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인사이더> 제7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는 뭘까요?”

그것은 오늘의 합평 원고 첫 장에 휘갈긴 메모이기도 했다. 누구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어서인가. 마지막 시간까지 수강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신경은 비어 있는 한 자리만 맴돌았다. 지각 한 번 안 하던 창조 씨 자리였다. 오늘 함께 합평받기로 되어 있는 두 명은 어제저녁 6시 데드라인에 맞춰 원고 파일을 오픈 채팅방에 올렸는데 창조 씨만 감감무소식. 차마 내놓기 힘든 글이라는 말이 엄살만은 아니었던가. 소설은 아무나 쓰나, 일기 쓰듯 끄적이던 글과는 많이 다르겠지, 하면서도 나는 출입문 쪽을 연신 흘끗거렸다.

“1인칭 화자라고 다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에세이의 1인칭 화자는 이야기 바깥에 있어서 안전한 화자이고 소설의 1인칭 화자는 이야기 안에 있어서 위험한 화자예요. 에세이가 부담 없이 읽히는 이유도 남의 일 같아서죠. 안전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소설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극화된 1인칭이기에 독자들도 자기 얘기처럼 느끼죠.”

“위험한 독서네.”

누군가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경험담을 쓰더라도 극화된 1인칭이라는 필터가 있어야 해요. 화자의 내면을 발명해야 한다는 거죠. 소설가 자신보다 매혹적인 내면을.”

나는 강의 노트에 없는 말까지 떠들고 있었다. 창조 씨가 있었다면 꺼내지 못했을 말인지도 모른다. 아니, 창조 씨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얘기였다. 에세이라는 안전한 틀 안에서 마음껏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베스트셀러 작가 행세를 하고 있는 창조 씨에게.
감성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단 창조 씨 글들은 내 눈에 소설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해로울 것도 유익할 것도 없는 하얀 거짓말. 그렇다면 새까맣게 칠한 내적 자화상, 그 완전한 흑막 너머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소설을 에세이라고 발표하는 사람이라면 소설에서는 오히려 검은 가면 아래 감춘 맨얼굴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들통나지 않은 범행을 동료 죄수들에게 자랑하는 범죄자처럼.

“소설이랑 에세이를 구분하는 건 좀 올드하지 않나요?”

수강생 하나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죽이는 에세이 쓰기’ 반으로 가세요.”

나는 창조 씨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

창조 씨가 헐레벌떡 강의실에 들어선 것은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들이 막 자리를 뜬 뒤였다.

“시계가 한 시간 느린가? 4시 맞는데.”

창조 씨가 나와 똑같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두 사람 합평 끝나고 10분 넘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끝냈어요.”

“문자 못 받으셨어요? 이쯤 도착할 것 같다고 보냈는데.”

“수업 중에는 휴대폰을 꺼두거든요.”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다 말고 재킷 안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수업 시작 직전 습관적으로 끄곤 했는데 깜박한 걸까. 휴대폰이 켜져 있었다.



“한숨도 못 자고 썼는데.”

출입문을 향해 몸을 돌리는 창조 씨의 한 손에 두툼한 파일이 들려 있었다.

“합평을 마저 할까요?”

“나가시던 참 아니었어요?”

창조 씨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수업이 한 시간 남았잖아요. 왜, 독자가 너무 적나요?”

“저야 처음부터 작가님 코멘트 들으려고 등록한 걸요. 이 소설, 소설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 글의 독자는 작가님 한 명으로도 감지덕지죠.”

그러면서 A4 용지에 출력해온 소설을 내밀었다.

원고를 건네받은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물」.

아파트 베란다 창고 안쪽에서 나온 묘한 것. 창조 씨 소설 제목은 즉흥적인 거짓말로 시작된 스무고개 도중 번쩍 떠오른 단어였다. 그날 부리나케 집으로 가 파일명으로 적어 넣은 연재소설 제목이기도 했다.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창조 씨 앞에서 그물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낸 기억은 없었다. 내게 배운 발상법이 빚은 우연의 일치인가. 베란다에 서 있는 삐삐의 말처럼. 아파트 베란다와 가장 거리가 먼 무언가를 동시에 생각해낸 거라면. 영업 기밀을 너무 많이 공개했나. 백일장에 나가면 이런 기분일까. 같은 제목의 다른 글들과 곧바로 비교된다면.

나는 호기심에 더해 긴장감마저 느끼며 도입부를 읽어 내려갔다.

*

인생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차를 바꾸거나 집을 바꾼다. 차마 가족을 바꾸지는 못하니까. 하지만 살다 보면 차가 인생을 바꾸고 집이 가족을 바꿔버릴 때도 있다. 어떤 집은 가족도 인생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푸른 산이라는 뜻의 한자가 핏빛 페인트로 적혀 있던 아오야마 맨션.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담쟁이가 칠이 벗겨진 외벽을 그물처럼 감싸고 있던 그곳. 집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시절이 기억의 피안으로 떠밀려온다. 교환학생. 반년짜리 시한부 이방인으로 창백한 복숭아뼈처럼 웅크리고 지냈던 아오야마 맨션 303호에서의 하루하루. 유일한 말동무는 욕실 수챗구멍에서 올라오던 어떤 목소리였다.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로 듣고 싶지 않은 사연을 웅얼거리던 불길한 목소리.


나는 다음 단락으로 시선을 내리지 못했다.

흉사가 있었던 집…… 내 이야기를 훔쳐 쓰고 있었다니!

“작가님 말씀대로 과감하게 지르고 어떻게든 수습해보자는 마음으로 썼어요. 한 페이지 읽고 던져버리는 소설보다 끝까지 읽고 나서 바가지로 욕을 먹는 소설이 낫다.”

창조 씨가 나를 곁눈으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강의를 녹음이라도 한 건가. 수업 시간 내가 했던 말을 달달 읊었다.

불쾌했다. 흉사가 있었던 집 얘기를 새로 쓴다고 했는데 덥석 따라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따질 뻔했다. 흉사라는 테마만으로는 애매했다. “그물”이라는 제목 역시 명백한 증거는 아니었다. 과감하게 질렀다고? 에세이에서 하던 대로 겉멋만 잔뜩 부린 첫 단락이었다. 알맹이 없는 얄팍한 에피그램. SNS에 퍼 나르기 좋은 몇 줄. 이번 강좌에서는 얘기 안 하고 넘어갔던가. 포스팅하고 싶은 문장이 많은 소설은 가짜라고, 어록이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가짜라고.

문장이든 대사든 이야기 속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기억에 남는 건 문장이나 대사가 아니라 장면이어야 한다. 다 떠나 통째 삭제해도 무방한 첫 단락이라니. 아니, 반드시 덜어내야 하는 군더더기였다. 역시 창조 씨는 에세이나 써야 맞는 사람이었다.

“복사뼈예요. 복숭아뼈가 아니라.”

나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말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로잡아야 할지 견적이 안 나왔다. 기본 맞춤법도 제대로 못 갖춘 원고에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한눈팔지 말고 에세이나 계속 쓰라는 진심을 꺼내놓을 수 없다면.

“피안은 사바세계 저편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예요. 기억의 차안으로 떠밀려온다고 해야 맞죠.”

비문이나 오문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켤 것까지도 없었다. 지적할 건 차고 넘쳤다. 여기저기 빨간 줄을 긋고 몇 자 적어 넣으면서도 줄거리를 빠르게 훑어나갔다. 행간이랄 게 거의 없어 후루룩 읽혔다. 빨간 펜의 활약상이야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고 메인 플롯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수챗구멍에서 올라오는 목소리.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 한국말이라면 층간소음으로 넘겼겠지만 일본어가 서툰 나는 반사적으로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아는 단어도 미묘하게 발음이 다르다. 중급 일본어 반에서 갑자기 고급 일본어 반으로 건너뛴 것 같다. 몰래 엿듣는 기분이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내게 건네는 말 같기도 하다. 아무도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는 내게. 볼일도 없이 욕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김 상은 오키나와 사투리를 어디서 배웠어요?”

어느 날 일본어 강사가 내게 묻는다.

오키나와라니. 거기 발을 디딘 적도 없고 그쪽 사투리가 있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다. 뜻밖의 일은 그뿐이 아니다. 같은 과 학생 하나가 친근하게 다가와 여러모로 호의를 베푼다. 학과에서 성적도 인기도 넘버원인 다이스케. 한 학기만 있다 떠날 단기 교환학생에게 잘해주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보는 눈이 없을 때만 그러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먼저 말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감이 붙는다. 다이스케는 별명이 엔에이치케이일 만큼 (표준어) 발음이 완벽하다. 일대일 회화 선생으로도 최고다. 다이스케와 어울리면서 욕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일이 뜸해진다.

수챗구멍에서 무언가 기어 올라온다. 하얀 구더기 떼가 물로 씻어 내려도 꾸역꾸역 올라온다. 관리인에게 얘기한다. 나는 어느덧 현지인들에게도 주저 없이 먼저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다이스케 덕분이다. 관리인은 펄쩍 뛴다.

“완공 때부터 30여 년을 관리해왔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 없었어요. 아오야마 맨션은 위생적으로 완벽해요.”

관리인과 함께 가보니 구더기는 온데간데없다. 스테인리스 덮개를 떼어내고 하수구에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는 관리인. 단말기 모니터에 하수관 내부가 뜬다. 머리카락과 오물만 거뭇거뭇 엉겨 있을 뿐 희끄무레하게 꿈틀거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위생은 몰라도 방음은 엉망이에요.”

“엉망이라고요?”

“아래층에서 소리가 다 올라와요.”

무언가의 목구멍 같은 영상을 나는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럴 리가. 203호는 반년째 비어 있어요.”

관리인이 내시경 카메라를 거둬들이며 대꾸한다.

예의 목소리가 계속 올라온다.

결국 수챗구멍에서 나는 소리를 녹음한다. 층간 소음을 입증하기보다 무슨 말인지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녹음기를 틀면 지지직거리는 잡음만 나온다. 현장에서 해독하는 길뿐이다. 오키나와 말을 독학으로 익힌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말이 있다.

‘역시 넌 아냐.’

뭐가 아니라는 걸까. 왠지 오싹하다. 다른 말들도 해독하고 말겠어, 이상한 오기도 생긴다.
되풀이되는 수상쩍은 말이 하나둘 늘어난다.

‘어떻게 좀 안 될까.’
‘이젠 빠져나갈 수 없어.’

수챗구멍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나. 다이스케 앞에서 무심코 되뇌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이스케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그 후로 나를 멀리하는 다이스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어?”

어렵게 용기를 내 물어보아도 다이스케는 냉담하다.

“그런 거 없는데.”

외톨이 생활로 돌아간다. 욕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간이 다시 많아진다. 이젠 빠져나갈 수 없어. 어떻게 좀 안 될까. 역시 넌 아냐.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수챗구멍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긴다. 내가 어떤 자격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급 일본어 반에 들어간 날이었다.

203호를 지나칠 때마다 못 견디게 궁금해진다. 이제 어지간한 단어는 다 알아들을 것 같은데 수챗구멍은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굳게 닫힌 203호 현관문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는 나. 303호 열쇠가 거짓말처럼 딱 들어맞는다. 열쇠를 돌리니 자물쇠가 풀린다. 심장이 날뛴다.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마지막으로 반복되던 한마디가 경보음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그물은 입이 없어.’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이국적 분위기에 기묘한 스토리를 버무려 부담 없이 읽히는 글. 창조 씨다웠다. 좀 달라지긴 했다. 에세이는 교묘하게 거짓을 섞었다면 소설은 교묘함조차 없었다. 수챗구멍으로 올라오는 기이한 목소리. 사람이 살지 않는 아랫집. 대놓고 주작이었다. 개연성 같은 건 안중에 없고 궁금증을 자아내려 냄새만 잔뜩 피웠다.

“여기서 끝인가요?”

여섯 페이지. 최소 서너 장은 더 있어야 했다.

“끝이면 안 되나요?”

창조 씨가 눈을 껌벅이며 되물었다.

“203호는요?”

“흉사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중요한 건 인물의 욕망이니까. 두려워하면서도 기어이 마주하고야 마는 모순되고 위험한 욕망 말이에요.”

“다이스케는요? 이 친구는 왜 이러는 거죠?”

“매력이란 내면의 카오스에서 나온다.”

수업 시간 내가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창조 씨였다. 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 반사 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불쑥 짜증이 일었다. 더 읽을 필요도 없이 내 아이디어를 도용한 게 분명했다.

흉사가 있었던 집×소설이 안 써지는 소설가.

a는 판박이에 z는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유학생으로 변주되었을 뿐. 제목도 “그물”이어야 할 내적 필연성이 없었다. 도쿄 기담쯤이 정직했다. 창조 씨라고 몰랐겠는가. ‘그물은 입이 없어.’ 억지로 지어낸 티가 역력한 수챗구멍의 한마디가 증거였다. 제목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보려고 막 던진 디테일.

『아웃사이더』의 그림자도 어른거렸다. 전학생의 완벽한 표준말이 거슬리면서도 귀에 남는 주인공. 떨어지는 성적만큼 빠르게 느는 전학생의 사투리. 주인공이 살의에 가까운 복수심을 품게 되는 계기도 전학생의 무심한 한마디였다.

“니 방금 서울말 썼나?”

그것은 『아웃사이더』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들 중 하나였다.

제목과 테마를 넘어 사투리라는 핵심 디테일마저 내 것에서 가져왔다.

“흉사도 제 아이디어잖아요?”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경험담 아니었어요?”

창조 씨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매번 이런 식이다. 내가 수업 얘기를 하면 창조 씨는 조찬 모임 얘기.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라니. 방송 물 좀 먹으면 자연스레 연기자가 되는 건가.

“경험담이라도 허락 없이 가져다 쓰면 안 되죠.”

“도쿄에서 공부하던 시절 직접 겪은 일에서 영감을 얻은 거예요.”

창조 씨는 억울하다는 투였다. 영국 유학파라더니 도쿄는 또 언제 갔나. 에세이에 외국 얘기가 자주 등장하기는 했다. 『아웃사이더』 사인본을 받고 일본식 표현 어쩌고저쩌고 하는 톡을 보낸 것도……

“작가님 수업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에세이로 써먹고 말았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전에 그러셨죠. 에세이라고 쓰면 에세이고 소설이라고 쓰면 소설이다.”

“그런데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똑같은 1인칭이라도 에세이의 나와 소설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에세이의 나는 에세이를 쓰는 나와 분리되지 않지만 소설을 쓰는 나는 소설 속 나와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일로 느껴진다.”

창조 씨가 열띤 어조로 말했다.

하마터면 고개를 주억거릴 뻔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올드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강변했던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 자리에 없던 창조 씨 들으라고 떠든 바로 그 얘기.

“왜 하필 그물이에요?”

“제목은 씨앗. 씨앗이 제힘으로 땅속 어둠을 뚫고 올라와 꽃 피우고 열매 맺듯 제목이 품은 에너지로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된다.”

“내가 한 말 말고 창조 씨 본인 얘기를 해보세요. 그물은 왜 등장한 거예요? 그것도 마지막 장면에서야.”

“실은 시간이 부족해서 뒷부분을 못 썼어요.”

창조 씨는 나눠주지 못한 합평 원고를 주섬주섬 가죽가방에 챙겨 넣더니 내 앞에 놓인 원고에도 손을 뻗었다.

“결말이 어떻게 되는데요?”

나는 재빨리 원고를 집어 들며 물었다.

  • 김경욱 소설가
  • 작가소개

    김경욱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장편소설 『황금 사과』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제작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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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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