을 쓰고 있는 에이미 엘리엇도 일기를 썼다. 그녀의 일기는 남편 닉 던과의 생활과 상황,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솔직하게 일기장에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일기장에 적어놓은 고백과 기록이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고백을 진짜로 믿게 만들 수 있는지 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는 '진실'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가는, 급기야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는 남편 닉 던에게 복수하기 위한 치밀한 시나리오이다. 그녀의 각본(일기)에 의하면 남편은,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해고당하고, 뉴욕을 떠나 부모가 계시는 고향 미주리로 이사했으며, 경제적으로 무능해진 이후 젊은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임신을 반대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내 구타를 일삼는 형편없는 놈이다. 에이미는 일기장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이 남자가 날 죽일지도 모른다”고.
나름대로 완벽한 지난 시간에 대한 '진실'을 152일치의 일기에 기록한 각본이 완성되었을 때, 에이미는 종적을 감춘다.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아내의 실종. 남편을 살인자로 몰아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기 위한 그녀의 계략이다. 복수의 칼날은 일기장 속에 진실을 가장해 심어놓은 갖가지 장치와 암시에 의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에이미는 선을 위장한 악, 소시오패스, 팜므파탈이다. 영화로 보자면 비슷한 스릴러물인 《화차》(감독 변영주)의 여주인공과 닮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성적 매력으로 타인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투다이포》의 여주인공 수잔(니콜 키드먼)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그들을 이중적 자아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중성을 과거의 삶에서 찾는다. 에이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부모가 출간한 인기 아동도서 시리즈인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델이기도 한 그녀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책 속의 주인공과 동일시했고, 부모는 그녀를 그렇게 살도록 강요했다. 그 허구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충돌과 혼란은 거짓과 진실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강요된 자아에 대한 환멸이 그녀를 평범한 닉 던과 결혼하게 만들었으며, 그 허구적 자아에 대한 동경은 그녀로 하여금 그것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는 인간에 대한 잔인한 복수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고 자기파멸도 불사하는 악마성을 부여했다.
그 에이미가 주인공인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원제: Gone Girl)는 그래서 스릴러물이면서도 심리물이다. 일기장 속의 에이미와 생활 속에서의 에이미, 동화책 속의 에이미와 현실 속의 에이미의 모습들이 뒤섞이면서 결말을 알 수 없는 사건이 시작되고, 그것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이 교차한다. 아내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로 점점 굳어져가는 남편 닉 던도 진실과 거짓, 사실과 생각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사랑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과 생각을 혼돈한다.
△ 영화 《나를 찾아줘》의 한장면
이런 진실게임을 통해 에이미가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욕망이다. 그 욕망 역시 허구와 현실의 자아처럼 이중적이다. 그녀가 남편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복수를 하려는 것도, 태연하게 돌아와 사랑 넘치는 닉 던의 아내인 동시에 동화시리즈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선과 악, 허구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이중성과 혼돈, 그것을 이용한 죄의식의 마비. 어쩌면 이런 것들이 정체성이고 '진실'이라고 그녀는 생각하는지 모른다. 때문에 그녀에게 일기는 '진실'을 기록한 거짓의 기록이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640쪽에 달하는 긴 소설의 절반을 읽는 꽤나 긴 시간을 지나야만 한다.
그렇다고 소설의 절반은 사기라고 말할 수 없다. 에이미의 일기는 치밀하게 짠 '거짓'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이중인격자의 '심리보고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유의 하나도 에이미와 닉 던의 거짓 속에 스며있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과 부부 생활에 대한 날카롭고 솔직한 심리분석에 있을 것이다. 에이미를 팜므파탈로 몰아간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다. 겉으로는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속으로는 딸을 이용하고 길들인 그녀의 부모, 그녀를 이해하기 보다는 소유하려는 그녀의 친구들과 비겁한 남편 닉 던, 그리고 멍청한 언론이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 에이미는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태연히 피해자 행세를 하는'악녀'이면서도 닉 던을 사랑하는 아내로, 동화시리즈의 여주인공으로 아름다운 위선을 과시하며 세상과 남편과 가족을 속이며 살아갈 것이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그 작품의 '진실'을 알기 위해 원작을 읽어야 한다. 원작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렇다. 원작에 버금가는 영화,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영화가 좀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작이 좋을수록, 영화가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원작이 영화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작품에서 보아왔나. 원작의 맛을 영상언어로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각색,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자유로움을 포기하고 원작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연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배우들의 연기 등 이유는 갖가지다.
△ 영화 《나를 찾아줘》의 장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뻔뻔스럽게 “굳이 긴 시간 소설을 읽지 말고, 극장에서 두 시간 만에 명작을 읽으세요”라고 유혹한다. 마치 영화가 원작을 대신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원작이 길고 깊을수록 그 유혹은 달콤하고 강력하다. 그 치명적 유혹을 뿌리치고 굳이 원작까지 읽는 경우는 두 가지다. 영화가 워낙 실망스러워 원작에서 제대로 작품성을 확인하고 느껴보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영화가 너무나 감명 깊어서 그 여운을 원작에서 또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다. 십중팔구 어느 쪽이든 '원작'이 실망을 안기는 일은 드물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누구도 예상 못한 짜릿한 반전이 있는 스릴러물이다. 아무리 영화가 원작을 망쳐놓았더라도, 아무리 원작이 탁월하더라도 이미 스스로 스포일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막판 극적 반전이 있는, 스릴러물'이란 범주에서 보면 《나를 찾아줘》도 마찬가지다. 에이미의 일기장에 숨은 이중적 심리를 십분 드러내지 못해 초반 지루하게 느꼈더라도, 적어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가 사건의 진행과 진실, 반전만큼은 원작 못지않게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니까. 원작자가 직접 쓴 각본은 정리가 잘 되었으며, 감독의 연출은 후반 강약을 조절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작품에 빠져든 배우들(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는 강렬했다.
그렇다고 소설 속 에이미의 '일기장'조차 이제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 여자의 악마적 심리와 그것의 근원인 삶에 깊이 스며있는 아픔과 상처, 그로 인해 왜곡된 욕망과 파괴적 일탈을 이처럼 '거짓과 위선'의 날카로운 심리로 묘사한 글은 흔하지 않다. 영화의 단편적 그림일기로 이야기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나를 찾아줘》가 재미는 있는데 개운하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통상적인 소설과 영화의 관습으로 보면 당연하다. 닉 던의 인생처럼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좋은 결말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정의를 말하려 하지도 않고, 진실이 무엇이냐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도, 악도, 진실도, 위선도, 거짓도 인간관계가 만들고 인간관계 속에서 행해지며, 닉 던처럼 우리 모두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에이미는 어디에든 있다. 당장 내 옆에도 있다. 아니면 나 자신일지도.
원작 도서 나를 찾아줘 책표지, 영화 나를 찾아줘 포스터
누구도 예상 못한 짜릿한 반전이 있는 스릴러물이다. 에이미의 일기장에 숨은 이중적 심리를 십분 드러내지 못해 초반 지루하게 느꼈더라도, 사건의 진행과 진실, 반전만큼은 원작 못지않게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원작자가 직접 쓴 각본은 정리가 잘 되었으며, 감독의 연출은 후반 강약을 조절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작품에 빠져든 배우들의 연기는 강렬했다.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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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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