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 갈 때까지 나는 춥고 음습한 골방에서 누워 지냈다. 더 이상 인형 옷 만드는 일도 취로사업에 나가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깟 몇 푼 벌자고 이 엄동설한에 헌 옷가지로 몸을 싸매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부엌 귀퉁이에 쌓아둔 연탄이 떨어져가고 쌀독이 비어가고 있었으나 그조차도 아예 신경쓰기 싫었다. 이대로 동태처럼 얼어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한동안 쥐 죽은 듯 방문을 닫고 지내자 안집 아주머니가 찾아와 접시에 구운 인절미와 식혜를 건네며 나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어디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연탄불을 넣어주고 돌아갔다. 바람? 난데없이 웬 바람? 스무 해를 넘기면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나는 슬쩍 귀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바람을 쏘이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방바닥에 주저앉아 인절미에 식혜를 먹고 있자니 상훈이 찾아와 했던 말이 되살아나며 다시 처참한 기분에 빠져버렸다. 지 아비가 잔심부름도 시키고 야학이라도 가게 해준다며 자신을 데려오라고 했다는 말 끝에 상훈이 ‘근데 그런 꼴로 갈 수는 없잖아’라며 툭 내뱉은 말이 여태껏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 당최 빠져나갈 기미가 없었다.
방에 온기가 스미고 허기가 가시자 그동안 못 잤던 잠이 쏟아져내렸다. 열흘 가까이 방에 박혀지내긴 했으나 온전히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니 다음 날 정오쯤이었다. 다시 허기가 찾아온 것을 느끼며 나는 허망하게 웃었다. 이것도 딴에는 살아 있는 거라고 속에서 먹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부엌 찬장을 뒤져 한 개 남은 라면을 끓여먹고 나는 밖으로 나가 보기로 하고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이런 꼴로 나가면 거렁뱅이 취급이나 받을 게 분명했다. 세상 사람들 눈이 얼마나 매섭고 잔인한데. 얼굴에 물기라도 묻히고 묵은 콜드크림이라도 발라야만 하겠지.
3월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으나 밖은 여전히 추웠고 사나운 바람마저 불어대고 있었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에 바람을 쏘이러 나가는 게 주책맞은 건 아닌가? 딱히 어디를 가겠다는 생각도 없이 나는 골목을 벗어나 버스가 다니는 길로 나갔다. 아찔하니 현기증이 사이사이 몸을 흔들어댔다. 어디선가 고등어를 굽는 냄새가 날려왔다. 고등어를 먹은 지도 참 오래됐네, 라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자니 작년에 상훈을 만났던 풀빵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금 얼굴로 피가 몰려드는 느낌에 시달리며 나는 멀찌감치 그곳을 지나쳐서 걸었다. 그때 포장마차 앞에 서서 풀빵을 먹고 있던 웬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환청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긴가민가하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그가 멈칫멈칫 따라오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그가 휘청거리며 다가오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누구신데 저한테 이러세요?”
잔뜩 긴장된 상태여서 말이 절로 떨려 나왔다.
“네, 저 상훈이하고 멕기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만식이라고 합니다.”
멕기 공장? 싸구려 반지를 만든다는 그 도금 공장 말이지? 핼쑥한 몰골의 그를 노려보다 나는 만식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아, 그 폐병장이. 상훈이 놈이 내 통장에 들어 있던 전 재산 3만 원을 갖다 주었다던 그 만식이.
“근데 저는 어떻게 알아요?”
“전에 상훈이하고 식당에 계신 걸 본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요?”
“늦었지만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덕분에 몸이 차츰 나아지고 있습니다. 신세는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가만히 숨을 고르다 말없이 돌아섰다.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풀빵 포장마차 근처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등에 달라붙어 있는 만식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그 돈을 갚는 날이 오면, 나는 뭐가 돼 있을까나.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지금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니 참았던 부아가 벌컥 치밀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막연히 서 있다 나는 근처에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 홀린 듯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밖에 내놓은 화분들 때문이었을까? 아직 꽃이 필 시절은 아니건만 어디 온상같은 데서 키워 내다 놓은 모양이었다. 화분들 틈에서 나는 난생처음 보는 꽃을 발견했다. 신혼의 이불보에 수놓인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꽃망울들이 맺혀 있는 게 신기하다 못해 서럽도록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인 할머니가 나와 묻지도 않았는데 꽃 이름을 알려주었다.
솔매. 왜 솔매냐고 묻자 주인 할머니 는 잎이 소나무와 닮았고 꽃은 매화를 닮 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먼 나 라에서 온 꽃이라고 덧붙였다. 호주라나 어디라나. 나는 아주 먼 나라, 라는 말이 유독 귀에 들어와 박혔다. 언젠가 솔매가 피는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이 들자 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 개시도 못한 터여서 싸게 줄 테니 가져가라 는 주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셈을 해보았다. 솔매를 사면 버스를 탈 수도 없고 저녁을 먹을 수도 없을 거였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인은 신문지로 화분을 감싸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주었다.
나는 솔매 화분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바람은 무슨 바람. 겨우 한줌 햇빛 이 비집고 들어오는 창틀에 솔매 화분을 올려놓고 나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솔매, 솔매라고 되뇌이며 나는 또 살긴 살아야겠지? 라고 웅얼거려 보았다. 눈을 감자 뜻하지 않게도 낮에 본 만식의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번쩍 눈을 뜨고 짐짓 도리질을 했 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 그놈의 폐병장이가 생각날 만큼 마음이 헐고 닳았단 말인 가. 내 가난을 도둑질해 간 상훈이 놈도 뱀처럼 싫지만 나처럼 가난에 찌들고 병든 사내는 더더욱 싫 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자 행세를 일삼는 놈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었 다. 그러자면 만식이 같은 사내는 꿈에라도 만나지 말아야 했다. 앵무새나 카나리아처럼 맵시 있게 단장을 하고 술집에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놈의 지옥 같은 가난에서 기어코 벗어나리라.
하지만 막상 술집에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것도 필시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닐 거였다. 애초에 양장점 재봉사가 꿈이었으니 차곡차곡 돈을 모아 봉제학원이라도 나가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꿈을 좀 더 키워 깔끔한 자태의 양장점 주인이 돼 보자고 생각하며 나는 창틀의 솔매를 올려다보 았다. 그래, 솔매같이 고혹적인 옷을 만들어 돈 많은 여편네들의 주머니를 우려내 어디 한 번 남부럽지 않게 살아봐야지.
그러나 어디 꿈꾸듯 뜻대로 되는 일이 있었던가. 차디찬 골방에서 굶기를 다반사로 지내자 어느 날 몸살기가 슬금슬금 덮치더니 급기야 몸이 불덩이로 변했다. 물을 마실 힘조차 없어 기다시피 문밖으로 나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나 지금 죽어가고 있는 모양이니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놀란 아주머니는 남편을 불러내 나를 들쳐업게 하더니 병원으로 달려갔다. 폐렴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혼수상태로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왔다. 누가 또 내 발목을 잡고 어두운 함정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누가 아니라 다름 아닌 내 지독한 가난과 그런 나를 놔두고 제멋대로 자살한 부모겠지.
퇴원하기 전날 뜻밖에도 만식이가 병실로 찾아왔다. 장미꽃 한 송이와 불룩한 종이봉투를 들고서. 엊그제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찾아갔다가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내심 당혹스러웠지만, 조금도 반가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뜸 불안하고 두려운 느낌이 앞섰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은 몽매에도 반기고 싶지 않았다. 파리를 쫓듯 그를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나는 다시 양장점 주인이 돼있는 나를 상상했다. 한데 요지경인 것이 갑자기 그가 들고 온 종이봉투 속의 풀빵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몸이 회복되는 징조였지만 그조차도 게워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역겨웠다. 그래도 아직 식지 않은 풀빵을 다 먹어치웠다.
퇴원한 뒤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하는 인형 옷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당장은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만 취로 사업 일은 힘이 부쳐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개천에서 삽과 괭이를 들고 돌을 치우는 일은 못할 것 같았다. 연탄 반 장을 아끼고자 상훈과 동거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나이이니 때가 되면 봉제학원에 나가 앞날을 꾸려 갈 생각만 되풀이했다.
솔매는 신기하게도 꽃이 오래갔다. 볼수록 어여쁘고 우아한 식물이었다. 그 꽃을 보는 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막연히 상훈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이를 앙다물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마지막 자존심마저 걸레짝처럼 내놓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한 가닥 희미하게 남은 자존심뿐이었다. 그것만큼은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 나는 솔매를 보며 거듭 다짐했다.
만식이 집으로 다시 찾아왔다. 매정하게 돌려보내면 지치지도 않고 며칠 후 다시 찾아왔다. 하루만이라도 자신한테 시간을 내달라고 간곡하게 하소연을 했다. 한순간 마음이 흔들려 어느 날 나는 바람이나 쏘이러 가자는 심정으로 만식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벚꽃이 만발한 남산 자락이었다. 리라초등학교 건너편 언덕바지에 있는 돈까스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며 만식이 말했다.
“몸이 다 낫고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되면 나와 만나줄래요?”
나는 차갑게 그를 밀어냈다.
“오늘이 마지막이니 그런 줄 알고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 저는 이제 부자도 가난뱅이도 싫으니까요. 더군다나 병든 사내는.”
그러자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하더니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말이 심했나 싶어 나는 더듬거리며 덧붙였다.
“미안해요. 마지막 말은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가 나를 고요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일 년 뒤 이맘때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는 우리 둘 다 지금보다는 한결 나아져 있을겁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내가 신세를 져서 자꾸 찾아온다 생각하지 마세요. 그 돈은 다음에 만날 때 꼭 갚을 거니까요.”
“갚겠다면 냉큼 받아야죠. 그게 당연한 거구요.”
“그땐 그쪽을 향한 제 마음도 당연한 듯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순간 방심한 것처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둠이 내린 벚꽃 길을 그와 나란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벚꽃 잎이 옷에 몇 개 묻어 있었다. 나는 그를 기다릴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나름 괜찮은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틀의 솔매는 그날도 콩껍질 같은 투명한 막을 떨어뜨리며 야무지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쩐지 내가 점점 솔매를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솔매가 나를 닮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봄은 그렇게 내게 스며들었다.