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인사이더> 제4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콤플렉스란 무엇인가?

『아웃사이더』는 그런 질문을 불기둥 삼아 타오르는 소설이었다. 도맡아오던 반 1등을 전학생에게 빼앗긴 지방의 흔한 수재. 1등 자리를 되찾으려 이를 악물지만 정작 전학생은 문제아들과 어울리며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1등을 되찾은 뒤로도 늘 전학생에게 뒤처진 기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 교무실에 밥 먹듯 불려 다니는 모습조차 알 수 없는 열패감을 안겨준다. 그런 전학생이 어느 날부턴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데……

소설이란 질문의 양식이다. 물론 시도 질문을 던진다. 네루다의 예처럼 좋은 시일수록 멋진 질문이 흑설탕처럼 흩뿌려져 있다.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석탄은 어디에서 잠들었다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시의 의문문에는 물음표보다 느낌표가 더 어울린다.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하지만 소설의 질문은 끝까지 물음표를 고수한다.

‘새들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건 무엇일까?’

‘연기들은 무엇을 불사르고 태어났을까?’
‘석탄의 검은 얼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죽음이 있는가?’

가끔은 느낌표이자 물음표인 문장도 있다.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을까.’

창조 씨 카톡을 기다리다 아내 곁에 누우며 내가 한 말에도 느낌표와 물음표가 동시에 숨어 있었다.

“소설이 쓰고 싶다네.”
“누가?”
“물병자리 셀럽께서.”

정확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소설을 읽어달라네.”

부탁이라는 단어에 살짝 긴장했던 나는 창조 씨가 중식당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 안에서 꺼낸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작가님과 연이 닿은 뒤로 소설 비슷한 걸 끼적여봤는데 혹시 읽어주실 수 있나요?”

소설 읽어달라는 부탁이야 나에겐 식상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펀드매니저인 동창 녀석부터 굴욕적인 사인회를 주선한 당숙까지 원고 한번 봐달라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간만에 상경한 아버지가 문중 어르신 작품이라며 보자기에 싼 원고 뭉치를 들고 오기도 했다. 『내 인생의 아궁이』. 설마 아궁이가 아주 궁금한 이야기의 줄임말은 아니겠지. 일단 서랍에 모셔뒀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읽고 장문의 독후감까지 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창조 씨라면 얘기가 달랐다.

“와, 소설을 쓰셨다고요?”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워낙 에세이만 써버릇해서.”

창조 씨답지 않게 머리를 긁적였다. 소설이라는 두 글자가 화제에 오르면 자신감 넘치던 창조 씨는 수줍은 소년으로 변했다.

“쓴 사람이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에세이라면 에세이죠.”

“에세이 쓸 때랑 느낌이 다르긴 했어요.”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빛나는 창조 씨의 천진한 얼굴에 가슴이 덜컥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달랐는데요?”

“격렬하면서도 고요한 느낌?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어요. 그날, 그러니까 접촉 사고 당일 밤부터.”
“그날 밤부터라고요?”

접촉 사고가 우연이었듯 그 또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끝내주는 소설 아이템들을 내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린 사고가 창조 씨에겐 뮤즈가 되다니. 우연이 세 개 겹치면 고양이도 호랑이가 될 수 있다고 했던가. 보험에 들 수도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도둑맞은 기분에 휩싸인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

소설은 어떻게 쓰기 시작했나?

작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를 물어올 때마다 나는 답하곤 했다.

“저에게 소설은 뺑소니 사고처럼 찾아왔어요. 다리에 철심을 박고 누워 있는 동안 격렬하면서도 고요한 분노 속에서 상상하곤 했죠. 운전자는 어떤 인간일까? 멀쩡한 행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어떻게 달아날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자의 얼굴이며 직업이며 동선을 프로파일러처럼 그려보다 어느 순간 뭔가를 휘몰아치듯 적어 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지금도 저에게 소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노력이에요.”

농담이길 바랐다. 내 인터뷰를 차용한 농담. 소설을 썼다는 소리도 원고를 봐줄 수 있느냐는 부탁도 실없는 농담의 일부이길. 하지만 창조 씨 표정은 접촉 사고 현장을 체증할 때보다 더 진지했다. 정말 초보 운전자가 아니라 소설의 뮤즈에게 들이받힌 것처럼.

“이미 책을 세 권이나 낸 프로시면서……”
“프로는요. 작가님 시간을 뺏기엔 민망한 수준인 걸요.”

창조 씨는 짝사랑이라도 들킨 소년처럼 볼이 발그레해졌다. 이번만큼은 특유의 겸손이 거슬리지 않았다. 우쭐한 마음에 하마터면 몇 매나 되느냐고 물을 뻔했다.

“궁금하네. 『아웃사이더』를 열독한 핵인싸가 쓴 소설이라!”

아내가 몸을 내 쪽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여자들은 저도 모르게 놀라운 진실을 말할 때가 있다. 아니, 자신과 무관한 일에는 언제든 진실을 감지한다. 창조 씨에게 소설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어떤 소설인지 궁금했다.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사실 그간의 호의와 은덕만으로도 읽어줘야 마땅했다. 설령 내 인터뷰를 표절했다 해도. 인터뷰는 인터뷰고 소설은 소설이니. 어쩌면 내 인터뷰가 너무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열렬한 팬이라지 않나.

“다윈이 소설을 남겼어봐야 안 봐도 비디오지. 제목은 ”과대망상의 기원“쯤 되려나.”
“설마, 위기감 느끼는 건 아니지?”
“백수의 왕한테 위기감은 무슨……”

나는 어둠 속에서 아내의 귓불을 깨물었다. 접촉 사고를 낸 날 밤에도 낯선 흥분이 온몸의 세포를 흔들어 깨웠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내 안에 들어앉은 것 같았다.

“당신 맞지?”

한 덩어리에서 도로 둘로 나뉜 뒤 아내가 내 얼굴을 더듬으며 웅얼거린 말이 새삼 귓전을 울렸다. 접촉 사고 날 밤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창조 씨 말은 사실인지도 몰랐다.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났다면 창조 씨 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안에서와 같이 바깥에서도.

세상에는 체험으로만 알 수 있는 진실이 있다. 이를테면 에로스와 창조욕이 쌍생아라는 것. 타나토스라는 한 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것. 섹스와 창작은 죽음에 맞서는 행위지만 자신을 죽임으로써 완성되는 일이기도 하다.

*

꼭 가르쳐야 하는 노하우일수록 가르치기 어렵다. 화룡점정. 제자가 다 그려놓은 용에 스승이 눈동자만 채워 넣는 건 아니다. 눈동자를 얻는 순간 용의 몸뚱어리 전체가 다시 그려진다. 소설도 마찬가지. 결정적 디테일은 스토리를 지배하고 이야기의 판 자체를 바꾼다. 허구를 진짜로 탈바꿈시키는 디테일. 허울뿐인 용을 살아 꿈틀대게 만드는 디테일. 그런 디테일을 지어내는 감각. 가르치기 힘든 영역이라고 지레 포기해서는 안 된다. 소설 쓰기가 소설에 관한 오해와의 투쟁이라면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가르칠 수 없는 것들과의 투쟁이기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읽으신 분?”
“영화로는 봤어요.”

혹시나 하고 물어보면 언제나 역시나다. 『안나 카레니나』나 『위대한 개츠비』조차 영화로만 기억하는 마당에.

“소설을 위한 나라는 없군요.”

베테랑 강사답게 나는 진담 같은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유머야말로 소멸해가는 존재가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 아닌가.

“살인 청부업자 안톤 시거의 무기는 총이 아닌 산소 탱크죠. 가스압으로 문에도 구멍을 내고 사람 머리에도 구멍을 내죠. 이 디테일은 왜 무시무시할까요? 살인이 아니라 도살로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인간성이 거세된 시대에 어울리는 악의 상징이죠.”

플롯과 마찬가지로 디테일의 핵심은 의외성이다. 번개는 망자의 영혼이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폭포. 인류 최초의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예측 불가의 두려움을 덜기 위함 아니었을까. 총이 아닌 산소 탱크. 죽이는 디테일을 얻으려면 고정관념부터 죽여야 한다.

“그 영화의 디테일 중 압권은 안톤 시거의 헤어스타일이에요. 우스꽝스러운 단발머리를 한 인간 도살자. 아마도 감독은 그 헤어스타일이 완성된 순간 모든 장면이 저절로 그려졌을 거예요.”

디테일이 캐릭터고 플롯이다. 디테일이 소설의 알파요 오메가다. 아담의 갈빗대로 이브를 빚었다고? 이야기의 신은 디테일에 있다.

“격렬하면서도 고요한 느낌?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어요. 그날, 그러니까 접촉 사고 당일 밤부터.”

창조 씨가 무슨 신비체험처럼 들려준 얘기는 내가 소설이라는 걸 처음 쓰게 된 순간을 얘기할 때마다 고명처럼 얹던 디테일이 틀림없었다. 그런 디테일은 살인마의 단발머리처럼 몰라볼 수 없다.

“원고를 개인적으로 읽어주지는 않아요. 창작 수업에 제출된 원고만 코멘트해주는 게 원칙이에요. 죄송합니다.”

내 인터뷰를 따라했다는 의심만 없었어도 대답이 달라졌을까. 디테일에는 신만 있는 게 아니다. 악마 역시 디테일에 있다. 나는 없는 원칙까지 들먹이며 단칼에 잘랐다.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수줍은 소년의 목소리는 어느새 평소의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창조 씨가 더 매달리기를 바랐던 걸까. 비싸게 굴고 싶었던 걸까. 곧바로 단념하는 모습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

─다음 주 목요일 아침 8시 시간 괜찮으세요?

창조 씨에게서 카톡이 왔을 때 나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조 씨 인스타그램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헤어지고 열흘이 되도록 새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아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일정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로요?

나는 반가움을 들키지 않으려 덤덤한 척했다.

─비목회라고 매달 조찬을 함께하는 모임이 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인데 작가님도 오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창조 씨는 자신의 계획에 스스로 감탄하는 아이 같았다.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지난번에 작가님 책을 사서 돌렸더니 사인을 받고 싶다네요.

나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말하게 될 것 같았다. 난생처음 써봤다는 그 소설을 한번 봐주겠다고.

─새로 연재할 원고를 집필 중이라 여유가 없네요.

거짓말이었다. 연재 원고는 여전히 백지상태였다. 마감 날짜라는 창작의 원동력도 말라버린 글샘의 물줄기를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이모티콘이 뜨자마자 좀 전의 카톡을 취소하고 싶어졌다.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라면 소설거리 하나쯤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조찬의 세계. 누가 아나. 아침 같은 건 건너뛰는 사람들만 알고 지내는 내게 뜻밖의 금맥이 될지.

어느새 나는 메시지 창에 자음과 모음을 입력하고 있었다.

─근데 비목회는 무슨 뜻이에요?

  • 김경욱 소설가
  • 작가소개

    김경욱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장편소설 『황금 사과』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제작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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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1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