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도시의 저녁 풍경을 담은 작품이 있다.
그런데 이 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둠이 짙게 깔린 우울한 거리 한쪽으로 기괴한 표정의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은 <칼 요한 거리의 저녁>, 작가는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트 뭉크’다.
그런데 뭉크는 왜 노르웨이의 중심가인 칼 요한 거리를
이렇게 우울하고 기괴한 곳으로 그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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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노르웨이의 뢰텐이란 곳에서 태어난 뭉크는 군의관인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이듬해 오슬로로 이사를 한 뭉크의 부모는 3명의 동생을 더 낳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뭉크 가족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뭉크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고, 이로 인해 아버지는 종교에 집착하며 자녀들을 매우 엄격하게 키운다. 설상가상으로 누나 소피에마저 폐결핵으로 목숨을 잃자 뭉크는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누나의 죽음 이후 그림에 빠진 뭉크는 아버지가 억지로 입학시킨 공학대학을 그만두고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간다. 1883년 미술전람회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한 뭉크는 유명한 미술학도로 이름을 알리면서 화가의 꿈을 키워가지만 또 다시 큰 시련이 찾아온다. 1885년 뭉크는 가족들과 함께 떠난 여름휴가지에서 밀리라는 여성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밀리는 아름다운 외모로 이미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는데, 이미 결혼한 유부녀였기 때문에 뭉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했고, 밀리 역시 뭉크에 대한 애정이 금방 식으면서 둘의 관계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난다. 하지만 밀리를 잊지 못한 뭉크는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오슬로의 중심가인 칼 요한 거리를 하염없이 배회했다.
첫사랑의 아픔을 겪은 뭉크는 새로운 작품에 몰입하는데, 그것은 13세 때 죽은 누나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습작>이란 작품이었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불명확한 형태, 균일하지 않은 붓질 등의 파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지만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고, 비평가로부터 ‘그리다 망친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했지만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이후 뭉크는 또 한번 가족과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화가의 길로 들어선 뒤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수입에 의존하던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여동생 라우라는 정신병으로 입원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뭉크 역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첫 사랑의 실패와 가족들에게 찾아온 불행, 화단으로부터 받은 조롱과 화가로서의 불안감까지, 28세의 뭉크는 칼 요한 거리를 거닐던 시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밖으로 나가 겨울 해가 지는 칼 요한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노란 가스등과 상점의 창에서 나오는 불빛을 받은 기괴스러운 얼굴들이 검푸른 공기 속에서 걸어나왔다.’ 이때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 바로 <칼 요한 거리의 저녁>이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다양한 형태와 표현으로 다듬어 가던 뭉크는 어느 날 오슬로 인근의 에케베르크 언덕을 산책하다가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를 그림에 담은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절규>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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