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는 바다에 간 적이 없답니다.
소라게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풍경은 작은 문방구입니다. 그곳에서 소라게는 지폐 한 장과 바꿔져 소년의 방에 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소라게가 귀찮아진 소년은 가족끼리 바닷가로 여행을 나온 날 소라게를 물병에 넣고 해변에 버렸습니다.
소라게는 마냥 좋았습니다. 문방구나 소년의 방과 다르게 해변의 풍경은 환상적이었거든요. 하지만 소라게는 해변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세상과 소라게 사이에는 언제나 투명한 벽이 길을 막고 있었으니까요.
“오늘도 하루가 시작됐어.”
소라게는 넓은 돌에 누웠습니다. 소라게의 하루는 해변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넓게 펼쳐진 바다는 평온했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습니다. 소라게는 나른해서 자꾸만 눈이 감겼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구름 쪼가리 같은 하얀 새가 날아왔습니다. 대부분의 새들이 무리 지어 다니지만 그 새는 혼자였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소라게는 그 새를 유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하늘을 빙빙 돌던 새가 갑자기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소라게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동안 봤던 새 중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새는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바다에 떨어진 새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라게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잠잠하던 바다가 요동쳤습니다. 파도는 소라게와 물병을 잡아먹으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밀려왔습니다. 놀란 소라게는 소라껍질에 몸을 숨기고 집게로 소라껍질의 입구를 굳게 막았습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소라게는 눈만 빼꼼 내밀었습니다. 물병과 소라게는 안전했습니다. 소라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콜록콜록, 어디선가 기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라게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물병 옆에서 흠뻑 젖은 하얀 새가 기침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하늘에서 바다로 빠진 새가 틀림없었습니다. 하얀 새는 젖은 깃털을 부르르 털고 다시 바다로 향했습니다.
소라게는 하얀 새가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저기, 괜찮은 거야?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던데.”
하얀 새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라게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다 보고 있었어?”
하얀 새는 씩 웃으며 가슴을 폈습니다.
“보다시피 나는 멀쩡해. 기러기 중에서도 유별나게 튼튼하거든.”
“넌 기러기구나. 난 소라게야. 새들은 무리 지어 다니던데 너는 왜 혼자 다니는 거야?”
“그게, 이야기가 좀 긴데 말이지.”
“듣고 싶어.”
“정말? 흠흠, 며칠 전에 먼 동쪽 나라를 여행하다가 커다란 고래를 만났어. 고래에게 나의 여행담을 자랑했는데 고래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바다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으니 바다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말이지. 혼자서라도 여행하는 중이야. 그러고 보니 너도 바다에서 왔겠구나. 어때, 바다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지?”
“바다가 뭔데?”
“바다는 바로 앞에 있잖아!”
“저 커다란 물웅덩이를 말이야? 나는 갈 수 없어. 내 앞은 투명한 벽이 막고 있거든.”
“내가 도와줄게.”
기러기는 고개를 한껏 치켜세우고 투명한 병을 부리로 쪼았습니다. 그때마다 물병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물병 안의 모래와 자갈들이 통통 튀어 올랐습니다. 소라게는 겁에 질려 소라껍질 안으로 숨었습니다.
“그만!”
소라게의 외침에 기러기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지 마. 난 여기가 좋아.”
“그곳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여기에 있으면 안전해. 찬바람이 들어오지도 않고 파도에 휩쓸리지도 않아. 난 여기에 있을래.”
“아쉽네. 바다를 가보면 마음이 바뀔 텐데.”
기러기는 총총걸음으로 바다로 향했습니다. 소라게는 조심히 몸을 빼고 바깥을 봤습니다. 기러기는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를 보며 왠지 모르게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다시금 커다란 파도가 쳤고 기러기가 밀려왔습니다. 기러기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워?”
“엄청나. 하늘을 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야. 하지만 아쉬워. 난 그냥 엿보는 정도인걸. 깊이 들어갈 수도 없고 바닷속 친구들과 말할 수도 없어.”
“그리고?”
“내 이야기가 궁금해?”
“응. 무척 재밌는걸.”
“다른 친구들은 내가 이야기하면 항상 재미없고 지루해했는데. 혹시 내 지난 여행들은 궁금하지 않아?”
“다 듣고 싶어!”
이후 소라게와 기러기는 같이 지냈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파도에 휩쓸려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때마다 기러기가 이야기 한 보따리를 풀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늘에 커다란 먹구름이 빽빽하고 바다가 크게 울렁였습니다. 쿠르릉 소리가 들리고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기러기는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비를 처음 본 소라게는 겁을 먹고 소라껍질 안으로 숨었습니다. 소라껍질이 있어서 다행이야. 소라게는 안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라게는 기러기가 걱정이 됐습니다. 기러기는 소라껍질도, 투명한 벽도 없었으니까요. 소라게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런 소라게를 보고 기러기는 까르르 웃었습니다.
“이건 그냥 빗물이야. 겁먹지 마.”
소라게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빗방울이 물병에 떨어지면 경쾌한 소리가, 자갈에 떨어지면 둔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라껍질에 떨어지면 가슴에서 커다란 고동소리가 울렸습니다.
“비를 맞고 있으면 기분 좋지 않아? 바다에 들어가면 이것보다 열배는 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
소라게는 비를 맞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밤하늘의 달은 실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밤 달은 눈을 활짝 떠 크고 환했습니다. 언제나 바다를 보며 지낸 소라게는 달이 커질수록 바다가 가까워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렇게 커다란 달이 뜨면 내일은 바다가 코앞까지 다가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라게는 기러기와 지내는 일상이 즐거웠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해준 이야기들을 직접 여행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똑같은 하루가 이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이 왔습니다. 달을 보면서 자신의 날개를 크게 펼쳐본 기러기가 말했습니다.
“난 이제 떠날 거야.”
소라게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로 갈 건데?”
“글쎄.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면 여기에 남으면 안 돼?”
소라게는 기러기가 남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 너무 좋은 걸.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한참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참을 수 없어.”
고마워. 덕분에 즐거웠어. 마지막 감사 인사를 남기고 기러기가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났습니다.
기러기는 앞으로도 많은 곳을 여행하겠죠. 시원한 바람을 타고 먼 동쪽과 남쪽의 끝까지 닿을 겁니다. 그곳에는 어떤 친구들이 있을까요. 언젠가 소라게가 기러기를 다시 만난다면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소라게는 멍하니 바다를 봤습니다. 평소와 똑같은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보기 힘들었습니다. 소라게는 소라껍질로 들어가 눈을 감았습니다.
소라게는 꿈을 꿨습니다. 물병에서 벗어난 소라게는 파도를 타고 작은 섬을 오갔고 하늘에서 구름 사이를 여행했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탁 막혔습니다. 소라껍질은 점점 작아지더니 소라게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라게는 비명을 지르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에서 깬 소라게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직도 꿈속에 있는 줄 착각했습니다. 온통 파란색인 풍경이 넘실댔거든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소라게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다였습니다. 어젯밤 커다란 달이 떴기 때문에 바다는 이렇게 눈높이 까지 차올라 투명한 벽을 에워싼 것입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말해주던 바다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돌은 알록달록해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줄무늬 물고기들의 지느러미는 매혹적이었고 수면을 날카롭게 가르는 햇빛은 또 얼마나 멋있었는지요. 소라게는 상상했습니다. 저 돌을 기어오르고 물고기와 대화하며 바다를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요. 그러다 무심코 소라게는 집게를 뻗었습니다.
툭, 소라게의 집게가 투명한 벽에 막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라게와 세상 사이에는 언제나 투명한 벽이 있었습니다. 소라게는 투명한 벽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소라게가 투명한 벽 그 자체를 응시하자 아름다운 풍경만을 보여주던 투명한 벽은 낯선 누군가를 보여주었습니다.
투명한 벽에서 소라게가 보였습니다. 집게는 작았고 소라껍질은 투박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소라게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투명한 벽은 소라게에게 너는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그치는 것 같았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저 바다는 얼마나 시원할까요. 문어 아저씨의 먹물은 밤하늘만큼이나 진할까요. 말미잘이라는 친구는 얼마나 까칠할까요. 새우의 등은 얼마나 휘어있을까요. 소라게는 몸의 갑갑함 때문에 숨이 막혔습니다.
소라게는 언제나처럼 소라껍질로 몸을 숨겼습니다. 갑갑함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빗방울을 처음 맞았던 때처럼 심장이 크게 쿵쿵거렸습니다. 과연 소라게는 이 갑갑함을 참을 수 있을까요.
“아니. 나는 참을 수 없어. 더 넓은 세계로, 기러기가 말해준 바다로 가겠어.”
소라게는 다시금 투명한 벽 앞에 섰습니다. 투명한 벽을 오르기에는 소라껍질이 무거웠습니다. 소라게는 망설임 없이 소라껍질을 벗어냈습니다. 그동안 가려졌던 가늘고 약한 몸이 드러났습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소라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걸요.
물병은 미끄러웠고 소라게는 몇 번이나 오르고 떨어졌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라게가 벗어놓은 소라껍질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라게는 다시금 바다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습니다.
소라게가 물병의 작은 구멍을 빠져나온 건 다음 날의 아침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반겨준 것은 시원한 바람, 그리고 소라껍질에서 들었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소라게는 한참동안이나 상쾌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소라게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기러기의 말대로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퐁당-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라게는 바다로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