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하루> 제8화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

뜨거운 해, 저수지의 물비늘, 그날 먹었던 옥수수의 단맛, 사탕 포장지 같은 얇고 반짝이는 치마, 부러질 것 같은 발목, 낚싯대가 휘고, 해가 질 때까지 내 어머니와 함께였던 그 시간에 대해서 아버지는 말했다. 어머니의 웃음소리, 웃을 때 눈과 입이 어떤지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아버지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병실은 덥고 건조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밝았다. 들이치는 해를 내 얼굴 정면으로 받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몸 그늘 아래 누워 평화로워 보였다. 말하는 내내 아버지의 표정이 평온해서 의아했다. 아버지는, 너는 너희 엄마가 어떤 여자인지 모르지, 그 말을 할 때 피식하며 웃음을 섞기도 했다. 더 듣고 있자니 아버지는 치매가 맞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여동생이나 나보다 더 아버지에게 시달렸다. 온갖 집기가 부서지고 고성과 고함이 이어지던 그런 시간들은 아주 모르는 사람처럼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일화를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만든 김밥을 들고 둘이 함께 저수지에 낚시를 간 적이 있나 본데,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떤 아름다운 여름날을 회상하고 있었고. 나는 어린 날의 어떤 여름을 떠올렸다. 어느 여름날, 어머니와 내가 외출한 사이 아버지는 장롱 안에 있던 모든 옷들을 꺼내어 집 밖 공터에 쌓아놓고 불태웠다. 밤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나는 그 불타는 모습을 보고 서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왜 그걸 보고 서 있었을까. 누군가 불을 꺼주길 바랐던 걸까. 불이 꺼지지 않길 바랐던 걸까.

여동생은 아직 병실에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여동생이 돌아올 때까지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덥기도 덥고 간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해서 피곤했다. 자꾸 눈이 감겼다. 아버지는 피곤하지도 않아 보였고, 잠이 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면 하루 반나절을 떠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 이제 편안히 지내세요. 갈게요, 하고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아버지가 말했다. 표정이 일순간 돌변하여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전히 창가의 해는 나를 찌를 듯했고. 나는 내가 왜 아버지의 그런 눈빛과 마주해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귀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하기가 거북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기분 좋은 생각만 하세요. 나는 아버지의 가슴팍까지 하늘색 담요를 끌어 올렸다. 아버지의 귀에는 희고 얇고 짧은 잔털이 있었고. 만약에 아버지가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 만인의 동정을 받는다 해도, 나는 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가볼게요. 나는 한 번 더 말하고 등을 돌렸다.

내가 채 병실에서 다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멀리에서 분주한 소리가 시작되었다. 덜컹이고 부딪히면서 다가오는. 밥 차가 끌리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저녁을 이렇게 밝을 때 먹다니. 그리고 곧 여동생은 나타났다. 식판을 든 채였다. 여동생은 밥 차가 올 때까지 내내 복도에 서 있었던가. 내가 이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여동생은 여기에서 자리를 떴었는데. 여동생은 어쩌면 정말 밥 차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식판을 들고 다가오는 여동생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어쩌면 굳은 얼굴이 이 병실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여동생의 표정을 조금 더 지켜보고 있으니 어떤 감정이 전해졌다. 나는 이 병실에서 채 한 시간도 머물지 않았는데 몇 달, 몇 년을 병실에 갇혀 간호만 한 것 같은 심정이 되었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난 가볼게. 아버지 진짜 가요. 나는 여동생과 아버지에게 두서없이 인사말을 건네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아버지도, 여동생도, 간다는 나에게 뭐라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내 뒤에서 스테인리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와 유리문 자동 회전문을 향해 걸었다.

그래서 뭐가 해결됐을까. 나는 여동생이 원해서인지, 아버지의 바람이었는지, 어쨌든 이 병원으로 왔다. 전혀 위급하지 않은 아버지와 아버지보다 더 환자 같아 보이는 여동생을 만났다. 나는 여동생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동생도 내게 뭐라 용건을 전하지 않았고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긴 뒤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는 병실에 비치된 보호자용 간이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과거 회상을 들었다. 나는 견뎠다. 내 얼굴 정면으로 곧장 들이치는 해. 꽉 막힌 병실의 공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산소가 모자라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가 뱉는 단어 하나하나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완전히 병원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걸었다. 밝고 맑은 날이었다. 너무 밝은 날에는 종종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가벼운 현기증이 떠나지 않았다. 물을 좀 마시고 싶었다. 나는 조금 걷다가 나무 그늘 밑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앉아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얼굴을 스치는 옅은 바람을 느끼기도 했다. 병원은 이상한 장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금까지 머물렀던 병실에서의 일들이 아주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병실의 밝기, 온도, 아버지의 목소리, 여동생의 표정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 마치 전해 들은 이야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 한 아들이 아버지라는 사람의 병문안을 다녀왔다는데. 그리고 그날 유난히 눈이 부시게 맑은 날이라 아버지, 아들, 딸, 그 모두의 기분에 각각 다른 영향을 미쳤다고. 병원은 이상한 곳이라 사람이 태어나기도 죽기도 하고. 아버지는 오늘 병원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태어나는 상상은 그가 죽는 상상과는 또 다른 불쾌한 기분을 만들어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아주 늙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늙는 만큼 모두가 늙고 또 누군가는 죽기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마음은 무서운 것이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 누가 누구든, 죽기를 바란다는 것인지. 하지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권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

어떤 날에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기만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절대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도 늙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어떤 날에는 난데없이 오래 살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도 오래.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오래. 내가 아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을 그날까지. 그런 생각은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함께였다. 나는 내가 바라는 바에 대해서 모호함을 느끼다가 그마저 지루해졌다. 내가 하는 생각들은 그저 시간의 연장일 뿐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아무런 의미가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벤치에 앉은 내 앞으로 환자복을 입은 링거와 연결된 사람들 몇이 오갔다. 보호자가 있거나 없거나. 저녁은 다 먹은 환자와 보호자가 산책을 나온 것 같았다. 어디까지가 병원인가. 아직 하늘에 해가 있었다. 하늘엔 오로지 해만 보였다.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가 갑자기, 어쩌면 아버지와 여동생을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들을 피할 이유는 없었지만 다시 마주쳐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런 식의 이상한 조급함, 압박감,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건 아버지인지 여동생인지. 그 둘 다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디까지가 병원인가. 나는 벤치를 떠나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육교를 오르자 좀 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육교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병원 건물이 보였다. 병원과 학교 건물을 구분 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십자가일까. 왜 저토록 알아볼 수 있을까. 육교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가. 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속도를 느끼고. 그런데 왜 나는 육교를 올랐던가.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육교가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 지하철을 타야 했다. 문득 깨달은 나는 지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앞에 내 그림자를 보며, 그것만을 향해 걸었다. 그러니까 아마 한 방향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가을은 말을 살찌게 하고. 가을. 가을이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꽤 걸은 후였다. 서서히 사위가 어두워지고 바람이 기분 좋게 차가웠다. 어디로 더 가야 할지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원룸으로 곧장 돌아가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한자리에 서서 얇은 바람은 맞으며 서 있었다. 이마와 등줄기에 맺힌 땀이 다 식을 때까지. 현기증 때문에 머리뼈가 얼얼한 것 같았다. 두통은 피부의 문제인지 뼈의 문제인지, 그 안에 있는 것의 문제인지, 나는 옆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서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멈춰 서 있는가. 그 생각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어느 대단지 아파트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아파트 건물은 확실하게, 병원과도 학교와도 달랐다. 일단 높고. 높은 아파트 건물과 높은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단지 안에서는 붉고, 푸른, 가끔은 초록의 천막들이 천천히 세워지고 있었다. 아마 아파트 단지 내에서 시장이 열리는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 그렇게 많은 천막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은 이색적이어서 내가 아주 멀리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단지 안의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천천히 움직였다. 아직 조용했지만 아마 더 어두운 밤이 되면 포장마차도 열리고, 천막 아래마다 백열등 빛이 번질 것이었다. 그런 상상은 나를 더 몽롱하게 했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알 수 없었는데, 발바닥이 얼얼했다. 갈증이 있었고, 단맛이 나는 걸 먹고 싶었다.

천막들의 끝 즈음에 ‘꽈배기 5개, 2천 원’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흰 바탕에 ‘꽈배기’라는 단어만 빨갛게 씌어져 있었고, 나머지 ‘5개 2천 원’은 까만 글씨였다. 나는 그 앞으로 걸어갔다. 그 꽈배기 천막 바로 앞까지 갔을 때,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장사를 개시하지 않은 듯 움푹 팬 냄비 안에 연록빛 기름만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열기에 기름이 무늬를 만들며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몇 개나 드릴까요? 불쑥 내 맞은편에서 남자 하나가 나타나 말했다. 다섯 개 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청년은 웃으며 5분만 기다려달라 말했다.

5분이 지났을까. 나는 꽈배기가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걷기 시작했고, 이제 이걸 들고 지하철을 타는 건 불편한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기름 냄새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나는 내 원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는 게 맞을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 알 수 없어서 어떤 교통편이 좋을지 몰랐다. 나는 일단 손에 든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한테는 화도 안 나. 여동생이 내게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왜 그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기분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아침부터 멍한 채 피곤했고,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곳과는 다른 곳으로.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내가 어떤 곳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계속 걷고 있었고, 하루가 지겹게도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걷는 것으로는 이 하루의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어딘가에 처박히고 싶었다.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해가 지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도로에 차가 오가는 소리와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도시의 계획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거대한 조형물 아래에 앉았다. 몇 미터나 될까. 나는 고개를 들어 삼각뿔의 저 먼 끝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이 삼각뿔은 아마 5미터, 8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삼각뿔 아래 앉은 나는 무릎 위에 꽈배기가 든 종이봉투를 얹어놓은 채였다, 기름에 흥건해진, 너무 젖어서 잘 찢어질 것 같지도 않은 그 모양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넌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이런 말을 했던가. 아니. 난 네가 불쌍하지도 않다. 그런 말을 했던가. 사탕 같은 어머니에 대해서 말했던가.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아버지가 떠드는 동안 나는. 잊힌 것 같았던, 잊히지는 않을 어느 여름, 불타던 옷가지들을 떠올리고 있었지. 공터에 나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그 불구덩이뿐이었던가. 그때 여동생은 어디에 있었던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가. 아니. 그 아이와 나는 터울이 그리 크지는 않은데. 병원에서 여동생은 어떠했던가. 밥 차를 복도 끝에서부터 밀고 있었던가. 끝내 나와는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않았던가. 몇 마디 나누었던가.

무릎 위의 꽈배기가 담긴 종이봉투를 찢고 나자 열 손가락이 다 기름에 젖었다.

어디까지 병원인가. 내가 꽈배기 하나를 입에 욱여넣고 씹을 때, 환자복을 입은 누군가 내 앞을 지나쳤다. 그러나 다시 본 그 사람은 환자복이 아니라 단지 아래, 위로 같은 색, 회색이거나 옅은 하늘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고 삼각뿔 조형물에서 빨갛고 퍼런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꽈배기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남은 것은 몇 개인지 세어보기도 했다.

선생님.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이 목소리는 옆집 남자의 목소리다.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옆집 남자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꽈배기를 먹었다.

선생님. 이런 데서 뵙다니 더 반갑네요. 한 번 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고개를 쳐들어야 하는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되었다.

하하. 그러게요. 여기서 다 뵙네요. 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삼각뿔 주변에는 나 말고도 몇이 더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왜 혼자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무얼 확인해야 할까. 정말 옆집 남자가 맞는지 아닌지? 나는 뭐라도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기분과 무엇도 제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앉아 꽈배기를 씹고 있었다. 내 입 주변에도 기름기가 흥건했다. 꽈배기는 다 먹고 나니 토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속이 더부룩하고 손과 입을 닦고 싶었다.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1

삼각뿔 조형물은 점점 더 빛을 냈다. 더 밤이 되려는 것 같았다. 밤이면 으레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일어나 원룸으로 향해야 할까. 아직 아닐까. 지금쯤 아버지는 돌아가셨을까. 어쩌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말들을 했고. 말할 때 평소와는 다르게 표정도 평온했으니. 아버지가 정말 돌아가셨을까.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보아야 할까. 바람 없는, 창 없는, 어느 방 안에서 모빌이 흔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구름은 없었다. 달이 밝았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내 그림자를 찾았다. 그 방향으로 걸을 것이었다. 걷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길바닥에서 훌뿌려진 쌀을 마주하거나 흐트러진 흰 끈을 발견하거나, 외벽에 세워진 파란 우산을 마주치거나. 어쩌면 파란 우산은 길바닥에 펼쳐진 채 나뒹굴고 있을 수도 있었고. 또 나는 걷다가 누군가의 흰 샌들, 발가락에 칠해진 색들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그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가. 나는 아직 삼각뿔 조형물 아래 있었다.

  • 김엄지 소설가
  • 작가소개

    김엄지소설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돼지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중편소설 『폭죽무덤』 『겨울장면』,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등을 출간했다. 데뷔 당시 단번에 써내려간 듯한 거친 언어와 술술 읽히는 가독성, 동시대를 그려내는 예리한 감각을 선보이며 가장 주목받는 이십대 작가 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10년 차를 맞던 지난해에는 『폭죽무덤』이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작에 선정되며, “그 문체가 스며내는 감각적 느낌만으로도 놀랍다. 감각적 삶의 무기력에 지친 인물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고, 그 우울함을 각성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소설의 후반부를 이룬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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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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