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풀빵과 금반지 - 장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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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잠이 안 오는지, 절망감에 잠이 안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추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인지, 상훈이 던져놓고 간 분노와 치욕감에 이가 덜덜 떨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깜깜하도록 어두운 방 안에 버려진 듯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떨림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자 이불을 끌어다 몸을 칭칭 휘감았다. 한겨울 칼바람이 얇은 벽을 베고 들어와 뼛속까지 건드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조차 베어버린 듯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잠든 새벽이라 바깥은 조용했다. 칼춤을 추는 바람 소리만 시리도록 크게 들려왔다.

몇 시쯤 됐을까. 몸은 여전히 부들거렸다. 그때 어둠을 뚫고 좁은 방 안의 살림살이가 희미하게 보였다. 내 가난을 상징하고 증명하던 것들이었다. 그걸로 의미가 충분해서 내 방을 가난으로 꽉 채워주던 것들이었다. 유일하게 나한테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던 것들이었는데, 상훈이 그마저 깨끗이 가져가서 나는 더 가난해졌다. 아니 가난을 도둑맞았으니 가난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나는 가난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나조차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두운 방, 그뿐이었다. 날이 밝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작은 방. 가난보다 더해진 가난, 가난조차 없어진 가난. 그걸 부르고자 한다면 어떤 말을 붙여서 불러야 할까. 그것은 그냥 ‘지금의 나’가 아닐까. 다 도둑맞고 좁은 방에 홀로 남은 건 지금의 나뿐이니까.

푸른 새벽빛이 창을 가득 메울 때까지 방에 버려진 나를 보았다. 식구들이 거부한 가난을 뭉클하게 옆에 끼고 살면서 쾌감을 느꼈던 나였다. 그것까지 부자한테 빼앗겨버린 나를 보면 어머니는 뭐라고 할까. 쌤통이란 표정으로 거봐, 하며 비참해질 것도 없으니 이제 그만 살고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할까.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연탄가스 냄새에 더 길들여지고 싶었다. 아니 그전에 연탄가스 맡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연탄을 아껴야 하니까. 혼자 쓰게 된 방에 연탄 한 장을 고스란히 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가 추워 부들부들 떠는 것이다. 분노와 치욕감 때문이 아니라. 출근 시간이 됐는지 아침 빛이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햇살은 내 방을 찾아와주는구나. 혹시 저 햇살도 더 가난해진 내 꼴을 구경하려고 온 걸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방을 차지하려는 듯 그것은 다른 날보다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형 옷에 박음질을 하다 말고 엎드려 밭은기침을 했더니 주인아줌마가 감기 걸렸느냐고 물었다. 연탄불이 꺼진 냉방에서 자고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고 공장까지 오는 내내 찬바람을 쐤더니 감기에 단단히 걸려버렸다. 견딜 만했지만 오후가 되어 창으로 들어오던 따뜻한 볕이 자리를 옮기자 열이 나고 목도 간지러웠다. 기침을 멈추지 않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주인아줌마가 또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그게 다 네 에미년 때문이다. 자기가 고생하기 싫어서 너한테 그 고생을 다 떠넘기고 죽은 거지. 쯧쯧.”

그러고는 미싱 옆에 무덕무덕 쏙닥거려 놓은 헝겊 조각을 도로 가져가며 마무리는 자신이 지을 테니 그만 퇴근하라고 했다.

“당장은 힘들어도 열심히 살다 보면 다 지나갈 것을.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죽어 보니 거기가 개똥밭보다 좋더냐고 묻고 싶다. 아마 가난을 피하려다 더 가난해졌을걸. 죽으려면 곱게 혼자나 죽을 것이지. 넌 네 에미년 안 닮아서 다행이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주인아줌마한테 인사를 하고 공장을 나왔다. 해가 완전히 지자 바람은 더 쌀쌀했고 파란빛을 띤 눈이 펄펄 흩날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눈송이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너무 추워서 얼른 양재 실력을 쌓아 일류 재봉사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상훈이 떠나서 좋은 건 하나 있었다. 이제 재봉사가 된다 해도 상훈이가 멕기공장 직공이어도 괜찮을까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하지만 퇴근하고 돌아오다 시장에 들르는 버릇은 여전해서 좋지 않았다. 싫어도 저녁밥을 지어 먹으려면 장을 봐가야 해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들러야만 했다. 상훈과 지낼 때보다 찬거리는 절반으로 줄어들 테니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장으로 들어선 나는 입구 첫 번째 생선 가게는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그러나 조금 더 걷자 생선 가게는 또 나타났다. 건너뛰면 얼마 안 가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 본래부터 여기는 생선만 파는 어물 시장이었던가 싶을 만큼 죄 생선 가게뿐인 것 같았다. 그러자 상훈이 밥을 먹으며 생선을 두고 점잖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생선이 생선이지 점잖은 생선은 또 뭔가. 멸치가 어때서. 생선은 구분 없이 다 눈 뜨고 죽듯이, 사람은 너나 없이 다 눈 감고 죽는다. 저라고 뭐 다르게 죽을 것 같나. 나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생선 가게를 외면하고 야채 가게에서 시금치와 콩나물, 두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건 생선 가게를 한 곳도 들르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몸에서 계속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다. 내게 그것은 길들여진 비위생적인 가난의 냄새 같았다. 하얀 눈발 사이로 저멀리 집이 보였다. 내 방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갔다. 내가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면, 여섯 방 아줌마들도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나와 방 앞 쪽마루에서 밥을 짓거나 설음질을 했다. 수다스러운 여자들이 한데 모이는 시간인 데다, 여섯 가구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며, 도마질 소리, 음식을 지지고 볶는 소리 때문에 공동 부엌은 부산하고 시끄러웠다. 나는 아침보다 심해진 밭은기침을 하며 시금치와 콩나물을 다듬었고, 두부에 간장 양념을 넣고 졸였다. 두부가 든 냄비를 연탄불에 올려둔 채 시금치와 콩나물을 무치는데 끝방 아줌마가 내 쪽을 힐끗거리더니 요새 청년이 통 안 보이네, 라고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물어왔다. 나는 그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여러 부엌 소리 때문에 못 들은 척 딴청 피우며 기침을 과장스럽게 해댔다. 그러자 눈치 빠른 아줌마들이 문제가 생겼다는 걸 간파하고 저희끼리 눈짓을 주고받으며 속닥댔다. 누군가는 웃음을 참으려다 키득대기도 했다. 나는 저잣거리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서 아무도 말을 걸지 못하게 노래를 한 가락 뽑았다. 그러고는 그 노래가 끝나기 전에 얼른 상을 차려서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기획특집, 도둑�은 가난 그후이야기 - 도둑맞은 가난 이어쓰기

상훈과 함께 살 때의 절반분으로 찬거리를 사 왔다고 생각했는데 차려놓고 보니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겨울이라 반찬을 남기더라도 금방 쉬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 마시는 건 그렇다 쳐도 앞으로 방값이며 연탄값, 수돗값, 전깃값을 절약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자 밥상 건너편 빈자리로 자꾸 눈길이 갔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을 반분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쪽으로 시선이 머무는 이유였다. 그보다 더 내가 지금 혼자라는 사실을 절감한 것은 저녁밥을 먹고 감기 때문에 자려고 누울 때였다. 연탄불이 거의 꺼져서 방바닥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연탄과 전깃값을 아낀다는 핑계로 상훈과 나는 일찍 불을 끄고 누워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곤 했었다. 그러면 방이 냉골이어도 진짜 신기하게 하나도 춥지 않았다. 이제는 방 안의 온갖 냉기를 혼자 고스란히 맞고, 아니 맞서며 잠을 자야 했다. 연탄불이 꺼진 방의 냉기란 둘이서는 이겨내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냉기란 가난이라기보다 고독 같은 거라서 그랬다. 기침이 심해진 나는 이불 을 머리 위까지 둘러썼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연탄값과 방값을 절약하듯 아껴둔 그 말을 결국 이불 속에서 혼자 되뇌고 말았다. 그 말을 아끼지 않고 했더라면 상훈이는 내 가난을 훔쳐 가는 짓을 도중에라도 멈췄을까. 울음소리는 이불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안에 머물며 내귀를 울렸다. 새 나갔다면 울음은 꽁꽁 얼어서 눈송이 형태로 쏟아졌을 것이다.

실컷 울고 났더니 무언가가 씻겨나간 듯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상훈에 대한 좋았던 추억은 모조리 사라지고 내 가난을 희롱한 상훈에 대한 분노가 새롭게 치솟았다. 좋았던 추억보다 나빴던 기억을 자꾸 떠올리면 좋았던 건 쉽게 잊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훈은 한발 앞서 모두 다 잊었을 테니 나만 이러는 건 손해이자 멍청한 짓이었다. 상훈에게 나는 연탄 한 장을 애끼기 위해 남자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이는 부끄러운 여자애였다. 나는 누구라도 칠 것처럼 주먹을 꽉 쥐고 이불 속에서 눈을 감았다.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더 이상 춥지는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감기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날씨는 더욱 쌀쌀했다. 그러나 오늘은 인형 옷 만드는 공장에서 월급을 받는 날이었다. 주인아줌마는 좀체 떨어지지 않는 감기가 걱정됐는지 퇴근길에 생강 달인 물을 챙겨주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공장을 나와 종종걸음 치는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풀빵 굽는 구루마가 전봇대 옆에 서 있었다. 지나치려다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해서, 게다가 월급을 받은 날이라 풀빵 몇 개 사서 집에 가자 싶어 포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루마 안은 풀빵 구운 열기로 따뜻했다. 구수하게 퍼지는 풀빵 냄새를 맡자 감기가 금방이라도 나을 것 같았다. 주문한 풀빵이 구워지는 동안 허기를 채우려고 한 개 집어 들었다. 따끈해서 꽁꽁 언 손도 녹아내렸다. 허겁지겁 욱여넣었더니 목이 메어 주인아줌마가 챙겨준 생강 달인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달고 쌉싸름한 생강 물이 턱과 옷가슴으로 흘러내렸다. 닦을 만한 걸 찾다 퇴근하며 주워 온 공장 헝겊조각을 주머니에서 꺼내 입가를 문질렀다. 그러고는 헝겊으로 풀빵을 싸서 먹었다. 절반쯤 먹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꼴사나웠던 그 우월감을 따라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헝겊을 쓰레기통에 얼른 버린 뒤 풀빵을 다시 맨손으로 쥐었다. 다 먹고 나서는 풀빵 세 개가 든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구루마를 나왔다. 누군가 내 팔짱을 낀 것처럼 옆구리가 따뜻했다.

풀빵이 금방 식을까 봐 걸음을 서둘렀다. 산동네 비탈길에 도착했을 때 옅게 깔린 어둠 사이로 불 켜진 내 방 창문이 보였다. 누가 온 걸까. 날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나는 한참을 어둠과 추위 속에 머뭇거리듯 서 있었다. 그러다 풀빵이 식어가는 게 느껴져 곧장 정신을 차리고 비탈길을 달음질쳐 내려갔다. 너무 빨리 뛰었는지 심장이 가파르게 두근댔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방문 앞에 서서 가쁜 숨을 두어 차례 가다듬었다. 그러고 나서야 문을 살며시 열었다.

방에 앉아 있는 건 상훈이었다. 희롱하며 내 방에서 가난을 훔쳐 갔던 상훈이 아무것도 남은게 없는 방 한가운데 뻔뻔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때처럼 좋은 옷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깨끗한모습을 하고 열린 문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말끔한 차림의 상훈은 내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내게 뭘 더 훔쳐 가려고 온 것일까. 조금씩 다시 채워지고 있는 내 가난을 구경하러 왔을까. 그새 얼마나 주워 모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나는 발을 들여놓으며 상훈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왜 왔어?”

나는 문 앞에 선 채 상훈이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당장 나가!”

그러고는 상훈이를 한 대 칠 것처럼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상훈은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올려다보며 입가에 살짝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데리러 올 거라고 했잖아.”
“왜?”
“……”
“데려가서 너희 집 잔심부름시키려고?”
“믿을까. 보고 싶었다고 하면.”

믿을 수 없게도 그 말을 한 상훈의 눈빛이 반짝, 하고 빛났다. 상훈이는 나를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껴두고 하지 못했던 그 말을, 언젠가 상훈이 나한테 하게 될 거라 벼르던 말을, 그러나 하지 않아서 뒤늦게 이불을 둘러쓰고 혼자 되뇌었던 그 말을, 상훈이 먼저 해버렸다. 손에 든 풀빵은 이미 식어서 얼음처럼 차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상훈이 상의 안쪽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꺼내 방바닥에 놓았다. 금반지였다. 멕기공장에서 은반지를 금반지로 속여 만든 것이아닌 진짜 금반지처럼 보였다. 아니 그것은, 어디 가서 멕기한 반지라고 말할 필요 없는 어엿한 금반지였다. 반짝거리는 금빛이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내 방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창으로햇살이 비쳐든 듯 방은 일순간 환해졌다. 밤인데 한낮이 된 것처럼. 상훈은 훔쳐 갔던 내 가난을 이런식으로 돌려주려고 온 것일까. 아니면 제대로 용서를 빌러 왔을까. 오랫동안 침묵하던 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방문을 열고 나가며 상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이 많이 춥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 나는 차디찬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내 방에서 가난을 훔쳐 갔던 상훈은 내 마음마저 훔쳐 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풀빵과 빛나는 금반지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 눈을 감아버렸다. 심장이 뛰듯, 바람에 창문 덜컥거리는 소리만 교교히 들려왔다.
장은진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장은진 소설가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당신의 외진 곳』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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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7-1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