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길라잡이

강원도 강릉

시즌2 역사탐방 길라잡이 14편 여유가 넘치는 고장,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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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코스

오죽헌 > 선교장 > 김시습 기념관 > 해운정 > 경포대 > 방해정
예상소요 시간 : 2시간
강릉은 예로부터 이름난 시인, 서예가, 화가, 선비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던 곳이었다.
무더운 여름, 아이와 함께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부는 강릉으로 떠나
옛 선조들의 쉼과 여유를 함께 느껴보자.

탐방길라잡이

휴양지로서 강릉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하슬라, 명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강릉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강릉은 이름난 시인, 서예가, 화가, 선비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던 곳이었다. 옛 사람들은 경포호와 동해바다, 울창한 숲과 계곡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절경(絶景)을 보며 일상의 고단함을 달랬던 모양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 속 짧은 휴식의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강릉에서 나고 자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는 물론이고, 송강 정철, 단원 김홍도 등 조선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강릉에서 뛰어난 예술작품과 숱한 이야기들을 남겼다.
은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우리를 태운 차는 어느새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은하는 강릉에서 만나게 될 옛 이야기들 보다,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와 신나는 물놀이가 더 기다려지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연신 바다를 외쳐댔다.

강릉, 이야기 속으로

홍장고사(紅粧故事) 출처 : 향토의 전설, 1979 고려 우왕 때 강원도안렴사 박신은 백성을 잘 다스려 칭송이 드높았다. 그는 강릉기생 홍장을 깊이 사랑했는데, 강릉부사 조운흘은 홍장과 박신의 사이를 알고 한번 놀려주려고 궁리를 하였다. 어느 날 박신이 순찰을 마치고 홍장을 찾아갔다. 이 때 홍장은 조운흘과 짜고 숨어버렸다. 홍장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조운흘이 박신에게 알리자 박신은 몹시 서러워하였다. 며칠 뒤 조운흘은 박신을 초청하여 경포대 뱃놀이를 베풀었다.
경포호수 배에서 노래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석양에 경포호수에 이르니 경호(鏡湖)는 십 리나 뻗쳐 물결과 주변이 어울린 아름다움이란 비길 데가 없었다. 두 사람의 취흥이 무르익을 때 문득 멀리 호수를 보니 그림배 한 척이 보였다. 그 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가늘게 부르고 있었다. 박신은 놀라 저 배가 무슨 배냐고 조운흘에게 물었다. 조운흘은 짐짓 놀라는 체하면서 저것은 필시 선녀의 놀음일 것이라 하였다. 경포에는 가끔 선녀가 뱃놀이를 하는데 우리도 가까이 가서 같이 놀아보자고 하였다. 조운흘과 박신은 호수에 배를 띄워놓고 그림배만을 보고 있었다. 그 속의 여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배가 가까이 오자 그림배의 여인은 꼭 홍장의 모습과 같았다. 조운흘은 저 배의 여인은 필경 홍장의 죽은 넋이 선녀로 변해 오늘 경호에 나타난 것 같다면서 배를 저어 가까이 갔다. 그 미인은 분명 홍장인지라 박신은 깜짝 놀라며 그제야 조운흘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세 사람은 경포호수에서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경포호에 있는 방해정(放海亭) 앞에 ‘이가원(李家園)’이라고 새겨진 바위를 홍장암(紅粧巖)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조운흘이 홍장을 아끼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직접 붙인 이름이다. 홍장설화는 조선시대까지 전해지며,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였던 신후담(愼後聃)의 소설 ‘홍장전 紅粧傳’ 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강릉 탐방하기

1. 오죽헌
입구를 통과하자 우리의 눈앞에 각양각색의 꽃과 수풀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졌다. 신사임당이 그린 여러 점의 초충도(草蟲圖)를 정원으로 구현해 놓았다. 은하는 정원 곳곳에 고개를 내민 초충도 속 화려한 꽃과 풀잎들 중에서도, 연못가에 피어난 한 송이 연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초록빛 풀잎 사이로 활짝 잎을 벌린 분홍색 꽃송이가 유난히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초충도 사진
미션
초충도 찾기신사임당초충도 화단 안내판에 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 중 하나를 골라 기억하여, 실제 모습을 찾아서 비교해보자
정원을 지나 대문을 통과하자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나타났고, 그 옆으로 아담한 규모의 오래된 한옥집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오죽헌(烏竹軒)이다. 집 주변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 숲이 있다 하여 이름을 오죽헌이라 지었다고 한다.
율곡이이의 탄생
훗날 율곡 이이의 아버지가 되는 이원수가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이원수가 부인인 신사임당을 보러 강릉으로 향했다. 신사임당은 처가인 강릉 오죽헌에 머물고 있었다. 이원수가 한창 대관령을 넘고 있을 무렵 해가 저물고 말았다. 이때 이원수의 눈에 한 집이 보였는데, 전에는 보지 못한 집이었다.

이원수가 그 집에 들어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자 어여쁜 아낙이 나와 이원수를 안으로 맞았다. 아낙은 이원수를 유혹하여 하룻밤 자려고 하였는데, 이원수는 부인을 보러 가는 길임을 말하고 끝내 동침하기를 거절하였다.

아침이 되어 이원수가 눈을 떠보니 집은 온데간데없고 사방이 허허벌판이었다. 이원수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강릉으로 가 신사임당과 합방하였는데, 이때 얻은 아들이 바로 율곡이다.

사실 이원수가 만난 여자는 사악한 요물이었다.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율곡이라는 큰 인재를 낳을 것을 알고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그 씨를 훔치려고 한 것인데, 이원수가 그 유혹을 뿌리치고 부인과 합방하여 큰 인재를 얻게 된 것이었다.

원본출처 : 문화콘텐츠 닷컴
2. 선교장
선교장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런 정자 한 채와 넓은 연못, 수풀이 우거진 정원이 펼쳐졌다. 연못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초가집과, 그 옛날 왕가의 후예들이 머물던 웅장한 규모의 기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들 사이를 오가며, 마치 조선시대에 온 것 같다고 신기해했다.
선교장
선교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한국전통문화체험 행사가 있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선교장은 어린이들과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 체험 행사를 제공하는 체험관 역할도 하고 있는 듯 했다. 한때 왕의 후손들이 살았던 이 집은 오늘날, 여행자들이 지친 몸을 달래며 한국 전통문화를 가까이서 접하는 휴식과 배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족제비가 점지해 준 명당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1대 손인 무경 이내번(茂卿 李乃蕃)은 숙종 29년(1703년)에 강릉에 대규모의 저택을 짓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이때 지은 집이 바로 오늘날 강릉의 대표적인 고택(古宅)으로 손꼽히는 선교장이다.

이내번이 이 곳에 집을 짓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족제비 때문이다. 어느 날, 이내번이 경포대 주변을 거니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족제비들이 무리를 이루어 서서히 서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내번은 족제비 떼의 뒤를 쫓아갔다.

족제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느 야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많던 족제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한 생각에 한동안 어리둥절하여 망연히 서 있던 이내번은,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족제비를 통하여 점지해 준 명당이라 생각하고 무릎을 쳤다.

강릉의 4대 주산(主山) 중 하나인 시루봉 산줄기 아래 위치한 이 터는 풍수적으로 볼 때 생동하는 용(龍)의 형상과, 막 뛰어오르려는 호랑이의 형상을 동시에 띄는 명당이다. 이런 터에 자리를 잡으면 재물이 쌓이고 가문이 번창 한다고 한다.

이내번은 그 해, 족제비가 알려준 명당에 집을 짓고 가문을 옮겨왔으며, 그 후 대대손손 번창하며 강릉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내번이 살던 집은 오늘날 선교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씨 집안의 후손들이 아직까지도 그곳에 거처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씨 집안에서는 뒷산에 족제비를 위한 먹이를 가져다 놓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원본출처 : 강릉 선교장, 1996
3. 김시습 기념관
선교장을 나와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니 아담한 1층짜리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 초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 기념관이었다. 은하가 김시습이 누구냐고 물어 와서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에 은하가 눈을 빛내며 기념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김시습 기념관 사진
미션
금오신화와 함께 찰칵!금오신화를 소재로 한 포토존에서 아빠와 함께 신화 속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남겨보자!
기념관 안에는 금오신화를 비롯해 김시습이 남긴 다양한 책들과, 그가 지은 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강릉을 본관으로 둔 김시습은 3살 때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고, 5살 무렵부터 시를 짓기 시작한 신동(神童)이었다. 뛰어난 학식을 지닌 선비이자, 수많은 시와 소설을 남긴 당대의 문인이었던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처단하고 왕위에 오르자 충격을 받고 전국 각지를 떠돌며 기행(奇行)을 거듭하다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4. 해운정
선교장에서 김시습 기념관으로 이어진 길을 계속 따라가니 순두부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나타났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식당 한편에 해운정이 서 있었다. 대문을 지나 아담하게 둘러진 담장 안으로 들어서자 아담한 계단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각 한 채가 나타났다. 이 건물이 보물 제183호로 지정된 강릉 해운정(海雲亭)이다.
해운정
해운정은 앞서 본 오죽헌이나 선교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서, 별당(別堂)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소박한 겉모습과 달리 해운정은 조선시대, 수많은 명사들로부터 사랑 받았던 유서 깊은 정자다.
과거에는 해운정 위에 서면 경포호수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경포호수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커서, 지금의 해운정 근처까지 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등이 이곳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며 경포호수의 정취를 즐겼다고 한다.
5. 경포대
해운정을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길을 걷던 우리의 눈앞에 넓게 뻗은 경포호수가 나타났다. 바다를 기대했던 은하는 갑작스레 나타난 호수에 약간 실망한 듯 했지만,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의 풍경에 금세 마음이 움직였는지 얼굴에 미소를 되찾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경포대를 가리키는 팻말을 발견했다.
은하와 함께 경포대를 향해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길가에는 옛 사람들이 남긴 싯구가 새겨진 바위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조, 숙종 등 임금님이 직접 남긴 시도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경포호와 강릉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하는 내용 이었다.
경포대 사진
미션
아빠와 함께 자전거 타기경포호 주변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을 경험해보자!
경포대는 언덕길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려 32개의 기둥을 갖춘 큰 규모의 정자로 고려시대 충숙왕 13년(1326년)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6. 방해정
마지막 행선지인 방해정(放海亭)은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짙게 우거진 숲을 뒤로하고 서 있는 이 고택(古宅)은 조선 철종(185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방해정은 오래된 한옥 특유의 정감 어린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은하는 건물보다 방해정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더 신기한 모양이었다. 대부분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방해정
방해정 맞은편, 호숫가에는 큼지막한 바윗돌이 울퉁불퉁 솟아 있었는데 그 앞에 웬 남녀 한 쌍의 동상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이 바위, 홍장암(紅粧岩)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홍장고사(紅粧故事)라는 전설의 주인공이었다.
은하와 함께 경포호를 바라보며, 홍장고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신데렐라나 인어공주처럼 서양의 러브스토리를 주로 접했던 은하는 우리 조상들의 운치 있는 사랑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홍장암 주변에는 홍장고사의 내용이 익살스러운 조형물로 표현되어 있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답사를 마치며...
아름다운 호수와 바다, 옛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로 가득한 강릉. 강릉은 오랜 옛날부터 싱그럽고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로 여행자들을 품어왔다. 그 역사는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 되고 있다. 일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강릉에 들러, 자연을 접하고 이곳에 전해지는 옛 이야기 속에서 잠시 잃어버렸던 일상의 여유를 되찾고 있다. 은하와 함께 푸른 동해바다 속에 몸을 담갔다. 그제야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났다는 실감이 느껴졌다. 그 옛날 김홍도나 정철이 그랬던 것처럼, 강릉에서 자연을 벗 삼아 여행을 즐기다 보니 벌써부터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되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바다에 몸을 담근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은하는 내년 여름에도 강릉에 놀러 오자며 졸라댔다.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주었다. 꼭 여기에 다시 찾아오자고.
숨겨진 강릉 이야기 : 율곡 이이를 살린 나도밤나무
오죽헌 인근의 선교장 앞에는 오래된 나도밤나무가 있다. 강릉에는 이 나도밤나무가 율곡 이이를 살렸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율곡이 오죽헌에서 태어나 아홉 살 되던 해에 한 도사가 어린 율곡의 관상을 보더니 ‘커서 호랑이에게 물려갈 팔자’라고 하였다. 신사임당이 이 말을 듣고 놀라 호환을 피할 수 있는 방책을 알려 달라고 하였다. 도사는 난처해하며 ‘섣달 그믐까지 아이가 혼자 힘으로 밤나무 1,000 그루를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어린 율곡은 매일 산에 가서 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섣달 그믐까지 열심히 밤나무를 심은 율곡이 마지막 한 그루까지 심고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다. 1,000그루를 이미 다 심었기 때문에 안심했지만, 그 사이 한 그루가 말라 죽고 말았다. 1,000그루에 한 그루가 모자라 호랑이에게 잡혀갈 위기가 된 것이다. 호랑이가 ‘밤나무 1,000그루를 다 심지 못했으니 너를 잡아가야겠다!’고 말하며 율곡에게 달려들 때, 밤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 하나가 호랑이를 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밤나무다!” 호랑이는 1,000그루를 모두 심은 줄로 알고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호랑이를 막은 그 나무의 이름을 "나도밤나무"라고 하게 되었다. 율곡 선생의 호가 율곡인 것도 밤 율(栗)자와 굴 곡(谷) 자를 쓴 것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원본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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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 오죽헌 2 선교장 3 김시습 기념관 4 해운정 5 경포대 6 방해정 함께하는 미션 1 초충도 찾기 신사임당초충도 화단 안내판에 잇는 신사임당의 초충도 중 하나를 골라 기억하여, 실제 모습을 찾아서 비교해보자. 3 금오신화와 함께 찰칵! 금오신화를 소재로 한 포토존에서 아빠와 함께 신화 속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남겨보자! 5 아빠와 자전거 타기 경포호 주변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을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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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위치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

자가용 이용시 (서울 출발)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동해고속도로 → 죽헌길

올림픽대로 →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 제2중부고속도로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동해고속도로 → 죽헌길
위치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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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릉 관광안내 홈페이지(http://tour.gangneung.go.kr)
· 글/사진  | 강민석
· 그림       | 홍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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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8-2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