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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의 풍경

오락실에서 모바일게임까지


근대 예술의 풍경 : 오락실에서 모바일게임까지 근대 예술의 풍경 : 오락실에서 모바일게임까지

SUMMARY

추억의 콤퓨타 게임장
1950년대 초, 아케이드게임의 유입
386PC, 조립PC

추억의 콤퓨타 게임장

지난해 말 늦은 밤 귀가하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40대 아버지와 학원 마치고 함께 귀가하던 중학생 딸의 대화를 들으며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아버지에게 딸이 이렇게 지적한다.

“아빠, 게임 좀 그만해!”

순간, 내가 잘 못 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부녀간을 지켜보니, 모바일게임에 빠져있는 아버지를 질책하는 중학생 딸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이제는 40~50대 중장년층까지도 모바일게임이 일상화되었는데, 실제 그들이 바로 1980년대 오락실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세대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 70~80년대 동네 골목마다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며 놀던 다양한 놀이문화가 있었고, 그런 놀이문화의 몇 가지가 신기하게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그려져 전 세계에 한국의 골목놀이 문화를 진지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학원과 과외가 거의 없던 당시,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오프라인 놀이문화가 슬며시 오락실로 바뀌게 된 시기가 80년대 초반이다.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가정경제가 여유로워지면서 부모들로부터 받은 용돈의 주요 사용처는 오락실이 되었고, 지금으로 보면 아주 열악하지만 큰 모니터에 탁구게임과 갤러그를 프로처럼 잘 하던 친구들이 많았다.

1950년대 초, 아케이드게임의 유입

이러한 오락실, 즉, 아케이드게임으로 불리는 거대한 게임기가 아시아에 소개된 것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일본에 만들어진 미군 휴양소로부터 유입되었다고 전해진다. 본래 주크박스와 당구장 정도였던 미군 휴양소의 유흥문화가 미국에서 개발된 초기 아케이드게임기의 대량생산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었고, 이후, 1960년대 동경올림픽 이후, 일본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된 아케이드 게임기가 부산항을 경유, 1970년대 말 국내에 소개되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국내에서는 아동 및 청소년들이 오락실의 주 고객이 되면서 전자오락게임은 우리의 일상과 친근해지는 시간을 갖게 된다.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 이외에도 지방 중소도시 어디나 오락실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성황을 맞아, 갤러그, 제비우스, 인베이더 등의 게임들이 청소년들의 동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오락실 아케이드게임을 거치면서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수입된 비디오게임, 일명 콘솔게임세대가 아파트문화를 중심으로 확대된다. 닌텐도(Nintendo)와 세가(SEGA)로 양분되던 초기 콘솔게임 시대, 소니가 만든 일제 대형TV에 연결된 콘솔 플랫폼에 종이팩으로 만든 게임팩을 꽂게 되면, 오락실보다 더 화려하고 더 큰 화면의 게임이 펼쳐졌다. 다양한 형태의 조이스틱으로 집에서 혼자 콘솔게임을 즐기던 당시 중산층 가정의 소년소녀들은 이후 2010년대에 결혼하면서 신혼집 필수전자제품으로 게임플랫폼을 구매하는 본격적인 게임 일상화 세대가 된다. 그러한 콘솔게임은 이후 닌텐도 Wii, 소니 Playstation, 마이크로소프트 X-Box 등으로 3파전이 구축되며, 지금의 아파트 거실을 가족용 게임기로 계속 진화하며 점령하고 있다.

386PC, 조립PC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의 유입과 아래한글 등 워드프로그램의 대중화는 386PC로 불리는 조립PC를 퍼스널컴퓨터라는 개념으로 저렴하게 구입하는 1인 1PC시대를 가져왔다. 이때 조립PC를 구매하면 끼워팔기로 함께 주던 PC게임이 전화선을 통해서만 PC통신을 할 수 있었던 당시 세대들에게는 가성비 높은 게임이었다. 특히 벤처붐과 함께 우후죽순 창업한 PC게임 개발사들은 신규 제품을 발표하자마자 3개월 만에 저렴하게 등장하는 불법복제 상품들로 어려움을 겪다 도산하게 되었고, 결국 ‘스타크래프트’ 등의 네트워크게임을 경유해, 온라인게임이 디지털게임의 가장 중심이 되기 시작한다. 머드(MUD)게임에서 시작된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머그(MUG)게임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앞서는 온라인 MMORPG로 세계시장을 선도하게 된다. 실제 온라인게임의 게임엔진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만든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만들었던 회사에 국내 게임잡지 기자가 취재하러 가서, 당시 그 회사 모든 직원들을 스타크래프트로 평정했다는 전설이 회자된다. 그만큼 우리는 게임을 잘하는 민족이다. 현재 세계적인 e-스포츠의 전설과 스타들이 거의 한국선수들이며, 프로구단운영과 글로벌 셀럽들의 약진으로 한국은 e-스포츠의 성지가 되고 있다.

카카오톡으로 무료메시지와 무료통화 서비스를 익숙하게 사용하던 소비자들은 카카오톡의 진정한 수익모델의 등장을 ‘애니팡’, ‘쿠키런’, ‘모두의 마블’에서 이해하게 된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지인들의 정보가 카카오톡으로 연동되면서 그들과의 게임랭킹 경쟁이 ‘하트’라는 게임머니를 서로 보내주면서 시작된다. 이후 유료로 게임머니를 구매해야 하는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초기 적자를 면치 못하던 카카오톡은 바로 흑자 전환되는 골든크로스를 맞게 된다. 결국 카카오 역시 게임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전환하며 다양한 서비스를 네트워크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오락실 아케이드게임과 콘솔게임에서 인기 있었던 우주선 혹은 전투기 조정 시뮬레이션 게임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게이머가 우리에게 있다면, 그를 최고의 조종사로 공군에서 스카웃해야 한다는 농담을 이제는 실제로 고민해봐야 할 시기이다. 현재 모든 군대의 전술 운영전략이 장난감 완구처럼 하늘에 날리던 드론에서 시작되어 무인전투기, 무인구축함, 무인잠수함, 2족 및 4족 이동로봇 등으로 진화하면서, 후방에서 전투현장의 드론과 로봇을 조정하는 전문가들의 워게임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그동안 아케이드게임, 콘솔게임, PC게임, 네트워크게임, 온라인게임, 그리고 모바일게임에서 선도적으로 육성해왔던 천재 프로게이머들을 이제는 미래의 사이버전사로 재배치해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시간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래서 지금의 디지털게임 산업은 현실의 가장 힙한 가상경제이며, 우리의 미래 비전일 수 있다.

한창완
글 / 한창완

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만화애니메이션텍전공 교수, 1967년생

저서
『한국만화산업연구』 『애니메이션경제학』 『게임플랫폼과 콘텐츠 진화』
『웹툰비즈니스 딜레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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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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