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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인사이더> 제2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과정은 소설에 관한 오해들과의 끝없는 투쟁이다.

“극적인 사건이 꼭 있어야 되나요?”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치는 시간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사건이란 인물의 행동이에요. 극적인 사건이 없다는 건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뜻이죠.”

의외성이라는 면에서 창조 씨는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캐릭터였다. 앞선 접촉 사고 일화에서 서사적으로 의미심장한 대목은 사고 자체보다 피해 차량 운전자가 보인 행동이다. 인물의 모든 행동이 사건이 된다고 오해하지는 말길.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행동만이 사건이니.

데뷔작 제목에 충실하게 사는 아웃사이더 소설가를 한눈에 알아보고 삿대질 대신 기념샷을 청한 벤틀리 운전자.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너무 클래식한 얘기 아닌가요? 요즘은 비인칭적 글쓰기가 유행이잖아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비인칭적 글쓰기. 무슨 뜻인지나 알고 떠드는 걸까? 수업 시간에야 차마 누설 못 할 천기지만 소설 창작에 있어 합평 수업만 한 걸림돌이 또 있을까. 솔직한 피드백보다 자신의 똑똑함과 날카로움을 증명하는 게 우선인 분위기라면 모든 초고가 쓰레기라고 외친 헤밍웨이조차 붓을 꺾지 않고 못 배기리라.

어떤 질문에도 나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비인칭적으로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수강생들이 매기는 강의 평가가 강좌의 존폐를 가르는 가장 큰 변수인 한은.

“미술 선생이던 아버지가 시킨 대로 피카소는 열다섯 살까지 비둘기 발만 죽어라 그렸답니다. 사건도 캐릭터도 없는 소설을 쓰려면 우선 그것들이 있는 소설부터 써봐야 하지 않을까요? 잘 빚은 항아리를 산산이 깨뜨리는 행위예술도 잘 빚은 항아리가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매력적인 캐릭터를 못 빚어낸 소설과 안 빚어낸 소설은 엄연히 다른 소설이죠.”

“저는 피카소가 아닌데요?”

다행히도 이런 반발에 부딪힌 적은 없다. 피카소. 뭘 하든 유명해지고 볼 일인가.

“그럼, 매력적인 캐릭터는 어떻게 창조할까요?”

피카소의 명성 덕분에 수업이 예정된 궤도에 오른다. 나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을 잇는다.

“어떤 타입에 끌리는지 생각해보세요. 매력이란 내면의 카오스에서 나오는 거예요. 친숙한 낯섦, 설득력 있는 불가능성, 조화로운 부조화…… 무슨 얘긴지 어렵다고요? 말괄량이 삐삐 집에 놀러 간 친구들이 베란다에 있는 말을 보고 물어요. ‘말이 왜 베란다에 있어?’ 삐삐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뭐라고 대답해야 더 알고 싶은 캐릭터가 될까요?” 각자 따옴표 안을 채워보도록 하자.

“___________”

*

내 소설 창작 사전에서 캐릭터라는 단어는 갈망과 두려움의 합성어다. 달걀귀신 같은 기본 프로필에 피를 돌게 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동맥과 정맥은 갈망과 두려움. 당신이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려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

나라는 캐릭터부터 말해볼까. 내가 죽도록 갈망하는 것은 당연히 죽이는 소설을 쓰는 것. 이태 전부터 원고 청탁이 뚝 끊기기 전까지는. 전국의 편집자들이 모여 휴대폰에서 내 이름을 동시에 지우지 않고서야. 수백 번 고쳐 생각해봐도 다른 이유는 찾지 못했다. 죽어라 안 팔리는 소설가이기 때문이겠지. 죽어라 안 팔리는 이유? 유명하지 않아서겠지. 나는 왜 유명하지 않지? 소설이 안 팔려서겠지. 내 소설은 왜 안 팔릴까? 유명하지 않아서지. 그나저나 나는 왜 유명하지 않은 거지?

알고 보니 창조 씨는 유명 인사였다. 엄청 유명하다는데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유명해지는 길이야 수백 수만 가지겠지만 유명해지는 순간 그 이유는 사라지고 유명하다는 사실만 남는 건가. 지난 세기 어느 철학자는 인류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눴지만, 이 시대는 두 부류만 있는 것 같다. 이미 유명한 사람과 유명해지려 애쓰는 사람.

나도 유명해지고 싶었던가.

“축구는 잘하고 싶지만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어느 유명 축구 선수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소설은 잘 쓰고 싶지만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이미 유명해진 사람, 창조 씨는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두려워했던가.

팬이라며 범퍼에 찍힌 문짝도 눈감아준 창조 씨.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머리를 들이밀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연락 없던 지인의 갑작스러운 카톡이었다.

─못 본 새 노는 물이 달라졌네?
─무슨 소리야?

첨부된 링크를 따라가보니 뚱딴지같은 소리의 근거는 창조 씨 인스타그램이었다. 가장 최근 게시된 사진 속에 얼떨떨한 표정의 내가 보였다. 접촉 사고 현장에서 찍은 바로 그 기념샷. 그리고 밑에 달린 짧은 해시태그.

#아웃사이더 #작가 #운명적접촉
‘좋아요’ 숫자가 하루도 안 돼 4천을 훌쩍 넘었다. 팔로워 인원은 무려 10.6만.

“거봐, 그 사람 맞잖아. 임창조 스페이스 크리에이터.”
아내는 신기해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스페이스 크리에이터?”
“건축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나 뭐라나. 여기저기 예능 프로에도 나오던데 못 봤어?”
“건축가라는 말을 뭘 그리 길게 해?”
“암굴왕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했네. 다큐만 보지 말고 예능도 좀 보고 그래.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알아야지.”

‘암굴왕’은 집과 문화센터 강의실만 오가는 내게 아내가 붙인 별명이었다. 그래도 ‘간첩’이라고 부를 때보다는 나았다.

“팬이라잖아.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고.”
“작가님이 아웃사이더면 저는 안드로메다인일까요. 새로 탑승하신 프로도 본방 사수하고 있어요. 작가님 신간은 출간도 전에 베스트셀러네요. 옆에 분은 혹시 A 작가?”



아내는 내 말은 아랑곳 않고 사진에 달린 댓글만 소리 내어 읽었다.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지만 아내는 큭큭대며 몸을 틀었다.

“그러게 진즉 가입도 하고 잘나가는 작가들 벤치마킹도 하랬잖아.”

SNS 세상에서도 나는 암굴왕이었다. 소설가는 화자라는 가면 뒤에서 이야기하는 존재. 내 맨얼굴을 익명의 바다에 내던지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건축가라면서 작가님? 신간은 또 뭔가?

의문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 화제의 신간 코너에서 예약판매 중인 창조 씨 책을 발견했다. 작가인 줄도 몰랐는데 벌써 세번째 산문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3년 전 낸 소설집 제목을 입력하고 있었다. 세일즈 포인트는 두 자리에 불과했다. 리뷰가 세 개 달려 있었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내 짐작이 맞았다. 책이 잘 팔리는 건 작가가 유명해서다. 작가가 유명한 것은 책이 많이 팔리기 때문이고.

*

“말이 왜 베란다에 있어?”

말괄량이 삐삐는 태연스레 대답했다.

“부엌에 두면 걸리적거리잖아. 그렇다고 이 녀석이 거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야.”

소설에서 가장 쓰기 힘든 것이 대사다. 함축적인 대사로 캐릭터를 보여주는 동시에 서사도 이어가야 한다. 문맥에 어울리지도 않게 젠체하거나 알고 싶지도 않은 자기만의 호불호를 토로하며 허비해서는 안 된다. 큰따옴표 안에서 숨을 고르지 마라. 서사를 공회전시키지 마라. 이야기가 새로운 동심원을 그리며 더 크게 퍼져나가게 하라.

왜 베란다인가? 꼭 베란다일 필요는 없다. 화장실, 다락, 지붕…… 말이라는 단어가 관습적으로 불러내는 단어, 마구간과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좋다.

그 말을 타고 어느 날 삐삐는 난생처음 학교에 갔다. 날마다 집에서 놀기만 하면서도 방학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뿐. 이튿날부터는 두 번 다시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해적선장 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곳은 학교였기에.

삶이라는 강줄기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인생의 저류에는 언제나 극과 극의 힘이 한 몸으로 엉겨 소용돌이치고 있다. 말은 육지의 배, 배는 바다의 말. 강력한 메타포는 미와 추,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언제나 한 몸. 운명의 얼굴은 직선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것은 직선 위 한 점에 불과한 인생에서 신화적 굴곡을 확인하는 일. 신과 벌레 상태를 오르내리는 심박 그래프가 한 줄로 밋밋해지는 순간까지.

그렇다. 벌레가 된 회사원 이야기를 읽을 때조차,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훔쳐볼 때조차 우리는 신의 마음과 벌레의 마음을 시시각각 오간다.

“유명 인사는 허락 없이 남의 얼굴 올려도 되는 거야?”

나는 휴대폰 화면을 끄며 구시렁거렸다.

*

주소는 어떻게 알았는지 창조 씨가 책을 보내왔다.

『내 마음의 끓는점』 『너무 애쓰지 않는 하루』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이 하는 일』.

셋 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제목이었다. 상품은 기억나지 않는 광고 카피처럼 겉멋만 잔뜩 든 제목. 책마다 똑같은 헌사가 적혀 있었다.

황유목 작가님께
All My Respect!
임창조 올림


삐뚤빼뚤하면서도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글씨. 산문집 제목처럼 왼손으로 쓰기라도 한 걸까.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이 하는 일』부터 펼쳐보았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당연히 거의 모든 일이 오른손 담당이다. 하지만 글은 왼손으로 쓴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글의 첫 페이지는 원고지에 왼손으로 직접 쓴다. 다시 타이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야만 가짜가 아닌 진짜 글을 쓸 수 있다.’

무늬는 에세이였지만 초장부터 소설 냄새가 진동했다. 척 보면 척. 제목에 모든 걸 짜 맞춘 느낌이랄까.

‘우주의 유일한 진리는 균형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다. 학교에서 상을 받아 오면 칭찬은커녕 집 안 청소를 시키셨다. 어린 마음에 상장을 찢어버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내게 스페이스 크리에이팅이 의식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무의식의 뿌리를 뻗어 내려가는 일인지 모른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언젠가 목판에 새겨주신 글귀. 이제야 어렴풋이 의미를 깨우치고 있는 그 가르침 하나만으로도 아들에게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아버지셨다.’

역시나 제목에 억지로 껴 맞춘 글. 게다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이라니! 예술은 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한다지 않나. 아버지를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이야기의 뿌리인 신화마다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 얘기로 가득한데. 진심이라면 아예 작가 자격이 없고 지어낸 얘기라면 희랍신화부터 정독해야 했다. 그나마 언급할 만한 대목은 거기까지. 첫 페이지만 원고지에 쓴다는 말이 사실인지도 몰랐다. 두번째 페이지부터는 일기장에나 끼적일 얘기 일색. 이런 식이면 계절마다, 아니 다달이 한 권도 낼 수 있다.

답례로 3년 묵은 최근작을 보낼까 하다 저주받은 데뷔작 『아웃사이더』를 부쳤다. 해시태그를 달려면 제대로 달아야지. 내 이름은 왜 뺐을까? 수많은 팔로워 중에 해시태그 ‘아웃사이더’가 내 소설 제목이라고, 사진에 찍힌 얼굴이 나라고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창조 씨도 가만히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A 작가가 아니라는 정도는 밝혀줘야 하지 않나.

『아웃사이더』는 서른 권도 넘게 갖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앞에 반값으로 나온 책을 몽땅 사들인 것이다. 길에 나앉은 자식을 거두는 심정으로.

*

#장편소설 #아웃사이더 #깜짝선물

내 계산은 반만 맞았다. 창조 씨 인스타그램에 『아웃사이더』 사진이 올라온 건 예상대로였지만 그게 속지일 줄이야.

임창조 수필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황유목 드림


책을 보낸 걸 후회하는 데는 댓글 몇 개로 충분했다.
─왼손 악필 사인은 창조 님 전매특헌데. 역시나 미친 영향력.
─수필가는 뭔가요? 에세이스트도 아니고.
─와, 이런 소설가분도 계셨군요.

왼손 악필 사인이라니. 보란 듯 오른손으로 정서한 글씨인데. 붓 가는 대로 줄줄 써 내려간 글이니 수필가 아닌가. 수필가나 에세이스트나 뭐가 다를까. 소설가님도 아니고 소설가분은 또 뭔가.

무엇보다 해시태그가 거슬렸다. 답례로 보낸 책에 깜짝 선물이라니.

“밥을 백 번은 사도 모자랄 판에 무슨 책을 보내. 그것도 이미 읽었을 책을.”

이번에도 아내는 옳은 소리만 했다.

“사인본은 없을 거 아냐.”
“당신 요새 멜라토닌 먹고 있어? 어젯밤에도 계속 뒤척이는 것 같던데.”

갑자기 아내는 측은해하는 표정이 되어 말했다.

가망 없는 질환을 끌어안고 약국만 전전하는 사람이 된 기분. 아내의 말은 불면증이 아니라 고갈된 창작욕에 대한 처방으로 들렸다. 남의 곤경을 감지하면 입에서 진정제가 자동 분무되는 사람. 소설은 아내가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난 약대생 시절부터 나보다 소설을 더 많이 읽더니 지금도 밑줄 그을 만한 문장이 적힌 포스트잇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곤 했다.

‘오래된 약국은 그 자체로 꾸준하고 믿음직한 사람 같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내는 오래된 약국처럼 믿음직한 약사였지만 그때그때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약국을 옮기며 월급 약사로 일하고 있다.

*

며칠 뒤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두 자릿수 세일즈 포인트에 머문 최근작을 낸 출판사였다.

“2쇄를 찍게 됐어요. 주문이 밀려들어 3쇄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편집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임창조 작가님은 어떻게 아세요?”

심정지 상태나 다름없던 책의 심장이 다시 뛰게 됐다는 소식보다 귀를 의심케 한 것은 신작 계약 제안이었다. 완전히 잊힌 건가, 이대로 작가 경력이 끝나는 걸까, 내가 얼마나 마음 깊이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단순한 출간 계약이 아니었다. 웹진에 연재도 하고 나중에 책으로도 내는 조건이었다.

“연재는 11월 첫 주부터지만 일러스트도 넣고 교정도 보려면 절반을 한 달 전에 주셔야 해요. 좀 빠듯한데 괜찮으세요?”

석 달 만에 2백 자 원고지 4, 5백 매라. 일정이 밭은 걸 보니 펑크 난 자리인가.

“그럼요.”

평소답지 않은 즉답이었다.

작중인물의 갈망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갈망은 두려움을 앞면으로 내보이고 두려움은 갈망을 앞면으로 내보인다. 새 작품에 관해서라면 백지상태였지만 말미가 한 달인들 어찌 노라고 할 수 있으랴. 망설이는 기척만 내도 거짓말 같은 기회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릴 것 같았으니.

믿는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나는 주문처럼 속으로 되뇌었다.

마감 날짜가 창작의 원동력!

전화를 끊고 나서 창조 씨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았다. 그새 새 게시물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목탄으로 스케치한 나무 위의 집, 불가리아식 홍합 요리와 와인, 신간 일러스트 작가의 전시회 포스터. 창조 씨는 여전히 바쁘면서 여유로웠다. 창조 씨의 시간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다 어느 순간 내 책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SNS라는 달나라에 찍힌 작지만 위대한 첫걸음. 그제야 신세계의 정식 일원이 된 느낌이었다. 내친김에 맞팔을 청하고 인사까지 남겼다.

─그날은 경황이 없어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요.

멎었던 책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할 만했다. 새 게시물들에 밀려나면서도 내 책 사진에 달린 댓글은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창조 씨는 그 많은 댓글에 ‘좋아요’를 빠짐없이 눌러줬다. 제대로 읽기는 한 걸까? 카톡 프로필 사진조차 몇 해째 그대로인 나는 엄두도 못 낼 정성이었다. 기계적으로 누른 건 아닌 듯했다. ‘좋아요’를 받지 못한 댓글이 하나 있었다.

─두 분 어딘가 모르게 닮았어요.

단순한 실수인가? 자기 댓글만 외면받은 사실을 알면 섭섭할 텐데. 나 역시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신경이 쓰였다.

식사 얘기도 괜히 남겼나 후회가 됐다. 사흘이 지나도록 대꾸가 없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 최소한의 도리를 한 걸로 족하다, 물러진 마음을 다질 즈음 창조 씨에게서 답이 왔다.

─저야 영광이죠.

  • 김경옥 소설가
  • 작가소개

    김경욱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장편소설 『황금 사과』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제작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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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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