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자 거리에 풀린 눈으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걸어도 계속 그 자리인 것처럼 어둡고 더웠다. 나는 끼니를 해결할 뭔가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습도 높은 밤이었다. 대형마트 입구에 휴무일이라는 철제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전면 유리 너머로 조명 꺼진 마트의 내부가 보였다. 그 앞에 서서.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해야 했는데. 열대야가 이어지고 곧잘 생각이 멈췄다. 눈꺼풀도 멈춘 것처럼 오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두 눈이 매웠다.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서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났다. 누가 플라스틱을 녹이고 있을까. 분명히 지금 타고 있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로 했다. 서넛, 대여섯이 모여 아무 바닥에나 앉아 끊임없이 뭔가 마시면서 가끔 왁자하게 웃었다. 무리 지은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우연히 내 귀에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실력과 처세에 대한 이야기, 결국에는 우상향, 개과천선, 덥다고 소리치는 소리를 지나 걸었다. 걷는 동안 바지가 슬슬 내려가다 길바닥에 바지 밑단이 끌리기도 했다. 새 반바지를 사야 할까. 새 반바지를 산다면 이 여름이 나아질까? 나아질 것도 같았다. 거리의 카페와 식당은 차례대로 불을 껐다. 카페와 식당, 안경점이 줄지은 그 길을 벗어나 좀더 걷자 거대한 조형물이 나타났다. 저런 걸 청동이라 불러야 하겠지. 청동은 족히 5미터, 어쩌면 7미터는 되어 보였다. 3, 4층 건물 한 채만 한 그 조형물은 와인 잔 모양이었다. 거대한 청동 와인 잔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쥐 대가리, 그러니까 쥐 대가리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그리고 구두코, 리본이 달린 선물 상자의 일부분이 와인 잔에 담겨져 있었다. 청동 와인 잔 아래 바닥에는 바닥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밤이라 바닥 분수는 멈춰 있었다. 와인 잔과 와인 잔에 담긴 거대한 것들이 멀리까지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와인 잔과 그 안의 것들의 의미, 그런 생각은 감히 할 수가 없었다. 도시의 계획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심오한 것이었다. 저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참여와 의견과 기획이 있었을지. 또 실행 단계에서 겪어야 했을 수고와 시행착오. 희망, 어쩌면 저주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그 조형물을 지나 더 걸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잦아들고 풀냄새가 짙어졌다. 공중에서, 풀숲에서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스, 치치치 하는. 그보다 찢어지는 소리이고 여리게 스치는 소리였다. 왜 점점 더 귀가 밝아지는지. 너무 더우면 귀가 밝아질 수도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
크게 조성된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갔다. 아파트 단지에 소나무는 오래되어 높게 자라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통과하고 또 어떤 골목을 지나 육교를 오르고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건너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아무 일 없이 길을 건너고 횡단보도 바로 옆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네 캔을 샀다.
원룸 건물 복도에서부터 옆집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전에도 그가 이렇게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옆집 남자의 노래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곧장 내 원룸으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했다. 다 씻은 후에는 에어컨을 켜고 알몸으로 침대에 앉아 캔 맥주를 마셨다. 똑똑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걸린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빈 스테인리스 그릇 하나를 그 밑에 두었다. 맥주를 두 캔 더 마시고 나서 형광등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누운 뒤로도 옆집 남자는 계속해서 노래를 했다. 아마 화장실에서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 가사를 반복했다. 스테인리스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옆집 남자는 노래를 멈추지 않고 더 흥분하는 것 같았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나는 잠이 들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내게 변명만 늘어놓는 꿈을 꾸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는 탁자가 있었다. 탁자가 커지는지, 내 몸이 뒤로 밀리는지, 그자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데 자꾸 멀어질 뿐이었다. 꿈꾸는 내내 조바심과 답답증을 느꼈다.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은 아직 어두웠다. 에어컨 밑에 둔 그릇에 물이 반쯤 찼을까. 누운 자리에서 고개만 들어 에어컨 밑을 확인했다. 아직 찰랑일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몇 시나 되었을지 그건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침이기를 바랐다. 밖은 곧 폭우가 쏟아질 참이고 그래서 창밖이 캄캄한 것이라고. 시간이 멈춘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멈춘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 지금 밖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내 예보된 장마나 태풍이 오지 않고 여름이 너무 오래 정체되고 있었다. 건물을 내리치는 천둥소리, 빗소리를 듣고 싶었다. 내 바람이 이루어지려는 것일까. 한 줄기 빛이 창에 번쩍였다. 나는 창을 보고 누워 이어진 천둥소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천둥도 비도 시작되지 않았다.
아침이 되었을 때 여동생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 주말부터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 면회가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함께 가겠냐는 물음이었다. 거절할 핑계가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함께 가게 되겠지. 주말까지 4일, 아니 5일이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가슴께에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면회를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 면회를 거절해야만 하는 이유는 또 뭔지. 생각해보려다가 지겨워졌다.
아버지 계신 요양원에는 에어컨이 없대. 여동생이 그런 문자를 보내어오기도 했다.
괜찮아. 거긴 산 중턱이잖아. 시원할 거야. 나는 그렇게 답장을 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아버지가 죽고 싶다고 하셨대. 가끔 난동 부리시나 봐. 여동생은 그렇게도 문자를 보냈다. 나는 거기에 답장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죽고 싶어 하셨다. 죽지 못해 안달이 난 몸부림, 나는 몇 번 목격했다. 때로는 집기를 부쉈고 때로는 자기 목을 조르거나 벽에 머리를 찧었다. 주먹으로 창을 내리치고 부릅뜬 눈으로 괴성을 질렀다. 자기 머리털을 쥐어뜯기도 했다. 너도 같이 죽자며 내 손목을 끌었던 적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그 몸부림들이 정말 죽고 싶은 몸짓이었는지 다른 어떤 열망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죽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을 내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그만 알아야 했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그런 생각들로 오전이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에어컨 밑에 놔둔 그릇에 물이 찰랑였다. 어제부터 먹은 것이라곤 간밤에 마신 맥주 세 캔이 전부였다. 신물이 올라왔다. 뭔가 먹어야겠지. 뭘 먹으면 좋을지. 간밤에 벗어둔 티셔츠와 바지를 다시 입고 밖을 나섰다.
파란 우산 가져가신 분 돌려놓으세요. 원룸 복도와 건물 외벽에 붙은 종이를 지나 카페로 향했다. 파란 우산이 어디에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지는 않았다. 큰 도로 가까지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서 8차선 도로를 바라보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차한 차들마다 배기가스를 내뿜고 해는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매미가 사납게 울었다. 거리의 모두가 저 소리를 견디고 있는가. 고개 들어 가로수를 살펴보았을 때 나뭇잎 사이에서 빛이 부서지고 매미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매미가 복잡하게 생겼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바닥에 떨어진 매미의 허물을 본 적이 있다. 또 다른 언젠가는 약간 말라비틀어진 매미의 사체를 본 적이 있다. 겹겹이 뭉쳐진 마른 나무껍질 같았는데. 그러니까 나는 살아 있는 매미는 아직 보지 못해서 허공에서 찢어지는 소리를 내는 게 정말 매미인지, 내가 모르는 세상의 오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미 소리는 자동 기계의 고장, 볼륨이 지나치게 큰 반복처럼 들렸다.
카페 안은 서늘하고 그늘져 있었다. 조용히 떠드는 몇, 계핏가루와 커피 냄새가 풍기고 느린 피아노가 흘렀다. 카페 안은 밖과는 거의 모든 게 달랐다. 밖은 나를 무겁고 더운 공기로 밀어 어디에 서 있어도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만약에 내가 걷다가 더위에 지쳐서, 혹은 바지가 너무 커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아예 누워버린다면, 그다음에 나는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아마 내가 이미 죽은 줄 알 것이다. 납작하게, 어딘가 몹시 훼손되어 보여서 없는 악취까지 느낄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거대하고 기괴한 조형물의 그림자 일부로 보일 수 있고, 그래서 바닥에 내가 쓰러진다면 아무렇게나 누구에게나 무방비하게 밟힐지도 모른다.
나는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했다. 창가의 구석 자리로 가 앉아 유리 밖 9층 건물의 간판들을 차례차례 읽었다. 왜. 그건 내 오랜 습관이었다. 눈을 감았다. 방금 본 것들의 선명한 잔상을 확인하고. 카페 내부의 사람들은 노트북이나 책을 펼치고 앉아 거기에 몰두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읽는 책의 제목은 너무 커서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저런 걸 읽다니.
아버지가 흰 끈이 필요하다셨대. 오빠한테 말하면 알 거라고 하시던데. 주말에 가지고 나와. 오전에 동생에게 받은 메시지 중 하나를 다시 읽었다. 흰 끈. 나는 어떤 끈도 알지 못했다. 그 흰 끈이 어떤 생김인지 되물으려다 말았다. 아마 아버지가 찾는 그런 끈은 내게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조차 그 흰 끈이라는 것에 대해 모를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르는 채 확신하고, 찾고, 주변인들을 괴롭혀왔으니. 이번 주말 나는 흰 끈 비슷한 것을 요양원에 가져가거나, 빈손으로 찾아가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당연한 수순으로 나를 책망할 것이었다. 나는 죄짓지 않고도 죄인처럼 입 다물고 앉아 있을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면회를 거절해야 할까. 거절이라면, 부드러운 거절이 좋겠지.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땅하고 온화한 거짓말을 해낼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통유리 창 너머 보이는 밖, 건너편 건물에 간판들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피움수학, 그룹트레이닝, 변호사 박하성, 펌 염색, 프리미엄 어묵, 밝은미소치과, 유앤아이부동산, 매매 경매 월세 전세. 숨어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간판은 없는지 샅샅이 뒤져보다가 토스트 가게와 작은 카페, 추어탕 가게와 스터디룸, 두상 교정, 그런 간판 글자들을 더 찾아냈다. 저 많은 용건, 욕망이 건물 외벽에 매달려 광고 중이고. 이 세상이 오래전부터 광고를 위한 장, 무대였다 해도. 저 건물은 유난히 간판이 많다. 너무 많다. 그게 뭐든 너무 많은 것은 나를 곧잘 지치게 했다.
카페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청동 와인 잔 아래 벤치에 앉았다. 내 앞에 바닥 분수가 있었다. 물이 솟구치고 떨어지는 걸 쳐다보았다. 물이 튀기도 하고, 언뜻 물비린내가 나기도 했다. 이 물이 얼마나 더러울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가끔 어린애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 분수를 가로질러 뛰어다녔다. 해가 질 때까지, 바닥 분수가 멈추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내 머리 위에 그림자가 방향을 바꿀 때까지 앉아 있었다. 벌레가 울고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렸다. 완전히 어두워지자 풀냄새가 더 짙어졌다. 다시 배가 고파져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기란 뭘까. 기껏, 나를 움직이게 하고.
골목과 육교와 횡단보도를 지날 때 바지가 흘러내렸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맥주 네 캔을 샀다. 내일은 바지가 더 커질 것이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아무 생각이 없었던가. 낮 동안 한 일이라고는 카페에 가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바닥 분수를 구경한 것이 다였는데 밤이 돼서인지 몹시 피곤했다. 단지 내 기분일 수도 있었다.
원룸 복도에서부터 옆집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 가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원룸 현관에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를 때 에어컨 전원을 끄고 나왔는지, 스테인리스 그릇에 물을 비워두었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현관문을 열고 제일 먼저 에어컨과 그 바닥을 확인했다. 그릇에 물은 넘치지 않았다. 콘센트에서 에어컨 전원 줄을 빼놓은 채였다.
흰 끈이라는 게 도대체 뭐야. 씻으면서 다시 흰 끈을 떠올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맥주를 네 캔 다 마신 나는 집 안 곳곳을 뒤져 찾아냈다. 싱크대 서랍장 안에 하얀 나일론 끈이 둘둘 말려 있었다. 두껍지 않지만 길이는 꽤 돼 보였다. 목에 매고 매달리면 전신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끈이었다. 아버지가 말한 흰 끈이 이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걸 서랍 밖으로 꺼냈다. 바닥에 죽 펼쳐보기도 하고, 가장 작은 부피로 만들기 위해 단단하게 다시 말아 감아보기도 했다. 이걸 어디에 담아가야 할까. 왜 이런 걸 고민해야 할까. 하지만 정말 이걸 어디에 담아야 할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반듯하고 힘 있는 종이봉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가늘고 긴 선이나 빛의 모습이 아니다. 생각이 이어지는 모습은 반짝이는 아름다움의 연속이 아니다. 생각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심해 밑바닥에 오래된 그물 같은 것, 물이끼와 오물들이 들러붙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해지고 오염되는, 맨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행복하게 살아라. 아버지가 잠에서 막 깬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한 적이 있었다.
행복이고 뭐고 이제 없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버지의 피부, 머리카락, 입에서는 늘 술과 담배에 전 냄새가 풍겼다. 나는 다 떠나서 그 냄새만은 피하고 싶었다.
너는 행복이 뭔지도 아직 모르면서 뭐가 없다는 거냐. 아버지가 내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 말했고,
몰라도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죽여줄게.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술과 담배에 전 냄새를 풍겼다. 죽여줄게, 아버지는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말에 공포감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공포는 아버지가 가져오라는 그 흰 끈이라는 게 내 원룸 싱크대 서랍장에서 발견되는 것, 흰 끈이라는 것 말고도, 더 많은 아버지의 물건이 이 원룸 곳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작가소개
김엄지소설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돼지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중편소설 『폭죽무덤』 『겨울장면』,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등을 출간했다. 데뷔 당시 단번에 써내려간 듯한 거친 언어와 술술 읽히는 가독성, 동시대를 그려내는 예리한 감각을 선보이며 가장 주목받는 이십대 작가 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10년 차를 맞던 지난해에는 『폭죽무덤』이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작에 선정되며, “그 문체가 스며내는 감각적 느낌만으로도 놀랍다. 감각적 삶의 무기력에 지친 인물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고, 그 우울함을 각성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소설의 후반부를 이룬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