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시간 도둑 -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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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너무 큰 나무를 심은 탓일까. 나무는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눈치챘지만, 차마 딸과 사위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딸네가 도시 아파트에서 살다가 시골에 땅을 사고 집을 지은 것은 순전히 손녀 때문이었다. 손녀는 갓난아기 때부터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 밤이면 더 심해지는 가려움증으로 잠 못 드는 아이를 달래느라 잠을 못 자서 피로한 몸을 소파에 부리고 있던 딸은 늘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는 가려움증에 시달리면서도 텔레비전을 켜두어야 그나마 선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끄면 신경질을 부렸다. 아이 때문에, 그리고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역시 잠을 못 잔 사위는, 혼자서 물에 만 밥이거나, 계란 후라이거나, 시리얼이거나, 아무거나 우걱우걱 입속에 털어 넣고,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구나아, 한마디 남기고 출근하고 난 뒤였다. 사위는 내가 아침 끼니를 챙겨주는 것을 몹시 저어했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잠을 자는 척하면서 사위가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나오곤 했는데 거실로 나오면서 보니,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한 딸이 자다 깬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 쪽으로 내 눈도 옮겨갔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건 순전히 딸 때문이었어요.”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집에 한 가족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땐 정말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어요.”

아이가 아토피를 앓아서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했고 지금은 좋아졌다고 아이 엄마가 말하고 있었다. 게슴츠레 화면을 쳐다보던 딸이 갑자기 눈을 반짝 뜨더니,

“엄마, 안되겠어, 우리도 시골로 이사 가자.”

시골로의 이주계획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사위가 출근하고 나면 딸은 아이와 나를 제 차에 태우고 부지런히 땅을 보러 다녔고 맞춤한 땅이 생기자 집 짓는 일은 사위가 도맡아 처리했다. 그렇게 1년 사이에 뚝딱 시골집이 생겼다. 시골로 이사 온 뒤 아토피가 현대 도시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텔레비전에서 본 아이처럼 손녀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손녀가 좋아지니 이제 나도 내 집으로 돌아가야지, 했는데, 딸이 새로 지은 시골집 정리만 좀 해줬으면 싶어 해서 또 주질러 앉았다.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딸네 집에 그렇게 오래 머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도 바야흐로 시작된 나의 노년을 딸네의 시골집에 보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은밀히 들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빛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늙어가고 싶다고 딸과 사위에게 말하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그 사이에 도시의 내 집은 슬쩍 전세까지 내주고 말았다.

“엄마, 전세 기한 다 끝나가잖우?”

나보고 이제 그만 엄마 집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내가 함께 사는 게 싫었다면 진작 솔직히 말할 것이지.



“지금 사는 사람이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데? 아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 졸업하는데 졸업할 때까지 일 년만 더 살고 싶다고 하네.”
“엄마 집이니 엄마 맘대로 하시우.”

그 말을 끝으로 딸은 더 이상 내 집에 대해서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또 딸의 시골 집에서 세 번째의 봄을 맞게 되었다. 사위는 출근길이 좀 멀어진 것 빼곤 도시 살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어느 날 신문지를 펴놓고 실내에서 손톱을 깎고 있는 제 남편에게 딸이,

“여보, 우리 지금 마당 있는 집 살아.”
“그게 무슨 뜻이야?”

묻다가 사위가 주섬주섬 신문지를 말아들고 밖으로 나가던 것이었다. 딸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와서 마당을 너무 의식했고 사위는 거의 마당을 의식하지 못하고 아파트 살 때처럼 살았다. 당연히 마당일은 딸 몫이 되었다. 그러나 흙일이라는 게 도시 출신이기는 마찬가지인 딸에게 그리 녹록한 일일까보냐. 휴일에 제 남편을 닦달하여 마당으로 내모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사위는 삽질 몇 번에 캑캑,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배야.”
“왜? 어디 아파?”
“이상해, 삽질만 하면 설사가 나올 것 같아져.”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으나, 진짜였다. 상황이 그러한지라 딸은 혼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덕분에 손녀는 일하는 제 엄마 곁에서 쏟아지는 햇빛,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날로 건강해졌다. 예전에는 아이 건강이 다른 아이들처럼 좋아지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던 딸이,

“아, 우리 집도 언제쯤 저 집들처럼 천국 같아질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너무 서두르지 마라.”

저희 집 마당이 황량한 것이 처음에는 삽질만 하면 설사기를 느끼는 남편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3년 째가 되자 딸은 제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돈 문제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엄마, 사람 예뻐지는 데에도 투자를 해야잖아요.”
“그렇지, 열심히 씻고 몸과 마음을 반듯이……”
“그것 가지고는 안 되지. 하여간 투자가 필요해. 집도 마찬가지야!” 기획특집, 도둑�은 가난 그후이야기 - 도둑맞은 가난 이어쓰기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딸은 나무 시장엘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사 온 첫해 봄에 나무를 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시공자가 집만 달랑 지어놓고 철수한 딸네 집은 공사판 같았다. 비가 오면 아직 굳지 않은 마당에 발이 푹푹 빠졌다. 사실 딸은 그때도 돈타령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밥상머리에서 딸이 문득,

“아유우, 알아보니까 좀 살만하게 하는데 오백은 든다네.”

돈 얘기, 집 얘기만 나오면 사위는 예민해졌다. 왜 아니겠는가. 아이의 건강 문제 때문에 시골집을 짓긴 했지만, 사위는 적지 않은 빚을 낸 상황이다.

“왜? 집이 살만하지 않아?”
“집만 달랑 지어놓으면 그게 어디……”

딸과 사위가 언성이 높아질 기미가 보이면 나는 모른 척 밖으로 나갈 수밖에. 나는 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업자에게 문의한 결과 오백만 원만 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마당 조경을 해주겠다고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오니까 부부의 말싸움은 기세가 좀 더 세졌다.

“집이 물이 새? 쥐구멍이 생겼어? 아니면 어디가 어긋났어?”
“집이야 좋지. 마당이 휑해서 그렇지.”
“당신이 좋아하는 나무 심었잖아. 그거 뭐야, 거.”

사위는 나무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배롱나무. 근데 내가 집안에 배롱나무 심었다고 옆집 여자가 뭐래는지 알아?”
“뭐래?”
“무덤가에 심는 나무를 심었대나 뭐래나.”

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좀 더 먼 곳으로 갔다. 딸은 옆집 여자를 달가와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러냐 물으니,

“여자가 뭔가 도사연하는게 있어. 나는 그런 사람 좀 재수 없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편견은……”
“아니야, 사람 딱 보면 알아.”

딸이 완강하게 나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아무리 자식이어도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래되었다. 딸이 일곱 살 때. 처음에는 그게 그냥 어린아이 특유의 소유욕에서 나온 응석 내지는 고집이려니 했다. 어른들이 흔히 아이한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묻는 것처럼 아이는,

“엄마는 내가 좋아? 아빠가 좋아?”
“둘 다 좋아.”
“그래도, 하나만 좋아한다면?”
“으음……”
“알았어. 아빠가 좋다는 거지?”
“아니야, 아무튼……”

아이는 내 말이 끝나는 걸 기다리지 못했다.

“으음한 것은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거야. 이제 알았어. 엄마는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까……”

아이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란 것을 아이도 느낌으로 알았던 것일까.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흔히 딸들은 엄마한테가 아니라 아빠에게 내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제 아빠에게가 아니라 늘 내게 물었다. 내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러고는 내가 조금이라도 대답이 늦어진다 싶으면 바로, 알았다고, 엄마는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거라고, 제 맘대로 규정지어 놓고는 서럽게 울었다. 우는 아이를 내가 달랬던가, 어쨌던가. 이젠 그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상훈이 떠나고 난 방에서 내가 울었던가? 울음 대신 그저 온몸을 결박해 오는 추위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바들바들 떨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추웠는지. 사랑을 잃어버린 상실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분노였던가? 배신감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아닌 단지 그냥 추워서였던가? 공장에 나가 일을 하면 아무렇지 않다가도 방에만 돌아오면 떨렸다. 추위가 무서워 나는 되도록 가장 늦게까지 일을 했고 그러다가 끼니때를 놓쳐 공장 앞에서 풀빵을 몇 개 사서 끼니를 대신하고는 했다. 그렇게 먹는 것이 부실해서였는지 하루는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쯤 나는 이미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상훈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라는 것도. 어느 날 모처럼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요새는 통 안 오시네요?”

내가 상훈이와 함께 살 때 가끔 들렀던 생선가게 남자. 그가 환히 웃으며 나를 볼 때, 내가 웃었던가, 어쨌던가. 남편은 내가 웃었다고, 웃는데도 왠지 우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자기 마음이 흔들렸다고, 웃는데도 우는 것 같은 여자를 자기가 안아주고 싶었노라고, 말했지만 남편이 아무리 같은 말을 반복해도 나는 내가 남편, 아니 생선가게 남자를 보고 웃었는지 어쨌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상훈과 함께 살 때 내가 사지 않았던, 아니 사지 못했던 도미를 샀다는 것. 그리고 생선가게 남자에게 도미를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를 물었다는 것 뿐, 내 남편이 된 생선가게 남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게 얼마나 많은 생선 요리법을 가르쳐줬는지, 가르쳐 줬을뿐더러 요리해 줬는지. 손수 요리한 생선 살을 발라 어린 딸 입에 쏘옥 쏙 넣어주며 얼마나, 얼마나 흡족해했는지, 얼마 나 고운 ‘내 딸’의 아버지였는지.

“엄마 왜 나와 있어?”

딸은 내가 저희들 눈치 보느라고 나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 만에 나를 찾으러 나왔다. 이런저런 옛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기도 애매해서 문득,

“야야, 저 배롱나무 왠지 죽어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어머 어머, 내가 못살아, 정말이네?”

딸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도통 이파리가 돋아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배롱나무 앞으로 달려간다.

“차라리 잘됐지 뭐. 나도 왠지 가정집에 배롱나무 있는 거 보기 싫더라.”
“그게 뭔 소리야, 요샌 요게 트렌드야. 뭘 알지도 못해, 엄만.”
“야야, 가정집 정원엔 그저, 감나무, 살구나무, 또 뭐냐, 대추나무 같은 거 한두 그루 있음 얼마나 정답고 좋아, 때 되면 과일도 따먹고, 뻘쭘하게 배롱나무가 다 뭐야.“
“멋진 집 가봐, 배롱나무뿐이야? 정원에 다들 멋진 소나무도 있지.”

딸은 아무래도 죽은 배롱나무 자리에 소나무를 심을 것 같았다. 딸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시간을 사고 싶은 걸 거다. 제 공력이라곤 한 점도 보태지 않은 나무의 시간을 산다는 것이 실은……사위가 나왔다.

“추운데, 들어가시죠.”

얘가 말이야, 자꾸 남의 집 시간을 훔치려고 들어서 그거 말릴 셈이야 지금, 하려다가,

“감나무 묘목을 사 와서 어디다 심을까 연구 좀 하다 들어갈 테야.”

딸과 사위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정히 손을 잡고 먼저 들어갔다. 딸이 훔치고 싶어하는 나무의 시간은 딸을 만족시킬까. 훔쳐 간 가난을 상훈은 얼마나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밤 정원에서 좀 더 오래 서성였다. 달큼하고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김태용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공선옥 소설가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 『유랑가족』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은주의 영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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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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