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서는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보급품으로커피를 지급하여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이번 화에서는 전쟁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화에서는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보급품으로 커피를 지급하여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번 화에서는 전쟁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지참했던 ‘에너지 볼’의 정체
커피에 관한 이야기 중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나 잠을 깨고 싶을 때, 주로 찾는 것은 액체로 된 커피지만 인류 최초의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분쇄한 커피가루를 동물기름(버터)과 섞어 둥글게 반죽한 덩어리 형태였다고 한다. 그냥 씹고 뱉었는지, 덩어리를 떼어내어 물에 끓여 마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커피 덩어리’의 용도는 호전적이었던 민족이 전쟁에 나갈 때 전투력 향상을 위해 지참했던, ‘에너지 볼’이었다고 한다.
전투에 활용된 이 에너지 볼과 함께 기원전 2~3세기 에티오피아에서는 부족간 전투를 앞두고 전사들의 힘과 정신을 북돋우려고 전쟁을 위한 ‘커피의식’을 치렀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의식이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라는 관습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기원 전부터 커피는 이미 인류의 전쟁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커피 세레모니 (분나 마프라트)
전쟁으로 인한 인류 이동의 역사와 함께한 커피
커피는 원래 숲 속에 자생했던 식물이었고, 이를 채취해 의식에 쓰거나 전쟁에 사용하거나 했었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가 고향인 커피나무가 어떻게 최초로 예맨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최근 알려진 바로는 그 계기 역시 전쟁(분쟁)으로 인한 인류 이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7세기경 이슬람교가 부흥하면서 기독교 국가인 악숨왕국이 에티오피아 서남부로 밀려 왔고, 해당 지역을 침략하면서 원주민을 노예로 끌고 갔다. 그곳이 바로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커피 자생지였다.
한편 이슬람교도들도 상업을 목적으로 에티오피아에 건너간 것이 기록에 남아 있으나, 최대의 수출품은 ‘노예’였고 이때 많은 에티오피아인이 예맨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그들이 노예였기 때문이었는지 커피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2017년 출판된 <커피의 세계사(탄베 유키히로)>에 따르면, 이렇게 거대한 사람들의 이동이 있은 이후 15세기 예맨에 커피에 관한 기록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커피 재배가 처음 시작된 곳’ 모카 하라에 관해서는 ‘14세기경에 에티오피아 끝에서 하라산지까지 사향 고양이에 의해 커피콩이 운반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하라는 초두에 소개한 14세기 악숨왕국의 침략으로 주민학살이 일어났던 에티오피아 서남부의 마을과 아주 가깝다. 서남부에서의 충돌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지대로 이동하여, 고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커피를 재배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배설물에 의한 식물군의 이동이라면, 사향 고양이거나 혹은 사람이거나 할 수 있을 테니까.
커피콩을 운반했다고 알려진 사향 고양이
세계의 전쟁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 커피의 존재
오스만 제국이 1536년 예맨을 점령하면서 커피는 일반인에게 급속하게 퍼졌다. 졸음을 쫓는 각성효과와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듯한 작용 때문에 군인들에게도 지급되었는데, 이로서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수많은 나라에도 커피가 전해지게 되었다. 덤으로, 오스만제국이 빈을 침공하고 일으킨 전투에서 폴란드가 가세함으로 쫓기듯 떠나오게 된 오스만제국이 남긴 커피생두를 콜시츠키라는 군인이 활용하여 커피하우스를 열게 되었는데 이것이 ‘블루 보틀(blue bottle)’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18세기,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8년에 걸친 전쟁 끝에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때 미국은 차를 마시지 않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애국적 임무라고 인식시켰다. 영국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에서 비롯된 전쟁이었지만 결국, 커피가 미국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미국은 커피를 더욱 즐겨 마시게 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80여 년이 지난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때 링컨은 남부군지역의 항구를 봉쇄하여 커피를 완전히 차단시켰고, 남부군은 커피를 대신할 차를 찾아야만 했다. 허브나 야생풀 등으로 차를 만들어 마셨다고는 하지만, 커피의 효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임에 분명하다. 커피 때문에 남부군이 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100여 년이 흘러 한국전쟁 때 미군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전해졌다. 물에 넣으면 잘 녹아 그대로 마실 수 있게 된 인스턴트 커피는 한국인들에게 향긋하고 달달한(둘둘하나- 아는 사람만 아는) 문명의 상징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동서식품이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과 분말크림을 함께 넣은 믹스커피를 개발했는데, 저렴하고 간편하면서 맛있는 믹스커피는 전쟁 같은 불경기 속에 국민적 음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커피가 사라지는 일이 생길까?
전쟁 속에서는 활력소로, 때로는 전쟁의 직간접적 원인으로, 혹은 빼앗김으로써 생기는 불만과 억제됨을 극복하려는 투지로 이어지게 하는 원흉(!)으로, 커피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 오늘날까지 흘러왔다. 여담이지만 커피를 국가가 금지했던 사건 중에서 전쟁보다도 더 강력했던 것은 이스탄불에서였는데, 발각되면 무조건 사형이었다. 약간 느슨해진 이후에도 한번 걸리면 곤장, 두 번째는 역시 마대자루에 넣어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팬 후에 자루째로 바다에 버리는 처형제도도 있었다.
커피 마셨다고 죽어야 하다니, 안 마시고 말지 싶겠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못 마시게 했을 때 더 죽기 살기로 지키고 싶었던 것이 커피였다. 5,000년 이상의 역사 속의 인류의 행태(!)를 봤을 때 절대로 커피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커피가 사랑받는 요즘, 정치적이든 어떠한 이유로든 금지령까지 가는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글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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