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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인사이더> 제1화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

경찰이 집에 찾아온 건 어제 아침이었다. 어쩌면 어제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프랑스 소설을 흉내 내려는 게 아니다. 나를 누구 흉내나 내는 부류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베끼는 건 평범한 예술가의 일이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지 않나. 그저 잠이 덜 깬 탓이겠지.

“무슨 일로……”

아파트 현관문이 빼꼼 열리다 말았다. 걸쇠가 걸려 있었다. 걸쇠를 건 기억은 없었다. 경찰관은 한 명. 아니, 둘이었던가. 역광 탓에 제복 차림의 앞사람만 보이고 뒷사람은 앞사람 그림자처럼 거무스름한 실루엣만 보였다.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요.”
“실종요? 누가요?”

나는 눈이 부셔 손차양을 했다. 경찰관의 눈 아래쪽은 검은색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부진한 소설가와 베스트셀러 저자 사이에 벌어지는 묘한 싱경전을 묘사한 김경욱 소설-1

“임창조 씨요.”
“제가요?”
“임창조 씨 본인이라고요?”
“잠깐만요.”

나는 베란다로 달려가 빨래 건조대에 걸어놓은 마스크를 쓰고 허둥지둥 돌아갔다.

“제가 임창조 맞는데요.”

경찰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리둥절한 빛이 역력했다.

“지금 몇 시죠?”

어리둥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네?”
“밖이 너무 환해서요.”
“11시 55분입니다만.”


한창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늦잠이든 낮잠이든 내 일상엔 없는 단어였다.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리 밤샘 작업은 하지 않는다. 아침 9시 원두커피를 내려 책상 앞으로 가고 오후 5시 정각 노트북을 덮는다. 출퇴근하는 직장인 마인드로 매일매일 쓴다. 오전내 끌어올린 텐션이 도루묵이 될까 봐 점심도 일부러 도시락 용기에 담아 먹는다. 이것이 나의 창작 루틴이다. 시계추같이 정확한 반복. 무심코 손목을 내려다보니 시계가 거기 있었다. 투명한 문자반 아래로 톱니바퀴들이 훤히 드러나는 시계. 어찌 된 일인지 시침과 분침이 3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경찰관이 문틈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뒤에 있던 한 명은 보이지 않았다.

지갑을 찾을 수 없었다. 책상 위에도, 벗어둔 바지 주머니에도, 늘 입는 재킷 안주머니에도 없었다. 어디에 둔 걸까? 분명 내 집인데 내가 나라는 걸 입증할 길이 막막했다. 그렇지, 책! 작가의 명함은 책 아닌가. 책날개에 실린 사진이 내가 누군지 말해주리라.

거실 책장 정중앙을 장식하고 있어야 할 내 책들이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껏 낸 일곱 권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꼭꼭 숨어버렸다. 식은땀이 났다. 자신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하는 소설가. 부재 증명이 아닌 존재 증명에 내몰린 소설가. 소설 같은 상황이었다. 소설 바깥은 몰라도 여기가 소설 안이라면 1인칭 소설가 주인공은 자신이 자신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까? 소설이라는 세계는 화자든 작중인물이든 누군가의 발화로만 이루어진 말의 구조물. 내가 누군지 말해줄 사람이 나뿐이라면 그 말은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와중에도 창작 회로를 돌리는 직업병이라니. 소설가란 그런 족속이다. 죽어라 안 써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 행세도 서슴지 않을 족속. 죽이는 소설만 쓸 수 있다면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도 아예 없는 존재로 지워버릴 족속.

셀프 실종 사건에 약간의 행운이 보태진다면 죽이는 소설 한 편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가 작가거든요. 제 사진이 실린 책만 찾으면 되는데.”

나는 쫓기듯 책장을 훑으며 현관 쪽을 향해 소리쳤다.

경찰관이 누군가와 무전 통신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몇십 분은 지난 것 같은데 손목시계는 여전히 3시 55분이었다.

“진짜 본인 맞습니까?”

경찰관이 현관문을 잡아 흔들며 다그쳤다.

그리고 시계에 얼비친 얼굴. 익숙하고도 낯선 눈빛이 묻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나’라고 말하는 너는 대체 누구냐?
초침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고장은 아니었다.

*

인생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차를 바꾸거나 집을 바꾼다. 차마 가족을 바꾸지는 못하니까. 내 경우엔 차라는 선택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늦깎이 면허 취득 기념으로 나간 첫 드라이브에서 사고를 낸 뒤 운전을 접었기 때문이다.

롯데월드타워 주차장에서 벤틀리를 뒤미쳐 발견한 순간 내가 급히 밟은 건 분명 액셀이 아닌 브레이크였다.

“소설가가 운전대를 잡고 있어요,라고 차 뒤에 붙였어야지.”

브레이크가 틀림없었다고 항변할 때마다 아내는 소설 쓰고 있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설가라는 직업의 단점이다. 완전히 지어낸 얘기는 경험담 아니냐 의심받고 진짜로 겪은 얘기는 지어낸 걸로 의심받는다. 10년 가까이 맡아온 A 문화센터 강좌 ‘죽이는 소설 쓰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글이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 처음 몇 번은 곧이곧대로 조언하고 말았지만, 언제부턴가 없는 얘기를 지어내고 있었다. 소설이 문자적 퍼포먼스라면 수업은 비언어적 수단까지 총동원되는 종합 퍼포먼스 아닌가. 극적인 걸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극적인 것 속에서만 신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 있기에. 소설만 쓰며 살고 싶다고 노래 부르면서도 문화센터 강좌를 그만두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다. 에피파니. 우주의 비밀이 내게만 슬쩍 곁을 내주는 기분. 예전에는 집필 중에 종종 맛보던 희열이었지만, 이젠 센터 회원들 앞에서 폼 잡을 때나 맛볼 수 있다.

“저는 전세 계약이 끝나면 무조건 다른 집을 알아봅니다. 멋모르고 재계약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2년 내내 한 줄도 안 써지더라고요. 카페에 나가도 보고. 독서실까지 끊어봐도 소용없었어요. 지력이 다한 밭을 붙들고 씨름한 것처럼.” 두 해를 완전히 빈손으로 날린 뒤 부랴부랴 이사했더니 짐도 다 풀기 전에 문장이 술술 나오지 뭐예요.

졸음기에 겨워 깜박깜박하던 눈빛들이 셀카를 찍을 때만큼 또렷해지곤 했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잘 써지던 글이 이사하고 안 풀린 적은 있어도 이사해서 글이 잘 풀린 적은 없었다. 픽션의 핵심인 개연성의 비밀도 소설가의 숙명과 다르지 않다. 진짜는 가짜처럼 들리고 가짜는 진짜처럼 들린다.

계약도 채 끝나기 전에 이사했지만 소용없었다며 멱살 잡힌 적은 아직 없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화내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화를 낸다. 정곡을 찔러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사실일수록 더 불같이 화를 내기 마련이다. 적어도 소설에 관해서만큼은.

*

행운과 달리 불운에는 조연이 없다. 저마다의 불운에서 우리는 누구나 주연이다. 내 인생에서 임창조라는 존재는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그와의 인연은 불운한 행운이었을까 다행한 불운이었을까. 엔딩이 어느 쪽이든 첫 장면만큼은 정해져 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우연일수록 도입부에 배치해야 하기에. 저 유명한 첫 문장처럼.

‘어느 날 아침,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커다란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이 아닌 마지막에 쓰기 십상인 문장. 앞에는 월급 벌레로 전락한 주인공의 하루하루가 핍진하게 묘사된다. 부조리한 사무실 공기, 비인간적 조직 체계, 의미를 찾기 힘든 업무…… 벌레 같은 일상을 견디다 못한 주인공은 결국 벌레가 되고 말았다. The end.

네버 에버. 사람들이 진짜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멀쩡한 샐러리맨이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 곡절보다 벌레의 몸뚱이가 된 이후가 아닐까.

“첫 문장만 보고 절반 이상 걸러낸다는 신춘문예 괴담이 정말 괴담일까요? 첫 문장에 모든 걸 거세요. 과감하게 지르세요. 그러고 나서 어떻게든 수습하는 거예요.”

한 페이지만 읽고 던져버리는 소설보다 끝까지 읽고 나서 바가지로 욕을 먹는 소설이 낫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침묵이라던 철학자도 있지 않았나. 악플보다 무플이 더 치명적이다. 독자의 눈길만 붙들어둘 수 있다면 벌레보다 더한 것도 되어야 한다.

잊지 말자. 평범한 작가는 베끼고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양식을 발견하는 게 예술의 본질 아닌가. 심장에 손을 얹고 상상해보라. 베낄 때 가슴이 뛸까, 훔칠 때 가슴이 뛸까?

수업 첫 시간마다 나는 어김없이 강조했다.

“소설 쓰기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 같은 거예요. 마음 깊이 품고 있던 원한의 대상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정확하게 해치우는 거죠. 지문 한 점 남기지 않고.”

수강생들 사이에서 내 강좌는 ‘완전범죄 워크숍’으로 통했다.

접촉 사고 장면이 오프닝을 장식한 데는 필연적 맥락이 있다. 벤틀리 조수석 문짝에 오목한 흠집을 내고도 보험사에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 연락하지 못했다. 정상적인 수습 절차를 밟으려는 나를 피해 당사자가 극구 말린 탓이다.

맞다. 그날 벤틀리 운전석에 앉았던 장본인이 바로 창조 씨다.

차에서 내린 창조 씨는 현장 채증부터 했다. 나도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비어 있는 조수석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잠시, 알파벳 B가 두 날개를 활짝 펼친 엠블럼이 눈에 들어온 순간 외마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벤틀리를 직접 구경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패션잡지 화보에서나 접하던 슈퍼카 주인답게 창조 씨는 소매를 반쯤 걷은 스트라이프 셔츠에 다리 선이 드러나는 슬랙스 차림이었다. 침착한 몸짓만큼은 보험사에서 달려온 직원 같았다. 아니, 어딘가 모르게 달뜬 분위기를 풍기며 현장을 누비는 보험사 직원은 없으리라.

찰칵, 찰칵.

창조 씨는 위치와 각도를 대담하게 바꿔가며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벤틀리 보닛 위에 올라가서도 찍고 주차장 바닥에 몸을 누인 자세로도 찍었다. ‘접촉’이라는 테마로 작업 중인 사진작가처럼. 신고 있는 슬립온마저 오렌지색이었다.

소설가의 눈은 못 속인다. 삶의 의외성이 빚어내는 반전의 순간을 포착하는 눈. 불의의 사고가 창조 씨에게 성가시거나 짜증 나는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생기를 불어넣은 듯했다. 작품 사진 속 오브제처럼 엉거주춤 미동조차 못 한 채, 소설가의 촉수는 사고 현장 너머 어떤 공간을 더듬고 있었다.

“누구 닮지 않았어?”

뺑소니 차량처럼 주차장을 급히 빠져나가는 벤틀리를 끝까지 눈에 담던 아내가 물었다.

“누구?”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유명한 사람인데.”
“뭐로 유명한데?”
“뭐로 유명한 사람이냐면……”

아내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이 내 소설 팬일 리 없다는 듯.

*

“혹시 작가 아니세요?”

작품 사진에 열중하다 말고 창조 씨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뜻밖의 첫마디였다. 등단한 지 스무 해가 훌쩍 넘도록 길 가다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소설가로 착각한 경험은 두어 번 있었다. 반가워하며 꺼낸 이름은 번번이 베스트셀러 작가 A였다. 공통점이라야 큼직한 뿔테 안경이 전부, 피카소 그림 같은 안면 비대칭과 삐뚜름한 입매만으로도 이중적인 면모가 빤히 드러나는 A 작가라니. 떨떠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아웃사이더』 작가님 아니세요?”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창조 씨의 어조는 확신에 가까웠다.

아웃사이더. 얼마 만에 들어보는 제목인가. 대학생이던 내게 소설가 타이틀과 상금 5천만 원을 안겨준 데뷔작. 용암처럼 토해낸 생애 첫 소설이 프로필에서 지우고 싶은 다섯 글자가 될 줄이야. 역대 수상작에 한참 못 미친 판매 부수 때문이었다. 바로 전해 수상자였던 A 작가의 소설은 문학 부문을 넘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었다. 전 년도 수상자 자격으로 내 시상식에 축사도 맡았고.

“저는 오늘 왕관을 물려주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준비한 원고도 없이 그렇게 시작된 축사. 불과 몇 분 동안 시상식장은 몇 번이나 웃음바다가 됐다. 내가 밤새 고치고 또 고쳐간 수상 소감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는 내내 싸하던 분위기와는 딴판이었다.

“축사 최고였습니다.”

뒤풀이 장소인 근처 호프집 화장실에서 A 작가와 마주친 나는 그제야 감사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과찬의 말씀을요.”

이내 A 작가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뉘신지……”

어쨌든 국내 두번째 최고액(1억짜리가 있었다) 장편 공모에 사망 선고를 내린 먹튀라는 오명은 억울했다. 이듬해는 당선작이 없었고, 다시 해를 넘긴 지 몇 달 안 되어 출판사가 갑자기 문을 닫았던 것이다. 당선작 없음 사태는 물론 출판사의 폐업조차 흥행 참패한 내 책 때문이라고 떠드는 인간들도 있었다. 당선작 없음은 내 알 바 아니고, 출판사가 문을 닫은 건 모 기업 회장이 죽고 회사를 물려받은 MBA 출신 아들놈 짓이었다.

제목이 저주를 불러온 걸까. 아아, 어찌 잊으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앞 임시 매대에서 아픈 손가락 같은 『아웃사이더』를 발견한 그날을. 동충하초즙, 가시오갈피 진액, 영지버섯 엑기스 박스 옆에 수십 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고이 쌓여 있던 모습을.

“그걸 어떻게……”

나를 알아봐준 것보다 저주받은 데뷔작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것도 벤틀리에서 내린 사람이라니.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첫 문장만큼이나 도발적인 시작이었다.

“팬입니다.”

창조 씨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마스크를 끌어 내리는 창조 씨를 보고서야 나는 민얼굴임을 깨달았다. 범접도 못 할 럭셔리카를 흠집 내고 악수에 기념샷까지 요청받다니. 사고 직후 차에서 내리던 순간만큼이나 어안이 벙벙했다. 지상 5백 미터 상공이라는 전망대(거기까지 차를 몬 목적이었다) 투명 바닥 위에 서면 그럴까. 두 다리가 허공에 붕 뜬 느낌이었다.

  • 김엄지 소설가
  • 작가소개

    김경욱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베티를 만나러 가다』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장편소설 『황금 사과』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국내 영화사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제작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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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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