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신화 속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이 있다.
상체는 사람, 하체는 말의 모습을 한 켄타로우스의 머리를
큰 창을 든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붙잡고 있는 그림이다.
작품의 제목은 <팔라스와 켄타로우스>. 피렌체 출신의 화가 보티첼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피렌체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1478년의 긴박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과연 이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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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년 4월, 당시 피렌체는 공화국 체제의 도시국가였지만 실질적으론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대표였던 로렌초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는 부활절 미사를 드리기 위해 두오모 성당에 도착했다. 형제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 순간, 숨어있던 자객들이 칼을 꺼내 습격했다. 동생인 줄리아노는 온 몸에 칼을 찔려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지만, 형인 로렌초는 다행히 목에 상처만 입은 채 성당 안쪽에 있는 방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 습격으로 인해 성당 내부는 아비규환이 되었고, 자객들은 혼란을 틈타 성당을 빠져나갔다.
피렌체를 발칵 뒤집히게 만들었던 이 살인극은 메디치 가문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던 파치 가문과, 조카에게 피렌체를 넘겨주고 싶었던 욕심 많은 교황 식스투스 4세의 합작품이었다.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암살하고 혼란해진 틈을 타서 피렌체를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습격 소식을 듣고 광분한 피렌체의 시민들은 무기를 가지고 나와 주동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로렌초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나와 사사로운 복수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흥분한 시민들은 파치 가문과 교황이 보낸 성직자 등 무려 8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처형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성직자의 죽음을 핑계 삼아 로렌초와 피렌체 전체를 파문하고, 피렌체의 라이벌이었던 로마, 나폴리, 시에나 등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피렌체 지역을 공격한다. 교황 연합군이 한꺼번에 거센 공격을 해오자 피렌체는 패배를 거듭하면서 점점 영토를 잃게 된다. 피렌체마저 함락될 위기를 맞게 된 로렌초는 목숨을 건 모험을 선택하는데, 바로 적국인 나폴리의 왕 페란테를 직접 만나 설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은밀하게 피렌체를 빠져나온 로렌초는 위협을 무릅쓰고 적진을 찾아가 무려 3개월 동안이나 나폴리의 왕 페란테를 설득한 끝에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이로 인해 피렌체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게 된다.
흔히 ‘파치 음모’라 불리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그림에 담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피렌체 출신의 화가 보티첼리였다. 메디치 가문의 화가였던 필리포 리피로부터 그림을 배운 후 로렌초의 후원을 받으며 화가로 활동하고 있던 그는 사실주의를 벗어난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한 인물이다. 보티첼리는 파치 음모를 그리기 위해 신화 속의 인물을 소환하는데, 사악하고 욕심 많은 파치 가문과 교황은 성질이 난폭하고 욕망이 가득한 ‘켄타로우스’로, 지혜와 용기로 평화를 되찾은 로렌초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배경에는 배를 타고 나폴리로 향하는 로렌초의 모습을 담아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 <팔라스와 켄타로우스>를 완성한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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