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떠나는 여행은 아이에게는 물론 부모에게도 좋은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만큼 아이와의 여행은 교육과 훈육의 목적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와 아이의 걸음을 따라 함께 놀이하며 소통하는 진정한 교감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여행기는 아이와 부모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 속에서 여행하고, 더 나아가 바람직한 가족 문화를 구현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 되었습니다. 여행기 본문 속 미션과, 함께 첨부된 게임보드 등을 활용한다면 아이와 보다 즐거운 여행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탐방안내
탐방장소
전남 화순 운주사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20-1)
탐방코스
예상 소요 시간은 2시간
이번 여행은 화순의 유명한 사찰을 돌아보는 코스이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찾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는 여행의 속도라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아이의 시선과 속도에 맞추어 걷는 여유를 가져보자.
소요경비
· 운주사 입장료
- 성인 : 3,000원
- 중고등학생 : 2,000원 - 어린이 : 1,000원
준비물
· 찬바람을 이겨낼 든든한 옷차림 · 따뜻한 음료와 간식거리
찾아오는 길
· 대중교통 이용 시
광주 광천터미널 앞에서 318번, 218번 운주사행 버스 탑승
(배차간격1시간)
· 자가용 이용 시
광주(12km) → 화순(10km) → 능주(5.1km) → 평리사거리(2.4km) → 클럽900(2.8km) → 도장리(8km) → 도암삼거리(3km) → 운주사
(3) 불교의 영향과 고려 사람들
신라 말, 고려 초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운주사는 고려 시대 불교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절을 짓고 탑을 쌓고 석불을 만들던 옛 선조들의 마음과 함께 운주사의 미스터리를 탐구해보자.
관련 도서
공부가 되는 우리 문화유산
글공작소 지음 / 출판 아름다운사람들 아이들의 눈높이로 풀어낸 문화유산 이야기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을 아이들이 보다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못다 이룬 나라 사랑의 꿈인 운주사 천불천탑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유산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만화로 보는 한국 사찰의 설화와 전설
이규성 지음 / 출판 운주사 조용하고 따분하게 느낄 수 있는 사찰과 절을, 그 안에 담긴 설화와 전설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다. 운주사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면, 다음 사찰의 미스터리를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다.
탐방 길라잡이
1. 한국적인 불교 유적과의 만남
운주사의 석탑과 불상은 중국이나 인도와는 달리 한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각양각색의 외관을 지닌 개성 있는 석탑과 둥글둥글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한 불상들을 둘러보며 한국적인 불교유적의 향취를 느껴보자.
2. 설화와 전설을 찾아서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는 흥미를 가지기 쉽지 않다. 탑과 석불 등 역사 속 불교 유적을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 역사 속 대표적인 미스터리 중 하나인 운주사 천불천탑 설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흥미와 함께 친근함을 심어주자.
3. 버스 여행의 묘미
운주사는 자가용을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광주, 화순에서 시외버스를 타거나, 화순군에서 운영하는 관광전용버스를 타면 남도의 넉넉한 평야와 웅장한 산세를 구경하며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법
1.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자
설화와 전설은 이야기 속에 듣는 이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을 그려보기도 하고, 다양한 모양의 불상과 탑들을 함께 보며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행을 만들어보자.
2. 아이의 눈높이로 시간을 즐기자
부모의 설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아이의 눈높이와 발견이다. 부모가 알려주는 새로운 사실과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아이의 눈에 비치는 모습들을 함께 발견해보는 것도 부모에게 또다른 교육의 경험이 될 수 있다.
3. 이야기의 힘을 전해주자
도선국사는 국운을 다시 일으킬 목적으로 천불천탑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가 탑을 쌓게 된다면 어떤 마음을 담아 쌓을지 생각해 보자. 가족이 소원하는 것들을 이야기로 담아낸다면, 그 이야기는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다.
도선이 여기에 절을 세우기 위해 머슴을 데리고 와서 천상(天上)의 석공들을 불러 용강리 중장터에 몰아놓고, 단 하루 사이에 천불천탑을 완성하고 새벽닭이 울면 가도록 일렀다. 천상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절 위의 공사 바위에서 돌을 깨어 열심히 일했으나, 도선이 보기에 하루 사이에 일을 끝내지 못할 듯싶으므로 이곳에서 9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일괘봉에 해를 잡아놓고 일을 시켰다. 해가 저물고 밤이 깊었지만 천상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의 일손을 거들어주던 도선의 머슴들이 지쳐 꾀를 생각해냈다. 어두운 곳에 숨어서 닭 우는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꼬끼오, 일을 하던 석공들은 가짜로 우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이 때문에 운주사에는 미처 세우지 못한 와불이 생겼고, 6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화순군 도암면 봉하리의 하수락(下水落, 아릿무지개) 일대의 돌들은 천상의 석공들이 이곳으로 돌을 끌고 오다 버려두고 가서 중지된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 신정일 글,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권
탐방하기
출발
이야기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 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등을 대고 앉아 있다.출처-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전라남도 화순에 자리잡고 있는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때 이곳에는 천 개의 탑과 불상이 었었다고 한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나라의 국운을 부흥시킬 목적으로 천불천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도선국사는 한반도의 지형을 배가 바다 위를 항해하는 형세로 보았는데, 그가 전라도 화순에 천불천탑을 세운 것은 비보진압(裨補鎭壓), 즉 허한 곳을 채우고 강한 곳을 눌러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진다.
산속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보이는 아담한 한옥 건물은 운주사 문화관광안내소다. 이곳에선 운주사를 비롯해서 전남 화순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재와 관광명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oint 01일주문
관리사무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운주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네 개의 기둥에 기와 지붕을 얹은 일주문이 나타난다. 보통의 절들은 일주문을 최대한 웅장하고 크게 짓는데, 운주사의 일주문은 오히려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미션포토존 미션
소박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운주사의 일주문 앞에서 오늘 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어보자!
안내운주사와 일주문
일주문에 걸린 편액에는 영귀산운주사(靈龜山雲住寺)라고 쓰여 있는데, 영귀산이란 운주사가 자리잡고 있는 천불산(千佛山)을 뜻한다. 산이 거북이 모양이라고 해서 신령스러운 거북이(靈龜)라는 별명이 붙었다. 운주사만의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경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찰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천왕문(天王門)도, 사천왕상(四天王像)도 없다. 격식과 법도를 벗어나 자유로움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운주사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Point 029층 석탑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거대한 석탑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물 제796호로 지정된 9층 석탑이다. 이 탑은 고려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운주사에 현존하는 탑 중 가장 높다. 9층 석탑은 여러 모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다른 석탑들과 차이점을 보이는데, 우선 탑을 받치는 별도의 석판 대신 자연 그대로의 암반 위에 탑을 세웠다는 점이 돋보인다. 탑의 각 층마다 마름모꼴 무늬를 조각하고 그 안에 연꽃문양을 새겨 넣은 점도 특이하다.
운주사에는 9층 석탑 외에도 총 17 개의 석탑이 남아있다. 천 개의 탑이 었었다고 전해지는 과거의 위상만큼은 아니지만, 17개의 탑은 제각기 다른 형태와 개성을 갖추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높은 암반위에 세워져 있는 "수직문칠층석탑", 돌을 둥글둥글한 원형으로 깎아 쌓아 올린 "원형 다층석탑"도 볼만하지만 거대한 자연석을 제멋대로 쌓아 올려 만든" 거지탑"이야 말로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는 개성 있는 볼거리다.
안내운주사의 문화재
운주사는 다양한 보물과 사적, 각종 유형문화재를 보유한 우리 역사의 보물창고다. 운주사 전체가 사적 제 3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보물 제 796호 구층석탑을 비롯해서, 보물 제 797호 석조불감, 제 798호 원형 다층석탑 등 수많은 석탑과 불상이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미션신비한 문양 찾기
운주사의 석탑에는 각각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아이와 함께 다음과 같은 문양을 찾아 사진을 찍자!(다양한 문양들을 더 찾아도 좋다)
안내석탑의 미스터리
운주사의 석탑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일관된 특징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탑신 곳곳에 ◈,x,xx,△,○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모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문양들은 무슨 이유로 새겨 넣은 것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현재로선 밝혀진 것이 없다.
Point 03석조 불감
9층 석탑과 바로 뒤에 있는 7층 석탑을 지나면 돌로 만든 직사각형 구조물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석불을 만나게 된다. 운주사의 대표적인 석불이자, 보물 제 797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불감(石造佛龕)이다.
운주사에는 석조 불감을 중심으로 80여 개에 달하는 석불들이 보존되어 있다. 석조불감이나 와불, 마애 여래불상처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불상도 있지만 작고 아기자기한 불상들도 많다. 운주사 석불은 그 크기나 생김새가 전부 제각각인데, 다른 사찰의 석불처럼 엄숙하거나 근엄한 얼굴대신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코가 삐뚤어져 있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어떤 것은 머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다. 자세 또한 좌불, 입상, 와불에 이르기 까지 다양해서 마치 석불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미션아빠를 찾아보자
운주사에는 80여 개의 석불들이 있다. 이중에서 아빠와 닯은 석불을 찾아 함께 사진을 찍어보자!
안내석조 불감
불감은 불교의 불상이나 갖가지 안치물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건축적인 공간이다. 원래 감이라는 말이 집이나 방의 공간을 뜻하는 것으로, 건물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간을 뜻한다.
화순 운주사 석조 불감은 운주사 경내의 남북으로 형성된 길쭉한 골짜기 가운데 평지에 자리한 석조 불감이다. 팔작지붕형태의 돌집 안에 석불좌상 두 분이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앉았다. 북쪽에 연화탑과 남쪽에 7층 석탑을 두어 각각 1탑 1금당 형식을 구현하려는 듯 금당 앞에 석탑을 배치하는 기본적인 가람 배치 형식을 따른 모습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능성현 불우조(佛宇條)에 "운주사 천불산...(중략)... 또 석실이 있으니 두 석불이 서로 등지고 앉아 있다 [雲住寺 千佛山...(중략)...又有石室 二石佛相背而坐]"고 언급한 기록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가 유독 불감 내의 상배불에 주목하였다는 것은, 상배불이 수많은 석불 석탑 가운데 그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 연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디지털화순문화대전
Point 04 대웅전
운주사는 선조30년(1597년)에 발발한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페찰되는 아픔을 겪었다. 천불천탑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운주사에 있는 전각들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나면, 세월의 흐름 속에 군데군데 파손된 다층석탑이 나타난다.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이자, 사찰 건축의 백미라고 손꼽힌다. 대부분의 절의 대웅전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기 마련인데, 운주사의 대웅전은 일주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규모가 작아 소박한 느낌을 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친근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 석탑, 불상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안내대웅전과 다층 석탑 전설
대웅전 앞 다층석탑은 현재 4층까지만 남아있으나, 원래 7층 크기였다고 추정된다. 이 탑은 왜 파손된 것일까? 이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이무기 한 마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느 맑은 날, 이무기 한 마리가 나타나 공사 중인 탑을 휘어 감고 올라가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크게 화를 내며 천둥벼락을 내렸고 결국 이무기와 함께 탑 일부가 부서졌다고 한다.
Point 05불사 바위와 마애여래좌상
대웅전 뒤편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산신을 모셔놓은 산신각(山神閣)과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彌勒殿)을 만날 수 있다. 산신각은 한국 사찰에만 존재하는 전각으로, 소원을 빌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곳이다.
미륵전 우측에 모여있는 석불들을 지나 산길을 올라가면, 산 정상에 놓인 집채만 한 바위를 발견할 수 있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운주사 경내와 주변 산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바위의 이름은 "불사바위"로 공사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울 때, 바로 이 바위에 앉아 운주사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공사를 지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미션아빠를 찾아보자
불사바위는 운주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아빠와 함께 올라 시진을 찍어보자!
불사바위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가다 보면 바위의 벼랑에 새겨진 거대한 부처의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운주사의 수많은 석불 중 유일한 마애불(摩崖佛 암벽에 부조, 선각의 기법으로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불상)인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다른 석불들에 비해 격식을 갖춰 만들어진 불상이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연꽃무늬가 새겨진 좌대를 두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Point 06와불
대웅전의 입구에 있는 보제루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산 정상을 향해 목조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다. "거북바위 5층석탑"과 "거북바위교차문 7층 석탑"등을 지나서 계속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와불(臥佛)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륵불의 모습을 표현한 와불은 운주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천불천탑 공사의 마지막 순서로 거대한 불상 두 개를 일으켜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했는데, 아쉽게 실패해서 그대로 와불이 되었다고 한다.
운주사의 와불은 국내에 있는 다른 와불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기가 큰데다, 파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오랜 세월 학계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크고 작은 불상이 나란히 누워있는 형상인데, 이러한 형태의 와불은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운주사 와불이 유일하다. 얼핏 보면 바위라 할 수 있겠지만, 와불도 엄연한 불상이니 그 위에 올라가는 실례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안내미륵신앙의 상징, 운주사 와불
"와불이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운주사의 와불이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예언 때문이다. 도선국사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이 예언을 통해, 와불은 민초들 사이에서 미륵신앙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륵 신앙은 미래에 도래할 부처인 미륵불을 섬기는 신앙으로 우리나라에선 신라 말기에 크게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운주사는 신라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와불은 미륵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와불은 도래할 미륵불의 화신이자 상징으로 여겨졌고,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은 와불을 신성시하며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했다.
Point 07칠성 바위와 7층 석탑
와불을 지나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가면 배치되어 있는 일곱 개의 거대한 암반과 그 옆에 오롯이 서 있는 7층 석탑을 발견하게 된다. 이 암반들을 칠성바위라고 부르는데, 7층 석탑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암반들이 북두칠성과 정확히 일치된 배치를 보인다는 것이다. 북두칠성을 구성하는 별의 밝기에 따라 암반의 크기도 달라진다. 우리 조상들이 정교한 천체 관측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상징하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운주사는 탑 하나, 바위 하나에 의미와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쌓아올린 옛 선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운주사에 감춰진 미스터리의 해답은 그 마음을 상상해보는 것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내과학관에서 만나는 칠성바위
운주사 칠성바위는 국립중앙과학관 상설전시장에서 모형으로 재연되어 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 조상들의 천제관측기술을 주제로 전시물을 만들었는데, 칠성바위 또한 포함된 것이다. 아이와 함께 국립중앙과학관을 찾는다면, 지나치지 말고 꼭 들러보도록 하자.
운주사에 있는 천불천탑 중에서 마지막인 일천 번째 석불이라는 두 와불은 한쪽은 몸집이 크고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큰 와불을 기준으로 하면, 길이 12미터에 너비 10미터인 거대한 불상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거대한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도 하고 "태평성대"가 시작된다고도 한다. 처음부터 누워 있는 형태의 와불을 만들려 한 것인지 아니면 완성된 석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해서 그대로 와불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그런 기적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와불이 누워 있는 바닥을 잠시 살펴보면, 와불이 일어나거나 혹은 와불을 일으키는 것이 매우 곤란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돌 뿌리가 깊은 거대한 바위의 윗면에 와불을 조각한 것이어서, 바위 전체를 들어내지 않고는 와불을 일으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와불이 일어서야 태평성대가 온다는데, 웬만한 기술로는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 윗면에 조각된 이 와불이 일어나기만 하면 태평성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는 걸 보면, 옛날 사람들도 태평성대 즉 평화의 도래가 그만큼 힘들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가 보다. 오늘날처럼 옛날에도 평화는 그만큼 먼 이야기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에 혼란이 없고, 백성들이 평안히 지내는 것을 태평성대라고 한다. 나라를 바꾸는 큰 뜻을 이룰 수는 없더라도, 우리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 만큼이라도 태평성대를 선물할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역사탐방을 하며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게임보드"를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탐방 자료실》에서 파일을 다운 받아 출력한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는 "역사탐방 길라잡이" 콘텐츠와 고해상도의 "게임보드"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 기획 │올댓스토리 · 글/사진 │황성식 · 그림 │홍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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