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사람, 특정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교보문고에 들어서면 특유의 향이 느껴지는데, 이는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해
특정한 향이 서점 곳곳에 퍼지도록 의도한 향기 마케팅의 일종이다.
그런가 하면 제주항공은 기내에 시원한 바다 향을 뿌려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했고,
영국의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는 매장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특유의 향으로 기업의 이름을 알렸다.
특정 공간에 대한 이미지까지 떠오르게 하며 마케팅에도 당당히 발을 들인 향기.
이렇듯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는 저마다의 향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향기의 힘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72세의 나이에 25세의 폴란드 국왕에게 청혼을 받아 결혼했다. 여왕에게서는 늘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고 하는데, 여왕이 그 비결로 꼽은 것이 바로 향수의 일종인 ‘헝가리 워터’였다. 인류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무나 허브 같은 물질이 탈 때 좋은 향을 발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1370년 가루 형태에서 액체 형태로 등장한 최초의 향수가 바로 헝가리 워터다. 영혼의 물, 여왕의 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헝가리 위터를 엘리자베스 여왕은 입욕제, 화장수 등으로 활용해 늘 고혹적인 향기를 풍겼다고 전해진다.
좋은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고, 나쁜 향을 맡으면 불쾌해지는 건 단순히 향기 때문만이 아니다. 후각은 그에 동반된 기억과 감정까지 불러오는 감각기관이라 하는데, 좋은 향이 좋은 기억을 불러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뇌변연계를 통해 만들어지고, 자극에 관한 신호가 시상을 거쳐 해마로 전달된다. 그런데, 시상을 지나면서 반응신호는 대부분 약해져 해마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이때 유일하게 후각 신호만은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해마로 전달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후각 기억이 오래가는 것이다.
2018년, 미국의 한 학술지를 통해 전해진 놀라운 소식 하나. 바로 옷에 묻은 사람의 체취만으로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남편의 목에서 낯선 머스크향을 맡은 후 남편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이후 파킨슨병 환자 모임에 갔을 때 다른 사람에게서도 같은 향기를 맡았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녀는 냄새만으로 병을 가려낼 수 있었던 걸까? 이후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그녀의 능력이 입증되면서 의료계는 들썩였다. 이처럼 체취만으로 병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다면 병의 조기 발견 및 치료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에 학자들은 특정 질병이 야기하는 체취의 변화를 읽어내는 전자코 개발에 필요한 연구를 시작했다.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사람마다 특정 향기를 선호하기도, 혐오하기도 하며 때로는 좋은 향기가 긍정적인 선택을 유도할 수도 있다. 마케팅은 물론 의학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영역까지 차지한 향기. 학자들은 언젠가 우리의 휴대전화 속에서도 향기가 피어오르는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향기는 어디에나 필요하고, 또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향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힘을 제대로 알고 활용한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