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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의 우연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알코올과 카페인의 싸움

한 모금의 우연 : 맥주와 커피 한 모금의 우연 : 맥주와 커피

술이 물을 대신하던 오래 전 유럽. 석회질이 많고 수질이 나빠서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었던 유럽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맥주를 마셨다. 특히, 독일은 아침을 맥주 수프로 시작하여 늘상 맥주가 함께 했다. 언제나 취해 있을 수 밖에 없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커피가 나타났다. 맥주가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그 순간 매우 당황하지 않았을까. 이번 화에서는 맥주가 지배하던 세상에 커피가 끼어들게 된 역사를 소개한다.

술이 물을 대신하던 오래 전 유럽. 석회질이 많고 수질이 나빠서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었던 유럽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맥주를 마셨다. 특히, 독일은 아침을 맥주 수프로 시작하여 늘상 맥주가 함께 했다. 언제나 취해 있을 수 밖에 없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커피가 나타났다. 맥주가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그 순간 매우 당황하지 않았을까. 이번 화에서는 맥주가 지배하던 세상에 커피가 끼어들게 된 역사를 소개한다.

유럽 전역에 정착해있던
맥주를 향한 커피의 도전

한 모금의 우연 : 중세 양조 수도사의 모습

중세 양조 수도사의 모습

중세 유럽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덩치가 꽤나 큰 편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양분이 많은 맥주와 맥주 수프를 얼마나 섭취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맥주는 제조과정에서 끓이는 덕분에 안심하고 마실 수 있었고, 원료 중 하나인 홉은 방부효과가 있어서 장기간 보존도 가능했다. 때문에, 물을 대신할 수 있었고, 빵 다음으로 영양을 섭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일상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처럼, 맥주는 커피가 유럽으로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유럽 전역에 정착해 있었다. 그런데 17세기 후반, 커피가 유럽에 등장한 것이다. 오스만투루크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을 두 번이나 포위하고 공격했는데, 그 두 번째 포위전을 기점으로 오스트리아에 커피가 보급되고 유럽으로 확산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제2화 ‘전쟁과 커피’ 참고)

당시의 커피 문화가 반영된
바흐의 명곡, 커피 칸타타

한 모금의 우연 : 전쟁으로 인한 인류 이동의 역사와 함께한 커피

‘커피 칸타타’를 발표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

맥주소비가 가장 많았던 시대, 15~17세기 사이에 사람들은 맥주를 요즘처럼 일반 술집에서만 마시지는 않았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맥아 및 양조 제조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주로 마셨다. 맥주가 일상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 그대로 시민들의 일상은 맥주와 함께였다. 맥주의 세력은 포도주까지 규제하게 했고, 포도나무조차 뽑혀가고 있을 당시, 커피와 맥주의 싸움은 가망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늘 취해 있는 사람들, 살을 찌게 하고 신경을 둔하게 하면서 대부분의 끝은 흥분과 폭력적이게 하는 알코올에 비해 커피는 마시면 술이 깨고, 취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커피는 사람들을 깨어 있게 했고, 그렇게 신세계를 제공하게 되었다. 바흐의 명곡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의 내용처럼, 커피 없이 못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고, 18세기 후반 들어 커피 소비는 과거에 없이 증가했다.

‘커피 금지령’이라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험한 선택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금지령’을 내린 프리드리히 대왕(1712~1786)

‘커피 금지령’을 내린 프리드리히 대왕(1712~1786)

결국, 1777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커피를 금지하고 맥주를 장려하는 ‘맥주커피령’을 내린다. 독일인의 강한 민족성은 국산 맥주에서 길러졌다며, 커피를 마시지 말고 맥주를 마시라고 장려했다. 보스톤 차 사건 때 차를 마시면 불법으로 규정하고, 차 대신 커피를 마셔야 애국자라고 한 미국처럼 말이다.

“짐의 백성들이 커피를 많이 마신다니 한심하기 그지 없도다. 병사들은 그 동안 맥주를 마시고 전쟁터에 나가 수없이 싸워 승리했다. 짐은 커피를 마시는 병사를 신뢰할 수 없노라.” - 스튜어트 리 앨런 저 <커피 견문록(2005)> 중에서

‘커피 금지령’을 내린 프리드리히 대왕이지만, 정작 본인은 커피에 샴페인을 섞어 같이 마셨다고 할 정도로 커피를 즐겼다. 단지 네덜란드에서 수입되는 커피로 인해 거금이 유출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커피 냄새를 찾는 직군까지 만들어가며 소비를 규제하고 억압하기 시작했다.

진짜 커피를 원하는
서민들의 욕구에 무릎을 꿇다

커피에 독이 있다고 거짓 소문을 내도 커피소비는 늘어만 갔기 때문에 독일은 커피를 대신하는 가짜 커피(대용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치커리의 쓴맛에서 힌트를 얻어 우선 치커리 커피가 만들어졌고, 맥아, 호밀, 땅콩, 도토리 등의 각종 열매와 맥주의 원료 홉으로도 커피를 만들었다. 급기야는 해초로 만든 커피까지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이후 오랫동안 ‘독일커피’ 하면 ‘대용커피(가짜 커피)’를 가리키게 되었다. 아무리 대용커피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도 진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서민의 욕구는 채우지 못했다.

아무리 구하기 힘들고 비싸더라도 사람들은 ‘진짜 커피’를 원했고, 이를 묽게 마시는 길을 택했다.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도 서민들로부터 커피를 완전히 빼앗지 못했고, 이어서 유럽을 장악한 나폴레옹 또한 대륙봉쇄령으로 커피를 완전히 차단하는 우를 범하여 퇴각하게 되었다. (제1화 ‘나폴레옹과 커피’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것이다

한 모금의 우연
시간이 흘러 커피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자연스레 흘러 들어갔고, 민주화가 가속화되고, 노예제도도 사라졌다(라고 개인적으로 커피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커피를 한 번도 안 마신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시는 사람은 없다.”

커피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서 커피를 빼앗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커피에 관한 네거티브 정보가 기사와 뉴스에 종종 등장한다. 의학적, 지정학적, 경제적 이유를 들어 커피가 어떻다고 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나온 인류의 역사가 그랬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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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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