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실패애호가 - 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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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망가트리고 있는 주하를 봤을 때, 그 기타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내가 선물한 기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놀라지 않고 ‘왔어?’ 라고 인사하는 그의 편안한 얼굴과 평온한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내 불쌍한 연인이, 실패한 가수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구나. 일렁이는 감정을 깊은숨으로 꾹 누르고 주하 앞에 앉았다. 악몽을 꾸고 일어난 아이를 달래는 눈과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주하야…… 뭐해.”

주하는 말없이 기타를 들어 보였다.

“멀쩡한 기타를 왜 그러는 거야?”
“에이징하는 거야.”

*

“에이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골목 담벼락에 붙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무명가수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초라하고 재능없는 가수는 처음이었다. 폐업 직전의 라이브카페라 제대로 된 가수가 무대에 설 리 없지만 무명가수라고 할지라도 무대에 선 가수들은 인지도만 없을 뿐 나름 자신만의 색깔이 있고 누가 봐도 가수다운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주하라고 소개한 가수는 달랐다. 특색이 없었고 초라했으며 음정은 불안했다. 그는 작은 소리로 인사한 뒤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았다. 람에 창문 덜컥거리는 소리만 교교히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실패한 가수입니다. 첫 곡의 제목은 <실패한 노래>입니다. 자작곡입니다.”

자작곡이라면서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대에 올려놓은 노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여섯 명이었다. 실패한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무명가수에게 호의적인 마음으로 미소를 짓는 관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멘트가 유머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가수는 너무 진지했고멜로디는 단조로웠으며 가사는 처절했다. 카페를 찾는 관객들은 멋진 사람들이었다. 자신만의 길을걷는 외로운 예술가를 존중했고 난해하고 자의적인 감각에 함몰된 음악일지라도 최대한 받아들이려는 넓은 이해심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흥미를 잃을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기타를 잘 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코드 전환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터치는 불안정해 듣기 싫은 버징이 났다. 박자를 자주 놓쳤고 그때마다 노래는 뚝뚝 끊겼다. 기타도 엉망이었다. 누가 버린 것을 주워다 쓰는 것 같았다. 칠은 벗겨지고 깨진 곳도 많아 나무 속살이 다 드러나 보였다. 앙코르 없는 무대가 끝났다. 나는 그가 신경 쓰였다. 실패와 절망에 물든 가수들을 많이 봤지만 이 가수는 정말 심각해보였다. 나였다면 오늘 밤 수치와 모멸감으로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케이스에 기타를 넣고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려 뒷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를 따라 나갔고 그의 곁에 서서 함께 담배를피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실패한 가수의 실패한 노래 잘 들었습니다.”

가수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은 뒤 감사합니다, 라고 답했다.

“실패하셨다니 힘드시겠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에 가수는 웃지도 않고 진지한 얼굴로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지 않아요. 에이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에이징. 원뜻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거나 성능이 약화되는 것을 뜻하지. 하지만 숙성과 성숙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때는 다른 의미가 되는 거야. 오래된 와인이나 가치 있는 골동품이나예술품처럼.”

자신이 에이징되고 있다는 무명가수 말에 동의했거나 설득된 것은 아니다. 그가 상장되기 전주식이나 긁지 않은 복권처럼 재능이 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반대다. 나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실패했지만 더 실패할 거라고 생각한다. 바닥이지만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를 연민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움직이며 커가는 것을 느꼈을 때 엄마가 생각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망스러운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 그런 자신에게 진절머리 치며 틈날 때마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조롱했던 여자. 그러면서도 개 같이 사는 남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돈을 주고 눈물을 쏟는 이해할 수 없는 여자. 자신의 딸에게는 자기처럼 살면 안된다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여자.

“거지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 거지 같은 거야. 그러니 약속하렴. 너는 그런 것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그런 마음 앞에 침을 뱉고 등을 돌리겠다고 말이야.”

나는 그때마다 손가락을 걸었고 엄마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줬다.

왜 한계 앞에 무너진 사람의 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커지는 걸까.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하기 위해 헛된 꿈을 꾸는 사람의 손은 왜 잡아주고 싶은 걸까. 왜 나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는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 당신은 멋졌고 나는 그런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밥을 사주고 싶다고 했고 당신의 말과 노래를 더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허락해준다면 당신의 매니저를 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아등바등 사는 나를 보며 주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게까지. 한계 앞에 무너진 이들을 사랑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일삼는 사람들을 아름다워 하면서 정작 나는 내가 어떤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더는 갈 수 없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이건 아니다. 잘못 생각했다. 실수했다. 나는…… 어리석었다. 결국 실패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끔찍했다. 나는 가난했지만 가난에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상처받으며 자랐지만 상처가 드러나는 표정으로 살지 않을 거다. 부모가 내게 물려준 것이라고는 패배감과 절망 지저분한 본질뿐이지만 나는 보란듯이 살 거고 심지어 잘 살 거다. 자기연민에 눈물 짜는 못난이 같은 삶은 절대로 살지 않을 거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악착같이 살았고 통증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으며 어떤 상황에도 놀라지 않은척했다. 부러운 사람도 미운 사람도 없는 흔들림없는 마음을 갖길 원했다. 누구도 계약하지 않으려는 빛없는 반지하 방에 살면서도 빛 속에 선 나무처럼 의젓하게 살려고 했다. 곰팡이를 지우고 갈라 진 벽에 모던한 시트지를 발랐다. 쌀 한 톨 김치 한 조각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가난한 내가 더 가난해지지 않으려면 지금으로서는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밥이 지어지면 곧바로 밥통에 전원을 빼고 한그릇씩 소분해 냉동실에 넣었고 반찬은 락앤락에 넣어 최대한 상하지 않게 조심히 먹었다. 내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을 때 주하는 내 방의 모든 것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열심히 살고 악착같이 아끼는 내가 대단하다, 했고 잠을 줄여가며 시나리오를 쓰는 나를 안쓰럽다, 했다. 나는 그 눈빛을 이해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도 내가 주하에게 하듯 주하도 내게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누추해지지 않도록 더 상처받지 않도록 괜찮다. 좋다. 해주는 것. 그것이 거짓이라도 거짓을 꾸며내는 마음은 진심이고 그 진심은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주하는 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나는 주하가 좋았다. 빛 없고 의미 없는 반지하 방에 주하가 들어와 의미가 생겼다. 실패한 인간.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이나 요양소처럼 누추한 내 방이 성스럽게 느껴졌다. 주하라는 존재는 내게 기이한 희망이었다. 그가 노트에 무엇인가를 끄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고 기타를 튕기며 흥얼거리는 것도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나는 주하를 버티게 해주고 싶었고 회복시키고 싶었다. 그 버팀과 치유가 나를 버티게 하고 내 상처를 치유할 것만 같은 이상한 믿음까지 생겼다. 나는 주하에게 새 기타를 선물했다. 주하의 반응은 덤덤했다. 알바비를 거의 다 헐어 작심하고 산 기타였다. 상급기타는 아니었지만 중급 이상은 사용할 수 있는, 내 기준에는 고급 기타였다. 주하는 기타를 연주해보지는 않고 이렇게 저렇게 돌려가며 상태를 살폈다. 상표를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나무를 톡톡 때리며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짧게 말했다. 기획특집, 도둑�은 가난 그후이야기 - 도둑맞은 가난 이어쓰기

“고마워.”

*

에이징,이라는 말에 그동안 애써 막고 있던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귓가에 우르르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서운 눈으로 주하를 노려보며 손에서 기타를 빼앗았다. 그동안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을 쏟아냈다. 주하는 당황한 듯 보였으나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래릭이라고 하는 거야. 가치 있는 유물이라는 뜻이지. 쉽게 말해 래릭은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악기를 가치 있는 유물로 만드는 과정인거야. 고귀하게 재탄생시키는 거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에이징된 악기는 소리부터 다르거든.”

주하는 계속 말했다. 래릭은 어떤 장비로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래릭이 잘 된 악기가 얼마나 비싼지. 그동안에 보이지 않던 기이한 흥분에 젖어 텐션이 높은 목소리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언젠가 나는 물었다. 왜 가사를 쓰지 않느냐고. 그때 주하는 이렇게 답했다.

“어떤 가사를 써도 마음이 온전히 담기지 않아. 어설프게 망가트리고 싶지 않아. 차라리 쓰지않음으로 내 모티프와 영감을 지키는 거야.”

그때는 왜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지 않았을까?

“개소리 하지 마. 에이징? 억지 노력으로 멀쩡한 것을 망가트리면서 그것이 멋있게 낡은 거라고? 미친 새끼. 부서진 것과 낡은 것은 다른 거야.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노력과 돈으로 사려고 하잖아.”

주하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솔직하고 정직한 말이었다. 꺼내면 그 말이 마음이 될까 봐 절대로 입술 밖으로 꺼내지 않는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섞어 침을 뱉고 돌을 던지듯 쏟아 부었다. 주하는 놀란 아이처럼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한 가수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시도하거나 이룬 적이 없으므로 그에게 실패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실패에 대한 로망을 갖는 것으로 실패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가 찌그러진 캔 같다고 생각했다. 볼품없지만 누군가 밟아 찌그러졌을 뿐 언제든 스스로 펴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누구도 그를 밟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밟아 자신을 전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나가.”

실패한 가수는 왼쪽 어깨엔 자신의 기타를 오른쪽 어깨엔 내가 사준 기타를 메고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미안하다고 했다가 고마워라고 했다가 마지막엔 너무한다고 했다. 그가 떠난 침대엔 그의 실패의 기록을 담은 얇디얇은 노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정용준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정용준 소설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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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7-1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