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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대 영화

전설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 전설의 주먹

‘뻔하다’는 상투가 아니고 원형이어야 한다.영화 [전설의 주먹]
뻔하다. 새로움이 없다는 얘기다. 하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것을 조금 비틀고,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고 표현할 뿐이다. 문화와 예술이란 것이 다 그렇다. 더구나 영화는 대중예술이다. 대중의 정서를 배반할 수 없다.
영화에서 대중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배반이나 전복이 아니다. 카타르시스이고, 판타지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타인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나를 비추고, 그것으로 내 아픔과 슬픔을 잠시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영화는 공감을 주어야 한다. 공감은 어디서 오는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에서 온다. 그래서 영화는 뻔해야 한다. 뻔하지 않은 영화는 불편하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플롯과 스토리, 주인공의 성격이 모두 비슷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뻔하다'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미국 영화학자 로버트 맥기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상투적'과 '원형적'으로 구분했다. 상투적이란 그 내용이 협소하고, 그 내용을 특수한 문화적 경험으로 제한한 후 낡고 몰개성적인 일반성으로 포장한 것이다. 내용과 형식이 빈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와 세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뻔하다'는 여기에 속한다. 인물, 사건, 구성, 결론이 정형화된 수많은 아류작들이 그렇다.
그러나 '뻔하다'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원형적'이란 의미의 '뻔하다'는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부를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담아 표현한다. 상투성을 배제하고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발견하게 하고, 생활의 현실을 조명해주며, 가공의 현실을 살아보게 만든다. 이런 '뻔한' 것을 영화가 가지고 있을 때 관객들은 공감한다. 종착지는 '사우적'인 영화와 같을지 몰라도 가는 길은 자기만의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 영화《전설의 주먹》 포스터
《전설의 주먹》은 이종규 글과 이윤균 그림의 웹툰이 원작인 강우석 감독의 영화다. 강우석으로는 만화의 영화화가 두 번째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첫 작품인 《이끼》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원작의 차이다. 《이끼》는 만화의 특성인 상징과 과장과 은유가 독특한 이미지로 표현된 수작이다. 캐릭터도, 사건도 독특하다. 그것이 스릴러란 장르와 어울러 묘한 매력을 풍겼다. 《전설의 주먹》도 과장과 은유가 넘쳐난다. 어둡다는 공통점도 있다. 학교에서의 물리적 폭력, 그것만큼이나 끔찍하고 무서운 사회에서의 다양한 폭력에 대한 비판과 풍자도 있다.

결정적 차이는 "언어"다. 《전설의 주먹》에는 새로운 언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다른 만화(웹툰)를 통해 이미 읽은 언어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살벌하고, 미디어는 오로지 자기 잇속만 챙기고, 세상은 팍팍하며, 꿈을 잃어버린 중년 남성의 삶은 고달프다. 비록 과장되긴 했지만 나의 현실이고, 추억이고, 욕망이며, 경험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과 외침마다 공감하지는 않는다.

《전설의 주먹》은 고교시절 유명한 세 싸움꾼의 이야기다. 영화가 만화에서의 직업이나 이름을 살짝 바꾼 것은 중요하지도, 새로운 변주도 아니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영화대로 한다면 임덕규(황정민)는 아마추어 복싱 국가대표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꿈이었고, 이상훈(유준상)은 발차기가 명수로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벌 2세인 급우 손진호(정웅인)의 뒤치다꺼리나 해주는 같은 학교 친구다.
그리고 신재석(윤제문)은 우연히 그들과 싸움을 한 후 우정을 쌓게 된 이웃학교의 '짱'이다. 이들이 25년이 흐른 뒤 한 자리에서 만난다. 그것도 어느 TV의 격투기 쇼 프로그램에서다. 영화는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중년이 된 그들의 삶은 초라하고, 어긋나 있다. 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국숫집을 운영하는 임덕규는 여고생인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견디다 못해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보상비가 필요해졌다. 조직폭력배 두목의 유혹에 넘어가 고교시절 살인을 하고 소년원에 갔다 온 신재석은 지금도 그의 밑에서 삼류건달로 살고 있다. 이상훈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은 급우가 저지르는 온갖 사고를 처리하는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를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다.
△ 영화《전설의 주먹》의 주인공 상훈과 덕규
영화는 이런 그들이 다시 만나 멋지게 한번 싸움을 벌일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학창시절 꾸었던 꿈일 수도 있고, 그 꿈이 좌절된 초라한 현실에 대한 울분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영화는 관객들이 중년의 그들이 휘두르는 주먹과 발길질에서 연민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일상과 현실의 굴레에서 과감히 탈출해 정글 같은 링에서 서로 맞붙을 때 중년들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 《전설의 주먹》은 연민도, 카타르시스에도 실패했다. '뻔하다'가 원형이 아닌 상투였기 때문이다.
《전설의 주먹》에는 두 가지 상투의 '뻔하다'가 존재한다. 하나는 강우석이고, 또 하나는 원작이다. 강우석의 풍자와 웃음, 감동은 직설적이다. 마치 내뻗는 스트레이트 주먹처럼 그의 직설은 강하고 힘이 있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세상 사람들이 용기가 없어 주저하거나, 미처 행동에 옮기기 전에 한 발 앞서 영화로 대신해 준다. 그런 점에서 강우석의 영화는 굉장히 사회적이다. 강우석은 그런 자기만의 방식과 감각으로 성공했다. 《실미도》가 그랬고, 《공공의 적》이 그랬다. 그러나 그만큼의 실패도 있었다. 《생과부 위자료청구소송》, 《한반도》가 말해주고 있다. 용기와 타이밍은 좋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고 오로지 소재와 사회적 풍자에 직설적으로 매달린 결과일 것이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아 그 자신 두렵게 여겼던 스릴러 《이끼》가 새롭고 돋보인 작품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전설의 주먹》 역시 그의 세상을 읽는 그의 직감과 타이밍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초라한 중년의 꿈과 우정과 삶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이며, 그것을 원시성이 질펀한 주먹으로 하는 것이 영화로서도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전설의 주먹》은 만화로도, 영화로도 그리 매력적인 소재는 아니다. 학창시절의 주먹질과 패싸움의 우정은 이미 영화 《친구》가 '원형'의 전설이 됐고, 중년의 꿈의 부활도 영화 《즐거운 인생》이 이미 거쳐 갔다. 물론 강우석 감독이 하면 우정도, 꿈도 다르다. 그는 강하니까.
그러나 《전설의 주먹》은 오히려 강함보다 부드러움, 직설보다는 은유와 상징이 필요했다. 원작의 이미지도 강하고, 소재(격투기)도 강하기 때문에 강함에 강함이 더하면 관객들의 감정도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만 강우석은 강함만을 고집했다. 그의 운명이고, 《전설의 주먹》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 운명에 짓눌려 심지어 격투기 장면을 중계하는 사회자와 해설자의 캐릭터와 풍자조차 웃음을 잃고 말았다. 《투캅스》에서 보여주었던 강우석 식 날카로우면서도 유머감각 넘치는 기발한 풍자가 그의 영화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극과 영상의 구성 또한 원작만큼이나 상투적이다. 격투기 무대와 진행, 분위기는 케이블 TV의 것을 요란하게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고, 극의 구성은 요즘 유행하는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것이 없다. 승부조작을 위한 음모의 과정과 결정적인 순간 그것을 멋지게 망가뜨리는 임덕규와 신재석의 반전 또한 관객들이 익히 예상하고, 이미 알고 있는 방식이다. 그래서 감동적이지 않다. 마지막 임덕규와 딸의 화해, 세 친구의 우정의 결합도 마찬가지다.
풍자의 소재와 대상 또한 얼마나 뻔한가. 방송의 선정주의, 시청률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디어의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전설의 주먹》은 쇼 프로그램의 여성PD까지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 하나로만 밀고 갔다. 그것은 다른 영화에서처럼 나중에 뻔한 휴머니즘으로 돌아서는 상투성만큼이나 불편하다. 모 재벌그룹 총수를 풍자한 야구방망이로 부하직원 때리는 장면이나 재벌의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 광고로 신문사 편집국장을 협박해 기사를 빼는 장면도 풍자라기보다는 직설적인 비판이다.
만화와 영화는 다르다. 만화는 사진처럼 그림 한 장으로 추억을 불러내기도 하고, 과장되고 직설적인 사회풍자도 유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한 장의 사진으로 살아있는 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고, 풍자에 재치를 집어넣어야 한다. 《전설의 주먹》은 그 '뻔한 것'을 놓쳤다. 전설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복싱 챔피언의 꿈이 눈 앞에서 좌절된 지금은 혼자서 딸을 키우는 국수집 사장 임덕규. 카리스마 하나로 일대를 평정했던 지금은 출세를 위해 자존심까지 내팽개친 대기업 부장 이상훈 남서울고 독종으로 불렸던 지금도 일등을 꿈꾸지만 여전히 샴류 건달인 신재석.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건 세 친구의 뜨거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전설의 주먹 책표지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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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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