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동양고전-리더의 자격] 백락일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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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
당대의 문장가요 시인인 한유(韓愈)는 「잡설(雜設)」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옛날에 손양(孫陽)이라는 자가 말을 잘 알아봤기 때문에 그를 백락이라고 했다. 천리마가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백락이 없다면, 하찮은 주인을 만나 천대받고 혹사당하다가 결국에는 허름한 마구간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하여 천리마라고 불러주는 자가 없을 것이다. 천리마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통 말 이하의 능력밖에는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그를 알아주는 현명한 군주나 재상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천리마는 백락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고, 현명한 인재는 현명한 군주가 있음으로 해서 있게 된다는 말이다.
천리마 삽화
과연 한유의 말이 맞는가.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오자서(伍子胥)가 지략이 뛰어났지만 오왕(吳王)은 그를 처형했고, 공자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광(匡)땅의 사람들은 그를 억류했으며, 관중(管仲)은 진실로 현명했지만 노(魯)나라는 그를 죄인으로 취급했던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이들이 현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들의 인물됨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 왕의 어리석음 탓이다.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군주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군주에게 말을 하게 되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며, 끝내 다른 사람의 잘못을 헐뜯는 비열한 자로 취급 받든지 재앙이 닥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인물을 알아보는 경우도 생긴다.
쟁기질하던 농부인 이윤이 뛰어난 지혜로 훌륭한 성군을 설득하기 위해 일흔 번이나 유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자신이 몸소 솥과 도마를 들고 가 요리사가 되어 친해지고 나서야, 탕왕은 비로소 그의 현명함을 알고 요직에 등용했던 것은 이윤의 인물 됨을 알아본 능력 때문이다.
다음 말을 보자.
“용모로써 사람을 취한다면 나는 자우에게 실수했다. 以貌取人, 失之子羽. “사기「유후세가」
사마천이 공자의 탄식을 인용하여 한 말이다. 장량의 능력이 그의 곱상한 외모에 비해 과소평가될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기 위해 20여년 동안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료를 직접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장량의 화상(畵像)을 보게 되었는데 얼굴 생김새가 여자처럼 예뻤다. 장량 정도의 계책을 세울만한 자는 관상학적으로도 심원한 내공이 얼굴에 스며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사마천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우는 공자보다 서른아홉 살 아래다. 그는 못생겨서 공자는 그가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오인했다. 그러나 그는 가르침을 받은 뒤 물러나면 덕행을 닦는 일에 힘썼으며, 길을 갈 때는 절대로 사잇길로 가지 않았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경대부(卿大夫)들을 만나지 않았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만 해도 300명이나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인재를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평원군(平原君)의 밑에 식객(食客)으로 있던 모수(毛遂)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평원군이 3년 여라는 무명식객에서 일거에 스스로 자신을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고 자천하여 다른 19명의 식객을 무색하게 만들어 혼자 공을 세우고 돌아왔을 때 평원군이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고른 선비는 많다면 천 명이 될 것이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했다.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명의 군사보다도 강했다[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그러고는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원군이 자신의 잘못된 인재관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있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충북 보은에서 출생하여 조부로부터 한학을 익혔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중국고전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만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 방문학자와 중국 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방문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논어], [손자병법], [한비자], [정관정요] 등 굵직한 고전 원전 번역을 통해 고전의 한국화, 현대화에 기여해왔으며, SK그룹, 롯데그룹, 한국능률협회, 현대 리더스포럼, 한경아카데미 CEO 특강, 한국인간개발 연구원, 휴넷, KBS라디오, 한국경제TV, 오마이 뉴스TV 등 주요 공공기관과 대학 및 기업에서 인문학 강연을 했다. 현재 KBS라디오(대전)의 ‘김원중의 사기열전’. 그리고 [동아일보]에 매일 ‘한자로 읽는 고전’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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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2-10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