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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맘&차이&테페의 나라, 터키

 

타맘&차이&테페의 나라, 터키타맘&차이&테페의 나라, 터키

SUMMARY

■ 터키의 그랜드 캐니언
■ 숨은 명소, 술탄 갈대밭
■ 타맘에서 타맘으로

에르지예스산, 봉긋한 육감적 형태의 알리산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에 소재한 카이세리(Kayseri)는 해발 1,054m의 고원이면서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도시다. 이곳에는 터키에서 세 번째로 높은 에르지예스산(해발 3,916m)이 있다. 이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카이세리에 도착한 8월 말 에르지예스산은 잘 닦은 청동처럼 말간 모습이었다. 이상 기후 때문에 언젠가부터 여름이면 눈이 녹아 연중 만년설을 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에르지예스산과 함께 눈길을 끈 것은 봉긋한 육감적 형태의 알리산이었다. 나는 에르지예스산과 알리산을 번갈아 보며 내가 묵을 외국인 교원 숙소(Demir Karamancı Bilim Sitesi)로 향했다. 2층 건물 총 10동으로 구성된 외국인교원 숙소에는 한 동에 6가구가 산다. 나는 2층 중앙 호실에서 지냈는데, 형제나라에서 온 손님을 반기는 듯 숙소 앞 버드나무에 흰 까치가 둥지를 쳤다.

사진1. 에르지예스산
사진1. 에르지예스산

에르지예스대학 한국어문학과

나는 2017년 8월 두 번째 연구년을 터키 카이세리의 에르지예스대학에서 보냈다. 2004년에는 미국 미주리 컬럼비아대학(Univ. of Missouri-Columbia, MU)에서 1차 연구년을 보냈으므로 유럽지역으로 가려 생각하던 차, 마침 소설가 손홍규 군이 에르지예스대학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소설 『이슬람정육점』에 6·25에 참전했다 한국에 남은 터키인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을 에르지예스대학 한국어문학과의 괵셀(Gölsel Trüközu)교수가 번역하였고, 작가를 직접 대학에 초청한 인연이 있다는 거였다. 또 앙카라대학 한국어문학과 KF(Korea Foundation)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괵셀 교수와 친분을 쌓은 동국대 김성주 교수도 적극 추천하여, 두 사람의 도움으로 괵셀교수와 연락이 닿아 1년간 Visiting Scholar 신분으로 온 것이다. 고맙게도 대학에서 외국인교원 숙소를 제공해주었고, 나는 몇 차례 특강을 하기로 약속했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교량적 위치를 점하고 있어 고대 동양 문화, 고대 그리스·로마 및 초기 기독교 문화뿐만 아니라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두루 견학할 수 있다. 또 터키에서는 값싸고 편하게 유럽 여행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데다, 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겨 매우 우호적이라는 것, 그리고 에르지예스대학에 한국어문학과가 개설되어 있다는 점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터키에 온 것이다.

에르지예스대학은 부지 5,047,630㎡(153만 평, 서울대 57만 평의 약 2.7배), 19개 단과대학, 총 445개 학과 45,000명의 학생과 5,000여 명의 교직원으로 구성된 국립대학으로 터키에서 두 번째로 한국어문학과를 개설(2000년 학과 설립, 2003년 9월 첫 신입생 입학)하였다. 한국어문학과는 주야간반 재학생 약 4백 명에 대학원 석박사과정이 개설되어 터키에서 제일 큰 규모로 성장하였다. 학과에서는 2004년 5월 ‘한국문화의 날’ 행사를 시작하여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한국문학번역원의 협조를 받아 한국의 작가·시인을 초청해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주고 있다. 지금까지 초청된 작가·시인은 이문열·공선옥·진정석·함정임·손홍규·천양희·황석영·안도현 등으로, 함정임은 이곳에서 몇 달 체류하기도 했다.

사진2. 카이세리 성
사진2. 카이세리 성

아랍 ver. 하몽, 파스트르마

카이세리는 셀주크 시대 유적이 남아 있는 상업도시로, 지형과 기온은 한국의 대구와 비슷하지만 사람들 기질은 개성과 유사하다. 이곳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땐 무조건 반액을 깎고 흥정을 시작하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다. 이곳 특산물로는 소고기에 향신료를 발라 말린 파스트르마(pastirma)와 쇠고기 소시지 수죽(sucuk), 그리고 작은 만두(manti)가 유명하다. 파스트르마는 스페인의 하몽(jamon)과 비교할 수 있는데, 돼지고기를 안 먹는 아랍 식문화관습이 반영된 특산품이다. 카이세리는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인데도 여름에는 햇볕이 따갑고, 겨울에도 큰 추위는 없다(이건 한국인의 느낌이고, 이곳 사람들은 매우 춥다고 한다). 다만 한여름 저녁이나 새벽에도 홑이불을 끌어 덮을 정도로 선선하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발이 빠질 만큼 수북하게 쌓이나 신기하게도 금방 녹는다.

사진3. 파스트르마 수죽 가게
사진3. 파스트르마 수죽 가게

화산 폭발과 대지진이 빚은 카파도키아의 경관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한국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다. 약 3백만 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 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기이한 모양의 암석군락을 이루었는데, 바위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생활한 옛사람들의 흔적, 특히 초기 기독교 프레스코 벽화 등이 남아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아쉽게도 바위 속 벽화는 상당 부분 훼손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검은 교회(Black Church)’에는 거의 온전한 형태의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 있다.

사진4. 검은 교회의 벽화
사진4. 검은 교회의 벽화

나는 터키에 있는 동안 카파도키아에 다섯 번 갔다. 처음에는 카이세리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혼자 갔는데, 버스에는 차(Çay)와 사탕을 나눠주는 차장(여성도 있으나 대부분 남성)이 있어 이채로웠고, 운전기사는 창문을 열어놓은 채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댄다. 이곳에서 느낀 것이지만, 터키인은 담배를 무척 즐긴다. 여성들도 대학 캠퍼스나 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청소년들도 카페에서 물담배를 피울 정도다.

혼자 카파도키아에 가서 괴레메 야외박물관 등을 본 다음 날, 호텔 체크아웃을 하며 사장에게 러브 밸리 입구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호텔에서 십여 분 차를 달려 나를 내려준 곳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아무런 표지도 없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 순간 당황했다.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지여서 사람들이 북적댈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무조건 계곡 아래로 향해 내려갔다. 걷다 보면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하지만 한 시간 넘게 길을 걷는 동안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혹시 산적이라도 만날까 두려워하며 발길을 재촉하느라 주변 경관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간혹 보이는 야생포도와 사과, 갖가지 기괴한 모양의 바위를 완상할 여유도 없이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으며 그냥 앞으로만 걸었다. 한 시간 넘게 걸었을까,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려 찾아보니 자전거 하이킹을 온 몇 사람이 멀리 보였다.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계곡 안에서는 불통이던 스마트폰도 터져 무스타파군과 통화하여 그가 알려주는 대로 괴레메 정류장까지 걸었다.

사진5. 열기구에서 본 카파도키아
사진5. 열기구에서 본 카파도키아

터키의 그랜드 캐니언, 으흘랄라 계곡

사진6. 으흘랄라 시냇물, 사진7. 계곡에 남아있는 으흘랄라 수도원의 흔적

카파도키아 부근에는 지하도시 데린쿠유(Derinkuyu), 으흘랄라 계곡(Ihlara Vadisi), 술탄 갈대밭 등 볼만한 절경이 많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데린쿠유까지는 보지만 으흘랄라 계곡이나 술탄 갈대밭은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친다. ‘따뜻한 물이 흐른다’란 뜻을 가진 ‘으흘랄라(Ihlara)’ 계곡은 에르지예스산이 분화하면서 생성된 화성암이 침식되어 만들어진 총 16km의 협곡으로, ‘터키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불린다. 이 계곡을 횡단하기는 쉽지 않다. 총 길이도 걷기에는 만만치 않으려니와, 자차 이용자는 짧지 않은 거리를 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 입구의 계단을 내려가면,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중간중간에 초기 기독교 수사들이 생활하던 동굴 수도원의 흔적이 보인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외에는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고즈넉한 계곡길을 걷다 보면 이곳이 글이나 그림에서만 보던 별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8. 술탄 갈대밭
사진8. 술탄 갈대밭

숨은 명소, 술탄 갈대밭

술탄 갈대밭은 터키의 국립공원이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다. 널찍한 들판에 전망대도 갖춰놓고 승마도 할 수 있으나, 숙박업소(음식점 겸업)는 한 군데뿐이다. 철새가 도래할 시기에는 유럽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온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이곳에 세 번을 갔는데, 고등학교 동창들과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갔음에도 끝내 찾지 못하고 되돌아와 미안했다. 일반 관광객을 위한 목교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아내와 나는 나룻배 한 척을 계약해 갈대숲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갈대숲 사이의 물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는 나룻배는 우리를 생명의 시원으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갈대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드넓은 호수(Yay Lake, 너비 20㎢, 깊이 2m)가 펼쳐졌고, 거기서 멀리 바라뵈는 에르지예스산은 카이세리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매력과 웅장함으로 다가왔다. 철새떼의 비상과 착륙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첨단 문명세계에서 갑자기 원시공간으로 이동한 체험은 특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야이 호수는 민물생태계와 염수생태계가 공존하며 두루미·플라밍고·백로·저어새가 함께 부화하는 특이한 호수로, 여름에는 바닥이 말라 소금이 형성된다. 이 호수에 서식하는 천연 식물 428종 가운데 48종이 고유종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카파도키아, 으흘랄라 계곡, 술탄 갈대밭은 카이세리에서 승용차로 2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외에도 카이세리 부근에는 괼테페(Gül tepe), 미말 시난(Mimar Sinan) 태생지 등 볼만한 곳이 많다. 미말 시난은 오스만제국 시대의 건축가로(Mimar이 ‘건축가’란 뜻이다), 모스크 건축에서 커다란 돔과 첨탑을 특징으로 하는 오스만 건축 양식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9. 에페스의 고대 로마 유적, 사진10. 하투샤 부조

터키의 대표적 관광지는 물론 이스탄불이다. 그곳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지중해쪽으로 가면 안탈라야(Antalya), 이즈미르(Izmir), 카쉬 등 휴양지, 고대 로마 유적을 볼 수 있는 에페스(Efes)와 파묵칼레(Pamukkale)·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있다. 이곳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과 달리, 앙카라 인근이나 흑해 지역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 인근(200km 이내 거리)에는 힛타이트 시대 유적이 남아 있는 하투샤(Hattusa), 오스만제국 건축물을 보고 그곳에서 묵을 수 있는 사프란볼루(Safranbolu) 등이 있고, 흑해 지역의 트라브존(Trabzon)과 국경 너머 조지아의 바툼(Batum) 여행도 해볼 만하다. 트라브존에서 버스로 두어 시간 달려 터키-조지아 국경을 넘던 짜릿한 긴장, 조지아 바툼에서의 짧지만 인상 깊었던 여정도 새삼 그립다.

사진11. 조지아의 바툼
사진11. 조지아의 바툼

터키에서 1년 남짓 체류하는 동안 ‘타맘(Tamam)’과 ‘차이(Çay)’란 말을 제일 많이 듣고, 썼다. ‘타맘’은 ‘좋다, 완전하다’란 뜻의 단어로 터키인들의 대화는 ‘타맘’에서 시작해 ‘타맘’으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터키말이 서툰 나도 대충 눈치를 보아 ‘타맘’이라고 하면 웬만한 소통이 이루어질 정도다. 부정적인 단어로는 ‘없다’란 의미의 ‘욕(yok)’이 있는데, 말로 하기 싫거나 귀찮으면 혀를 짧게 ‘쯧’하고 찬다. 그게 바로 ‘없다’거나 ‘안 된다’는 뜻이다. ‘타맘’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터키인의 여유롭고 낙관적인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차이’는 터키 차를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하루에 20 ~ 30잔을 마신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제일 먼저 권하는 게 ‘차이’이고, 터키식 커피는 차이에 비해 훨씬 융성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소와 양고기, 그리고 요구르트와 치즈를 주식으로 하는 이들의 식습관, 그리고 석회질이 많은 물 때문에 차를 많이 마시는 모양이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테페(Tepe, 언덕)’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되거니와, 대부분의 고대 유물이 테페에 있다. 이곳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괴베클리테페(Göbekli tepe, 배불뚝이 언덕)라고 하는 터키 남동쪽 샨르우르파의 고대 유적지였다. 기원전 9,600년 신석기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괴테클리테페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보다 무려 7,000년 이상 앞선 인류 최초의 문명지다. 하지만 이곳은 시리아와 접전 중인 동부지역이어서 외국인 여행은 어렵다고 한다. 에르지예스대학의 아이든 씨(Aydn Bay)가 자기 휴가를 내서라도 데려다주겠다는 후의를 보였으나, 후일을 기약하고 귀국했다.

2021년 11월

석 달 전에 정년퇴직을 한 나는 에르지예스대학에 다시 왔다. 4년 전의 방문학자와는 다른 신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러 온 것이다. 최근 〈기생충〉·〈미나리〉·〈오징 어게임〉 등 영상물이 세계적 호평을 받으며 한류의 인기가 더욱 상승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의 음악, 음식, 복식, 영화, 드라마에 이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징어게임〉을 본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독특한 서사 방식에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느꼈다고 하거니와, 그들이 한국의 서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때를 대비해 한국문학의 독특한 매력과 특징이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 정리해 적극적으로 알릴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터키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의 개성과 재미를 알려주는 한편, 터키 서사를 공부할 것이다. 그리고 4년 전에 가보지 못한 터키의 여러 지역을 다닐 꿈에 부풀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어 유럽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일은 가외의 즐거움이 될 터이다.

장영우
글 / 장영우

평론가,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956년생

저서
『이태준소설연구』『중용의 글쓰기』『거울과 벽』『연기의 시학』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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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5-1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