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바의 말랑한 철학타임

사랑과 이별

사랑과 이별 편 (12월 크리스마스 & 마지막편) 사랑과 이별 편 (12월 크리스마스 & 마지막편)

‘크리스마스 이별’ 이라는 단어가 있다. 에리조나 대학의 모스 교수는,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을 기점으로 1주일 전후에
평소보다 연인들이 헤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기대감이 과도하게 높아져
다툼이 잦아지고, 그로 인해 이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순간의 감정으로 이별까지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그보다는 지난 일여 년 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쌓인 감정의 골이, 크리스마스라는 행사를 기점으로 터져 나온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별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이별의 슬픔에 붙잡혀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레드

옐로우.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했어? 핑크에게 서프라이즈 파티 해 준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잖아.

옐로우

아니. 안 했어. 나…. 핑크와 헤어졌어.

레드

뭐? 어쩌다가! 그래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었구나.

옐로우

에휴. 내가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려고 핑크에게 크리스마스 날 다른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거든. 그랬더니 화를 내더라고! 아니, 내가 진짜 다른 사람하고 약속을 잡았던 게 아니라고 구구절절 해명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더라고. 그런데 레드. 넌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레드

내가 올해 내내 이직 준비한 거 알지? 결국 안 됐어.

옐로우

넌 꿈하고 이별한 셈이구나…. 어휴. 우울한 연말이 되겠어. 대체 이별이 뭐기에,
사람을 이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걸까? 아무도 없는 깊은 숲 속으로 떠나고 싶은 심정이야.

레드

『월든』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말이야?

옐로우

그래. 그러고 보니 소로가 그런 말을 했어. 사랑을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이별을 경험하고 보니 그 말이 새롭게 들려. 당장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도 힘든데 어떻게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거지? 이해가 잘 안 돼.

레드

그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도 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뜻이야. 소로가 이런 말을 했어. “그대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려보라. 그대의 마음 속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1000개의 지역을 만나게 되리니. 그곳들을 여행하고 자신이라는 우주의 전문가가 돼라.” 고.

옐로우

말은 쉽지. 내 감정을 다스리기도 벅찬 걸. 핑크한테 거짓말을 하지 말고 함께 이벤트를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내 잘못은 없다는 태도를 버리고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자꾸 후회가 된단 말이야. 레드 넌 어때? 계속 열심히 이직 준비 해 왔잖아. 이직에 실패한 자기 자신이 밉지 않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레드

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 프레젠테이션에 실패했을 때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거든. 하지만 옐로우. 넌 이미 네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 아냐? 핑크한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고 반성하고 있잖아.

옐로우

…그러네. 생각해보면 말이야. 후회하는 건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친다는 뜻이잖아. 후회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아냐?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 뉘우칠 수도 없는 걸.

레드

후회나 반성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단어인 것 같지만, 긍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부정인 거구나.

옐로우

그러면 나를 더 사랑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레드

옐로우. 넌 일단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소로가 말했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핑크에게 사과하러 가는 게 어때?

옐로우

…사과해도 안 받아주면? 그럼 진짜 끝이잖아.

레드

그러면 뭐 어때? 네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잖아. 후회를 남기지 않게 할 수 있는 걸 모두 하면, 그때야말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도 언제까지 실패의 장면만 곱씹지 말고, 그때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봐야겠어. 다음번에 기회가 왔을 때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말이야.

옐로우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시가 생각나네. [이별은 미의 창조.] 만남은 이별 뒤에 오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으며, 꽃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과 절망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라는 시 말이야.

레드

새롭게 만나기 위해 보낼 것은 기꺼이 보내기로 하자, 사물도, 인연도, 시절도!

옐로우

좋았어. 올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야겠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레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크리스마스엔 케이크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송구영신(送舊迎新). 지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12월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모임으로 들뜬 분위기가 이어지는 달이다.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마음 따뜻한 풍경이지만 동시에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진심으로 한 해를 함께해서 고마운 마음이 아닌,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연락이 많을수록 그렇다.
또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인연이나 일에 대한 강박관념이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스트레스에 삼켜지지 않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작별할 것과 작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 해를 보내는 것은, 이미 이별한 연인을 보내는 것과 닮은 행위인 것이다.
글/ 범유진
2020년 에세이 『뉴욕52번가 하수구의 철학자 라바』 작가
2020년 경기 유망작가 선발
2012년 창비 신인문학상 수상 - 단편 청소년소설 『왕따나무』
소설 『맛깔스럽게 도시락부』,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 『영웅학교를 구하라』, 『먹방왕을 노려라』 作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21-12-24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