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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읽거느 새단장 기념 이벤트 2016.01-18~02.29광화문 읽거느 새단장 기념 이벤트 2016.01-18~02.29

광화문 연재소설

<하루> 제1화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게 뭐든.

지나간 어떤 사건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올 때면, 대답해야 할 때면 가슴에 답답증이 일고 뒷목의 뻣뻣함, 현기증이 느껴진다. 눈 마주치게 되는 것마다 천편일률적인 이미지, 거리의 간판,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 파다한 정보, 메인 창의 뉴스, 소란스러운 영상 광고, 널리고 널린 힙한 것들, 현혹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썸네일들, 그것들은 언제나 똑같거나, 언젠가 보았던 것과 꼭 같았다. 하찮음, 지겨움, 나는 내 감상이나 감정에 대해서도 무력감을 느꼈다. 나날이 피곤했다.

격리 기간이 끝이 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원룸 안의 물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얌전한 모습이었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집 안의 모든 창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의 냄새는 미묘하게 변했으며, 증폭되어 있었다. 3주 전 싱크대 안에 버려둔 사과 껍질, 아버지가 이 원룸에 머물 때 줄곧 피웠던 담배 냄새가 밴 벽지, 잊힌 줄 알았던 원망감이 새롭게 학습되고 지리멸렬한 감정이 가슴께에 북받쳐 올라왔다. 화장실로 곧장 들어가 샤워를 했다. 정말 도배를 새로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감고, 그다음엔 침대에 알몸으로 누웠다. 이불이 그새 더 무거워졌는지 어쨌는지, 나는 잠시 이불을 덮어보았다가 아무래도 눅눅해서 다시 발치에 둘둘 말아두었다. 나는 벽 쪽으로 잔뜩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충전기를 꽂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모로 누워 유튜브 추천 영상 목록을 한참 훑어보았다. 핸드폰 창 안의 썸네일들은 어제 보았던 것과 비슷하거나 아예 같았다. 그제 본 것과도 같았고, 일주일 전에 본 것과도 같은 것도 있었다. 밖은 아직 밝고, 밤이었다. 하지가 지났다는데. 하지가 지난다고 해서 온 세상이 바로 어두워지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유튜브 추천 영상 목록을 훑어 내리다가,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뭘 그렇게 원하지 않았을까? 아마 뭐든. 아마 나는 그때 화가 난 것 같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누군가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는데, 나도 그런 부류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울었을까? 목울대가 흔들리고, 내 입 밖으로 거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물아홉, 내가 아버지 집을 찾았던 어느 겨울, 현관 앞에서 신발을 벗기 전에 우연히 들었던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그대로 조용히 그 집을 빠져나왔던 기억.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 우는 소리가 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왜 깨달아야 할까. 다 울고 난 뒤에 어두운 밤이 된 후에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소주나 맥주를 마시고 나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이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편의점으로 가야 하는 걸까, 고민을 했다. 컵라면과 치즈, 참치, 크래커 같은 안주를 떠올렸고,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새벽까지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갑은 어디에 두었던가, 입고 온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가. 아아. 어떤 이유로든, 매일같이 이어지던 아버지의 음주를 떠올려야 했다.

삶의 여정 속 겪는 다양한 감정을 탐구한 김엄지 작가 소설-1

이제 그만 용서해. 아버지가 미치고 싶어서 미친 것도 아니잖아. 여동생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여동생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아버지가 미쳤다는 표현을 했는데, 여동생은 거기에 격렬히 반발했다. 아버지는 다만 조금 예민한 사람일 뿐이라 내게 설명하곤 했다.

내 파혼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 역시 여동생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상견례 직전까지, 예정된 상견례 날짜를 다섯 번 바꾸었다. 날짜를 바꿔야만 하는 이유를 댈 때, 아버지는 길한 것과 흉한 것에 대해서 말했다. 길한 것도, 흉한 것도, 아버지 입장에서 얼마든지 그렇게 믿으실 수 있는 거고, 그래,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나와 결혼을 예정한 여자는 이해해주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아버지는 몹시 취했다. 인삼주가 나온 자리였는데, 아버지는 혼자 인삼주 두 병을 비웠다. 아버지는 식사 중 화장실에 세 번인지 네 번인지 다녀왔고, 마지막에 화장실에 다녀왔을 땐 바지 지퍼가 다 열린 채였다. 나와 여자, 여자의 가족 모두 그것을 보았다. 그것 역시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그 자리의 모두가 아버지를 이해했다. 상견례가 끝났을 때 나는 아버지를 부축하다시피 해야 했다. 이후에 아버지는 나와 결혼하기로 한 여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지하철이 침수할 수 있으니 타지 말라거나 비상문과 너무 가까운 곳은 가지 말라거나, 네가 가는 비상문마다 굳게 잠겨 불에 타도 어디도 도망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힐 것이라거나, 믹서기는 쓰지 말고 ‘학독’이라는 것을 구해다 쓰라거나, 여행을 가거든 그 고장만의 특색이 드러나는 엽서를 구해 오라거나 하는 요구를 했다.

엽서요? 아버님? 여자가 묻고, 나는 아버지와 통화 중인 여자의 옆에서 고개 숙이고 있었던가? 이를 악물고 있었던가?

아버지는 내 결혼 상대자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빈번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는 크고 작은 불만들로 역정을 내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거기에서 그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우체국, 주민센터, 은행, 경찰서, 온갖 관공서에 민원 전화를 걸었으며, 본인의 일가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제사를 지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거나, 이미 팔고 없는 선산,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화를 냈다. 그 모든 관공서와 일가친척은 아버지의 언행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모두 내게서 풀고 싶어 했다. 내가 아버지의 언행에 대해 해명을 할 수 있는 바는 거의 없었다. 아버님이 요즘 예민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혹은 곧장 죄송합니다, 말할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신념이나 환상을 깰 수 없었다. 아버지의 환상이 굳은 신념이 될 때, 폭력성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어쨌거나 나는 아버지를 설득할 능력이 없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설득하고 싶지 않아졌다.

여동생이 아버지가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이유는 그 아이도 결혼을 앞두고 있을 언젠가, 그때가 아니었을까. 여동생은 결혼과 관련된 이런저런 것들을 아버지와 상의하려 했을 테니 내가 겪어야 했던 곤란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여동생도 어쩌면 곧 파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여동생은 임신 중이기 때문이었는지 결혼을 깨지 않았다. 여동생은 아버지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며 아버지 이제 금연하세요,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하루에 세 갑, 줄담배를 태우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거절했다고 한다.

아빠 담배 냄새 나면 손주가 싫어할 거예요. 여동생이 사정하듯 말하자,
그런 손주라면 나도 탐탁지 않구나. 아버지는 대답했다고 한다.

여동생은 결혼을 깨지 않았지만 식은 미루고 미루어져 아이가 먼저 태어났다. 혼인신고는 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여동생과 나는 한 달에 한 번쯤 연락을 주고받았고, 아버지에 대한 짧은 용건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기 전, 나와 6개월을 함께 지냈다. 아버지가 머물던 전셋집의 주인이 내게 연락을 해와 통사정을 했다. 이사 비용을 줄 테니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집주인에게 집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산에서 오는 정기가 막혀 있으니 바닥을 드러내고 다시 깔아야 한다든가, 계량기가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거나, 벽이 잔뜩 습기를 머금고 있어 숨 쉬기 께름칙하다거나, 방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너무 사납다거나, 밤에도 밝은 밖은 이 세상의 말세를 의미하니 조치가 필요하다는 등, 아버지의 불만은 집주인이 다 해결해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는 빌라의 온수관을 막아 그 건물의 모두가 따듯한 물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설 연휴 첫날이었고, CCTV로 이미 확인했습니다, 집주인은 내게 전화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집주인에게 사죄했다. 아버지가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실 때까지 양해를 부탁했으나 거절되었다.

아버지는 내 원룸에서 지내는 6개월 동안 매일 새벽 4시쯤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갔다. 다니는 길목마다 쌀을 뿌려놓았다. 그 길을 오가는 새나 고양이, 개, 개미 같은 것들을 위함이라고.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눈총을 받게 되는 것은 나였다. 내 얼굴에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을 텐데, 한둘이 나를 보고 수군거린 이후 거리의 거의 모두가 나를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공원에 머물며 거기에 쌀을 잔뜩 뿌려놓기도 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누군가 신고를 했고, 경찰이 나타났을 때 아버지는 오히려 더 당당했다. 쌀을 뿌리는 행위가 얼마나 정당하고 자애로운 일인지 설명했다. 아버지는 자기의 논리에 도취되어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에이 그건 말이 안 돼요! 멀찍이, 인파 중에 어떤 여자가 소리쳤다. 아버지는 그 여자를 나무라며 혀를 차고 화를 냈다. 곧 손에 잡히는 무엇이라도 집어 던질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목청을 높였다. 나는, 아버지 참으세요, 말했고, 아버지는 그 무엇도 참지 않을 기세였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두 팔을 내 힘으로 제압해야 했다. 힘으로 끌며, 수군대는 군중과 소란을 감상하는 한 무리의 인파를 지날 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땅을 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힘으로 내게 제압된 뒤로도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혀 버텼고, 앞으로 걸어 나가기를 거부했다. 왜 그때 나는 굳이 아버지를 끌고 원룸으로 함께 돌아왔을까. 그저 아버지 허리에 두른 내 손을 풀고 나는 내 갈 길을 갔으면 됐는데.

아버지가 머물 새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에 갈 때면, 아버지는 그 지역의 땅에 대해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아는 양 설교를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집을 거래할 집주인이 나타난 후에는 집주인을 시험해보려는 태도를 취했다. 거기에 맞춰 흔쾌히 집을 내줄 집주인은 없었다.

아버지는 내 원룸에 머무는 동안 내내 담배를 태웠다. 한자리에 앉아 재를 털지 않고 계속해서 빨아서 바닥으로 긴 재가 저절로 툭 떨어지게 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담배를 물고 있다는 걸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벽지에 담배 냄새가 그대로 배어 아버지가 원룸을 떠난 후에도, 비가 오는 날에는 더 심하게 담배 연기 절은 냄새가 올라왔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면 아버지와 한 공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 카페로 향했다. 따듯한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앉아 서너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카페 내부는 한순간 시장통처럼 왁자하게 시끄러워졌는데, 주로 오후 4시에서 5시 즈음 그런 것 같았다. 그 소음을 견디기 힘들어지면 카페에서 벗어났다. 그다음엔 무료하게 천변을 걸었다. 걷다 굉음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비행기가 내 머리 위 가까운 곳에서 날고 있었고, 나는 멈춰 시야에서 그 비행기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쯤 아버지가 뭘 드시기는 했을지,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원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온 길을 다시 거슬러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딱 한 번, 나와 결혼을 예정한 여자가 키우는 개를 본 적이 있었다. 하얀 소형견이었는데, 아버지를 향해 심하게 짖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개가 죽으면 그다음 날이 너희 결혼식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는 여자와 나를 앞에 두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 개를 경멸하고 저주했다. 여자는 그걸 참지 못했다. 물론 나도 참을 수 없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쪽은 나였다.

그래. 할 수 없지. 그게 여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정말 미안해. 여자에게 한 내 마지막 말이었다.

여자도 나도 울지 않았고, 약속된 시간에 만난 것처럼 당연하게 서로 뒤돌아 헤어졌다. 길에서 헤어졌는데, 그 길에서 여자가 한 번쯤 멈춰 섰을지 어쨌을지 모르겠다. 나는 멈춰 서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죽 오래 걸었다. 저녁 8시가 되도록 밝은 초여름이었다. 여자와 완전히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가셨다. 어느 날 여동생은 입소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구급차를 불러와 그 일을 해냈다. 아버지는 치매노인으로 소개되었다는데, 아버지가 정말 치매인지, 다른 어떤 정신병증인지, 단순히 예민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 김엄지 소설가
  • 작가소개

    김엄지소설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돼지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중편소설 『폭죽무덤』 『겨울장면』,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등을 출간했다. 데뷔 당시 단번에 써내려간 듯한 거친 언어와 술술 읽히는 가독성, 동시대를 그려내는 예리한 감각을 선보이며 가장 주목받는 이십대 작가 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10년 차를 맞던 지난해에는 『폭죽무덤』이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작에 선정되며, “그 문체가 스며내는 감각적 느낌만으로도 놀랍다. 감각적 삶의 무기력에 지친 인물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고, 그 우울함을 각성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소설의 후반부를 이룬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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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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