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하루> 제7화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

버려야 할 것, 버릴 수 없는 것.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었다. 토론이었는지 토크쇼였는지 연극이었는지. 진행자와 출연자의 목소리가 구분되었다. 대사와 두 번의 헛웃음 같은 짧은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버려야 할 것, 버릴 수 없는 것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뉘앙스였다. 그들은 불필요한 말들을 끝말잇기처럼 서로에게 넘겼다.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요? 진행자가 묻고,
버려야 할 것들은 삶의 흐름과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지나친 생각, 지나친 행동, 지나친 욕망, 지나친 표출, 지나친 표현, 지나친 후회, 지나친 집착, 지나친 노동, 지나친 피로, 지나친 걱정, 지나친 거짓, 지나친 진솔함, 지나친 친근함, 지나친 눈 마주침, 모든 지나친 것들입니다. 출연자는 대답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모두 버리게 되면 행복해지는 건가요?

행복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하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웃는 걸까, 나는 그때 라디오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슬플 때도 웃는다던데. 웃음소리는 사람이 일부러 만들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이고 또, 사람은 그게 무엇이든 필요하면 만든다.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시 진행자가 묻고,
버릴 수 없는 것은 나. 나라는,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나의 욕망, 나의 표현, 나의 후회, 나의 집착, 나의 노동, 나의 피로, 나의 걱정, 나의 거짓, 나의 진솔함, 나와 눈 마주치는 모든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 외에 인간이 진정 버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출연자가 대답했다.

버려야 할 것과 버릴 수 없는 것이 짝을 이룬다는 말씀이신가요?

꼭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하하.

한 번 더 말끝에 웃음소리를 기억해내고. 나는 새로운 기억을 하나 더 떠올렸다.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운전 중이었다. 어디에 가던 길이었을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내 차는 전복되어 반파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서부터 후회를 해야 할지 생각 중이었다. 화장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거울 안에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열어둔 문 밖에서 얇게 들어오는 빛으로 가능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와, 화장실 안의 사물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찬물로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거나 치약을 많이 짜서 이를 닦거나를 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숨을 뱉을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올라와 거북했다. 어제보다 더 턱이 찌그러졌다는 생각.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본다기보다 지나가는, 흘러가는 생각들 중에 하나를, 하나씩 건져내고 있었다. 턱이 언제부터 이렇게 찌그러졌는지. 그건 아마 언젠가 되게 다친 이후겠지. 그래 그건 아마 내가 이미 다 커버린 스물아홉 살, 우연히 넘어져 턱부터 바닥에 닿았던 그날, 그리고 그다음 날. 오른쪽 아래턱이 주먹만큼 부어오르고 찢어지지는 않은, 굉장히 다친 것 같은데 피 한 방울 나지 않아 신기했던 기억과 정형외과와 한의원과 성형외과를 전전하던 여러 날을 떠올렸다. 나는 불 꺼진 화장실 세면대에 두 팔을 받치고 서서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춰지는 윤곽에서 내가 겪은 사고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숙취가 심해 몸체가 왼쪽으로 조금씩 기울었다. 턱 안에 있는 건 피떡이에요. 혈전이라고 하죠. 1년 지나면 흡수될 겁니다. 어쩌면 2년이 걸릴 수도 있고요. 그렇게 말한 자는 성형외과 의사였던가. 한의사였던가. 어디로 흡수된다는 건가요? 이 안에는 뼈밖에 없지 않나요? 내가 되물었고 마주 보고 앉은 의사는 내게 뭔가 설명하려다 말았다. 아무튼 괜찮아질 겁니다. 그런 대답을 들은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10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내 턱 안에 뭔가 만져진다. 숙취가 턱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두통이 심했는데 머리가 정확히 턱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속는 기분으로 한 번 더 아래턱을 매만졌다. 턱 안의 단단하고도 물렁한 질감으로부터 무언가 상상했다. 지금은 검은 덩어리가 되어 있을 피떡을. 지난밤 내 앞에 앉아 있던 옆집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이목구비. 종국에는 흘러내릴 것처럼, 흩어질 것처럼 불안정했던 옆집 남자의 눈, 코, 입. 그리고 옆집 남자와 관련된 더 많은 것,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차례차례 모두 떠올렸다. 나를 부르던 목소리부터. 선생님. 선생님 키보드를 청소하시나요? 가끔 키보드 털어보시죠? 저는 키보드를 털 때마다 손톱 조각이 우수수 떨어져요. 제가 손톱을 자주 깎는 것도 아닌데요. 아닌데요, 하던 옆집 남자의 목소리. 그가 하는 말들은, 말마다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를 부축해서 이 원룸 건물까지 끌고 와야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까지 알아야 했다. 그는 축 처진 몸을 내게 기대고 0882#이에요 선생님, 중얼거렸다. 현관문을 열고 현관 타일 바닥에 그를 앉혀두고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내 집으로 들어와 씻지 않고 잠이 들었던가.

아무튼 머리가 아프고. 나는 지금 옆집 남자와의 조우, 늦은 밤까지 그와 함께 술을 마신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후회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회라기에는 그조차 너무 거창했다. 옆집 남자에게 할애한 내 시간이 아깝다고 할 수는 있지만 꼭 그가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내 시간은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사라졌을 것이다. 정말 내게 중요한 것이란 없다. 내 감정은 몇 겹의 오해와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뭘 느끼는지, 무엇에 불쾌해하는지, 무엇에 만족하고 즐거워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잠들기 위해서 잠에서 깨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살고 있다는, 살아 있다는 감각 역시 기만적이다. 실감을 한다는 것은 단지 감각의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주변의 것들을 충분히 보고 듣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뭘 보고 듣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다가와 어떻게 나를 스쳐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거리의 무엇 하나, 만나는 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한다. 내가 근래에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라면, 내가 무언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일까? 확실히 죽음은 아니다. 나는 죽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가끔 누군가는 나를 무척 죽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생각한다. 그들은 나를 염려하고 때로는 노여워하기도 한다. 초여름에 나는 내가 굉장히 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비가 몹시 퍼부은 뒤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달라진 바는 없었다. 폭우가 지나간 후에도 나는 약간의 우울과 피로를 늘 갖고 생활했다. 결정적으로 계속해서 관계와 미래에 대해 체념하기를 스스로에게 세뇌하고 있었다. 내가 나에 대해 체념을 하거나 말거나 지금 상황에서 바뀌는 바는 거의 없을 것인데 나는 왜 나와의 거리를 더 멀리하려는 걸까.

다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쥐었을 때, 아버지가 자해를 하셨대,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아야 했고 아버지가 자해를 하셔서 나에게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여동생에게 답장은 하지 않았다. 여동생에게 의례적으로나마 답장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했다. 얼마나 다치셨대?라든가. 그래서 어떻게 되셨대?라든가. 너도 놀랐겠다, 정도의 멘트를 떠올렸다. 그리고 더 많은 멘트를 떠올렸다. 그런 다음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3년 전의 일과 10년 전의 일, 그리고 20년 전의 일, 별것 아닌 일, 별일이었던 일, 큰일, 사소하지만 잊히지 않는 일들을 마구잡이로 떠올리며 샤워를 했다. 온갖 종류의 시계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롤렉스, 파텍필립, 잠수 시계, 카시오, 장식용 시계, 애플워치. 44밀리미터와 46밀리미터 중에 뭐가 나을지. 시계 생각을 하다보면 웃음이 터지기도 해서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나는 종종 시계에 대한 생각을 시도한다. 왜 시계 생각은 나를 웃게 하는가? 나는 결코 시계를 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난 정말 시계가 필요 없고 내 인생에 시계를 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어떤 시계가 가장 나에게 어울리고 최상의 선택일지 생각하다 보면 몰입하게 되는 것이었다. 한참을, 길게는 반나절, 나는 여러 시계를 검색하고 확대해보고 줄여보고, 핸드폰 화면 창에 떠 있는 시계를 실제 크기만큼 맞추어 손목 위에 얹어보기도 했다.

다 씻고 난 다음에는 방바닥에 앉아 손톱과 발톱을 깎았다. 손발톱 조각을 그러모아 싱크대에 버렸다. 싱크대는 종종 쓰레기통처럼 사용된다. 내 원룸 안에 이렇다 할 쓰레기통이 없기도 하다. 그다음엔 얇은 긴팔을 챙겨 입었다. 숙취가 가시지 않았다. 뭘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지갑과 핸드폰, 우산을 챙겨 밖을 나섰다.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1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중에서 비가 가볍게 흩날리듯 분무되고 나는 그 모습을 봤다. 나는 가지고 나온 우산을 펼쳐들고 걷기 시작했다. 이 비는 여름비는 아니고, 가을비도 아니다. 이 비는 봄비 같다, 생각했다. 봄비에 대해서 생각하니 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쑥 생겨나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뭣 때문에 봄을 기대한단 말인가. 사람은 단지 선호하는 계절과 날씨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내가 걷는 동안 안개비는 조용히 계속 내렸다. 나는 걷다가 길바닥에서 뭔가 발견하고 멈췄다. 검은빛이 짙게 도는 회색. 그것에는 이제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일말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나는 그게 죽은 비둘기의 날개라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대가리는 사라진 모습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 마주침은 매일 있는 일은 아니었고, 잊을 만하면 눈앞에 나타나는 광경이었다. 나는 걷다가 멈춘 그 자리에서 길바닥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었다. 대가리는 어디에 갔을까. 나는 길모퉁이와 하수구 근처를 뒤적이듯 눈으로 살폈다. 대가리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아, 다시 자세히 보니 그 검은 펼쳐짐은 죽은 비둘기의 날개가 아니라 변색된 바나나 껍질이었다. 펼쳐진, 온기 없는, 이제 움직임이 없는 바나나 껍질이었고. 다 저런 색이 되는 걸까. 썩기 직전에는 비둘기건 바나나 껍질이건 또 사람이건, 저런 색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저 색이 되어야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비둘기 날개가 아니라 바나나 껍질이라니. 처음 그것을 목격했을 때와는 감상이 달라지는 것도 같았다. 나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방금 본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바나나 껍질은 확실했던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바나나 껍질이 아니라 어떤 부속품, 이를테면 찢어진 고무 같은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오염된 질긴 천 조각은 아닐지. 그게 아니라면. 그게 무어라 해도. 길바닥에서 본 그게 뭐가 됐건 정말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문득 옆집 남자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게 다인가요? 선생님이 느낀 세상에 절망이? 그 말을 할 때 옆집 남자의 두 눈은 몹시 충혈되어 있었고, 내 이야기에 실망한 표정이었던 게 떠올랐다. 나의 무엇이 그 남자를 실망하게 했을까. 옆집 남자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절망을 이야기하리라 기대했던 것일까. 절망이란 무엇일까. 비참함일까.

나는 지나쳐온 길바닥의 검은 펼쳐짐이 무엇이길 바라는 걸까? 혹시 그 형체가 비둘기 날개가 아니라 실망한 것일까? 내 이목구비가 일순간 옆집 남자의 그것처럼 흘러내리고 흩어지는 꼴이 되었을까? 길바닥에 검게 펼쳐진 바나나 껍질은 죽은 비둘기의 날개보다는 덜 절망적인 것일까? 내가 절망이니 검은 펼쳐짐이니, 그것들이 다 뭔지 알기 전에 여름이 끝났다.

카페에 들어가 앉아 통유리창 밖을 오래 내다보다 여름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됐다. 카페 내부의 냉방 장치가 꺼진 것이었다. 에어컨이 켜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카페의 공기는 전과 달랐다. 내가 주문한 커피를 채 전달받기 전에 여동생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병원 이름과 위치, 층수와 호수가 적힌 것이었다. 오전의 카페는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유독 심했다. 그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이 카페 내부에서 작동하는 기계 중에 하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 김엄지 소설가
  • 작가소개

    김엄지소설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돼지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중편소설 『폭죽무덤』 『겨울장면』,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등을 출간했다. 데뷔 당시 단번에 써내려간 듯한 거친 언어와 술술 읽히는 가독성, 동시대를 그려내는 예리한 감각을 선보이며 가장 주목받는 이십대 작가 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10년 차를 맞던 지난해에는 『폭죽무덤』이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작에 선정되며, “그 문체가 스며내는 감각적 느낌만으로도 놀랍다. 감각적 삶의 무기력에 지친 인물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고, 그 우울함을 각성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소설의 후반부를 이룬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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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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