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인사이더> 제6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

소설을 쓰겠다는 많은 사람이 초장부터 최후의 질문과 씨름하지만, 맨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끝내주는 아이템이 한 트럭인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쓸 얘기가 너무 많다는 건 쓸 만한 이야깃감이 딱히 없다는 소리죠. 내 인생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내 머릿속을 떠도는 어떤 생각도 소설이 될 거라는 착각부터 버려야 해요. 노트북을 켜기 전에 자문하세요. 쓰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이 소설은 대체 무엇에 관한 이야기지?”

『내 인생의 아궁이』가 딱 그랬다.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둔 문중 어르신의 원고. 아버지 독촉 전화에 마지못해 꺼내보았지만, 제목부터 존함에 본문까지 장식한 궁서체 느낌 그대로였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중견 기업을 일궈 불치병으로 죽은 첫사랑의 이름을 딴 다리를 고향 마을에 놓아주는 기업 로맨스 대하자전소설. ‘아궁이’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의 줄임말이었다. 유일하게 집중해서 읽은 대목은 ‘월남전’ 파병 당시 거기서 먹은 것들에 관한 얘기였다. 정글에 홀로 낙오되어 헤맨 사흘 동안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삼킨 것들. 그 에피소드만 갖고 썼어야 했다.

내가 월남의 정글에서 죽지 않기 위해 삼킨 것들.

어떤 스토리인지 20자 이내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천 자도 2백 자도 아닌 20자.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이라는 미국 소설이 있다. 베트남전 때 병사들이 가지고 다닌 자기만의 소지품에 관한 이야기. 우주 전체를 원고지에 담을 수는 없다. 우주를 들여다볼 바늘구멍을 내야 한다. 수강생들에게 그 작품을 읽히는 이유다. 비목회 조찬에서 번개처럼 번쩍 떠오른 이야기도 딱 20자였다.

글을 쓰기 위해 흉사가 있던 집으로 이사하는 작가.

창조 씨에게 또 다른 빚을 졌다. 마침내 연재소설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작가는 콤플렉스의 힘으로 쓰고 또 어떤 작가는 자기도취의 힘으로 쓴다. 내 창작의 원동력은 복수심이었다. 적어도 이번 원고만큼은. 무엇에 대한 복수심인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그 20자를 길어 올린 힘이 복수심이라는 건 확실했다. 조찬의 세계 한복판에서 비릿한 피맛처럼 번져가던 감정. 익혀도 익혀도 사라지지 않던 날것의 감정.

*

발상의 핵심은 화학적 결합이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시곗바늘처럼 정확히 돌아오는 허기. 이 결합에서 참혹한 전쟁을 들여다보는 바늘구멍이 탄생한다. 구상(構想)은 문자 그대로 모양이나 생각을 이리저리 얽어보는 일. 뛰어난 요리사는 귀한 재료로 익숙한 맛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흔하지만 같이 쓰지 않는 재료들을 대담하게 묶어 새로운 맛을 내는 사람이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a×z. 강력한 발상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것들이 포개지는 지점에서 태어난다.

황유목표 발상법을 연습해보자.

오늘의 시제는 고독이다.

고독이라는 우주에 어떤 바늘구멍을 낼 수 있을까?

*

설이 현실을 모방한다고들 하지만 현실이 소설을 재현할 때도 있다.

창조 씨가 내 창작 수업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석부를 미리 확인하고도 눈치채지 못한 건 가명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릴 수 있으니 가명만 쓰면 정체를 숨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나. 유명 인사 티를 티 안 나게 내는 창조 씨만의 방식인가. 그래도 왜 하필 『아웃사이더』의 전학생 이름이었을까. 구진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주인공의 작은 왕국을 송두리째 흔든 이름. 감명 깊게 읽었다더니 일종의 오마주인가.

“여긴 왜 오셨어요?”

첫 수업을 마치자마자 내가 물었다.

“명강의를 마저 들으려면 등록하라고 하셨잖아요. 지난번 조찬 때. 다른 멤버들도 작가님 팬이 됐다고 난리예요. 정식 멤버로 모시자는 둥 ‘비목회’를 아예 ‘유목회’로 바꾸자는 둥.”

창조 씨가 천연덕스레 대꾸했다.

입술에 침이나 묻히고 하는 소리인가. 유목회라니. 사인은커녕 내 책 얘기도 안 꺼낸 사람들이. 명강의는 또 뭔가. 취중에 떠벌린 소리일까. 전혀 기억에 없었다.

“소설 원고는 개인적으로 봐드릴 테니 민망하게 이러지 맙시다.”

나는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일방적 거부로 들리지 않도록.

“속까지 까 보인 마당에……”

첫 수업 때마다 통과의례처럼 치르는 자기 객관화 작업 얘기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눠 드린 A4 용지 앞면에는 외적 자화상을, 뒷면에는 내적 자화상을 글이나 이미지로 표현해보세요. 이름은 쓰지 마세요.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TMI도 금지예요. 자기 검열의 스위치를 꺼야 진짜 얼굴이 윤곽을 드러내니까.”

어느 글쓰기 책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익명이라는 보호막 너머에는 놀랄 만큼 솔직한 표현이 담기곤 했다. 온갖 공포증과 강박증, 폭력적인 분노와 증오심…… 수강생들이 쓰거나 그려낸 내적 자화상은 심연 그 자체였다. ‘세상에 대한 복수를 멈추려면 글이라도 써야 한다.’ 연쇄살인범의 절박한 다짐 같은 문장도 기억난다. 고작 이름 몇 자 적지 않는다고 감춰진 자신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싶던 어두운 고백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이국적 분위기에 기묘한 스토리를 버무려 부담 없이 읽히는 글. 창조 씨다웠다. 좀 달라지긴 했다. 에세이는 교묘하게 거짓을 섞었다면 소설은 교묘함조차 없었다. 수챗구멍으로 올라오는 기이한 목소리. 사람이 살지 않는 아랫집. 대놓고 주작이었다. 개연성 같은 건 안중에 없고 궁금증을 자아내려 냄새만 잔뜩 피웠다.

“여기서 끝인가요?”

여섯 페이지. 최소 서너 장은 더 있어야 했다.

“끝이면 안 되나요?”

창조 씨가 눈을 껌벅이며 되물었다.

“203호는요?”

“흉사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중요한 건 인물의 욕망이니까. 두려워하면서도 기어이 마주하고야 마는 모순되고 위험한 욕망 말이에요.”

“다이스케는요? 이 친구는 왜 이러는 거죠?”

“매력이란 내면의 카오스에서 나온다.”

수업 시간 내가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창조 씨였다. 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 반사 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불쑥 짜증이 일었다. 더 읽을 필요도 없이 내 아이디어를 도용한 게 분명했다.

흉사가 있었던 집×소설이 안 써지는 소설가.

a는 판박이에 z는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유학생으로 변주되었을 뿐. 제목도 “그물”이어야 할 내적 필연성이 없었다. 도쿄 기담쯤이 정직했다. 창조 씨라고 몰랐겠는가. ‘그물은 입이 없어.’ 억지로 지어낸 티가 역력한 수챗구멍의 한마디가 증거였다. 제목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보려고 막 던진 디테일.

『아웃사이더』의 그림자도 어른거렸다. 전학생의 완벽한 표준말이 거슬리면서도 귀에 남는 주인공. 떨어지는 성적만큼 빠르게 느는 전학생의 사투리. 주인공이 살의에 가까운 복수심을 품게 되는 계기도 전학생의 무심한 한마디였다.

“니 방금 서울말 썼나?”

그것은 『아웃사이더』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들 중 하나였다.

제목과 테마를 넘어 사투리라는 핵심 디테일마저 내 것에서 가져왔다.

“흉사도 제 아이디어잖아요?”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경험담 아니었어요?”

창조 씨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매번 이런 식이다. 내가 수업 얘기를 하면 창조 씨는 조찬 모임 얘기.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라니. 방송 물 좀 먹으면 자연스레 연기자가 되는 건가.

“경험담이라도 허락 없이 가져다 쓰면 안 되죠.”

“도쿄에서 공부하던 시절 직접 겪은 일에서 영감을 얻은 거예요.”

창조 씨는 억울하다는 투였다. 영국 유학파라더니 도쿄는 또 언제 갔나. 에세이에 외국 얘기가 자주 등장하기는 했다. 『아웃사이더』 사인본을 받고 일본식 표현 어쩌고저쩌고 하는 톡을 보낸 것도……

“작가님 수업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에세이로 써먹고 말았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전에 그러셨죠. 에세이라고 쓰면 에세이고 소설이라고 쓰면 소설이다.”

“그런데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똑같은 1인칭이라도 에세이의 나와 소설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에세이의 나는 에세이를 쓰는 나와 분리되지 않지만 소설을 쓰는 나는 소설 속 나와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일로 느껴진다.”

창조 씨가 열띤 어조로 말했다.

하마터면 고개를 주억거릴 뻔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올드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강변했던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 자리에 없던 창조 씨 들으라고 떠든 바로 그 얘기.

“왜 하필 그물이에요?”

“제목은 씨앗. 씨앗이 제힘으로 땅속 어둠을 뚫고 올라와 꽃 피우고 열매 맺듯 제목이 품은 에너지로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된다.”

“내가 한 말 말고 창조 씨 본인 얘기를 해보세요. 그물은 왜 등장한 거예요? 그것도 마지막 장면에서야.”

“실은 시간이 부족해서 뒷부분을 못 썼어요.”

창조 씨는 나눠주지 못한 합평 원고를 주섬주섬 가죽가방에 챙겨 넣더니 내 앞에 놓인 원고에도 손을 뻗었다.

“결말이 어떻게 되는데요?”

나는 재빨리 원고를 집어 들며 물었다.

  • 김경옥 소설가
  • 작가소개

    김경욱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장편소설 『황금 사과』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제작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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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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