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카네티 자서전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 Die gerettete Zunge: Geschichte einer Jugend』(1977)의 저자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는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국적의 ‘독일어권’ 문학 작가이다. 영국인인 그가 왜 독일어권 작가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복잡한 그의 사정을 만나게 된다. 카네티는 1905년 불가리아의 오래된 항구도시 루세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그의 국적은 불가리아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오늘날 튀르키예)이었다. 이는 그가 당시에 루세에 살던 대부분의 스페인계 유대인들처럼 오스만 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던 스페인계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카네티 외가의 경우 친가와 마찬가지로 루세에 거주하는 스페인계 유대인 집안이었지만, 본래 이탈리아 리보느로 지역 출신으로 당시까지도 여전히 이탈리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카네티의 출신을 설명하는 데에만 불가리아, 튀르키예(오스만 제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유대인까지 국가 내지 민족의 이름이 5개나 등장한다. 이렇듯 태어날 때부터 어느 한 지역에만 속할 수 없었던 카네티의 이후 삶은 어디든 잠시 머물 뿐 정착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그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유목민적인 삶은 1911년 그가 가족과 함께 루세를 떠나 영국 맨체스터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영국으로 이주한 이듬해인 1913년 그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그는, 191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는 스위스 취리히로, 종전 후인 1921년에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1924년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 다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한다. 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는 했으나 전공 분야보다는 문학과 철학에 더욱 몰두했던 그는 빈에서 첫 장편소설 『현혹 Die Blendung』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독일어는 그의 문학어가 된다. 그러나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이후 활동이 어려워지게 되자 그는 1938년 영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1952년에 영국 국적을 취득하며, 그때까지 줄곧 체류지와는 다른 국적이었던 그가 마침내 영국에 정착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1971년, 50년 만에 어린 시절의 낙원이었던 취리히로 향하며 영국 역시 정착지가 아닌 체류지가 되고 만다. 이후 그는 1994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취리히에 살면서도 영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이방인의 삶을 이어나간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세상 취리히에서 다시 유목민의 삶을 시작한 만년의 카네티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한 기록으로 자신의 자서전 집필 작업에 몰두한다. 1977년에 자신의 인생 초기 16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제1권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그는 1980년에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아비투어(대학 입학 종합 자격시험)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작가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제2권 『귓속의 횃불 - 삶의 이야기 1921~1931 Die Fackel im Ohr. Lebensgeschichte 1921~1931』를, 1985년에는 작가로 데뷔한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제3권 『눈의 유희 - 삶의 이야기 1931~1937 Das Augenspiel. Lebensgeschichte 1931~1937』를 차례로 발표한다. 이후 자서전 출간이 중단되었다가, 카네티가 사망한 후인 2003년에 그의 영국 망명 시절 이야기가 담긴 『섬광 속의 파티 - 영국 시절 Party im Blitz. Die englischen Jahre』이 출간된다. 카네티는 원래 총 5부작으로 이루어진 자서전 시리즈를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1년 스위스 취리히로 돌아온 이후 펼쳐진 인생 마지막 시기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었던 제5권은 집필되지 못한 채 그의 이 자서전 프로젝트는 종결된다.
타인에 관한 이야기 그의 자서전 시리즈 제1권에 해당하는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에는 1905년부터 1921년까지 그가 태어난 불가리아 루세를 시작으로 영국 맨체스터, 스위스 로잔,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취리히를 배경으로 펼쳐진 그의 인생 최초 16년간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자신보다는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에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 보모, 하인,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 어머니의 친구들, 이웃 사람들, 학교 친구들, 기숙사 사람들, 학교 교사들, 자신이 읽은 책의 작가들, 자신이 좋아한 화가들, 심지어는 그의 기숙사 방에 걸려 있는 달력에 나오는 위인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타인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한 ‘혜성의 출현’, ‘타이태닉호의 침몰’, ‘스콧 선장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의 사망 사건’,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등 그가 어린 시절에 겪은 세상을 뒤흔든 사건들에 관한 에피소드들 역시 굵직굵직한 이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사건에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예를 들어 ‘혜성의 출현’ 에피소드에서는 그 혜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종말론적 집단 공황 상태가, ‘타이태닉호의 침몰’ 에피소드에서는 이 사고로 인해 집단 우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전쟁 발발’ 에피소드에서는 전쟁을 찬양하는 이들의 집단 광기의 면면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는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은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80번으로 출간되었다.번역가, 상명대학교 독일어권지역학전공 교수, 1979년생
역서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