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인사이더> 제8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소설에 관한 수많은 신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작중인물들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여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어요.”

이것은 얼마간 진실이다. 테마, 캐릭터, 플롯, 톤 앤드 매너. 소설의 판이 짜이면 판 위의 말들은 알아서 움직인다. 하지만 말들이 판의 씨줄과 날줄 밖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자기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작중인물이 무엇을 갈망할지 무엇을 두려워할지 정하는 건 누구인가. 자유의지로 포장된 작중인물의 의도 역시 작가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결말을 정해두고 쓰시나요?”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 다음으로 자주 듣는 질문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봐야 알아요.”

나도 소설가지만 소설가들 말은 믿는 게 아니다. 소설에 관한 얘기라면 더더욱. 마감을 어긴 적이 없듯 결말을 정해두지 않고 쓴 적은 없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완전범죄를 꿈꾸는 확신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결말은커녕 다음 단락에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예측 불가였다.

마지막 수업마다 수강생들에게 작별 인사 대신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지금까지 여기서 이러쿵저러쿵했던 말은 깨끗이 잊어버리세요. 창작이라는 망망대해를 두 팔로 가르는 동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에요. 오른팔 다음엔 왼팔, 왼팔 다음엔 오른팔로 수면을 쉼 없이 움켜쥐는 수밖에. 물살이 빠져나가던 손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는 순간까지.”

인사치레용 멘트가 절실해지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은 누구보다 나, 소설가 황유목에게 절실한 조언이었다. 소설 한 줄 안 써지는 소설가, 흉사, 그물. 실화처럼 실감 나던 극적 디테일들이 언제부턴가 빛이 바랬다. 창조 씨 원고를 읽은 뒤부터였다. 아오야마 맨션, 수챗구멍에서 올라오는 목소리. 녹음되지 않는 외국어. 이상했다. 실화라며 지어낸 정교한 소설은 점점 시시해지고 소설로 포장한 조악한 경험담은 자꾸 곱씹게 되다니. 곱씹을수록 진짜처럼 생생해지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집필에 한참 열을 올려도 모자랄 판에 깜박이는 커서만 바라보던 몇 달 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물이라는 회심의 디테일을 어떻게 활용할지, 빈칸이 넓고 깊었다. 그 자리에 비문투성이 미완성 원고가 똬리를 틀었다. 궁금증을 부추기는 데만 혈안이 된 이야기의 결말이 못내 궁금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죠.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봐야 알겠어요.”

결말이 어찌 되느냐고 물었을 때도 창조 씨는 내가 한 말만 되읊었다.

몇 가지씩이나. 결말이 고민이라면 실패한 소설이다. 씨앗에는 꽃의 향기도 열매의 빛깔도 다 담겨 있다. 첫 문장의 가짓수는 무한대지만 이어질 문장의 수는 첫 문장마다 정해져 있다. 두번째 문장의 선택지는 첫 문장을 빼야 하니 n-1, 세 번째 문장은 앞선 두 문장을 빼야 하니 n-2. 어떤 문장이 첫머리에 오든 맨 마지막에 올 수 있는 문장은 하나뿐이다.

소설이 무슨 야바위인가. 여럿 중에 하나 골라잡는 결말이야 볼 것도 없다고 코웃음 치면서도 휴대폰을 만지다 보면 어느새 창조 씨 인스타그램이었다. 문제의 소설이 거기 연재되기라도 하듯. 새 게시물은 번번이 인싸 취향이라는 필터로 그럴싸하게 보정된 일상이었지만.

*

#생각그네 #작가의이면

창조 씨 인스타그램에 방금 올라온 게시물의 해시태그였다. 두 문구를 보고도 그네에 몸을 맡긴 사진 속 뒷모습이 나라고 상상도 못 했다. 3단 철봉이 덩그러니 서 있는 모래밭 놀이터가 우리 아파트 단지와 비슷하다고 느꼈을 뿐. 한참 위에서 당겨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그네에서 튕기듯 일어나 몸을 돌렸다. 설마 창조 씨가? 내 집이 있는 동에 창조 씨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창조 씨에게 전화했다. 마지막 수업 이후 연락하기는 처음이었다.

“요즘은 인스타도 열심히 하시나 봐요?”

창조 씨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디에요?”

“저는 작가님 보이는데.”

“어딘데요?”

“내려가고 있어요.”

역광 탓에 아파트 건물은 검은 벽 같았다.

손차양을 하고서야 공동 현관 안쪽에서 손을 흔드는 희끄무레한 실루엣이 보였다.

“사흘밖에 안 지냈지만 흉사 얘기에도 작가님이 이사를 강행한 이유를 알겠어요. 놀이터마다 아이 하나 없는 게 피리 부는 사나이를 배신한 마을 같네요. 이야기 본능을 자극한달까요. 어디 가서 이만한 작업실을 구하겠어요.”

그러면서 창조 씨는 두 발로 모래 바닥을 힘차게 박찼다. 창조 씨가 타자고 한 시소였다. 벤치 대신 시소에 앉자고 고집했다. 나는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손잡이를 잡았다. 창조 씨 말은 과장이었다. 조용한 단지이긴 했지만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는 이유는 놀이터가 구식인 탓이었다.

“왜 하필 여기죠?”

“놀라셨나요? 그럼, 성공했네요. 플롯의 핵심은 의외성이다.”

창조 씨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개연성이란 실제로 벌어진 불가능한 일보다 불가능하지만 일어남 직한 일에 있다.”

일부러 엇박자를 놓는 건가. 창조 씨는 여전히 소설 얘기였다. 그것도 수업 시간에 내가 곧잘 인용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속 한 구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작업실은 몇 혼데요?”

“601호요.”

사다리차 소리가 들렸던가. 바로 아래층이었다. 갑자기 등줄기에 선득한 기운이 돌았다. 차 옆구리를 들이받히면 이런 기분일까. 벤틀리가 주차장 기둥 너머로 불쑥 나타난 순간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내 팬이고 내 창작 수업을 수강하고 내 아랫집으로 이사 올 거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작가님은요?”

“701호잖아요. 알고 온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내가 발을 굴려 위로 올라갔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하는 법이라지만 현실에서 벌어진 일까지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봐야 했을까. 이사도 창작 수업 수강도 작중인물의 갈망이 녹아 있는 필연적 행동. 접촉 사고라는 엄청난 우연조차 우연으로 넘기지 말았어야 했나.

“정말요? 월세로 나온 집이 거기뿐이었는데. 놀라운 우연이네요.”

“소설 같은 건 왜 쓰려는 거예요, 다 가진 사람이?”

나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구부정하게 쭈그려 앉은 창조 씨를 내려다보았다. 말해봐. 당신이 갈망하는 건 뭐야? 손에 넣지 못할까 봐 두려운 건 뭐야? 작중인물이 가슴 깊숙이 감춘 갈망과 두려움을 끄집어내려면 한계점 너머로 밀어붙여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빠뜨려야 한다. 그것은 항의와 야유의 외침이기도 했다. 사자도 배가 차면 사냥을 멈춘다. 다 가진 자가, 모든 걸 거머쥔 자가 왜 소설까지 쓰려는 것이냐.

“전에 얘기했잖아요.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격렬하면서 고요한……”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요.”

나는 비문을 지적하는 선생의 어조로 말했다.

동그래진 눈, 벌어진 입. 당황한 표정도 상처받은 얼굴도 아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미처 깨치지 못한 단어에 부딪힌 아이 같았다. 백지장처럼 무구한 표정.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텅 빈 눈빛.

창조 씨가 첫 수업에서 그린 자화상이 떠올랐다. 한 면은 검게 칠하고 다른 한 면은 백지 상태로 둔. 나는 왜 검은 쪽이 내적 자화상, 창조 씨의 내면이라고 단정했을까. 반대일 수도 있지 않나. 검게 칠한 면이 외면이고 백지가 내면인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텅 비어 있는 내면.

갑자기 시소 저편의 천진한 아이 같은 존재가 두려웠다.

“나도 작가님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창조 씨가 땅을 박차고 올라 나를 끌어내리며 물었다. 정말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아웃사이더』는 왜 그렇게 끝냈어요?”

“무슨 소리예요?”

일본식 표현 어쩌고 지적하더니 이젠 엔딩 타령인가. 엉뚱한 소리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출한 진위를 찾아내면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진위가 낯선 도시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의 교복을 훔쳐 입고, 주인공의 이름을 가슴에 단 채로.”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혼잣말하듯 뇌까려서는 아니었다. 까맣게 잊힌 일이었다. 아니, 간절히 잊고 싶었다. 조건부 당선 전화에 포기한 오리지널 엔딩이라면.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결말 때문에 마지막까지 망설였다고 하시네요. 1등 자리를 되찾은 주인공이 여전히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도 난해한데 열등감을 안겨준 장본인마저 열등감이라니, 선뜻 공감이 안 된다. 전문가들도 난해하다니 일반 독자들은 어떻게 읽을지 걱정이에요. 작위적 결말이라는 지적도 있었고.”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가 선택은 자유라고 강조했지만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원고 수정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결말이 바뀌면 주제도 바뀐다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버티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 대신 언제까지 고쳐야 하는지 묻고 말았다.

창조 씨는 어떻게 떠올렸을까,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내 기억에서조차 모자이크 처리된 결말을?

태양을 등지고 나를 굽어보는 시소 저편의 희끄무레한 존재는 승천하는 천사 같기도 추락하는 작은 악마 같기도 했다. 내 저주받은 데뷔작 『아웃사이더』의 전학생처럼. 자기소개 끝에 반 아이들이 노래, 노래, 하고 소리쳤을 때 기다렸다는 듯 전학생은 노래를 시작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생뚱맞게도 가곡이었다. 텃새 어린 야유와 휘파람이 날아들었지만 전학생은 마지막 소절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첫 시험에서 반 1등을 내주기도 전에 주인공은 직감했다. 닮고 싶으면서도 파괴하고 싶은 대상, 한순간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존재.

그러고 보니 전학생이 신고식으로 부른 노래는 「비목」이었다. 비목회도 거기서 따온 걸까.

나야말로 묻고 싶었다.

너는 누구냐?

초연한 전학생의 눈빛으로 나를 건너다보는 너는 대체 누구냐?

*

노트북 앞에 앉기 직전 나는 머리를 감는다. 세례식을 하듯 대야에 머리를 푹 담근 채로 오래오래 감는다. 글을 쓰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라면 의식이다. 수챗구멍에 걸린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집어내며 귀를 갖다 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오야마 맨션 303호가 아니라 내 집 욕실 수챗구멍에. 창조 씨가 들어앉은 아랫집으로 연결된 검은 구멍에. 그러고 있으면 해독되기를 바라는 어떤 문장들이 올라올 것처럼.

원고 마감을 넘긴 건 데뷔 이래 처음이었다.

“마감 기계도 이런 날이 있네요.”

걱정보다 신기해하는 담당 편집자의 반응에 더 속이 쓰렸다.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해도 펑크 한 번 안 내고 칼같이 마감을 지키는 걸로 버텨온 나였다. 내게는 원고의 완성도보다 마감을 지키는 일이 더 절박했다. 마감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그때가 바로 소설을 접을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기에.

다 창조 씨 때문이었다. 죽었던 책이 되살아난 기적도, 복권 같은 연재 기회도, 안 써지던 소설을 다시 쓰게 된 것도, 그 소설이 벽에 부딪힌 것도 창조 씨 탓이었다. 창조 씨, 창조 씨, 오! 나의 창조 씨, 내 평생의 은인 창조 씨 소설을 본 뒤로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제목도 바꿔보고 주인공 이름도 바꿔봤지만 아예 새로 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내 소설은 스크루에 그물이 걸린 배처럼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했다. 맞다, 그물. 창조 씨라는 그물.

머리를 말리고 커피 내릴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창조 씨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면은 백지이고 한 면은 새까맣게 칠한 자화상. 그 한가운데 쌀알만 한 구멍을 냈다. 창작 수업 시간에 떠들던 말을 되새기며.

“소설은 내면이라는 우주를 들여다보는 바늘구멍이에요.”

눈동자를 구멍에 들이대고 임창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임창조라는 내면을 엿본다. 커피포트 주둥이에서 김이 올라온다. 내 마음의 끓는점. 창조 씨 첫 책에게 묻고 싶다. 너의 끓는점은 몇 도냐고. 수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간다. 날이 무뎌졌는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너무 애쓰지 않는 하루? 값싼 위로에 분노가 치민다. 아무리 애써도 글 한 줄 못 쓰는 하루하루였다. 빈 커피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원두커피를 즐기게 된 뒤로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브랜드.

블루마운틴, 아오야마, 靑山,

도쿄에서 공부하던 시절 겪은 일이라는 소리는 거짓일 수도 있었다. 거짓일 것이다. 거짓이어야 했다. 아오야마 맨션도 내 커피를 훔친 것이고 수챗구멍도 원래 내가 쓰려던 것이었다. 수챗구멍에 걸린 머리카락을 집어낼 때마다 수챗구멍이 그물처럼 보이곤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303호는 내 휴대폰 마지막 세 자리와 같았다. 창조 씨 소설 전체가 장물이었다.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이 하는 일? 그것은 도둑질이었다. 소설을 새로 쓰려고 너무 애쓸 필요 없었다. 도둑맞은 걸 되찾기만 하면 됐다.

*

좋은 결말이란 어떤 결말일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막힌 반전?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는 가슴 뭉클한 대단원?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열린 결말?

좋은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 결말이다. 완벽한 결말 같은 건 없다. 삶은 끝나는 법 없이 계속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장래희망인 소년이 커서 뭐가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 문장은 책을 덮는 순간 시작될 이야기의 첫 문장이어야 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이야기 또한 그럴 것이기에.

잊히지 않는 결말은 나쁜 결말이다. 우리를 거기에 묶어두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결말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창조 씨 소설의 결말을 확인하기 전에는 한 글자도 더 쓸 수 없었다.

나는 몇 시간째 욕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다. 수챗구멍에 귀를 댄 채. 소리가 들린다. 전에는 한 번도 들리지 않던. 소리는 모스부호처럼 이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된다. 유일하게 들리는 단어는 황유목, 분명 내 이름이다.

601호 앞이다. 두드리듯 벨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다시 눌러도 마찬가지.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손을 도어록으로 가져간다. 창조 씨 소설에서처럼 윗집 열쇠가 아랫집 열쇠구멍에 딱 들어맞으리라, 이상한 확신에 사로잡힌 채. 창조 씨가 얘기하지 않았나. 열려라 참깨라고.

내 손이 기억하는 번호들이 차례로 입력된다. 『아웃사이더』와 관련된 숫자. 소설 속 전학생 진위라면 모를 수 없는 숫자. 힌트를 더 주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한 번도 바꾸지 않은 비밀번호를 폐기하고 싶지 않으니. 과연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간다.

실내는 수챗구멍만큼 어둡고 고요하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룻바닥에 오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내 구조는 내가 사는 집과 똑같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어둠의 심부로 한 발 한 발 들어간다. 그러다 소스라치며 멈춰 선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자판을 누르는 소리. 소리의 진원지는 내가 서재로 쓰는 방이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그 빛을 마주한 채 검은 실루엣이 상체를 웅크리고 있다. 알리바이라도 만들 듯 헛기침을 해보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마른침을 삼켰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돌아 나갈까.

이젠 빠져나갈 수 없어.

잔뜩 집중하느라 활처럼 굽은 등이 속삭이는 것 같다. 내 안의 수챗구멍도 덩달아 속삭인다.

어떻게 좀 안 될까.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그러거나 말거나 타이핑 소리는 계속된다. 좀 전보다 힘차고 빠르다.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소설이 피날레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어느새 나는 창조 씨 등 뒤로 다가가고 있다. 맹수를 덮치는 그물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물은 입이 없어.

나는 눈을 부릅뜬다. 팽팽하게 펼쳐진 그물의 수많은 눈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등 너머에 결말이 있다. 본래 내 것인 결말이.

  • 김경욱 소설가
  • 작가소개

    김경욱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장편소설 『황금 사과』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제작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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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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